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60 중년남성 출입금지 (도서관 방문기)



  나는 ‘도서관’이라는 데를 안 간다. 안 간 까닭을 밝혀 본다. 먼저 1984년, 이른바 ‘국민학교 3학년’이던 무렵에 동무들하고 ‘책을 읽으려’고 〈인천 율목도서관〉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곳 〈인천 율목도서관〉을 지키는 사납게 생긴 어른들(도서관 경비 및 사서)은 “너희가 도서관에 왜 와? 여기서 놀려고 하지? 도서관은 애들이 노는 데가 아냐! 너희들 볼 책은 없어!” 하면서 내쫓았다. 1984년에 인천에 있던 국민학교에는 학교도서관도 학급문고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책이 고파’서, 우리가 사는 마을에 있는 가장 큰 책터인 〈인천 율목도서관〉을 넷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갔다.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틀림없이 책이 많겠지? 우리가 볼 책도 있겠지?” 하면서 웃는 마음이었지만, 아예 들머리에서 갖은 막말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쫓겨나면서 넷은 나란히 풀죽을 뿐 아니라 “우리가 왜 도서관에 놀러간다고 여겨? 너무하지 않아? 어른들은 우리 말을 아예 듣지도 않고 욕부터 해! 너무 미워!” 하고 서로 얘기하면서 울었다.


  어릴 적에 인천에서 ‘도서관 쫓겨나기(문전박대)’ 탓에 멍울이 든 마음은 채 씻기지 않았으나,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열네 살인 ‘중학교 1학년’일 적에 〈인천 화도진도서관〉에 갔다. 이때에 ‘도서관 사서’는 “여기는 언니들이 공부하는 데야. 너희는 아직 오기 일러.” 하면서 부드럽게 내쫓았다. 암말도 못 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서 뒷걸음을 쳤다.


  열여섯 살에 이르러 드디어 ‘중3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시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입장권’을 받았고, 이 ‘도서관 입장권’은 두 시간마다 도장을 새로 받아야 했다.


  1992년 8월 28일에 인천 배다리책거리에서 여러 배움책(참고서)을 살피다가 〈아벨서점〉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태까지 어느 어른(교사·어버이)도 헌책집에 이렇게 온갖 책이 멧더미처럼 넘실거린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여태까지 둘레 어른은 “대학입시 공부만 해!”라는 말만 했을 뿐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배우렴” 같은 말을 들려준 적이 없다. 이날 뒤로 나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얼씬하지 말자고 여겼다. 인천에 있는 〈대한서림〉이나 〈동인서관〉이나 〈한겨레문고〉는 댈 수 없을 만큼 책이 많은 데가 헌책집인 줄 처음으로 느꼈고, 이 책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어서, 이레마다 이틀씩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빼먹고서 책마실을 다녔다.


  1994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인천을 떠나 서울 이문동에 있는 대학교까지 전철로 날마다 네 시간 남짓 납작떡이 되면서 오갔다. 왜 ‘지옥철’이라는 이름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천에서 서울 이문동까지 네 해 동안 지옥철로 오간 윗내기는 웃으면서 “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인천에서 대학교를 다니면 하나도 배울거리가 없어서 숨이 막혀. 지옥철로 오가야 배울 수 있단다.” 하고 들려주더라.


  1995년 봄부터 ‘대학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책갈무리를 맡으며 일했다. 그런데 이해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들어가기까지 예닐곱 달을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면서 ‘다른 근로장학생’을 아예 본 적이 없다. 나 혼자서 대학도서관에서 책갈무리를 하더라. 나는 10월 즈음에 대학도서관 책지기(사서)한테 여쭈었다. “여기 장부(출퇴근 장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은 많은데 왜 얼굴도 안 보이지요?” 대학도서관 책지기는 흠칫 놀라면서 “어, 네가 이상한 거야. 다들 장부에 이름만 적고 일은 안 해. 그냥 이름만 적으면 근로장학생한테 장학금을 주거든.” 하고 알려주더라. “네? 근로장학생은 일을 해야 돈을 받고서 학비로 보태는 얼개가 아닌가요?” “아, 내가 말을 안 했나? 그러고 보니 학생(너)은 점심시간에 일을 안 했다고 해놓았네. 그냥 09∼18 이렇게 여기에 있었다고 적으면 되는데.” “네? 제가 여기에서 일을 안 하고도 장부에는 마치 일을 했다고 적으라고요?” “다 그렇게 해. 넌 여태 그렇게 안 했니?” “일을 안 하고서 일을 했다고 적으면서 장학금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 그래도 그렇게 하지? 너도 굳이 책정리 안 해도 돼. 그냥 이름만 적고서 장학금을 받으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여기 도서관에서 아무 일을 안 하고서 근로장학금을 받더라도, 저는 제가 일한 시간만 똑바로 적고서, 제가 일한 만큼만 장학금을 받겠습니다.”


