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자기선언



 자기선언의 힘을 믿고서 → 빗장트는 힘을 믿고서 / 제목소리를 믿고서

 당당하게 자기선언을 했다 → 나를 당차게 풀어냈다 / 나를 씩씩하게 내보였다

 지금부터 자기선언을 한다 → 이제부터 목소리를 낸다


자기선언 : x

자기(自己) : 1. 그 사람 자신 2. [철학] = 자아(自我) 3.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나 나온 바 있는 사람을 도로 가리키는 삼인칭 대명사

선언(宣言) : 1. 널리 펴서 말함 2. 국가나 집단이 자기의 방침, 의견, 주장 따위를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함 3. 어떤 회의의 진행에 한계를 두기 위하여 말



  낱말책에 따로 없는 ‘자기선언’입니다. 영어 ‘커밍아웃’과 매한가지일 텐데, 우리는 우리말을 넉넉히 쓸 만합니다. 여러모로 살펴서 ‘외치다·외침·외침말·외침질’이나 ‘목소리·목청’으로 손봅니다. ‘소리·소리내다·소리있다·소리치다·소리소리’나 ‘나서다·나타내다·내놓다·내다·내보이다’로 손봐요. ‘드러내다·뜻·앞세우다·털어놓다’나 ‘밝히다·밝힘·밝힘말·밝힘글’로 손보고요. ‘보이다·보임·보이기·보임새·보여주다’나 ‘펴다·펴내다·펼치다·펼쳐내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풀다·풀리다·풀려나다·풀기·풀어내다·풀어보다·풀어놓다·풀어주다’나 ‘빗장열기·빗장풀기·빗장트기’로 손볼 만해요. ‘얘기·얘기하다·이야기·이야기하다·이바구’나 ‘마음·맘·마음꽃·마음그림·마음밝히기·마음풀이’로 손봐도 어울립니다. ‘말·말을 나누다·말씀을 나누다·말하다’나 ‘생각·생각꽃·생각꽃씨·생각씨·생각씨앗·생각그림’으로 손보면 되어요. ‘생각밝히기·생각을 밝히다·생각을 나누다’나 ‘하다·해놓다·해대다·해두다·해주다·해오다’로 손볼 만합니다. ‘제뜻·제말·제목소리·제소리·제이야기·제얘기·제생각’이나 ‘가라사대·가로다·고래고래’로 손보지요. ‘까다·까밝히다·까뒤집다’나 ‘한마디·한마디하다·한마디로·혀를 놀리다·혓바닥을 놀리다’로 손보아도 됩니다. ㅍㄹㄴ



유전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와 같은 공개적인 자기선언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 그러나 이와 같이 내림앓이에 시달린다고 외친 일이 올발랐는지

→ 그런데 이렇게 물림앓이에 시달린다고 드러낸 말이 올바른 길인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전진성, 휴머니스트, 2008)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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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9 ‘헌책’을 왜 읽나?

책벌레수다 : ‘새책’만 사읽으니 갇힌다



  올가을에 거두는 낟알은 모두 지난해에 거두고서 갈무리한 다음에 봄에 심은 씨앗이다. ‘묵은씨’를 심기에 ‘새씨’를 얻는다. ‘헌씨·오래씨’가 언제나 ‘새씨·살림씨’로 잇는 밑바탕이자 첫길이다. 나는 열여덟(고2)에 헌책집이라는 곳에 비로소 눈떴다. 열여덟이 아닌 열 살이나 여덟 살에도 인천 배다리나 곳곳에 헌책집이 있는 줄 알았되, 그냥 어느 책집이든 “책집이 있으면 들어가서 묻고 살” 뿐이었다. 이러다가 열여덟 살에 “새책집에 없는 책은 헌책집을 찾아다니며 다리품을 팔”면 되는 줄 처음으로 느끼고 배웠다. 게다가 ‘판끊긴책’을 처음으로 손수 이레 남짓 품을 들여서 “인천에 있는 모든 헌책집”을 다 누빈 끝에 마지막집에서 찾아내고서 “그나저나 여기는 어떤 곳이기에 이 판끊긴책이 있을 수 있지?” 싶은 마음에 슬며시 돌아보았다. 이러며 깜짝 놀랐다. 새책집과 다르고 책숲(도서관)과 다른 책시렁이며 갖춤새에 놀랐다. 헌책집은 때곳(시공간)을 가볍게 넘나들면서, 아무리 먼나라 책이라도 들여놓고, 아무리 오래고 묵은 책이어도 “오늘 새롭게 읽을 만하다”면 스스럼없이 건사하는 데였더라.


