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2.11.

숨은책 903


《마우스 북페어, 제1회 : 우리들의 첫 책》

 편집부 엮음

 마우스 북페어

 2023.12.9.



  2024년 12월에 부산 한복판에서 ‘책쥐는 우리(마우스 북페어)’ 두걸음이 열렸습니다. 조촐히 책잔치를 연 분들은 ‘마우스 북페어’라는 영어를 썼습니다만, 이 자리를 한참 거닐고 돌아보면서 문득 ‘책쥐는 우리’라는 이름이 떠오르더군요. ‘쥐순이·쥐돌이’가 나란히 ‘책쥐순이·책쥐돌이’로 나오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자니, “책을 쥐다 + 책읽는 쥐”를 단출히 ‘책쥐’라 하면서 ‘+ 우리’라고 하면 어울리겠구나 싶더군요. 책쥐잔치 첫마당인 2023년에는 짬이 안 맞아 나들이를 못 하고 《마우스 북페어, 제1회 : 우리들의 첫 책》만 장만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책마을(출판단체)이 아닌, 부산에 깃든 책집지기 손길로 여민 자리는 이름을 내세우지도 허울을 붙이지도 않더군요. 더 많이 끌어들이려는 책마당이 아닌, 그저 수수하게 책을 노래하며 즐기려는 이웃을 맞아들이려는 책수다에 책놀이로 꾸렸다고 느낍니다. 2024년 12월 부산에서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도 열렸는데, 이 자리는 ‘서울에 있는 책마을’에서 자리를 꾀하면서 ‘부산책잔치’가 아닌 ‘서울책잔치’가 되더군요. 부산에서 어린이책을 내는 사람들 목소리가 하나도 없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은 그야말로 허우대만 멀쩡한 셈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책마당을 열고 누리고 노래할 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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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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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89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이오덕 글

 소년한길

 2002.7.30.



  늘 걸어다녔고, 앞으로도 걸어가려고 합니다. 굳이 종이(면허증)를 안 땄습니다. 종이를 미리 따면 쓸모가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예 종이가 없어야 느긋이 걸을 뿐 아니라, 딴청을 안 하리라 여겼습니다. 어릴 적에는 놀러다니느라 걸었고, 여덟 살부터는 배움터를 오가려고 걸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어터지는 버스를 안 타고 싶기도 했고, 길삯을 모아서 책을 사읽었어요.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었습니다. 걸으며 책을 읽으면 둘레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까맣게 잊어요. 문득 숨을 돌리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빛을 읽고, 동무가 사는 마을을 지날 적에는 담 너머를 기웃기웃하면서 이제 동무가 일어났으려나 어림했습니다. 여덟 살에도 집에서 여섯 시 반 무렵이면 길을 나섰거든요. 《문학의 길 교육의 길》은 2003년 늦가을에 처음 읽었습니다. 이오덕 같은 어른은 그저 높은 곳에 계시다고 보았는데, 뜻밖에 2003년 가을부터 이오덕 어른이 살던 무너미마을 돌집에 깃들어 어른 글꾸러미를 추스르는 일을 맡았어요. ‘글길(문학의 길)’하고 ‘배움길(교육의 길)’을 돌아보는 거의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아주 조금씩 읽었어요. 이 책을 덮으면 이제 어른이 남긴 다른 새글은 없거든요. 글길도 배움길도, 살림길도 사랑길도, 숲길도 사람길도, 노래길도 꿈길도, 노상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잘하거나 잘난 남을 기웃거리지 않을 적에 우리가 스스로 지을 오늘길을 걸을 수 있어요. 모자라거나 못난 나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적에 이제부터 새롭게 심어서 가꿀 씨앗을 품을 수 있어요. 누구나 언제나 싱그럽게 사람빛인 줄 되새기는 글 한 자락을 곱씹습니다. 아이 곁에서 하루를 살림하기에 어질고 슬기롭게 집일도 글일도 배움일도 포근히 다스리는 줄 새록새록 되새깁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길을 걷습니다. 나는 나로서 길을 걷습니다. 너는 너로서 길을 걷겠지요. 서로 다르게 선 자리를 읽고 이으면서 함께 어깨동무하는 이곳에 있어요.