  싸움터에 다녀온 뒤로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안 가기로 했다. 이러면서 2007년 4월 5일에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라는 이름으로 책마루(서재도서관)를 연다. 우리나라에는 ‘허울 도서관’만 있다고 여겨서, 그냥 내가 ‘책숲다운 책숲’을 꾸리자고 생각했다.


  2017년 즈음, ㅇ이라는 고장에 있는 도서관에 갔더니 “중년남성 출입금지”라는 알림글이 있다. 그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는 몸으로 갔기에 그곳 책지기한테 이 알림글이 뭐냐고 물으니 “하도 사회에서 어린이 성범죄로 말이 많아서, 요새는 이렇게 합니다.” 하고 알려준다. “중년여성은 아무 문제가 없나요?” “아, 그게…….” “범죄자만 막아야 하지 않나요? 아저씨야말로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으면서 배움길을 넓히도록 도와야 할 텐데요?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뀌지 않나요?” “…….”


  2024년에 이르도록 우리나라 여러 도서관은 “어린이·청소년 칸은 중년남성 출입금지”를 하더라. 적잖은 도서관은 “여성 전용 구간”도 마련해 놓는다. 가만히 보면 젊은 사내도 나이든 사내도 “거의 도서관 출입금지”로 가로막는 얼거리이다. 그리고 적잖은 독립서점(동네책방)도 ‘중년남성 방문’을 대단히 꺼린다. 어느 곳은 ‘중년남성’은 책손님으로 아예 안 받기도 한다.


  나는 사내라는 몸을 입고서 태어났기에, 우리나라에서 둘레 숱한 사내가 어떤 뻘짓과 막짓을 일삼는지 참 흔하게 숱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안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사내라는 몸’이기에 창피하게 여길 만하다. 그런데 젊거나 나이든 사내가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을 아예 읽지 못 하도록 막아 놓고 닫아 놓는다면, 게다가 ‘페미니즘’ 책까지 사내들은 건드리지 못 하도록 닫아건다면, 사내들은 뭘 배울 수 있을까? 오히려 “중년남성 절대환영!”이라고 내걸면서, 철없는 아저씨를 차근차근 달래고 가르치는 길을 열어야 이 나라가 바뀌지 않을까?


  철없는 아저씨도, 아직 앳된 젊은이도,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부터 읽으면서 마음을 가꾸고 살찌우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익혀야 한다고 여긴다. 아저씨도 젊은이도 푸름이도, 집안일을 즐겁게 맡으면서 집살림을 어질게 돌보는 길을 배워야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하자면 “도서관 어린이·청소년칸 중년남성 출입금지”는 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동화읽는 아빠모임’을 나라에서 앞장서서 북돋우고 꾸려야 하지 않을까? ‘동화읽는 할배모임’을 시골과 서울 모두 앞장서서 이끌고 펼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열아홉 살이던 때부터 동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비로소 읽었다. 열아홉 살에 이르던 때까지는 학교도서관이 아예 없기도 했고, 그무렵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어린이책은커녕 그림책은 구경조차 못 했다. 1992년 8월에 인천 배다리책거리에 있는 헌책집에서 비로소 동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만났고, 그때부터 꾸준히 어린이책과 그림책과 동화책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살찌우는 배움길을 걷는다. 나는 내 곁에 ‘중년남성’과 ‘젊은사내’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마음밥을 누리는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꿈꾼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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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켜는 고슈 날개달린 그림책방 44
미야자와 겐지 지음, 오승민 그림, 박종진 옮김 / 여유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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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1.20.

