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한국말 살려서 쓰기'나 '한국말 바르게 쓰기'를

짤막한 글로 썼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글을 저마다 갈래를 나누어서 썼고,
'-의'과 얽힌 글은 2000꼭지를 한참 넘겼고,
'-적'이나 '외마디 한자말'이나 '살려쓰기'와 얽힌 글은
1000꼭지를 훨씬 넘겼다.

오늘 '우리 말도 익혀야지'라는 이름으로 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바로잡도록 도우려고 쓴 글이
1000꼭지 숫자를 얻는다.

숫자로는 1000꼭지를 썼으나
앞으로 쓸 글은 아주 많다.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1000꼭지에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모두 담아낼 수는 없을는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새롭게 잘못 쓰는 말투가
자꾸 불거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하여'나 '해서' 따위로
글쟁이들 글재주 부리는 말투가
스멀스멀 불거지는 모습이라고 할까.

'우리 말도 익혀야지'라는 이름으로 1000꼭지를 쓰는 동안
'가끔씩'과 '이따금씩' 이야기를 따로 안 썼다가
1000꼭지에 이를 무렵 비로소 썼다.

오늘날처럼 배울 것이 많은 사회에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자고 하는 이야기는
참 고단하거나 힘들거나 재미없다고 여길는지 모르겠는데,
배울 것이 많은 사회이니
말부터 똑바로 제대로 올바로 배울 노릇 아니랴 싶다.

말부터 제대로 안 배우고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우고서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책을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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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0) 이따금씩 2


노래를 부르면서 이따금씩 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 행여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따금씩 뒤를 돌아다보면서

《카롤린 필립스/전은경 옮김-커피우유와 소보로빵》(푸른숲주니어,2006) 15, 51쪽


 이따금씩 소리를 지르곤

→ 이따금 소리를 지르곤

 이따금씩 뒤를 돌아다보면서

→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면서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이 ‘이따금’ 뒤에 ‘-씩’을 붙이면서 겹말을 만듭니다. 그런데, 겹말을 만들면서 겹말인 줄 느끼지 못합니다. 잘못 쓰는 말투를 알려주어도 못 깨닫기까지 합니다. 아마 ‘겹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싶어요. 머릿속에 ‘겹말’이나 ‘잘못 쓴 말’이나 ‘한국말 바르게 쓰기’가 하나도 없다면, 잘못 쓰는 얄궂거나 엉성한 말투를 옳게 추스르려는 마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따금 + 씩’ 같은 겹말은 ‘초가 + 집’ 같은 겹말과 얼거리가 비슷합니다. 붙일 수 없는 낱말을 붙이는 셈입니다. 그러면, 왜 적잖은 사람들은 ‘이따금 + 씩’을 붙여서 쓸까요? ‘이따금’이 무슨 뜻을 나타내는 낱말인지 제대로 모르고, ‘-씩’을 붙일 적에 어떤 뜻이 되도록 하는가를 똑똑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따금’에 ‘-씩’을 붙일 때에 힘주어 말하는 느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기를 겹말로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초가집’이 ‘초가’를 힘주어 말하는 꼴이 될 수 있을까요? “역 앞에서 만나자”가 아닌 “역전 앞에서 만나자”라 해야 힘주어 말하는 꼴이 될까요?


  잘못 쓴 말투는 즐겁게 바로잡으면 됩니다. 잘못을 하루 빨리 깨달아 기쁘게 추스르면 됩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내 말투를 갈고닦을 때에 반짝반짝 빛납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노래를 부르면서 이따금 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 마치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는듯이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면서


‘행여(幸-)’는 ‘마치’나 ‘꼭’으로 손봅니다.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은 “오기라도 하는듯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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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9) 얄궂은 말투 97 :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러기 아카는 그녀의 무리를 이끌고 벰뮌과 판타르홀름을 넘어서 카를스크로나로 비행했다. 저녁 늦게까지도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셀마 라게를뢰프/배인섭 옮김-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168쪽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 기러기들은 그대로 날았다

→ 기러기들은 꾸준히 날았다

→ 기러기들은 자꾸자꾸 날았다

→ 기러기들은 한결같이 날았다

 …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기러기 우두머리를 ‘그녀’로 가리키더니, 나중에는 기러기 무리를 ‘그들’로 가리킵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기러기를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가리켜도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서양에서는 기러기를 ‘she’라든지 ‘they’로 가리킬 만합니다. 서양말과 서양 말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러기를 ‘기러기’로 가리킵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고양이’로 가리킵니다. 한국말과 한국 말법은 이와 같습니다.


  이 보기글을 더 살피면, 기러기를 잘못 가리키기도 하지만, 말투가 뒤죽박죽입니다. “그들의 비행”이라는 말투는 ‘-의’를 넣는 일본 말투이고, “-고 있었다”는 현재진행형인데, 한국말에는 이러한 말투가 없습니다.


