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단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강경혜 옮김 / 마루벌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9



​이야기가 샘솟는 흙

― 비밀의 계단

 질 바클렘 글·그림

 강경혜 옮김

 마루벌 펴냄, 1997.5.1.



  오늘날에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만 사람들이 풀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풀과 사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풀이 자라는 데에서 살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일하고 놀고 어울리는 곳에는 풀이 돋지 않습니다. 늘 풀을 안 보고 살다 보니, 상추를 먹으면서 상추가 풀인 줄 느끼지 못하고, 민들레가 풀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풀을 풀로 여기지 못하는 삶이기에, 골목길뿐 아니라 아스팔트길 사이사이에 풀이 돋아도 풀인 줄 느끼지 않아요. 도시 한복판 길거리에 심은 나무 둘레에 풀이 자라도 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다 들여다보는 이가 있어도 ‘잡초’라 말할 뿐입니다.



..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찔레꽃울타리 마을의 들쥐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삽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덤불 속과 주변 들판에서 꽃, 열매, 과일, 견과 들을 모아 말리거나 맛있는 잼, 절임 등을 만들어 다가올 추운 겨울을 위해 저장 창고에 잘 간직해 둡니다 ..  (1쪽)



  이 지구별에는 잡풀이 없습니다. 모두 그저 풀입니다. 쓸모가 없는 풀은 없습니다. 쓸모없이 태어나는 풀은 없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이에요. 쓸모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쓸모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쓸모가 있고 빛과 값과 넋과 사랑이 있어요. 이를 알아채거나 느끼는 사람이 있고, 이를 안 알아채거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풀마다 자라는 땅이 다릅니다.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오르는 풀이 있습니다. 풀을 잊거나 모르는 사람은 망초나 쇠비름이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합니다. 그러나 그뿐이에요. 망초나 쇠비름은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은 뒤 이듬해에 다시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망초나 쇠비름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스스로 쓰러지고 나서 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느새 망초잎이나 쇠비름잎은 자취조차 없습니다. 모두 흙이 됩니다. 망초잎과 쇠비름잎이 흙으로 돌아가면서, 메마르던 땅이 조금 나아지고, 조금 나아진 땅에서는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새로운 풀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말라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가 봄부터 또 다른 새 풀이 돋을 흙이 되어 줍니다. 해마다 땅은 천천히 기름진 흙으로 바뀝니다. 기름진 흙으로 바뀌면서, 이런 땅에 나무씨앗이 드리워 천천히 나무가 자라면서, 어느새 숲이 이루어지지요.




  흙이 되살아난 곳이 숲이 되기까지 제법 기나긴 해가 걸립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풀과 흙이 서로 어떤 사이인지 모르기 일쑤요, 생각조차 않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큰나무를 베어 장작이나 기둥이나 종이로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만, 이 나무가 다시 자라기까지 숲에 어떤 일이 있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다만, 이렇게 해마다 차츰 나아지는 흙인데, 농약을 함부로 뿌리거나 비료를 마구 치면 흙은 죽고 맙니다. 흙은 풀을 받아들여 흙이 되지, 농약이나 비료를 받아들이면 사막이 됩니다. 농약이나 비료는 흙을 죽음터로 바꾸어 놓습니다.



.. 앵초와 머위는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둘만이 아는 비밀의 계단을 올라가서 재미있게 놀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곧 두 아이는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고 그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30쪽)



  질 바클렘 님이 빚은 그림책 《비밀의 계단》(마루벌,1997)을 읽습니다. 들쥐를 사람에 빗대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목숨은 모두 들쥐이지만, 이 들쥐가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들 하루입니다. 겉모습만 들쥐요, 모두 사람살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을 숲에서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숲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숲에서 얻으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잔치를 자주 열어요. 언제나 기쁨이요 사랑이니 언제나 잔치입니다. 흥청망청 노닥거리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노래하면서 웃음꽃으로 춤추는 잔치입니다. 술에 저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즐기면서 어깨동무하는 잔치입니다.


