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쓰고 싶을 때에 글을 써야 한다. 쓰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에는 억지로 연필을 쥐고 종이를 펼쳐도 한 줄은커녕 한 낱말조차 못 적는다. 집일을 안 하는 사람이라면 말미가 넉넉할는지 모르나, 언제나 아이들을 바라보고 집일을 도맡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느긋하게 연필 쥘 겨를이 없기 일쑤이다. 그래도 한두 마디라도 공책에 후다닥 갈겨쓰면,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 바로 그 한두 마디를 바탕으로 삼아서 줄줄줄 글을 쓸 수 있곤 하다.


  마음에 담는다고 할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늘 마음에 담는다고 할까.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쓰면 가장 좋고, 그때그때 손을 놀릴 수 없다면 마음에 담고서 나중에 글을 쓸 수 있는 자리와 때를 기다려서 즐겁게 노래를 하자고 생각한다. ‘난 그 이야기를 곧 쓸 수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 통통통 도마질을 한다. ‘난 그 이야기를 조금 뒤에 쓸 수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 빨래를 비비고 헹구어 마당에 넌다. ‘난 그 이야기를 오늘 밤까지 쓸 수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놀거나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다닌다.


  내 삶을 나 스스로 짓고 싶으니 글을 쓴다. 내 삶을 나 스스로 가꾸고 싶기에 마음에 글감을 담으면서 나긋나긋 노래를 부른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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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방송과 글쓰기



  내가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도서관을 꾸리는 일을 다큐방송으로 찍고픈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림이 되기 때문에 다큐방송을 찍고 싶어 할까. 그림이 되면서 뭔가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겨 찍고 싶어 할까. 매체에 1분이 나오는 방송을 찍거나 1시간이 나오는 방송을 찍거나 기운을 많이 쏟아야 한다. 신문에 1줄이 나오는 취재를 받거나 1쪽을 통틀어 나오는 취재를 받거나 힘을 많이 들여야 한다. 어떤 취재이든 참으로 고달프다고 다시금 느낀다. 얼마나 고달픈가 하면, 취재를 받아야 하는 날은 내가 늘 하는 일인 글쓰기를 할 기운이 바닥이 난다. 덜컹거리는 시외버스에서조차 글을 쓰는데, 취재를 받는 동안에는 ‘묻는 이야기’에 대꾸를 해야 하니, 내 생각을 내 공책에 옮겨적는 일을 할 수 없다. 나한테는 이런 일이 몹시 괴로울 뿐 아니라 힘들다. 취재를 받아야 하는 내내 한 가지를 떠올렸다. 면소재지 고등학교 독서 동아리 아이들한테 들려줄 글을 얼른 써야겠고, 뒤꼍 풀밭에 우거진 풀을 낫으로 베고 싶다고. 풀을 베거나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니면, 새롭게 기운이 솟아 씩씩하게 새 글을 쓸 수 있는데, 취재 받기는 영 나하고는 안 어울리는 일인 줄 깨닫는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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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 - 한금선 사진집
한금선 지음 / 봄날의책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5



바람에 누워도 일어나는 풀꽃

―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

 한금선 사진

 봄날의책 펴냄, 2014.8.19.



  풀을 베거나 뽑으면 한동안 땅바닥에 풀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풀은 이내 돋습니다. 새로운 풀씨가 싹을 트고, 새로운 풀줄기가 오르면서 새로운 풀잎이 천천히 퍼집니다. 나뭇가지를 베면 처음에는 민둥민둥 앙상하지만 이윽고 새로운 줄기가 뿅 나옵니다. 아주 가늘고 작은 가지가 하나둘 나오고, 어느새 제법 굵게 자랍니다.


  다치거나 긁히거나 베인 자리에서 피가 나옵니다. 아야 아프네 하고 들여다봅니다. 다치거나 긁히거나 베인 자리에서 끝없이 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느 만큼 피가 나온 뒤 천천히 아뭅니다. 천천히 아문 뒤 딱지가 지고, 딱지가 떨어질 무렵 새로운 살이 돋습니다.


