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놀이 1



  책꽂이를 비추는 햇볕을 가리려고 발을 드리웠다. 산들보라는 문득 발을 천천히 말아올리더니 손을 놓아 촤르륵 내린다. 발을 말았다가 펴는 일이 놀이가 되는 줄 알아챈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 스스로 문득 떠올렸겠지. 스스로 재미있다고 여겨 자꾸자꾸 발을 말았다가 폈다가 되풀이한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65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

―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E.L.코닉스버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펴냄, 2000.7.15.



  보름달이 노랗게 뜬 한가위 저녁에 네 식구 밤마실을 나옵니다. 불빛이 없는 곳으로 걷고 싶으나, 시골에서도 불빛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길을 천천히 거닐고 싶은데, 시골에서조차 이런 길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마을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불빛이 없을까요. 마을에서 멀리 떨어졌어도 가로등이 있을까요. 아침과 낮에는 해를 누리고, 저녁과 밤에는 달과 별을 누리는 삶을 누릴 때에 삶이 삶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한동안 들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두 아이는 낮길이든 밤길이든 즐겁습니다. 깔깔거리면서 달리고, 콩콩거리면서 노래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깊은 숲속이라면 불빛이 없습니다. 깊은 숲속이라면 농약바람에서 홀가분합니다. 마을이나 들녘이라면 불빛 때문에 눈이 아픕니다. 마을이나 들녘이라면 농약바람이 휘 몰아칩니다.


  그렇지요. 불빛과 농약과 자가용은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달빛과 숲바람과 두 다리도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불빛이 밝은 곳에는 손전화 소리가 넘치고 인터넷이 들어옵니다. 불빛이 없는 곳에는 손전화가 안 터지고 집전화도 안 들어오며 인터넷도 될 수 없습니다.



.. “꼬마야, 너를 붙잡은 분이 누군지 아니?” 살라이가 물었다. “하느님이신가요, 나리?”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하느님은 아니야. 하느님의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지.” … “이 손에 지시를 내리는 건 바로 나야. 내 눈과 머리가 이 근육들에 연결되어 무엇을 할지 명령하는 거란다.” ..  (11, 21쪽)



  들녘에서 벗어납니다. 마을 언저리입니다. 우리 서재도서관이 있는 나무 울타리를 옆에 끼고 걷습니다. ‘아!’ 걸음을 멈추고 외마디 소리를 뱉습니다. 함께 걷는 곁님과 아이들이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나는 따로 말을 하지 않고 ‘저기!’ 하면서 앞을 가리킵니다. 세 사람은 앞을 바라봅니다.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반딧불이, 또는 개똥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납니다. 꽁지에 이쁘장한 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나뭇잎에 앉다가 풀잎에 앉습니다. 들녘 한복판을 한참 걸어도 볼 수 없던 반딧불이인데, 농약바람이 안 부는 곳에서 겨우 한 마리를 찾아봅니다. 마을 어디에서도 못 보는 개똥벌레인데, 농약을 안 뿌리는 자리에 살그마니 찾아들어 밤마실을 함께 누리는군요.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돌보는 다슬기를 먹고 살았을까 궁금합니다. 마을 어귀 샘터를 나랑 두 아이가 치우면서 언제나 다슬기를 곱게 건사합니다. 부디 반딧불이가 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우리 마을 둘레에서 살아남기를 바라지요. 마을 빨래터와 샘터를 다른 어르신이 치우지 못하도록, 나랑 두 아이가 바지런히 치웁니다. 왜냐하면, 마을 어르신이 치울 적에는 다슬기를 모조리 죽여 없애거든요. 개똥벌레가 다슬기를 먹으면서 사는 줄 헤아리는 마을 어르신은 없습니다.



.. “그 사람들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어. 난 어른이 돼서야 라틴어를 배웠고, 그것도 혼자서 공부했단다. 만일 내가 의견을 말했다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씌어진 작품들을 들먹이면서 반박했을 거야. 나는 실제로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의견을 내놓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책에 쓰여 있는 것만 믿으니까.” … “쳇, 그놈들은 말을 직접 보지도 않고 말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써 놓은 책만 읽을걸요.” 레오나르도의 얼굴에 점점 웃음이 번졌다. “흥, 그놈들은요, 말이 자기한테 오줌을 갈겨도 책에 나와 있지 않으면 자기가 왜 젖었는지도 모를 거예요. 흥, 그놈들은……” ..  (23, 24∼25쪽)



  E.L.코닉스버그 님이 쓴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사계절,2000)를 읽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 둘이 나오는 이야기책입니다. 글쓴이는 두 사람과 얽힌 이야기를 이녁 나름대로 ‘새롭게 읽고 풀어내어’ 어린이문학으로 선보입니다. 이 책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은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 이야기는 아주 마땅하지만 ‘글쓴이 생각’에서 태어났습니다.



.. 큰 부자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작업장에 오지 않았다. 레오나르도가 그들을 찾아갔다 … 레오나르도는 산과 강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산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나 바람에 시달려 가지를 낮게 뻗은 나무 한 그루를 스케치하려고 먼 길을 걸어다녔다 … “레오나르도 선생, 이런 하찮은 잡초도 당신이 그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겠죠.” ..  (40, 59, 69쪽)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녁은 하느님이었을까요, 하느님이 빚은 가장 훌륭한 숨결이었을까요? 이 사람은 사내였을까요, 가시내였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은 무엇을 말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어떤 넋으로 그린 그림이고, 그림마다 어떤 뜻이 깃들었을까요?


  비평가는 어떤 모습을 바라보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사람을 읽을까요? 우리가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넋이고, 어떤 숨결일까요?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를 읽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열며 어떤 삶을 짓는 슬기를 이 책에서 얻을까요?