  어른은 삶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삶을 물려받습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아름답다고 여긴 삶을 누리면서 물려줍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한테서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가려서 물려받습니다.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물려받고 싶은가요. 어떤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름다운가요. 어떤 흙을 우리 곁에 두어 어떤 풀이 돋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고 싶은가요. 흙을 알 때에 풀을 알고, 풀을 알 때에 나무를 알며, 나무를 알 때에 숲을 알아, 숲을 알 때에 삶을 압니다. 삶을 알아야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알아야 사람을 알며, 사람을 알 때에 마음을 아는데, 마음을 알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알고, 이야기를 아는 사이에 시나브로 흙을 깨닫습니다. 이야기가 샘솟는 흙을 깨닫지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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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한 책



  네 식구 함께 고흥에서 신안으로 마실을 다녀온다. 먼 마실이기에 하룻밤을 묵을는지 모른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하룻밤을 묵지 않고 밤에 느즈막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하룻밤을 묵는다면 밤이나 새벽이나 아침에 읽으려고 책을 여러 권 챙겼으나, 나는 내가 챙긴 책을 아예 손조차 대지 못한다. 일곱 살 큰아이는 아버지를 흉내내어 제 작고 빨간 가방에 만화책 한 권과 동시책 한 권을 챙겼다. 큰아이는 차에서 만화책도 읽고 동시책도 읽는다. 신안으로 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읽는다.


  큰아이가 부러울까. 부럽다면 부롭지만 안 부럽다면 안 부럽다. 다만, 아이가 낭창낭창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즐겁다. 아이가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잠기고, 아이가 동시책을 들고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꽃을 곱게 피울 수 있었다.


  내 책은 하나도 못 읽었으나, 아이가 책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책을 읽었구나 싶다. 내가 손에 책을 쥐지 않아도 아이가 곁에서 책을 노래하듯이 읽으니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좋았다. 이 아이들도 어버이가 잠자리뿐 아니라 여느 때에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즐거울 테고, 여느 때에 어버이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좋다고 느끼겠지.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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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먼길


  아침 일찍 고흥집을 떠나 신안으로 갔다. 신안에서 지도읍과 압해읍을 돌고 고흥집으로 돌아온다. 아침 열 시에 길을 나선 뒤 밤 열 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차에서 잠을 거의 안 자며 버티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조금 노닥거린 뒤 손발을 씻고 낯을 씻은 다음 잠자리에 눕히니 이내 곯아떨어진다. 먼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들이 잘 놀고 잘 자면 더없이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신안에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을 했으나 곁님은 오늘 돌아올 생각을 했다. 모르는 일이기에 집식구 옷가지를 모두 챙겼는데, 느즈막하게 고흥집으로 돌아왔다. 꾸린 짐은 이튿날 아침에 풀어야지. 그나저나 이튿날 아침에 밥을 차려서 먹을 수 있을까. 뭐, 먹어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먹어야 할 텐데, 나는 밥 생각이 없을 듯하고,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게 먹이고는 좀 드러누워 쉬어야지 싶다.

  숲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시골은 어디일까. 숲을 숲답게 사랑하고 아끼는 시골은 어디일까. 글쎄, 한국에 그런 시골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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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구 함께 신안마실을 한다.

순천에 있는 헌책방 아저씨와 함께 나들이를 한다.

신안에는 어떤 빛이 우리를 기다릴까.


모처럼 네 식구가

가까운 전라남도 쪽으로 간다.

가깝다지만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길이다.


잘 달리고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우리 식구들 앞길과

도서관 앞날을

곰곰이 헤아려 본다.


짐은 거의 다 꾸렸다.

신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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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베개 작은 베개



  일곱 살 큰아이가 제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큰아이는 어른들이 베는 큰 베개를 쓴다. 누나가 큰 베개를 쓰니 네 살 작은아이도 작은 베개를 안 쓰겠다고 한다. 이리하여 두 작은 어린이가 큰 베개를 쓴다. 작은 베개는? 작은 베개는 어른인 내가 쓴다.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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