“역시 인기 있는 만화가 아니면 편집자도 상대를 안 해주나?” “난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에 정직한 편집자도 있죠. 아카후쿠 씨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않을까요?” 《이거 그리고 죽어 7》 81쪽


  갓 태어나는 모든 새책은 여태까지 태어나서 읽은 숱한 헌책·오래책·옛책을 바탕으로 삼는다. 지나온 책이 있기에 새로 책을 내놓는다. 여태까지 온삶을 일구고 가꾼 이야기를 담은 헌책을 돌아보고 되읽고 새기기에, 바로 오늘부터 새글을 쓰고 새책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알라딘 중고샵’이 나라 곳곳에 잔뜩 퍼진 탓에 ‘헌책·헌책집’을 잘못 여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헌책이 팔리기에 새책이 안 팔릴 일이 없다. 헌책과 새책이 다르다. 더구나 “헌책으로 사읽으면 될 줄거리”라면 “구태여 새책으로 사읽을 까닭”이 없다. 헌책집 팔림새하고 새책집 팔림새는 아주 다를 뿐 아니라, 갖춤새도 손님도 책집지기도 다르다. 새책집에서는 새로 나오는 책‘만’ 살피지만, 헌책집은 새로 나오는 책‘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나온 모든 책을 살피고, 이웃나라 책까지 두루 살핀다.


  2000년 무렵에 《하나님의 이야기》(릴케, 박영사, 1961)를 만난 적 있다. 2025년에 새 한글판이 나오기도 하되, 1961년부터 꾸준히 여러 곳에서 틈틈이 새로 한글판을 냈다. 나는 두어 가지 오랜 한글판을 헌책집에서 찾아보았는데, 1961년 한글판이 무척 맛깔스럽다고 느낀다. 2025년 한글판이 안 나쁘되, 다리품을 들여서 예전 한글판을 찾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마침 2026년에 자그마치 스물예닐곱 해 만에 “1961년판 릴케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시 만났다. 깨알같고 촘촘히 세로쓰기로 여민 조그마한 책이다. 이 작고 묵고 깨알같은 판짜임인 헌책을 장만하는 값이나 2025년 새책을 장만하는 값이나 비슷하다. 때로는 옛판이 훨씬 비싸다.


모기가 사라지면 지금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그 피해는 퍼지고 퍼져 우리에게까지 돌아와요. 더군다나 불임 유전자는 자연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 다른 생물을 멸종시킬 수도 있어요. 《선생님, 유전자를 조작해도 되나요?》 79쪽


  우리는 왜 헌책집에 책마실을 가서 헌책을 애써 사읽을까? 새로 나오는 아름다운 책을 읽는 왼손이 있기에, 여태까지 나왔으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아름다운 책을 찾아내려는 오른손이 있다. 왼손으로는 새책을 읽는다. 오른손으로는 헌책을 읽는다. 이른바 왼손은 새길(새책)이요, 오른손은 오래길(오래책·헌책)이다. 우리는 두 손을 나란히 모두어 ‘오늘길’을 열고 일구고 가꾸고 나눌 노릇이라고 본다. 왼길만 가다가는 날마다 집을 허물어야 한다. 하루만 살아도 모든 집은 ‘헌집’이잖은가? 헌집을 다 허물어야 새집을 짓지 않겠는가?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이나 빵은 ‘묵은쌀·헌쌀·옛쌀’로 짓거나 굽는다. ‘햅쌀·햅밀’로 짓거나 굽는 빵은 고작 하루이틀뿐이다. 여름이며 가을에 먹는 쌀밥은, 이미 “지난해 가을에 거둔 묵은쌀”로 지어서 누린다. 더구나 ‘햅쌀’이라 하더라도 “올봄에 모내기를 하려면 지난해에 거두어서 봄까지 갈무리한 묵은씨앗”이요, 지난해에는 지지난해 묵은씨앗을 심었고, 지지난해에는 지지지난해 묵은씨앗을 심었다.