.. 레오나르도가 짬을 내서 이사벨라의 초상화를 마무리지을 염려는 거의 없었다. 조만간 이사벨라는 보석 반지를 낀 자신의 하얀 손에 닿지 않는 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158쪽)



  참은 언제나 참입니다. 거짓은 언제나 거짓입니다. 노래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꿈은 언제나 꿈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빛은 언제나 빛이고, 바람은 언제나 바람입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쬘 적에 이불을 마당에 널면 이불에는 햇볕내음이 그득 뱁니다. 마을 어르신이 농협에서 헬리콥터를 빌려다가 논에 농약을 뿌리면 온 마을에 농약내음이 물씬 퍼집니다. 농약 기운은 낮밤으로 퍼지고 밤낮으로 스밉니다. 농약을 뒤집어쓴 들에는 풀벌레가 모조리 죽고, 참새는 얼씬하지 못합니다. 예전 시골에서는 허수아비를 세우거나 들판을 지키고 섰다지만, 요즈음은 허수아비를 세울 일도 들판을 지킬 일도 없습니다. 농약 한 차례 뿌리면 돼요. 농약 한 차례 뿌리면 벌레도 새도 뭐도 죄 죽어요. 그리고, 오늘날 도시사람은 농약 듬뿍 쳐서 벌레나 새 한 마리 얼씬조차 못하는 들에서 자란 나락을 먹습니다.


  전라도 어느 고장에서는 ‘나비 쌀’을 선보입니다. 나비잔치를 벌이고 나비가 춤추는 논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비가 있으려면 농약을 못 치겠지요. 농약을 치더라도 살짝 한두 번만 치겠지요. 또는 늦여름이나 한가을에 칠는지 모릅니다. ‘나비 쌀’도 ‘제비 쌀’도 ‘메뚜기 쌀’도 ‘참새 쌀’도 아닌 ‘그냥 쌀’이라면 농약을 얼마나 쳤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농약 쌀’을 먹고도 사람은 곧바로 죽지는 않아요. 아토피에 걸린다든지 온갖 병치레를 앓을 뿐입니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를 덮습니다. 꿈결 같은 이야기를 되뇌어 봅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으나, 이 책에서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사랑인지 꿈인지 알 노릇이 없으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을 마주보려 하는 넋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저 마주볼 수 있으면 됩니다. 꾸밈없이 마주볼 수 있으면 됩니다. 비평가나 역사가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지식이나 정보는 내려놓고, 우리 스스로 눈을 살며시 감고 1400∼1500년대 무렵으로 날아가서 두 사람을 살가이 만날 수 있으면 됩니다. 참다운 사랑을 생각하고, 따스한 꿈을 그리면 됩니다. 맑게 노래를 부르고, 슬기롭게 이야기잔치를 벌이면 됩니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요. 살라이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비평가나 역사가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저귀와 이불



  아이들이 아직 기저귀를 댈 무렵, 밤마다 기저귀갈이를 하느라 삼십 분이 한 차례씩 잠을 깨었는데, 두 아이 모두 기저귀를 뗀 뒤에도 밤잠이 느긋하지 않다. 요즈음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번쩍번쩍 잠을 깬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눌 적에 언제나 아버지를 깨운다. 아니, 아버지를 깨우지는 않는데, 큰아이가 너무 졸린 탓에 밤오줌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기에 곁에서 얼른 잠에서 깬 뒤 쉬를 누인다. 때로는 잠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기에 문득 알아채고는 후다닥 일어나서 쉬통으로 데려간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구나 하고 느끼면서 잠을 깬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지 어느 만큼 흐르면 꼭 잠이 깬다. 그래서 두 아이 이불깃을 새로 여민다. 이불깃 여미기는 거의 한 시간에 한 차례쯤 한다.


  조금 더 크면, 두 아이가 더 자라면, 앞으로는 밤에 이불깃 여미느라 잠을 깰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빈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역국을 끓이다가



  아침에 함께 먹을 밥으로 미역국을 끓이다가 거의 다 끓을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찬찬히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고 무채무침을 하면서 ‘다 잘 되는데 무엇 하나를 아직 안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역국 간을 볼 즈음 비로소 깨닫는다. 미역을 안 자르고 끓였네. 부랴부랴 가위로 석석 자른다. 팽이버섯도 썰어서 넣는다. 국그릇에 된장을 푼다. 미역국 불을 끄고 난 뒤 된장국물을 붓는다. 된장국물을 고루 섞은 뒤 다시 간을 본다. 아, 내가 끓인 된장미역국이면서도 참 맛있네. 나는 이 맛과 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을까. 우리 할머니한테서? 더 먼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서?


  밥도 알맞게 뜸이 들었고 국도 맛나다. 무채무침을 먼저 밥그릇 바닥에 깔고 나서 밥을 얹고, 달걀을 네 조각으로 갈라 밥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밥상에 차곡차곡 옮긴다. 국을 뜨고 아이들을 부른다.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저쯤은 스스로 놓아야지.


  미역국을 끓인 날은 괜히 즐겁다. 예부터 미역국은 아주 뜻있게 끓였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리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를 기리면서,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즐거움을 기리면서, 미역국을 으레 끓였을 테니, 여느 날에 미역국을 끓일 적에도 오늘도 내 새로운 생일로 여길 만하다. 즐거운 밥잔치이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4.9.5. 큰아이―그림편지 1



  그림순이가 종이를 오려 무언가 쓰고 그린 다음 접는다. 그러고는 살며시 다가와서 “아버지, 편지 왔어요. 읽어 보셔요.” 하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종이를 오리지 말라 해도 자꾸자꾸 오리고, 자꾸자꾸 오려서 쪽그림을 그리고 쪽편지를 쓴다. 그림편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천천히 펼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