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가을이 찾아온 날



  예부터 한가위나 설은 ‘한가위’나 ‘설’이었습니다. 한가위나 설은 ‘귀성’이나 ‘역귀성’으로 가리키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가위나 설은 한가위나 설이라기보다 ‘고단한 마실길’입니다. 너도 나도 자가용을 몰아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가는 길이니, 어디에서나 끔찍합니다. 아마 천만 대 즈음 될 자가용이 한꺼번에 도시를 빠져나가 시골로 간다 할 수 있을 테니, 생각으로만도 끔찍한 일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끔찍한 ‘귀성’이나 ‘역귀성’을 해야 할까요. 반가우면서 따사롭고 즐거운 한집이라면, 늙은 어버이를 시골에 외따로 두지 말고, 다 같이 큰집을 이루어 즐겁게 살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잘게 쪼개진 집이 아닌 큰집을 이룰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곁에서 보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언제나 함께 어우러지는 집이면 됩니다. 회사 때문에 잘게 쪼개어질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서로 갈라져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왜 다니고, 돈을 왜 벌까요. 우리가 저마다 이루고 싶은 뜻이나 꿈이란 무엇인가요. 어린 아이들하고 늙은 어버이는 동떨어진 채 무슨 뜻과 꿈을 이루려 하는가요.


  도시에서 숫자싸움만 하면서, 이를테면 경제개발과 성과와 성적을 내세운 숫자싸움을 하는 동안 이웃과 동무는 언제나 맞수가 됩니다. 남남입니다. 도시에서는 이웃과 동무가 없습니다. 겨루거나 다투면서 밟고 올라서야 할 맞수일 뿐입니다. 운동경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몸을 다스리면서 마음을 살찌운다는 운동경기라지만, 정작 모든 운동경기는 ‘이기고 지는’ 틀이 더 단단해집니다. 즐겁게 몸을 가꾸는 운동경기가 없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아끼면서 서로 사랑하려는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돈을 벌고 광고를 따는 스포츠만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도시와 달리, 이를테면 경제개발이나 성과와 성적을 내세우는 숫자싸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은 젊은이와 어린이가 몽땅 도시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남은 늙은 어버이는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와 비닐에 기댑니다. 일손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새마을운동 언저리에 이녁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면서 학비를 대느라 ‘농협에 곡식과 열매를 팔아서 돈을 버는’ 틀에 갇혔습니다. 이제 시골마을 늙은 어버이가 낳은 아이들이 다 자라서 손자를 낳는데, 아직도 예전 틀에 얽매인 채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와 비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굳이 돈을 더 만져야 하지 않으나, 즐거운 시골일이 못 됩니다. 애써 돈을 더 만들어야 하지 않는데, 땅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끝없이 씁니다.


  도시에 있는 젊은 어버이들 곁에 늙은 어버이가 있다면,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돈만 바라는 틀이 누그러지리라 느낍니다. 늙은 어버이는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젊은이한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시골에 있는 늙은 어버이들 곁에 젊은 딸아들이 있다면, 시골에서는 농약도 비료도 농기계도 비닐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가장 정갈하고 깨끗하며 싱그러운 남새와 열매와 곡식을 얻을 수 있어요. 시골집 사람들이 먹을 만큼 거두는 남새와 열매와 곡식이 되면, 손으로 얼마든지 심고 거둘 만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작은 땅뙈기에 남새와 열매와 곡식을 거두어도 다 못 먹기 마련이에요.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키운 곡식과 남새는 도시에 있는 이웃한테 ‘농협 수매값’보다 훨씬 나은 값을 받으며 팔 수 있습니다. 몸도 살리고 마음도 가꾸며 돈까지 더 버는 길이 열립니다.


  서정홍 님 동시집 《닳지 않는 손》(우리교육,2008)을 조용히 읽습니다. 서정홍 님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시골로 들어가서 흙을 만지는 흙지기가 되었습니다. 기름내 나던 손이 이제는 흙내 나는 손이 됩니다. 시골살이를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시 한 줄 나누어 주는 어른이 매우 드뭅니다. 서정홍 님은 이 땅 아이들한테  흙내음과 풀내음과 숲내음을 들려줍니다.