우리 문학인·예술가들은 생래적으로 고도의 민감성을 존재의 특성으로 합니다. 우리는 세속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고고함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인간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불의와 폭력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도록 설계된 유전자를 가진 존재입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170쪽


  책을 얻으려면 아름숲을 베어야 한다. 한두 해쯤 자란 손가락만큼 가늘고 작은 ‘새끼나무’로는 종이를 못 얻는다. 열 해나 스무 해쯤 자란 ‘어린나무’로도 종이를 못 얻는다. 오래오래 자란 ‘어른나무(헌나무·늙은나무)’여야 비로소 종이를 얻는다. 이미 우리는 ‘책’조차 ‘헌나무·헌종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모든 책은 아침에 쓴 이야기를 저녁에 뚝딱하고 펴내지 않는다. 웬만한 책은 대여섯 해나 열 해나 스무 해쯤 들인다.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들인 끝에 태어나는 책이 있다. “책에 담기는 이야기”부터 얼마나 ‘오래얘기·헌얘기·옛얘기’인가?


스피릿이 사는 풍요로운 숲에는 다양한 생태가 펼쳐져 있다. 《스트라바간차 이채의 공주 1》 16쪽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새책”을 얼른 읽어치우고서 ‘알라딘 중고샵’에 넘긴다면, 이때에 책은 ‘책’이기보다는 ‘돈(상품)’이라고 여겨야 맞다. 책이라고 할 적에는, 새책과 헌책을 왼손과 오른손에 나란히 놓으면서 고루 어우르고 추스르는 빛을 이야기로 담아서 나누는 길을 짚는다고 할 만하다. 헌책집에 책마실을 안 가는 사람은 슬기(오래빛)가 얕거나 없기 일쑤이다. 새책집에 책마실을 안 가는 사람은 이슬(새빛)을 놓치거나 잊게 마련이다. 슬기랑 이슬을 고루두루 품는 하루를 살아내기에 ‘살림짓기’를 편다. 둘이 나란할 노릇이다. 둘을 어우를 일이다. 둘을 하나로 맺어야 빛난다.


“잘할 것처럼 생겨가지고 못하고, 못할 것처럼 생겨가지고 잘하고. 선생님은 진짜 요지경이야.” “어쩌면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걸 본인도 잘 모르는 건지도.” “어우∼ 성가셔.” 《바라카몬 9》 142쪽


  책집이라면, 새책과 헌책을 나란히 두어야 맞다고 본다. 책집에는, 새길과 오래길을 나란히 읽고 짚고 나누는 자리(책시렁)가 있어야 맞다고 느낀다. 책읽기를 즐기는 책손이라면, 왼손으로 일구는 새길을 새책으로 펴면서 오른손으로 돌보는 오래길(헌길·옛길)을 어질게 가다듬는 눈망울을 밝힐 노릇이지 싶다. 새책만 읽으니 갇힌다. 헌책만 읽으면 가둔다. 새책과 헌책을 함께 읽으니 가꾼다. 헌책과 새책을 넉넉히 읽으니 언제나 사랑으로 즐겁게 걸어간다. 왼손에 새책을 쥐고 오른손에 헌책을 잡으니, 새롭게 오래오래 흐를 오늘이라는 이야기를 읽고 잇고 일구고 이루면서 익히고 이르게 마련이라, 이제 이름(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지을 수 있다.


《이거 그리고 죽어 7》(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2.28.)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선생님, 유전자를 조작해도 되나요?》(이상수 글·이창우 그림, 철수와영희, 2025.10.3.)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작가선언 6·9 엮음, 실천문학사, 2009.12.7.)

《스트라바간차 이채의 공주 1》(토미 아키히토/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17.11.30.)

《바라카몬 9》(요시노 사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14.9.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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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 한겨레 인물탐구 8
카트린 하네만 지음, 우베 마이어 그림, 윤혜정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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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6.4.11.

맑은책시렁 362


《린드그렌,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

 카트린 하네만 글

 우베 마이어 그림

 윤혜정 옮김

 한겨레아이들

 2012.2.27.



  저는 어릴적에 하루라도 안 맞고서 보낸 날이 없습니다. 밖에서 안 맞으면 집에서 맞고, 집에서 안 맞으면 밖에서 맞았습니다. 1970∼80해무렵에 태어나고 자란 어린이는 으레 날마다 비오는 날에 먼지를 털듯 맞았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아예 안 맞는 어린이가 있고, 하나도 안 맞는 어린이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매바심을 안 물려주려는’ 어진 마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워낙 고삭부리로 태어난 몸이라 몸을 다스린다든지 힘살을 키울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래도 ‘놀이’라고 하면 눈을 반짝반짝 밝히면서 어떻게듯 놀고 싶어서 길을 내려고 했어요. “놀고서 맞”든 “못 놀아도 맞”든 똑같으니까, 집이나 밖에서 얻어맞으며 살더라도 “아무튼 놀고 나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어릴적을 보냈어요.