그림책시렁 1533


《첼로 켜는 고슈》

 미야자와 겐지 글

 오승민 그림

 박종진 옮김

 여유당

 2021.7.10.



  처음 《첼로 켜는 고슈》를 글로 읽을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에 그림을 덧입 그림얘기(만화영화)를 보고는 여러모로 잘 담았는데 둘레에서 얼마나 알아보려나 궁금했습니다. 2021년에 한글판으로 나온 그림책을 보았는데, 미야자와 겐지 님이 남기려는 마음씨앗을 어느 만큼 읽거나 헤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디차게 얼어붙은 나라가 사람들을 옥죄고 짓밟으며 이웃나라까지 뭉개는 한복판에서 속으로 울고 입으로도 울던 마음을 ‘가난한 시골 젊은이’가 ‘들숲바다 이웃한테서 노래로 배우는 살림’을 들려주는 줄거리이거든요. 그래서 미야자와 겐지 님 글에는 ‘밤과 낮’이 나란히 어울리면서 ‘살림짓는 사랑’이라는 길이 흐릅니다. 이와 달리 한글판 그림책에는 ‘가난’도 ‘시골’도 ‘날씨’도 ‘낮’도 ‘비바람’도 ‘눈물과 웃음’도 ‘수수하고 작은 얼굴빛’도 ‘개구진 여러 짐승이웃’ 매무새도,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작은 시골 오두막’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그릇 하나로 배고픈 끼니를 잇는 하루도 도무지 못 담았구나 싶더군요. ‘밤빛길(은하철도의 밤)’이라는 그림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나요? 낮이 없으면 밤이 없습니다. 밤만 있으면 삶이 없습니다. 꿈꾸는 밤을 누리기에 일하고 살림하고 노래하는 낮이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セロ弾きのゴーシュ


https://www.youtube.com/watch?v=Z4X2VFQIQ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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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날개달린 그림책방 35
미야자와 겐지 지음, 유노키 사미로 그림, 박종진 옮김 / 여유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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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1.20.

그림책시렁 1532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글

 유노키 사미로 그림

 박종진 옮김

 여유당

 2020.2.15.



  푸나무는 비를 먹고 바람을 마시고 해를 쬡니다. 해바람비를 머금는 푸나무는 튼튼하고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예부터 누구나 ‘해바람비를 머금은 낟알·열매·푸새’로 밥살림을 삼았습니다. 고기를 먹을 적에도 ‘해바람비를 머금은 풀밥을 먹으면서 살던 짐승’을 잡았습니다. 어느덧 오늘날에는 ‘해바람비를 모르거나 잊거나 등진 먹을거리’가 온누리에 넘칩니다. 하루 내내 해를 안 보는 데에서 일하거나 지내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해가 내리쬐는 마을이나 골목이나 너른터에서 뛰노는 어린이는 거의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를 그림책으로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2016년에 유노키 사미로 님이 그림을 곁들인 판으로 찬찬히 넘깁니다. 어느덧 온해(100년)에 이른 오랜 글빛인데, 미야자와 겐지 님은 아찔하고 까마득한 얼음나라 일본이 어디로 치닫는지 몹시 슬프게 여기면서도 기운을 차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에도 지지 않고”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지거나 이기거나”를 잊어요. 사나운 비바람에 져야 할 까닭이 없어요. 얼핏 사나워 보이는 돌개바람이지만, 온누리 풀꽃나무를 한결 든든히 어루만지는 숨결이거든요. 어떤 ‘스마트팜’으로도 밥살림을 못 일굽니다. 어떤 ‘스마트폰’으로도 사랑살림하고 멉니다. 손길을 잊은 곳에는 꿈씨가 자라지 않습니다.


#宮?賢治 #雨ニモマケズ #柚木沙??

2016.10.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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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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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9


하늘을 날도록 펄럭일 수 있는 몸을 ‘날개’라고 한다. ‘날다’는 마음껏 어디로든 움직이면서 홀가분한 몸짓과 마음을 빗대는 뜻으로도 쓴다. 이런 ‘날다’는 한자말 ‘비행(飛行)’으로 적기도 하고, 하늘을 날며 어디로 타고다닐 수 있으면 ‘비행기(飛行機)’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도 어른도 “일본으로 날아간다”나 “날개 타고 갔지”처럼 말하곤 한다. 수수한 우리말 ‘날개·날다’는 진작부터 ‘비행기’를 가리키던 말씨라고 느낀다. 함께 날고 싶다. 몸도 마음도 꿈도 생각도 가볍고 즐겁게 훨훨 하늘로 띄우고 싶다.