  풀은 그야말로 꾸준하게 자랍니다. 김을 매는 사람으로서는 풀이 그악스럽다 여길 만한데, 소한테 풀을 뜯기는 사람이라면 꾸준하게 자라는 풀이 고맙습니다. 풀을 뜯어서 먹는 사람한테도 풀은 고마운 밥입니다. 뜯어도 뜯어도 새로 나기 때문입니다. 상추도 부추도 고들빼기도 쑥도, 뜯으면 뜯을수록 새로 돋아서 그야말로 자꾸자꾸 새로 먹을 수 있습니다.


  오이도 토마토도 호박도 똑같아요. 따고 다시 딸 수 있습니다. 꾸준하게 새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딸기도 늦봄과 이른여름 사이에 꾸준히 새로 딸 수 있어요. 새로 꽃이 피고 지면서 새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문득 사람살이를 떠올립니다. 사람은 어떠한가요. 사람은 새로 자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새로 자라지 않는 사람인가요. 사람은 날마다 꾸준히 자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어느덧 제자리에서 멈추면서 자랄 줄 모르는 사람인가요.





.. 물론 인터뷰 중에는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분들과 시선을 맞춘 채 얼굴을 맞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면 내가 찍을 차례인데, 그때는 살아온 역사와 사연을 말하는 동안의 감정 기복이라든가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서 모두 사라진 뒤였다. 맞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레 시선이 배경을 이룬 벽으로 확장되었는데, 아까의 눈빛은 나올 수 없지만 뒤에 다닥다닥 걸린 가족사진이라든가 카펫을 두른 벽 등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218쪽)



  한금선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봄날의책 펴냄,2014)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금선 님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려인’ 취재를 나섭니다. 촬영기를 가진 사람과 취재를 하는 사람이 언제나 앞에 섭니다.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뒤에 섭니다. 촬영기를 돌리거나 취재를 하려고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일하는’ 동안에 사진기를 쥔 사람은 뒤에 서거나 밖에 나가야 합니다.


  사진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사진가는 뒤에서 부스러기를 줍는 사람일까요. 사진가는 찰칵 소리를 내어 촬영을 가로막는 헤살꾼일까요. 사진가는 취재하려고 무언가 묻는 사람 눈길을 흐리거나 흐트리는 걸림돌일까요.


  가만히 따져 봅니다. 촬영기를 돌리는데 옆에서 자꾸 찰칵찰칵 소리를 내면 거슬립니다. 딴 소리가 스미니까요. 취재를 하려고 묻는 사람 옆에서 자꾸 취재원 눈길을 빼앗으면 골이 날 만합니다. 취재를 하려는 사람은 취재원이 저한테 온마음을 쏟기를 바라니까요.


  그래요. 사진가는 외롭습니다. 사진가는 외로워야 합니다. 아니지요. 외로워야 하는 사진가는 아닙니다. 혼자 움직여야 하는 사진가일 뿐입니다. 혼자 움직이되, 홀가분할 수 있어야 하는 사진가입니다. 홀가분하게 움직이되 즐겁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 사진가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촬영기를 돌리는 사람은 빙글빙글 춤을 추지 못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빙글빙글 춤을 추듯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촬영기는 세발이에 앉혀서 안 흔들리도록 해야 할 테지만, 사진기는 걸음걸이에 맞추어 함께 움직이면서 ‘어느 한때’를 사랑스레 담을 수 있습니다. 취재를 하려고 묻는 사람은 말씨 하나에 온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양말이나 손가락이나 신발이나 마룻바닥이나 접시나 양탄자나 주름살이나 안경이나 거리낄 일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꼭 한 가지만 살그마니 떼어서 찍을 수 있어요.


  홀가분하게 찍기에 홀가분한 사진입니다. 즐겁게 찍기에 즐거운 사진입니다. 신나게 찍기에 신나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어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어디로든 움직입니다. 집 안쪽에서 둘러봅니다. 집마다 있는 사진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손님한테 차려 주는 맛난 밥상을 바라봅니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을 거닙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만 ‘찰칵’ 하고 찍으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가 한 사람이 빚은 이야기는 영상이나 글하고 사뭇 다릅니다. 영상은 끊임없이 흘러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글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알뜰히 담아서 몽땅 알려주려는 듯합니다.