  《린드그렌,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은 꽤 잘 나온 책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 곁에 서는 어른으로 서려는 마음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어떤 숨결과 삶길로 하루하루 보냈는가 하는 줄거리를 굵고짧게 담아냈습니다. 참말로 린드그렌 님은 이녁부터 늘 ‘놀’며 살았고, 아이를 낳아 돌보는 동안에 싸움늪(세계대전)을 맞이했어도 아이들이 뛰놀 터전을 찾아내어 베풀려고 애썼습니다. 이런 마음과 땀방울이 모였기에 ‘삐삐’를 비롯한 숱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테고, 마침내 ‘로냐’ 이야기까지 쓰고서 붓을 내려놓았겠지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가 ‘놀’ 틈과 터를 마련할 노릇이입니다. 아이가 놀 만한 집과 마을을 가꿀 일입니다. 아이가 놀고 노래하는 나라를 이루는 길에 온힘을 쏟을 노릇입니다.


  아이가 놀지 못 하는 나라는 언제나 메마릅니다. 아이가 못 노는 채 몸뚱이만 클 적에는 그만 얼뜨기로 기울고 맙니다. 아이가 놀이를 모르고 노래를 안 하면서 나이만 먹으면 갖은 굴레와 틀과 사슬로 스스로 갇히면서 괴롭습니다.


  ‘삐삐’도 ‘로냐’도 엄마아빠가 나란히 심은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삐삐도 로냐도 외곬이 아니라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짓는 길을 오롯이 사랑으로 품어야 하는 줄 들려줍니다. ‘사자왕 형제’도 마찬가지이지요. ‘미오’도 ‘라스무스’도 둘(왼오른)이 언제나 옹글게 한빛으로 눈뜨고 깨어날 적에 아름답게 일어서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먼나라에서 베푸는 보람(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글을 쓰거나 말을 펴는 분들은 ‘놀이’하고 ‘노래’를 아예 못 다룹니다. 보람(문학상)은 받지만 놀이와 노래가 없는 글이 아니라, 보람을 못 받더라도 놀이와 노래가 샘물처럼 숲빛으로 피어나는 글이 있어야 비로소 이 나라도 마을도 집도 아늑하면서 아름답겠지요.


ㅍㄹㄴ


린드그렌이 산책을 가거나 시장을 보러 가면, 항상 사람들이 말을 걸면서 “혹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니세요?” 하고 물었어. 그럼 린드그렌은 “아니에요. 저는 핑갈 올손의 여동생이에요.”라고 대답하기를 좋아했답니다. 18쪽


린드그렌에게 놀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 린드그렌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이렇게 썼어. “우리는 놀고 또 놀았어요. 놀다가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놀았지요.” 29쪽


린드그렌은 공부가 어렵지 않았어요. 여전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지요. 12살 때는 글을 정말 잘 써서 늘 학급에서 작문을 발표했답니다. 44쪽


여러분, 상상이 가나요? 출판사 사람들은 이야기가 괜찮긴 하지만, 삐삐가 너무 버릇없고 고집 센 소녀라 출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답니다. 70쪽


린드그렌이 마지막으로 쓴 작품은 《산적의 딸 로냐》입니다. 이 동화는 1981년에 출판되었어요. 그때 린드그렌은 벌써 75살이었답니다. 96쪽


린드그렌은 평화는 가정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자녀를 폭력 없이 키워야 한다고 말이에요. 108쪽


#Astrid Lindgren. Wer Ist Das? (2011년) (린드그렌은 누구입니까?)

#KatrinHahnemann #UweMayer


+


《린드그렌,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카트린 하네만·우베 마이어/윤혜정 옮김, 한겨레아이들, 2012)


한 아주머니가 어떤 소녀를 팔로 감싸고 있습니다

→ 아주머니가 아이를 감쌉니다

→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감쌉니다

5쪽


사람들이 아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바꾸었어요

→ 사람들이 아이를 보는 눈을 바꾸었어요

→ 사람들이 아이를 새롭게 보도록 북돋았어요

6쪽


여름에 백야를 볼 수 있답니다

→ 여름에 흰밤을 볼 수 있답니다

→ 여름에 하얀밤을 본답니다

21쪽


때로는 누군가가 책을 읽어 줘야 했는데

→ 때로는 누가 책을 읽어 줘야 했는데

11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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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협곡 峽谷