눈물마실

나갔다가 들어오는 ‘나들이’이다. 나들이를 하는 몸짓이니 ‘다니다’이고, ‘마실’이다. 몸하고 마음을 쉬고 싶어서 바람을 쐰다. 아름다운 들숲바다를 품으면서 몸도 마음도 푸르게 북돋운다. 그리고 이웃이 겪은 눈물나고 슬픈 생채기나 멍울을 돌아보거나 되새기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에 서기도 한다. 눈물앓이를 나란히 하면서 눈물꽃을 돌보고 눈물비로 씻고 눈물노래로 추스른다. 슬픔바다를 함께 헤아리면서 슬픔구름에 띄워 보내고 슬픔가락으로 토닥인다. 어떤 마실을 해볼 수 있을까? 꽃마실과 들마실뿐 아니라, 눈물마실을 하면서 온누리 골골샅샅을 풀어낸다.


눈물마실 (눈물 + 마실) : 밝은 곳을 구경하고서 기뻐하는 길이 아닌, 캄캄한 눈물과 슬픔을 마주하면서 새기는 길. 눈물로 얼룩지면서 슬픈 발자취가 깃들거나 남거나 가득한 곳을 찾아가면서, 우리 삶터 한켠에 흐르는 눈물을 거두거나 달래면서, 앞으로 일구거나 가꿀 사랑길과 살림길을 돌아보려고 하는 마실길. (= 눈물꽃·눈물길·눈물바람·눈물비·눈물빛·눈물구름·눈물앓이·눈물노래·눈물가락·눈물바다·눈물물결·눈물너울·슬픔마실·슬픔꽃·슬픔길·슬픔바람·슬픔비·슬픔빛·슬픔구름·슬픔앓이·슬픔노래·슬픔가락·슬픔바다·슬픔물결·슬픔너울. ←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어진땀

아이는 앓으면서 자란다. 아기는 알에서 깨어난다. ‘알’을 깨고 나오듯 둘레를 하나하나 보고 받아들이고 배운다고 하기에 ‘알다’라고 한다. 아이가 한창 자라는 길에 땀을 흘리면서 몸이 달아오르곤 하는데, 이때에는 “앓으면서 튼튼히 자라는 길”로 여긴다. 껑충 자라려고 ‘아기땀’을 흘리는 셈이다. 바야흐로 어질게 크려는 땀이니, ‘어진땀·어진불’처럼 가리킬 만하다.


어진땀(어질다 + ㄴ + 땀) : 어질게 자라는 길에 흘리는 땀. 아이가 얼이 차는 길에 몸이 달아오르면서 한동안 앓는 일. (= 어진불·아기땀·아기불. ← 지혜열智慧熱)

어질다 : 1. 얼이 깊고 짙다. 마음이 부드럽고 넉넉하면서 곱고 깊다. 둘레를 부드럽게 보고 살피면서 마음에 담을 줄 알다. 2. 깊고 짙은 얼로 다루거나 하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살피면서 부드럽고 넉넉하고 곱게 다루거나 다스리거나 할 줄 알다.



꽃고리

꽃으로 꾸미거나 꽃처럼 꾸린다. 치렁치렁 꾸미면서 가볍게 치레를 한다. 줄지어 피어나는 꽃처럼 꾸미니 곱다. 치렁치렁 늘어뜨리는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치렁거리를 줄로 이으니 눈부시다.


