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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도서관 - 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주일 ㅣ 날마다 시리즈
강원임 지음 / 싱긋 / 2025년 4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25.
인문책시렁 434
《날마다, 도서관》
강원임
싱긋
2025.4.12.
우리나라에 태어난 ‘책숲’은 ‘우리’가 누릴 곳이지 않았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총칼로 쳐들어오면서, ‘그들(총칼을 쥔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누리려는 책터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선 ‘배움숲’도 우리가 누릴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총칼로 짓밟으면서, ‘그들(총칼을 휘두르는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녁 아이를 보내어 가르치는 배움터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나름대로 책숲과 배움숲을 누리고 나누고 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즐길 터전으로 삼되, 이러한 곳을 가리키는 이름은 여태 ‘그들말(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 용어)’이라는 굴레에서 맴돌아요. 1945해 뒤로 이럭저럭 여든 해쯤 흘렀으니 이제는 그냥그냥 써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여든 해나 흘렀으니 이제는 슬기롭고 참하게 우리말로 새롭게 이름을 붙이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도서관》은 집 가까이 있는 여러 책숲을 즐겁게 드나들면서 보거나 듣거나 겪거나 배운 바를 단출히 풀어냅니다. 곰곰이 보면, 서울이나 서울곁이나 큰고장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책숲도 배움숲도 넉넉하며 느긋이 누립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책숲도 배움숲도 드물거나 멀어요.
저는 진작부터 “우리집 책숲”을 꾸렸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동안에 다닐 만한 책숲이 없기도 했고, 2010해에 인천을 떠나서 전남 고흥에 깃들 무렵에도 “집에서 걸어갈 만한 곳”에 책숲이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보면, 예부터 사람들 스스로 보금자리를 ‘보금숲·배움숲·일숲·놀이숲·노래숲’으로 삼았습니다. 언제나 보금자리부터 모든 길을 여는 첫자리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일구었어요.
누구나 집 가까이 걸어서 드나들 만한 책숲이 있으면, 이러한 나라는 아름길을 가리라 봅니다. 다만 하나 더 헤아려야 하는데, 책숲은 책을 안 가려야 합니다. 책숲은 ‘높책(추천도서·권장도서)’을 안 두어야 합니다. 책숲은 모든 갈래를 품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목소리를 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왼길과 오른길과 가운길을 고르게 품어야 책숲입니다. 배움숲도 마찬가지예요. 왼목소리와 오른목소리와 가운목소리가 고르게 어울리면서 함께살기라는 길을 밝힐 적에 비로소 ‘숲’입니다.
책을 사고파는 집이기에 ‘책집’입니다. 책으로 배우고 익히며 나누는 곳이기에 ‘책숲’입니다. 보금자리를 책숲으로 가꾸면 ‘책마루숲’입니다. 그들말(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 용어)을 털어내자는 뜻도 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언제 어디에서나 숲으로 마주할 적에 스스로 눈뜨고 깨어나게 마련입니다. 나무 한 그루 못 심는 곳이라면 ‘집’이 아니라 ‘돈터(부동산)’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쉰 해뿐 아니라 두온해(200년)를 보듬어서 아이가 물려받을 만한 곳이어야 ‘집’입니다. 빌려읽는 사람이 적대서 내팽개치는 데는 책숲이 아니라 ‘대여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대여점 언저리를 맴도는 도서관’입니다. 고루눈도 두루눈도 가운눈도 아니기에 ‘책숲으로 가닿지 못한 대여점’이기도 합니다. ‘백화점 문화센터 흉내’를 너무 내느라 막상 ‘왜 굳이 종이책을 건사하는 터전’으로 삼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책숲일꾼과 책숲지기라면, 사람들이 빌려읽지 않는 책을 살펴서 ‘책글(감상문·소개글)’을 써서 알리는 노릇을 해야 맞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왼눈박이나 오른눈박이가 아니라 ‘두눈박이’라는 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온눈사람’으로 피어날 길을 ‘숲에서 온 종이에 이야기를 담은 꾸러미인 책’으로 나누는 길을 펴야 맞습니다.
책숲마실을 다니는 분이라면, 책집마실도 나란히 하면서 꾸준히 ‘책장만’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좋아하는 책을 사읽기’가 아닌 ‘새롭게 배우며 스스로 온눈을 뜨는 길로 북돋우는 길잡이책을 사읽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ㅍㄹ
나는 근처에 앉아도 괜찮을 이용자인가? 사실 나는 내가 피해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한다. (18쪽)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전멸 위기에서 구하려고 애썼지만 또 몇 년 뒤에도 학생들이 빌려보지 않는다면 그 책들은 또다시 폐기 대상 도서로 분류될 것이다. (23쪽)
이성으로만 해결하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분석하고 사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끝없는 애씀. 거기에는 일말의 사랑도 없었다는 사실. (41쪽)
방과 후에는 거의 매일 서고에 올라갔다. 늘 냉전중인 엄마아빠, 대화 상대가 안 되는 어린 동생들이 있는 집 대신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64쪽)
80대 가까이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나에게 다가와 강의 잘 들었다며 인사했다. “많이 배웠어요.” (96쪽)
온갖 것을 숫자로 판단하는 세상으로부터 도서관은 저항하려고 애쓴다. 몇몇 작은 서점만 해도 많이 팔린 책 순위를 올린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순위대로 책 구매를 한다. 한번 매겨진 순위는 잘 바뀌지 않는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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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
나는 전국 도서관을 다니는 도서관 덕후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바보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순이는 아니다
→ 나는 온나라 책숲을 다니는 책숲벌레는 아니다
4쪽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초입에 살아 양쪽 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어귀에 살아 두 책숲을 모두 다닐 수 있다
→ 서울 끝자락과 경기도 입새에 살아 두 책숲을 모두 누린다
8쪽
도돌이표 일상이 시작되는 월요일
→ 도돌이꽃으로 여는 달날
→ 도돌이길로 가는 달날
15쪽
휴관일을 잊고 갔다가 셔터가 내려진 도서관 앞에서
→ 닫는날을 잊고 갔다가 덧닫이를 내린 책숲 앞에서
→ 쉬는날을 잊고 갔다가 철커덕 닫힌 책숲 앞에서
15쪽
또 연체하는 죄를 저지르겠지만
→ 또 늦어 잘못하겠지만
→ 또 미루며 잘못하겠지만
29쪽
모두를 품는 환대의 공간으로 도서관을 꼽는 나는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품는 곳으로 꼽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반긴다고 여기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51쪽
필담을 주고받으며 킥킥대고 있다
→ 글씨를 주고받으며 킥킥댄다
→ 붓말을 주고받으며 킥킥댄다
61쪽
눈앞의 선율소리는 강렬했다
→ 눈앞 노랫소리는 뜨거웠다
→ 눈앞 가락노래는 대단했다
86쪽
누가 이렇게 나에게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던가
→ 누가 이렇게 나한테 깊이 물어보았던가
→ 누가 이렇게 나한테 곰곰이 물었던가
102쪽
밤하늘에 청초하게 뜬 만월이 보인다
→ 밤하늘에 곱게 뜬 둥근달이 보인다
→ 밤하늘에 정갈히 뜬 보름달을 본다
115쪽
서치(書癡). 글 읽기에만 빠져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 글바보. 글에만 빠져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 책바보. 글만 읽어 다른 일은 돌보지 않는 사람
11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