  〈봄〉이라는 노래를 읽습니다. 어른시도 동시도 모두 노래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책으로 읽는 셈입니다. “지난봄에도 올봄에도 / 창원대로에 벚꽃이 피었어요. // 한 해 내내 매연을 마시고도 / ‘야, 봄이다 봄이야!’ / 보란 듯이 벚꽃이 피었어요. // 자동차 매연도 / 봄한테는 이길 수 없나 봐요” 참말 그렇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나무가 꽤 있어요. 다만, 돈을 들여서 심은 나무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라는 나무는 몇 해 못 삽니다. 웬만한 나무는 천 해나 이천 해는 거뜬히 살지만, 도시는 끝없이 재개발을 하기 때문에, 서른 해나 쉰 해를 버티기 힘들어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하는 어른들은 시멘트집만 허물어 재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시멘트집 둘레에서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뭉텅뭉텅 베어서 죽여요.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는 모두 슬픈 삶이라 할 텐데, 그래도 봄이 되면 모든 나무가 곱게 꽃을 피워요. 고운 봄꽃으로 도시사람한테도 맑은 숨결을 베풀어요.


  경제지표로 따진다면, 봄꽃 한 송이는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봄꽃 한 송이는 사람들 마음을 따스하게 덥힙니다. 봄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마음이 싱그럽게 열립니다. 해사하며 그윽한 기운이 온몸에 퍼집니다.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으로는 이런 기운을 주지 못합니다. 화장품이나 향수도 이 같은 숨결을 베풀지 못합니다. 오직 나무 한 그루가, 풀잎 하나가, 꽃송이 하나가, 씨앗 한 톨이, 사람들한테 맑고 깊게 스며듭니다.