  사진은 영상이나 글처럼 하지 못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어느 한때’만 ‘찰칵’ 담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때를 찰칵 담기에, 사진을 읽는 사람은 이 점에서 저 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점과 저 점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무슨 삶이 있을까, 어떤 사랑이 있을까,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하고 스스로 곰곰이 헤아립니다.






.. 이후 또 어떤 작업 현장에서 어떤 작업 방식과 조우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난관 없이 관성적으로 찍었다면 저 보물 같은 순간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  (221쪽)



  한금선 님은 촬영기를 쥐거나 연필을 쥔 사람한테 막혀서 ‘제대로 사진을 못 찍’을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금선 님은 촬영기와 연필 때문에 사진을 사진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길을 얻습니다. 촬영기를 돌리는 자리에 굳이 사진기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연필이 사각사각 춤추는 데에 구태여 사진기가 있을 일이 없습니다. 사진기는 사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사진기는 사진기가 있을 자리에 있어야 환하게 빛나고 맑게 흐르며 싱그러이 숨을 쉽니다.


  지난날 한금선 님이 선보인 《집시 바람새 바람꽃》(눈빛 펴냄,2007)을 보면, 이무렵 한금선 님은 어떤 틀에 스스로 가두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금선 님과 마주한 사람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활짝 웃거나 노래하는 사진이 못 되었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삶으로 저마다 다른 사랑을 속삭이는 무지개를, 무지개가 아닌 먹구름으로 보았지 싶어요.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은 어떤 삶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면서 어떤 이야기로 그러모으는 어떤 사랑일까 궁금합니다. 고려인은 한금선 님이 만나기 앞서이든 만난 뒤이든 언제나 고려인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에 젖은 삶에 아픈 사람이 있고, 눈물에 젖은 삶에 아프면서도 곧잘 웃음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곁님이나 동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웃습니다. 주름진 얼굴에는 죽음을 이긴 고비가 깃들 뿐 아니라,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얼크러진 사랑잔치가 함께 깃듭니다. 사진기를 쥔 우리들은 이러한 숨결을 어느 만큼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살필 수 있을까요.






.. 이번 작업으로, 고려인에 대해서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알고 느끼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222쪽)



  바람에 누워도 일어나는 풀꽃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그만 비바람에 꺾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있고, 비바람을 꿋꿋하게 견딘 풀과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비바람에 꺾인들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비바람에 꺾여 죽어도 새로운 씨앗이 이 땅에 드리워서 새롭게 태어나요. 아프고 괴로우면서 고단한 나날을 지나야 했던 고려인들 가슴에는 슬픔과 생채기와 얼룩이 있어요. 그리고, 슬픔 곁에는 즐거움이, 생채기 곁에는 웃음이, 얼룩 곁에는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삶을 이루는 이야기가 알뜰살뜰 있습니다.


  소담스레 밥상을 차려 이웃을 부릅니다. 소담스레 차린 밥상맡에는 사진가도 앉을 수 있습니다.  어제 그토록 모진 가시밭길에서 피울음으로 슬퍼야 했던 사람들이 오늘 잔치마당을 베풀면서 하하 웃고 기쁘게 노래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모레는, 글피는, 새로운 해는, 또 새로운 해는, 다시 새로운 해는, 고려인들한테 어떤 삶이 될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또 남녘에서 살거나 북녘에서 살거나 중국에서 살거나 일본에서 사는 한겨레한테는, 오늘 하루가 어떤 날이 될까요.