 협곡과 준봉은 짙푸르러 있었다 → 골과 메는 짙푸르다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 몇 굽이 골을 거슬러 올라가니

 협곡의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 → 골짜기에 깎아지른 듯한 벼랑


  ‘협곡(峽谷)’은 “1. 험하고 좁은 골짜기 2. [지리] 하천 하부가 심하게 침식되어 생기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가리킨다지요. ‘골·골짜기·골짝’으로 고쳐씁니다. ‘고랑·이랑’이나 ‘고샅·고샅길·고삿·고삿길’로도 고쳐써요. ㅍㄹㄴ



적설층의 시린 무게를 안고 빙하는 협곡을 서서히 흐른다

→ 시린 눈켜 무게를 안고 얼음은 고랑을 천천히 흐른다

→ 시린 눈더미를 안고 얼음장은 골을 넌지시 흐른다

→ 시린 눈밭을 안고 얼음더미는 골짜기를 가만히 흐른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24쪽


녀석은 협곡을 올라간 것일까

→ 녀석은 골짝으로 올라갔을까

→ 녀석은 골짜기로 올라갔나

《뒷골목 고양이》(어니스트 톰슨 시튼/장석봉 옮김, 지호, 2003) 160쪽


마치 거대한 협곡과 바위 같았지

→ 마치 큰 골짜기와 바위 같았지

《크랙》(조미자, 핑거, 202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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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선배 先輩


 동아리 선배 → 동아리 언니

 직장 선배 → 일터 윗님 / 일터 맏이

 선배로 모시다 → 언니로 모시다 / 손위로 모시다

 오랜 선배였다 → 오랜 맏님이다 / 오랜 손위이다

 선배가 불편하지도 편하지도 않다 → 길잡이가 거북하지도 낫지도 않다


  ‘선배(先輩)’는 “1.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 2. 자신의 출신 학교를 먼저 입학한 사람 ≒ 전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손위·손윗사람·웃나이’나 ‘윗사람·윗내기·윗님·윗분·윗놈’으로 다듬습니다. ‘누나·누님·언니’나 ‘맏이·맏둥이·맏·맏잡이·맏사람·맏님·맏지기·맏자리·맏길’로 다듬어요. ‘앞·앞꽃·앞씨·앞에서·앞에 있다’나 ‘앞사람·앞님·앞분·앞지기·앞내기·앞어른’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길잡이·길라잡이·길앞잡이·길잡님·길님·길눈이’나 ‘길불·길불빛·길빛·길잡이불·길잡이빛’으로 다듬지요. ‘우등불·장작불·큰불·화톳불’이나 ‘횃불·횃불잡이·횃불지기·횃불꾼·횃불님·횃불내기’로 다듬어도 어울립니다. ‘오르다·오름·오름질·올라가다·올라서다·올라앉다’나 ‘끌다·끌고 가다·끌어가다·끌힘’으로 다듬어요. ‘이끌다·이끌어가다·이끎이·이끎님·이끎빛·이끎지기’나 ‘님·씨·그님·그분·그대·이녁’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이분·이님·이이·이사람·이몸’이나 ‘빛길잡이·빛잡이·빛바치·빛꽃잡이·빛꽃바치’로 다듬고요. ‘마음길님·마음길지기·마음꽃님·마음꽃지기·마음밭님·마음밭지기’나 ‘보시오·보게·보게나·보쇼·보시게’로 다듬을 만해요. ‘여보·여보게·여봐·여보게나·여보쇼·여보시오·여보시게’나 ‘이보·이보게·이봐·이보게나·이보쇼·이보시오·이보시게’로 다듬으면 되고요. ㅍㄹㄴ



이미 선배들이 다 작업을 끝내 영역이 너무나 비좁다고 한탄하는 후배들에게

→ 이미 앞에서 다 일을 끝내 자리가 너무나 비좁다고 한숨 쉬는 뒷내기한테

→ 이미 앞선 이들이 다 일을 끝내 자리가 너무나 비좁다고 한숨짓는 뒷님한테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김수남, 석필, 1997) 18쪽


준이보다 훨씬 선배야

→ 준이보다 훨씬 언니야

→ 준이보다 훨씬 위야

《펭귄표 냉장고》(다케시타 후미코·스즈키 마모루/김숙 옮김, 북뱅크, 2001) 5쪽


선배의 회심의 저작 《조선유학사》의 서문

→ 그분이 땀흘려 쓴 《조선유학사》 머리말

→ 그님이 애써서 지은 《조선유학사》 머리글

→ 그분이 온힘 바친 《조선유학사》 머리말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강성민, 살림, 2004) 9쪽