  〈어떻게 살까〉라는 노래를 읽습니다. “나는 얼굴을 씻으면서 / ‘물을 아껴 써야지.’ / 이를 닦으면서 / ‘물을 아껴 써야지.’ / 이런 생각을 자꾸자꾸 하다가 / 겁이 덜컥 났습니다. // 이대로 수돗물이 안 나오면 /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참말 그래요. 도시에서 수돗물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가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가스가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대목을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웃나라에서 한국에 곡식과 남새와 열매를 팔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사람은 으레 ‘중국산은 먹지 말자’고 말하지만, ‘한국산만으로 한국사람이 먹고살 수 없’습니다. 시골이 와장창 무너졌고, 도시는 너무 뚱뚱하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칠레와 베트남과 캐나다와 미국과 러시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것저것 사들여야 합니다. 하루라도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이지 않는다면, 수돗물이 끊긴다면, 참말 도시에서는 어떤 삶을 이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도시 사회와 문명이란 무엇일까요? 시골에서는 수돗물이건 전기이건 가스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뭐 하나라도 끊어지면 죽음과 같은 전쟁통이나 난장판입니다. 이 가을에 도시와 시골을 헤아려 봅니다.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 가을에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사랑이란 무엇인지 헤아려 봅니다. 4347.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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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책이름에서 묻어나는 느낌이 보드랍다고 여겼다. 그런데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여러 해 동안 안 읽고 묵혔다. 사진과 글을 보면서 여러모로 정갈하게 어루만지는구나 하고 느낀다. 그런데, 어딘가 아쉽다고, 무엇인가 없다고 느꼈다. 이 한 가지는 무엇일까. 왜 보드라우면서 정갈한 사진과 글로 가꾼 이야기가 가슴으로까지 와닿지 못할까. 한참 생각하면서 책을 되읽다가 문득 깨닫는다. 《가만히 거닐다》를 빚은 분은 ‘혼자’ 움직인다. 동무가 없이 혼자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거나 궁금한 일이 있을 때에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저쪽에서 어떤 마음인지 묻지 않는다. 저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만히 거닐다》를 이루는 사진과 글은 ‘혼자 즐기는 삶’인 셈이다. 이웃이나 동무와 ‘함께 즐거운 삶’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다. 혼자 즐기는 삶이라서 나쁠 일이 없다. 혼자 즐기는 삶은 남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삶은 얼마든지 혼자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노릇이다. 혼자 즐기면서 여행을 다닐 적에 무엇을 보는가? ‘내가 만든 골목이나 마을’을 거니는가? 아니다. 내 이웃과 동무가 오랜 나날에 걸쳐 사랑과 땀과 이야기로 가꾼 골목이나 마을을 거닌다. 나는 ‘혼자 즐기는 삶’이라지만, 내가 마주하는 모든 여행지와 숙소와 마을은 ‘내 이웃과 동무가 함께 노래하면서 가꾼 즐거운 삶’이다. 혼자 삶을 즐길 수 있는 까닭은 내 이웃과 동무가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함께 즐거운 삶’으로 거듭날 수 있는 사진과 글이 된다면 훨씬 빛나리라 본다. 보드랍고 정갈한 사진과 글이 한결 빛날 수 있도록, 따사로운 손길로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스러운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빈다.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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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거닐다-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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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길을 간다. 예배당이라는 곳에 가서 개신교를 믿어야 새로운 길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새로운 길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된다든지 국회의원이나 시장쯤 되어야 새로운 길을 가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날마다 새로운 길을 간다. 아침마다 새로운 날인데, 새롭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책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도 그렇지만, 어떤 종교를 말하면서 그곳으로 이끌려는 사람들은 으레 ‘이분법으로 나눈 틀’을 보여주려 한다. 이쪽은 옳고 저쪽은 그르다는. 이쪽이 맞고 저쪽은 틀리다는. 왜 둘로 나눌까? 왜 둘로 나누어야 할까? 아무래도, 이분들로서는 ‘예배당에 가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예배당에 안 가니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으로 나누는 삶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사회와 삶과 사람을 바라보면서 늘 이분법이 될밖에 없구나 싶기도 하다. 굳이 개척교회를 세워야 할까? 왜 개척교회를 세워야 할까? 하느님은 예배당을 세우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하느님은 우리한테 ‘보금자리’, 그러니까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돌볼 ‘집’을 세우라고 말했다고 느낀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깨어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라도 깨어나지 못하고 아름다움조차 모른다. 내가 나를 참답고 착하게 사랑할 때에 아름답다. 내가 날마다 아름답게 거듭나면, 내 사랑스러운 기운이 이웃한테 곱게 퍼지면서 따스한 숨결이 된다. 내 이웃도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 이웃이 나한테 고운 숨결을 나누어 준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집’이다. 숲으로 이루어진 집을 가꿀 노릇이다. 예배당은 그만 지어야 한다. 새로운 길은 ‘예배당 십자가’가 아닌 ‘숲으로 이루어진 집’을 가꾸는 데에 있다.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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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조정민 지음, 추덕영 그림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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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싸움이 끝난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서 흐르던 기나긴 싸움이 끝난다. 이 싸움이란 무엇일까. 이 싸움은 왜 생겨야 했을까. 싸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어우러질 수 있다면 참으로 사랑스러웠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목숨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얼거리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이사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쟁’과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문명을 세운다. ‘신분’과 ‘계급’을 나누어 질서를 세운다. 문명과 질서는 언제나 싸움, 다시 말하자면 ‘전쟁’을 끌어들인다. 전쟁을 해야 비로소 문명과 질서가 선다. 서로 싸우지 않는, 그러니까 사랑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문명과 질서를 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하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랑과 즐거움과 삶,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에 아름다움이 된다. 문명과 질서와 전쟁,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죽음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자리를 볼 수 있을까? 왜 살고 왜 죽는지 알 수 있을까?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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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14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8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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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97. 2014.9.7. 동생을 불러서



  일곱 살 책순이는 어릴 적에 자주 보았던 그림책을 곳곳에서 알아본다. 하나씩 꺼내어 동생을 부른다. “이 그림책은 누나가 예전에 보던 책이야. 자, 봐 봐.” 일곱 살 누나는 씩씩하면서 어여쁜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 준다. 곰곰이 예전 모습을 떠올린다. 큰아이가 서너 살 적에 똑같은 그림책 하나를 날마다 얼마나 자주 읽어 주어야 했는지 가만히 그린다. 고작 서너 해밖에 안 된 지난날인데, 큰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들은 목소리를 되살려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준다. 앞으로 작은아이는 누구한테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이 될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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