  바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풀과 꽃과 나무한테는 국경이 없습니다. 풀씨와 꽃씨와 나무씨는 국경이나 정치나 이론이나 졸업장이나 재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어디로든 날아가서 깃들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웁니다. 한국(남녘이나 북녘)으로 가고픈 고려인이 있으나, 앞으로도 그곳에 그대로 남아 살아라겨는 고려인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고려인이며 한겨레입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싱그러운 숨결이며 사람이자 사랑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사람을 찍고 사랑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는 우리들은 사람을 읽고 사랑을 읽습니다. 한금선 님이 고려인을 이웃으로 만나 알뜰살뜰 사진으로 찍어 나누어 주니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4347.9.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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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에 깃든 범나비 애벌레



  흔히 ‘호랑나비’라 일컫는 ‘범나비’ 애벌레를 본다. 마당 한쪽 초피나무 가지를 좀 쳤는데, 친 가지에 애벌레가 있다. 초피알을 훑다가 애벌레를 본다. 그동안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막상 두 눈으로 애벌레를 보니 아주 작다. 이 작은 애벌레가 곧 깨어나겠구나. 곧 새롭게 태어나겠구나. 새롭게 태어나는 애벌레는 새로운 숨결이 될 테지. 나비도 사람도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면 참으로 아름답게 삶을 일구리라 느낀다. 4347.9.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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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52) 독창적 1


한번 방문한 네티즌이 그 사이트의 자발적 홍보대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이트가 그만큼 독창적이고 컨텐츠가 충실해야 할 것이다

《오연호-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2004) 38쪽


 사이트가 그만큼 독창적이고

→ 누리집이 그만큼 남다르고

→ 누리집이 그만큼 새롭고

→ 누리집이 그만큼 뛰어나고

 …



  개화기나 일제강점기나 해방 뒤 지식인이 쓴 글을 살피면, 토씨만 한국말이고 알맹이는 죄 한자말이기 일쑤였습니다. 요즈음 지식인이 쓰는 글을 살피면, 아직도 토씨만 한국말이면서 알맹이는 죄 한자말에다가 영어이기 일쑤입니다. 그만큼 한국말을 모른다는 뜻이며, 그만큼 한국말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자말 ‘독창적(獨創的)’은 “다른 것을 모방함이 없이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거나 생각해 내는”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새로운”이라는 소리입니다. “독창적 사고”란 “새로운 생각”이란 소리이고, “독창적 발명품”은 “새로운 발명품”이란 소리이며, “독창적 방법을 제안했다”는 “새로운 길을 내놓았다”는 소리입니다.


 외래의 문화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 다른 문화를 새롭게 키웠다

→ 바깥에서 들여온 문화를 남달리 키웠다

 훈민정음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다

→ 훈민정음은 새롭고 빈틈없다

→ 훈민정음은 뛰어나고 훌륭하다


  스스로 길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새로운 마음이 될 때에 새롭게 생각을 엽니다. 새롭게 생각을 열어야 말과 삶을 모두 새롭게 짓습니다. 새로우면서 남다르고, 남다르면서 훌륭하며, 훌륭하면서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10.20.물/4347.9.16.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한번 찾아온 누리꾼이 그곳을 스스로 알리도록 이끌려면 누리집이 그만큼 남다르고 줄거리가 알차야 한다


‘방문(訪問)한’은 ‘찾아온’으로 다듬고, ‘네티즌(netizen)’은 ‘누리꾼’으로 다듬습니다. “그 사이트(site)의 자발적(自發的) 홍보대사(弘報大使)가 되기 위(爲)해서”는 “그 누리집을 스스로 알리도록 하려면”이나 “그곳을 스스로 알리도록 이끌려면”으로 손질합니다. “컨텐츠(contents)가 충실(充實)해야 할 것이다”는 “줄거리가 알차야 한다”나 “담은 이야기가 알뜰해야 한다”로 손봅니다.



독창적(獨創的) : 다른 것을 모방함이 없이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거나 생각해 내는

   - 독창적 사고 / 독창적 발명품 / 독창적 방법을 제안했다

     외래의 문화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 훈민정음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421) 독창적 2


사진작가는 보는 이들의 현실을 독창적으로 재현한다는 신념을 갖고 촬영에 나서야 한다

《최민식-사진이란 무엇인가》(현문서가,2005) 64쪽


 현실을 독창적으로 재현한다

→ 삶을 제 나름대로 다시 보여준다

→ 삶을 새롭게 되살린다

→ 삶을 남달리 읽어 되살린다

 …



  삶을 새롭게 읽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 눈길이 아닌 ‘내 눈길로 읽’도록 해야 합니다. ‘내 나름대로 읽’으려고 해야 합니다. ‘내 눈으로 읽’고 ‘내 마음을 담아 읽’어야 할 테지요.


