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726 : 무언가를 계절 -게 된


무언가를 묻고 온 밤에는 꼭 계절을 묻게 된다

→ 무엇을 묻고 온 밤에는 꼭 철을 묻는다

→ 묻고 온 밤마다 철을 묻는다

《모래는 뭐래》(정끝별, 창비, 2023) 44쪽


틀린말씨인 ‘무언가를’은 ‘무엇을’로 바로잡습니다. 이 보기글이라면 “무언가를 묻고 온”에서 ‘무언가를’을 통째로 덜어낼 만합니다. 옮김말씨 “묻게 된다”는 “묻는다”로 바로잡아요. 철을 묻고 때를 묻습니다. 철빛을 묻고 날을 물어요. ㅍㄹㄴ


계절(季節) :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에 따라서 일 년을 구분한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두쫀두 탕후루 마라탕



  나는 여태 ‘마라탕’도 ‘탕후루’도 ‘두쫀두’도, 그때그때 이름이 드높은 온갖 먹을거리도 곁에 두거나 아이들한테 사준 바 없다. 우리집 아이들도 그런 데에 아무런 마음을 안 쓴다. 갑자기 물결치듯 뭐가 일어나면 또 우르르 쏠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큰보람(문학상)을 탔다고 뜨기에 어느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으로서는 이미 빛바랬다고 느낀다. 벌써 스물다섯 해가 넘은 일이다만, 권정생 할배가 “내 책은 추천도서에서 빼 달라.” 하고 아주 세게 말하고 손사래치던 일을 떠올린다. 반짝하고 뜨면 이레 만에 ‘100만’이 팔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지만, ‘100만’은커녕 ‘1만’이나 ‘1천’이 팔릴 만한 일을 굳이 안 할 수 있는 글꾼과 책집지기가 늘어나야 할 노릇이지 싶다.


  ‘문학상 공모전’에 글을 안 내야 하지는 않지만, ‘문학상 공모전’에서 으뜸으로 뽑혔을지라도 ‘문학상 수상집’이라는 이름을 창피하다고 여길 줄 알 때에, 비로소 글과 책이 제값을 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글을 쓰고 읽다가, 문득 책을 쓰기도 하고 사읽기도 하는 뜻이라면, “남보다 높다랗게 올라서는 으뜸자리”가 아닌, “이웃과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마을과 들숲메바다라는 푸른자리”에 서려는 마음이 바탕일 노릇이라고 본다. 으뜸자리를 가볍게 치우고서, 푸른자리를 가만히 열기에 글지기에 책지기이다. 버금자리나 딸림자리란 없이, 꼴찌나 막째도 없이, 누구나 파란하늘과 푸른들숲을 머금는 살림자리를 바라보면서 일구기에 일꾼에 글꾼에 책꾼에 살림꾼이다.


  우리말 ‘돈’은 ‘도 + ㄴ’인 얼개이다. ‘도’를 기둥으로 삼아서 ‘ㄴ’을 받침으로 놓는다. ‘ㄴ’은 부드럽게 서로 잇는 결을 나타낼 뿐 아니라, ‘나·너’를 나타내는 ‘ㄴ’이기도 하다. 기둥 구실을 하는 ‘도’는 ‘돕다·돌다·돌보다·돌아보다·동그라미·동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이면서, ‘두르다·둘러보다·둘레·둥글다·두레·둘’로 맞닿는 뿌리이다. 그러니까 ‘돈’이 돈다우려면, 나하고 너를 둥글게 돕듯 돌고돌면서 잇는 실마리라는 뜻이다. 돈을 돈답게 살릴 적에는 언제나 서로 동무하고 두레하는 마음을 밑자락에 놓는다는 뜻이고.