사회생활 5년차 선배

→ 바깥일 다섯해 윗님

→ 모둠살이 닷해 길불

→ 일터 다섯해 길잡이

《더러운 것이 좋아!》(하정아, 북스, 2005) 29쪽


앉아. 자상한 선배가 ABC부터 가르쳐 줄 모양이니까

→ 앉아. 살뜰한 언니가 ㄱㄴㄷ부터 가르쳐 준다니까

→ 앉아. 참한 언니가 처음부터 가르쳐 줄 듯하니까

→ 앉아. 푸근한 언니가 하나하나 가르쳐 준다니까

《바니주생전》(고우영, 애니북스, 2008) 92쪽


토고 선배도 필사적이군

→ 토고 님도 끈질기군

→ 토고 씨도 끈덕지군

→ 토고 맏이도 대단하군

→ 토고 님도 용하군

→ 토고 씨도 힘쓰는군

→ 토고 맏이도 애쓰는군

《PONG PONG 1》(오자와 마리/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08) 9쪽


정말 이와마 선배다운 발상이긴 한데, 무진장 촌시러

→ 참말 이와마 씨다운 생각이긴 한데, 무척 시골시러

→ 참말 이와마 씨다운 생각이긴 한데, 너무 시골시러

《술 한 잔 인생 한 입 2》(라즈웰 호소키/김동욱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 27쪽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 언니가 만나자고 물어본다

→ 언니가 만나자고 한다

《비행운》(김애란, 문학과지성사, 2012) 9쪽


응원하러 오지 않았다고 국민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는 무서운 선배들이 있는 학교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 곁들러 오지 않았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몰아대는 무서운 윗내기가 있는 배움터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 바라지를 안 왔다고 나라사람 아니라고 찍어내는 무서운 맏둥이가 있는 배움터를 누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요시노 겐자부로/김욱 옮김, 양철북, 2012) 150쪽


선배들도 힘든 게 있었겠지

→ 언니들도 힘들었겠지

→ 그분들도 힘들었겠지

《은주의 방 3》(노란구미, 텀블러북스, 2014) 224쪽


지금 이 마을을 선배가 수복했다는 거나

→ 오늘 이 마을을 언니가 되찾았다거나

→ 바로 이 마을을 누나가 되살렸다거나

《외톨이의 지구 침략 5》(오가와 마이코/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 25쪽


이것이 우리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지침이었어

→ 우리 언니한테서 내려오는 길그림이야

→ 우리 언니부터 내려오는 밑그림이야

《우리 엄마 강금순》(강이경·김금숙, 도토리숲, 2017) 66쪽


선배들은 전혀 혁신적이지 않았습니다

→ 윗내기는 하나도 새롭지 않았습니다

《재일의 틈새에서》(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 50쪽


그것을 지켜 온 마을사람들은 위대한 인생 선배였지요

→ 이를 지켜 온 마을사람은 훌륭한 이슬떨이였지요

→ 이 삶을 지켜 온 마을사람은 뛰어난 이슬받이였지요

→ 이 길을 지켜 온 마을사람은 멋진 삶지기였지요

→ 이렇게 지켜 온 마을사람은 아름다운 길잡이였지요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모리야마 아미/정영희 옮김, 상추쌈, 2018) 21쪽


히요시 선배, 지금 솔로려나

→ 히요시 씨, 요새 혼자려나

→ 히요시 님, 짝 없으려나

《눈물비와 세레나데 1》(카와치 하루카/심이슬 옮김, 삼양출판사, 2018) 19쪽


선배의 춘부장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 언니 아버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 언니 아버님을 뭐라고 해야 할지

《프린세스 메종 4》(이케베 아오이/정은서 옮김, 미우, 2018) 182쪽


미안해. 내가 아직 선배 초보라서

→ 창피해. 내가 아직 못난 언니라서

→ 부끄러워. 아직 모자란 언니라서

《가극 소녀 10》(사이키 쿠미코/오하라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1) 66쪽


꼭 선배의 1순위 친구가 될 거예요

→ 꼭 언니 첫동무가 될래요

→ 꼭 언니 꼭두벗이 될래요

→ 꼭 언니 마루벗이 될래요

《N과 S 6》(킨다이치 렌쥬로/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23)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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