꽃고리 (꽃 + 고리) : 1. 꽃을 넉넉하거나 푸짐하게 묶거나 엮은 곱고 눈부신 것. (= 꽃다발·꽃바구니·꽃보따리·꽃자루·치렁고리. ← 화환花環) 2. 꽃처럼 곱게 꾸민 글·종이·노리개 들을 줄로 이어서 길게 드리운 것. (= 치렁고리. ← 화환花環, 가랜드garland) 3. 짝을 맺는 두 사람이 서로 한마음과 한뜻으로 한길을 나아간다고 하는 뜻을 나타내고 나누려고 손가락에 끼우는 고리. 사랑을 담아서 둘이 하나인 마음을 나타내고 나누려고 손가락에 끼우는 고리. (= 꽃가락지·사랑고리·사랑가락지·치렁고리. ← 웨딩링, 결혼반지, 혼례반지, 혼인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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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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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말꽃삶 38 글을 잘 쓰고 싶다면

― ‘문학’을 내려놓아야 한다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이웃님이 꽤 많습니다만, 제발 글을 잘 안 써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글을 써야 하지 않고, 더더구나 누구나 글을 잘 써야 하지 않은데, 먼저 말부터 즐겁게 할 노릇이거든요.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소리’인 ‘말’을 두런두런 오순도순 나눌 줄 알면 됩니다. 마음을 말로 차근차근 차곡차곡 주고받을 적에 비로소 숨결을 틔우고 생각을 열어요.


  다만, 말도 굳이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을 찬찬히 펴면 됩니다. 내 마음을 너한테 펴고, 네 마음을 내 귀로 가만히 들으면 되어요. ‘나누다’하고 ‘주고받다’하고 ‘오가다’라는 낱말을 곱씹을 노릇인데, 이 세 낱말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밀어대는 길이 아닙니다. 이쪽에서 부드럽고 상냥하게 저쪽으로 띄우고, 저쪽도 이쪽으로 보드랍고 사근사근 건네는 길입니다.


 나누다 + 주고받다 + 오가다


  혼자만 떠들 적에는 재미없습니다. 한 사람만 말할 적에는 고단하고 괴롭고 지칩니다. 함께 이야기하기에 나란히 웃고 같이 걸어가는 길을 찾습니다. 서로 마음을 말로 나누기에, 여태 모르거나 놓치거나 지나치거나 잊은 마음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종잇조각도 나누어 들면 한결 가볍다고 합니다. 가벼운 종이라서 더 가볍지 않아요. 작든 크든 ‘나누’려는 마음을 먼저 세우기에 함께 느긋하면서 즐겁다는 뜻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옛말도 매한가지예요. 도둑질을 자꾸 하니, 어느새 바늘뿐 아니라 소까지 대놓고 훔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일부터 나누고 주고받고 오가는 마음을 북돋울 적에, 나중에는 어떤 큰일이건 홀가분하면서 넉넉하게 나누고 주고받고 오갈 수 있습니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 → 자랑하고 싶다는 글


  어느 누구도 굳이 글을 잘 써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대목을 좀 짚어야 합니다. 누가 글을 “잘 쓴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어느 누구는 글을 “못 쓴다”고 여기게 마련입니다. “못 쓴 글”이 있기에 “잘 쓴 글”이 있어요.


  “잘 쓴 글”이란 으레 “널리 보이고 싶은 글”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글”이지요. “못 쓴 글”이란 늘 “안 보이고 싶은 글”입니다. “감추거나 숨기고 싶은 창피한 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옮긴 말이나 글이 창피할 수 있을까요? 오늘 어떤 밥을 차려서 먹고서 어떻게 설거지를 했다고 담는 수수한 글이 창피하거나 감출 이야기일까요? 늦잠 탓에 하루를 그르쳤다는 이야기가 부끄럽거나 못난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길에서 돌에 걸려 자빠졌든, 누구한테 크게 속아서 돈을 잃든, 누가 나를 때리거나 괴롭혀서 아프고 슬프든, 이웃을 도우면서 온마음에 환하게 별빛이 쏟아졌든, 그냥그냥 아무 일을 안 하고 하루를 보냈다고 느끼든, 또 뭔가 어지르거나 엎어지면서 고달팠든, 이 모든 다 다른 삶을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손으로 옮기면 넉넉합니다.


 못 쓴 글이라는 마음 → 나와 남을 빗댄 굴레


  못 쓴 글하고 잘 쓴 글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못 쓴 글”을 굳이 꼽아 본다면, “나와 남을 자꾸 빗대느라, 스스로 제살을 갉고 깎는 굴레”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을 쓸 뿐이기에, 훌륭하거나 아름답거나 대단하거나 뛰어난 남하고 나를 빗대거나 견주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 사람처럼 훌륭하거나 놀라워야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더욱이 어떤 보람(문학상)을 받았기에 “잘 쓴 글”이지 않습니다. 어떤 보람을 받은 글은 “보람을 받은 글”일 뿐입니다.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린 글이라면 “띄어쓰기나 맞춤길이 틀린 글”일 뿐입니다. 그러나 띄어쓰기나 맞춤길은 반듯하되, 아무런 줄거리나 이야기가 없다면 ‘시늉글’이에요. ‘겉글·겉멋글’이라 여길 만합니다.