  움켜쥐면 돌더미 같은 돈에다가, 돌머리로 굳는 돈이다. 똑같은 돈이어도 어느 곳에 놓고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똑같은 글과 책이어도 어떤 손길로 쥐어서 어떤 눈길로 읽어낸 뒤에 어떤 살림살이로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아주 다르다. 더 낫거나 좋은 책이란 없이, 더 나쁘거나 떨어지는 책도 없이, 우리 손길과 눈길과 발길과 마음길과 숨길에 따라서 새롭게 깨어나는 책이라고 느낀다.


  힘이 모자라거나 없거나 못 미친다면, 작고 낮고 더딘 몸으로 더 천천히 느긋이 걸으면 넉넉하지 싶다. 이제 온나라에 작은책집이 꽤 있다. 온나라 골골샅샅에 마을빛을 헤아리는 마을책집이 조촐히 선다. 이 작은책집과 마을책집을 곁에서 늘 지켜보는 ‘책집아이’도 꽤 있다. 어느 책집아이는 어버이가 꾸리는 책집을 시킨둥히 여길 테지만, 어느 책집아이는 어버이가 가꾸는 책집을 함께 가꾸고픈 꿈을 키울 만하다.


  작은책집이나 마을책집을 물려받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작은책집에서 곁일(알바)을 틈틈이 해보라고 북돋우면서, 작은책집을 새롭게 빛내고 밝히는 일손을 돕는 자리부터 첫걸음을 뗄 만하지 싶다. 어버이가 꾸려가는 책집에서 일손을 돕는 보람이란, 아이를 더없이 반짝반짝 일깨우고 세운다. 돌고도는 책과 돌고도는 돈을 동무하고 두레하다가 ‘한동아리’로 엮는 슬기로운 빛은 언제나 아이들 손끝에서 피어난다고 본다. “책집을 물려받고 싶으면, 책집에서 열 해쯤 일손을 도와 보렴.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 하고 들려줄 수 있을 테지.


  작은책집은 너른숲을 이룬 모든 나무가 처음 빚은 모습인 ‘작은씨앗’이라고 하는 책을 다 다르게 품은 곳이다. 마을책집은 푸른멧숲을 이룬 모든 풀꽃나무가 처음 이 별에 온 모습인 ‘작은씨앗’과 같은 책을 서로서로 다르게 돌보는 곳이다. 이름난 책은 안 나쁘지만, 그저 ‘푸른책’을 품는 작은책집이 아름답다. 널리 팔리는 책은 안 나쁘되, 언제나 ‘파란책(파란하늘과 같은 책)’을 토닥이고 나누는 마을책집이 사랑스럽다. 푸르기에 파랗고, 파랗기에 푸르다. 하늘빛을 받기에 들숲메이다. 들숲메에서 흐르는 샘물과 냇물을 받는 바다라서 파랗다. 2026.2.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믿음


 할머니의 믿음을 배반했다 → 할머니를 저버렸다 / 할머리를 거슬렀다

 우리의 믿음은 도외시하면서 → 우리 믿음은 등지면서

 누군가의 믿음을 경멸한다면 → 누가 믿는데 깔본다면


  ‘-의 + 믿음’ 얼거리라면 ‘-의’만 털 수 있습니다. 또는 토씨를 손보면서 ‘믿음’을 ‘믿다’로 풀어낼 만해요. 이를테면 “아버지의 믿음을”이라면 “아버지가 믿는데”나 “아버지는 믿지만”처럼 손봅니다. ‘-의 믿음’을 통째로 덜어도 돼요. “할아버지의 믿음은 산산조각났다”라면 “할아버지는 와르르 조각났다”로 손보고요. “나의 믿음을 저버리다니”라면 “나를 저버리다니”로 손보지요. ㅍㄹㄴ



혁명 이전의 어린이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공산주의의 믿음은

→ 들물결에 앞서 태어난 어린이는 모자라다고 믿는 모둠살림은

→ 너울에 앞서 태어난 어린이는 뭔가 빠졌다고 믿는 두레나라는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피터 N.스턴스/김한종 옮김, 삼천리, 2017) 219쪽


나의 믿음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 나는 믿는다. 왼쪽은 누구나 어깨동무이다