ㅍㄹ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그 수많은 아이들이 닭장에 갇혀 있는 비참한 동물의 신세가 되어 병들어 가고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지금 참으로 시시한 일에 매달려 있다. 허깨비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꼴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6쪽)


생각해 보라. 그때(1950∼70년대) 우리나라의 어느 교실에서 이런 일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그 일을 당당하게 글로 쓸 수 있게 하였던가? 그런 글이 단 한 편이라도 나온 일이 있는가? 농촌 학교에서 나온 신문이나 문집에도 일하는 아이들이 솔직하게 그 삶을 쓴 글은 나오지 않았다. 도시에서 나오는 신문이나 문집은 말할 것 없다. (121쪽)


글쎄 그 아이들 글을 안 읽었다고 하더라도 온 천지에 그런 아이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그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살아갈 길을 찾으려고는 하지 않고 ‘간절한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이 시대’라면서 돌아앉아 이것저것 명상이나 하고, 이러쿵저러쿵 추상된 논리나 늘어놓다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207쪽)


어떤 문학작품이든지 그것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는 일은 그 원작의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번역을 하게 되는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 우리가 유럽의 어느 나라 작가가 쓴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을 하는 까닭은, 영국이면 영국, 프랑스면 프랑스란 나라를 위해, 그 나라 문학을 위해 번역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문학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다. (32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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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2.11.

숨은책 542


《普及版 トルストイ全集 1 幼年·少年》

 トルストイ 글

 神田豊穗 옮김

 社翁全集刊行會

 1926.11.5.



  일본굴레(일제강점기) 무렵에 나온 《한글》(조선어학회 펴냄)을 들추다가 ‘톨스토이 옮김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웃말을 헤아리는 몫도 하는 말글지기(국어학자)로구나 싶더군요. 이웃말(외국말)만 할 줄 알기에 옮기지 않습니다. 이웃말과 우리말을 나란히 살피고 환하게 짚을 적에 비로소 옮김책을 여밉니다. 《普及版 トルストイ全集 1 幼年·少年》은 1926년에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무렵에 이 책을 사읽다가 헌책집에 흘러나왔나 하고 한참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어요. 톨스토이 글자락을 일본글로 옮긴 일본사람은 일본이 무슨 짓을 일삼는지 낱낱이 알면서 창피하다고 여겼을까요? 일본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제 나라가 어떤 바보짓으로 치닫는지 알아차리면서 바보짓을 멈추자며 목소리를 높였을까요? 총칼로는 어떤 살림도 못 짓고, 아무런 사랑도 못 합니다. 오직 맨손과 맨발로 씨앗을 돌보고 가꾸는 들숲에서 살림을 지을 뿐이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씨를 일굽니다. 수수하게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가꾸고 짓는 이웃이 ‘수수하게 짓는 오늘살림 이야기’를 글로 여미기를 바라요. 큰 목소리나 옳은 목소리가 나쁘지 않습니다만, 작은손으로 짓는 작은글씨 하나를 심으면서 이 별을 푸르게 갈닦는다고 느낍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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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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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7. ‘반 고흐’ 아닌 ‘환 호흐’를



  작은불 하나만 켠 시골집은 그야말로 어둡다. 그러나 이 어두운 시골집은 “눈이 다치지 않을 만큼 밝”기에, 시골사람은 넉넉히 지내고 쉬고 일한다. 햇볕불(백열등)을 켠 작은 시골집일 텐데, 햇볕불을 노랗게 켠 작은 시골집을 서울사람 눈으로 보자면 너무 어두울 테지만, 시골사람으로서는 가장 아늑하면서 포근한 불빛이다.