  우리는 띄어쓰기를 꼼꼼히 맞출 수 있으나, 말을 하면서 “또박또박 띄어쓰기를 하며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하다가 더듬을 수 있고, 소리가 샐 수 있습니다. 어물어물 중얼중얼 갈팡질팡 헤매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듬더듬 어물어물 말을 하더라도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말로 옮기”면 반갑고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물처럼 줄줄줄 흐르는 말씨이되, 도무지 알맹이도 줄거리도 없이 혼자 떠들기만 한다면, 이런 말에는 아무 마음이 안 흐른다고 여깁니다.


 번듯하게 차려입은 옷 = 번듯하게 꾸민 글


  번듯하게 옷을 차려입기에 멋스러운 사람이지 않습니다. 그저 “차려입은 옷”이고, “몸을 꾸민 옷”입니다. 번듯하게 꾸민 글은 그냥 “차려쓴 글”이고, “겉을 꾸민 글”입니다. 까맣고 커다란 쇳덩이(자동차)를 굴리기에, 이런 쇳덩이를 굴리는 사람이 높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두다리로 걷는 사람이기에 모자라거나 못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은 “번듯하게 차려입은 옷”이거나 “까맣고 커다란 쇳덩이”하고 닮더군요. 차분히 짚으면서 생각을 북돋아 보기를 바라요. 보기좋은 글씨로 적기에 “잘 쓴 글”이지 않겠지요? 보기좋게 차려입기에 “착한 사람”이지 않겠지요? 돈이 많거나 이름을 드날리거나 힘이 세기에 “훌륭한 사람”일 수는 없겠지요?


  글쓰기와 말하기도 이와 같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가 말을 했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떤 보람(문학상)을 받은 분이 썼기에 대단한 글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거나 글을 읽을 적에 ‘마음’만 바라볼 노릇입니다. ‘자리(신분·계급·지위)’는 아예 안 쳐다보아야 비로소 마음과 말과 글을 읽어내게 마련입니다. 오직 ‘마음’만 헤아려야 줄거리를 알아차리고 이야기를 알아듣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 문학 내려놓기 + 살림짓는 사랑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길은 늘 오로지 하나입니다. 먼저 ‘문학’을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시·소설·수필·희곡’이라는 무늬(형식)는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러고서 우리가 스스로 짓는 살림을 사랑으로 돌보는 눈길과 손길과 발길과 마음길과 숨길과 하루길을 살필 노릇입니다.


  글을 쓰고 보니 ‘시’가 될 수 있고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틀에 짜거나 맞추려고 한다면, 이때에는 ‘글’이 아니라 ‘글시늉·글흉내·글척’입니다. 글이란, 말을 옮긴 그림입니다. 말로 나누려고 하는 마음소리를 눈으로도 보고 느끼고 살펴서 아로새기려고 종이에 그리는 ‘글’입니다.


  글부터 쓰려고 하지 말아요. 말부터 할 일이고, 마음을 말로 나타내고서 귀담아들을 일입니다. 마음부터 서로 나누면서 말을 하나하나 곱새기고 곱씹은 다음에, 느긋이 글로 옮기고 담고 얹으면 즐겁습니다.


 입으로 말을 하면서 글을 쓰기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을 적에는 말을 하면서 쓰면 됩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글을 쓰기로 해요. 한집안을 이룬 짝꿍이나 아이나 어른한테 들려주듯, 반가운 동무나 이웃하고 이야기하듯, 입으로 말소리를 내면서, 이 말소리를 그대로 글로 옮겨 봐요. ‘문학’을 하려고 나서면 문학도 아니고 글도 아니기 일쑤입니다. 그저 글·말·마음이라는 세고리를 살피면서 삶·살림·사랑이라는 또다른 세고리를 나란히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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