  남과 다르게 읽습니다. 남과 다르게 읽으니 ‘남달리’ 읽거나 ‘남다르게’ 읽어요. ‘바로 내 눈으로 읽’는 매무새가 될 때에, 우리 삶을 되살리는 사진 한 장 찍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씁니다. 4339.1.22.해/4347.9.16.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작가는, 보는 이들이 누리는 삶을 새롭게 되살린다는 믿음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보는 이들의 현실(現實)을”은 “보는 이들이 누리는 삶을”이나 “보는 이들이 가꾸는 삶을”로 손보고, ‘재현(再現)한다는’은 ‘되살린다는’으로 손보며, ‘신념(信念)’은 ‘믿음’이나 ‘생각’으로 손봅니다. “촬영(撮影)에 나서야 한다”는 “찍어야 한다”로 손질합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834) 독창적 3


톨스토이에 관한 연구를 읽으면 그 대부분이 톨스토이의 철학과 신앙을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로맹 롤랑/장만영 옮김-톨스토이》(신구문화사,1974) 150쪽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고

→ 새롭지 않다고

→ 남다르지 않다고

→ 홀로 뛰어나지 않다고

→ 톨스토이한테서만 볼 수 있지 않다고

 …



  보기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톨스토이를 다룬 글을 읽으면, 톨스토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면서 품은 생각이나 믿음이, 톨스토이한테서만 엿볼 수 있도록 남다르지 않은 줄 알 수 있다는 뜻을 밝히려 했지 싶습니다.


  톨스토이라는 분은 어떤 생각과 믿음으로 살았을까요? 남다르지 않은 생각과 믿음이라면 수수한 생각이나 믿음이겠지요. 여느 자리에서 흔히 보거나 듣거나 만날 수 있는 생각이나 믿음일 테지요. 누구나 쉽게 생각하거나 믿는 이야기를 톨스토이한테서 엿볼 수 있겠지요.


  수수한 말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납니다. 투박한 말에서 사랑스러운 열매가 맺습니다. 4340.2.21.물/4347.9.16.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톨스토이를 다룬 글을 읽으면 거의 다 톨스토이가 품은 생각과 믿음이 새롭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톨스토이에 관(關)한 연구”는 “톨스토이를 다룬 연구”로 다듬습니다.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다’나 ‘거의 모두’로 손보고, ‘철학(哲學)’은 ‘생각’으로 손보며, ‘신앙(信仰)’은 ‘믿음’으로 손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88) 독창적 4


정오에 교사 휴게실로 가져가서는 이십 분간 독창적으로 욕설을 해댔지

《캐서린 패터슨/이다희 옮김-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2006) 102쪽


 독창적으로 욕설을 해댔지

→ 새롭게 욕설을 해댔지

→ 새삼스럽게 거친 말을 해댔지

→ 혼자서 거친 말을 해댔지

→ 혼자 거친 말을 내뱉았지

 …



  거친 말을 ‘독창적’으로 했다는데, 어떤 뜻일는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거친 말을 새롭거나 새삼스럽게 했을는지 모르지만, 어느 모로 본다면 ‘혼자’ 했을 수 있어요. 어느 쪽인지 뚜렷하지 않습니다.

  창작이든 번역이든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지 제대로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두루뭉술하게 쓰면 안 되지요. 쉽고 또렷하게 쓰면 될 말은 쉽고 또렷하게 쓰면 됩니다. 4347.9.16.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낮에 교사 쉼터로 가져가서는 이십 분 동안 혼자 거친 말을 내뱉았지


‘정오(正午)에’는 ‘낮에’로 다듬고, ‘휴게실(休憩室)’은 ‘쉼터’로 다듬습니다. “이십 분간(-間)”은 “이십 분 동안”으로 손보고, ‘욕설(辱說)’은 ‘거친 말’이나 ‘막말’로 손볼 수 있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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