  햇볕은 눈을 갉지 않는다. 햇볕은 눈을 살린다. 햇볕불 작은빛은 햇볕처럼 눈과 몸을 살리는데, 반짝불(형광등·엘이디)은 눈과 몸을 갉는다.


  네덜란드사람 ‘환 호흐(van Gogh)’ 님이 살던 무렵은 오늘날보다 훨씬 불빛이 적었고, 아예 없었다고도 할 만하다. 그때에는 해가 지면 모든 일을 접게 마련이다. 환 호흐 님이 살던 무렵 켠 촛불이나 작은불은 아주 조그맣게 둘레를 가벼이 밝히는 빛줄기였다. 그렇기에 “감자 먹는 시골 흙지기 살림집”은 “어두운 속마음”을 비춘다기보다는 “밤빛을 품은 포근하면서 고요한 사랑”을 담아내었다고 보아야 알맞지 싶다. 환 호흐 님이 동생하고 주고받은 글을 되읽고, 남긴 글을 돌아볼 적에도, 환 호흐 님은 “시골집에서 아늑한 사랑을 누리고 얻었다”고 밝힌다.


  가만히 보면, 환 호흐 님이 살던 지난날에는 큰고장·서울(도시)에서 본 밤하늘도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었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환 호흐라는 붓지기 스스로 본 눈부신 별밤”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았달까. 맨눈으로 미리내를 볼 적에는, 별빛이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하고, 붉거나 파랗기도 할 뿐 아니라, 빛줄기가 죽죽 뻗고 빙그르르 도는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서울내기 눈길(현대 도시인 관점)”으로만 환 호흐 님을 읽는다면, 아주 엉뚱하게 바라보기 쉽다고 느낀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다른 불빛이 없이 한나절쯤 바라보면 그야말로 별빛이 물결친다. 별이 쏟아지는 밤을 이 나라 이 땅 이 들숲바다에서 누리거나 느끼지 못 한 채 환 호흐 님 그림을 바라본다면, 참 뜬금없고 어이없는 짓이라고 느낀다. 그림보기에 앞서 별보기와 숲보기를 할 노릇이다. 그림읽기에 앞서 별읽기와 숲읽기를 할 일이다. 별을 담아내고 밤을 사랑한 붓지기 마음과 눈빛과 손길을 살피고 읽고 헤아리려면, 우리가 나란히 별과 밤을 온마음과 온눈과 온손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씨앗’을 알 턱이 없고, ‘말씨(말씨앗)’와 ‘글씨(글씨앗)’도 까맣게 모르게 마련이다. 하루 내내 나무 곁에 서서 나무바람과 나무그늘과 나뭇잎빛을 마주하는 살림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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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2.10. 촛불바람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이른바 ‘파라핀’과 ‘콩기름(소이왁스)’으로 빚은 초를 태우면 쇳덩이가 부릉부릉하며 내뿜는 매캐한 기운이 나란히 나옵니다. 요사이는 빛끊이(정전)가 아주 없다시피 하지만, 지난날에는 툭하면 빛끊이였고, 하룻내 빛끊이라든지 여러 날 빛끊이도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초를 수북하게 두며 살림했어요. 어릴 적(1970∼80해무렵)에 온마을이 빛끊이로 캄캄하면 어머니나 언니나 저는 초를 후다닥 챙겨서 집안 곳곳에 켰습니다. 그무렵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는 모두 ‘파라핀초’였고, 빛끊이인 동안에 초를 켜고 나면 으레 멍하고 어지럽고 골이 아팠습니다.


  서울이며 큰고장으로 바깥일을 보러 다녀올 적에는 끝없고 엄청난 부릉물결 한복판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이때마다 숨막힙니다. 모든 쇳덩이에서 어마어마하게 매캐바람이 나오거든요. 우리가 처음 초를 빚을 무렵에는 몸앓이를 일으킬 까닭이 없는 덩이를 반죽했을 테지만, 값싸다는 핑계로 몸앓이를 일으키는 초가 그득그득 번졌습니다.