→ 나는 믿는다. 왼길은 무릇 너나우리이다

《슬기로운 좌파생활》(우석훈, 오픈하우스, 2022) 10쪽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 끝내 안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를 보는 나는

→ 끝내 끝날 수밖에 없는 외곬로 믿은, 너한테 나는

《모래는 뭐래》(정끝별, 창비, 2023) 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65. 다읽다



  한자말로 ‘완독’을 얘기하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만, ‘다읽다(완독)’는 말이 안 될 텐데 하고 여깁니다. 우리는 ‘애벌읽기’를 했다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애벌을 읽은 뒤에는 두벌읽기로 나아가고, 석벌읽기에 넉벌읽기로 거듭날 일이지 싶습니다. 둘레를 보면 ‘다읽다’를 밝히는 분은 으레 고작 ‘애벌읽기’를 했을 뿐입니다. 누구를 만날 적에 ‘애벌’로 마주하고서 ‘다알다’라 말할 수 없을 테지요. 올해에 벚꽃을 보았기에 “난 벚꽃을 알아.” 하고 말할 수 없어요. 이듬해에도 보고 그다음해에도 보며, 열 해에 스무 해에 서른 해를 이어도 “난 벚꽃을 알아.” 하고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난 벚꽃을 스무 해 보았어.”라든지 “난 벚꽃을 쉰 해 보았어.”라 밝혀야 알맞습니다. 책을 놓고도 같아요. “난 책을 애벌 읽었어.”라 밝혀야 어울려요. ‘다읽다’가 아닌 ‘애벌읽기’라 해야 맞습니다.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차곡차곡 알아가려 하는 삶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다읽다’는 겉훑기나 겉치레로 그친다고 느껴요. 해마다 이 땅을 찾아오는 철새가 해마다 새롭게 노래합니다. 언제나 이 땅에서 깃드는 텃새가 언제나 새삼스레 노래합니다. 모든 풀꽃은 한해살이가 아닌 온해살이라고 느껴요. 겨울에 시들어 죽더라도 씨앗을 남겨서 새로 깨어날 뿐 아니라, 뿌리가 살면 찬찬히 다시 돋게 마련입니다. 이제 ‘다읽다’라는 허울을 내려놓기로 해요. ‘첫걸음’을 뗀 읽기를 이어서 ‘두걸음’과 ‘석걸음’으로 차분히 함께 나아가 봐요.



다읽다


펄럭펄럭 바람이 불면

오늘 흐르는 바람결 읽고

후끈후끈 땡볕 내리면

하루 감도는 여름빛 읽고


제비나비한테는 작은 달걀꽃에

부전나비는 여러 마리 내려앉고

느티나무한테는 좁은 논두렁에

돌나물은 무리지어 줄줄이 자라


뜸북새가 노래하는 철에

뜸북꽃이 곳곳에 오르고

장마가 일찍 걷히더라도

장다리꽃은 언제나 껑충


책을 다 읽었으면 애벌

새로 펼쳐 배우면 두벌

거듭 살펴 익히면 석벌

다 읽으면 늘 처음으로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나를 말하는 나



“최종규 씨는 뭘 하는 분입니까?” 하고

누가 묻는다면

“시골서 곁님과 두 아이랑 보금숲 돌보며

 낱말책(사전)을 쓰며 하루를 짓습니다.” 하고

들려준다


나는 낱말에 담은 마음을

손끝과 눈망울과 사랑으로 읽어서

숲빛으로 풀고 들빛으로 여미려 한다


나는 말씨에 싣는 마음을

손길과 눈길과 살림길로 살펴서

숲노래로 품고 들노래로 풀려 한다


나는 말꽃을 피우는 마음을

손씨와 눈씨와 살림씨로 익혀서

숲이웃과 나누고 들동무와 누리려 한다


그래서

“저는 누구나 말씨를 사랑하기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고

덧붙인다


2026.4.15.물.


ㅍㄹ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