  촛불보기를 하려는 뜻으로 벌꿀초를 오랜만에 장만했습니다. 촛불보기를 하려면 날마다 할 노릇이라, 벌꿀초를 잔뜩 들일 노릇인데, 한 해 미루고 세 해 미루고 다섯 해 미루며 보냈어요. 살림돈을 헤아리며 끙끙대다가 값싼 파라핀초를 그냥 쓰기도 했지만, 파라핀초를 태우고 나면 뿌연 기운을 빼느라 애먹었습니다.


  책을 스무 자락 안 사면 얼마든지 벌꿀초를 꾸러미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집에 쌓은 책부터 읽고서 치우자고 여기며 드디어 벌꿀초를 두 꾸러미 장만했고, 하루 한나절씩 벌꿀초를 태웁니다. 촛불에서 심지와 불기둥 사이 어둠곳을 바라봅니다. 마음에 깃든 찌꺼기를 태우면서, 마음에 담을 그림을 헤아리려는 길이 촛불보기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려는 눈빛인지 되새기면서 ‘말없는 마음’을 읽고 이으려는 촛불보기예요.


  우리는 촛불물결로 모지리 한 사람을 우두머리 자리에서 끌어내린 적이 있는데, 그때 벌꿀초를 쓴 사람은 몇이었을까요? 파라핀초만 가득한 촛불모임에 낄 적마다 저나 아이들은 끝없이 재채기를 하고 숨막혔는데, 둘레에서 파라핀초가 몸을 어떻게 갉는지 느끼는 사람은 아주 없다시피 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은 웬만한 집마다 쇳덩이(자동차)를 몰기 때문에, 쇳덩이에서 퍼지는 끔찍한 죽음기운을 하나도 안 느낄 뿐 아니라 죽음냄새에 길든 탓일 테지요.


  촛불바람을 일으킬 적에도 ‘아무 초’로나 일으킬 수 없습니다. 책읽기를 할 적에도 ‘아무 책’이나 읽힐 수 없습니다. 글을 쓸 적에도 ‘아무 낱말’이나 고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낱말책을 엮거나 읽거나 쓸 적에도 ‘아무 낱말’이나 다룰 수 없고, 아이를 낳아 돌보는 보금자리에서 ‘아무 낱말’이나 섣불리 쓸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무’를 그닥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좋은뜻’이라든지 ‘좋은책’이라든지 ‘좋은말’이라든지 ‘좋은길’이면 다 된다고 쉽게 끝내고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쓰레기(농약·비닐·비료·농기계)를 하나도 안 쓴 논밭과 들숲바다에서 거둔 낟알과 나물과 열매가 어떤 맛인지 다 잊었을까요? 쓰레기를 듬뿍 쓴 낟알과 나물과 열매에 길들었을까요? 아직 늦겨울인 둘쨋달이지만, 벌써 딸기가 나오는데, 둘쨋달에 나오는 밭딸기는 모두 ‘쓰레기딸기(비닐집에서 기름을 태워서 빨리 키운 딸기)’입니다. 들딸기하고 멧딸기는 닷째달은 되어야 비로소 들숲메에서 맺어요.


  철을 잊기에 철을 잃고, 철을 잃기에 눈빛을 잊습니다. 모든 사람이 서울에서 몽땅 떠날 수는 없다지만, ‘서울살이 민낯’과 ‘모지리는 누구인가?’를 곰곰이 읽을 노릇입니다. ‘바보스런 나 탓’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여태 어떤 굴레에 길들면서 ‘눈뜨기를 등졌’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눈뜨기를 왜 어떻게 얼마나 등진 채 ‘좋게좋게’ 넘어왔는지 고스란히 바라볼 때라야 ‘좋은책’을 내려놓고서 ‘숲책·마음책·사랑책·살림책·보금책·아이곁에서 노래하는 꿈씨앗책’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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