  누구나 어릴 적부터 스스로 배운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텐데, 문학을 하거나 번역을 하는 자리에 서려 한다면, 어릴 적부터 스스로 배운 틀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한국말을 새롭게 배우고 깊으면서 넓게 다시 익힐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기러기 아카는 무리를 이끌고 벰뮌과 판타르홀름을 넘어서 카를스크로나로 날았다. 저녁 늦게까지도 기러기들은 그대로 날았다


“기러기 아카는 그녀의 무리를 이끌고”는 “기러기 아카는 무리를 이끌고”로 바로잡습니다. 서양에서는 암컷 기러기를 ‘그녀’로 가리킬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기러기일 뿐입니다. ‘비행(飛行)했다’는 ‘날았다’로 손봅니다. “계속(繼續)되고 있었다”는 “그대로 날았다”나 “꾸준히 날았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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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사진이 되다 (사진책도서관 2014.9.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나는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진을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 사진책도서관을 연 인천에서는 인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때가 2007∼2010년이다 보니, 2014년인 올해에 돌아보더라도 다섯 해가 더 지났다. 2007년에 찍은 사진은 몇 해 있으면 벌써 열 해나 묵은 사진이 된다. 우리 집 큰아이가 올해에 일곱 살이니 그럴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싸하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집과 도서관이 인천에 있을 적에 찍은 꽤 많은 사진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아주 안 반가운 일은 오직 하나이다. 사진으로 찍은 모습이 사진으로만 남을 때에 참으로 안 반갑다.


  나는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내가 도서관일기를 쓰거나 육아일기를 쓰는 까닭은, 그때그때 ‘기록’할 마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살며 그곳 골목동네를 찍은 까닭은, 인천에 있는 이웃뿐 아니라 다른 고장 이웃한테도 ‘우리가 저마다 뿌리를 내려 사는 마을 이야기’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마주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밝히자는 뜻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그곳 골목을 찍으면서 한 가지를 더 느끼기도 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골목을 찍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이들은 ‘나중에 기록이 될 모습’을 생각하면서 찍는다. 그래서 이런 이들이 찍는 사진은 언제나 ‘기록’이기는 하되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않는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놀면서 웃는 모습을 찍더라도 그저 ‘기록’일 뿐 어떤 이야기도 깃들지 않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살내음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삶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사랑노래이다. 사진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는다면, 부디 사진기를 고이 내려놓기를 바란다. 글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겠다면, 부디 연필을 얌전히 내려놓기를 바란다. 노래를 부르건 춤을 추건 그림을 그리건 언제나 똑같다. 스스로 즐겁게 걸어가는 길에 ‘살내음·삶·사랑노래’를 살포시 담아서 들려주거나 나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사롭다. 이 세 가지가 없이 어떻게 ‘사진’이나 ‘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보도사진으로 사진을 배웠지만 보도사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문이나 매체에 싣는 보도사진은 거의 다 살내음도 삶도 사랑노래도 없이 ‘특종’과 ‘놀라운 것’과 ‘짜릿한 것’에 휘둘리는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큐사진도 보도사진하고 거의 비슷하다. 다큐사진에 살내음이나 삶이나 사랑노래를 싣는 사진가는 몇이나 있을까?


  다큐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보도사진도 기록이 아니다. 모든 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패션사진이나 상업사진이라 하더라도 장삿속이나 돈벌이가 아니다. 어떤 갈래에 들어가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두 ‘살내음·삶·사랑노래’을 밝혀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잘 생각해 보라. 글이라고 해서 모두 글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책을 ‘글’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다. 신문기사를 ‘글’이라고 여길 사람도 없다. 대통령 담화문 따위를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공문서나 대학 논문을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모양새로는 글이라 하더라도 글답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진기를 써서 사진 모양새로 만들더라도 사진답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다. 이 대목을 제대로 못 읽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내가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처음 열면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찍으며 배우고 즐거웠던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이런 대목이리라. 나 스스로 골목동네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 아닌 헛짓’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고, 많이 느꼈으며, 많이 알아챘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도 ‘삶 아닌 헛짓’을 하거나 ‘사랑 아닌 헛놀이’에 휘말리는 사람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나고 둘 태어나면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삶을 삶대로’ 누리고 ‘사랑을 사랑대로’ 가꾸는 길이,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하루가 되는구나 하고 배웠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와서 놀듯이 이래저래 손질한다. 여러 해 묵은 골목 사진을 곳곳에 걸어 본다. 가슴이 찡하다. 살짝 눈물이 났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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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순이', 그러니까 '책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아이들 사진을 찍은 지 꽤 오래되었다.

큰아이가 갓 태어날 무렵부터 책순이 사진은 태어났다.

다만 그때에는 그냥 다른 '육아 사진'과 뭉뚱그렸다.


'책 읽는 아이' 모습을 따로 추린 지는

몇 해 안 된다.


게다가, '책 읽는 아이' 모습을 

따로 이야기로 엮도록 하자는 생각은

지난 2013년 5월에 처음으로 했다.


그무렵, '예스24블로그'에서

"아이가 책을 읽는 예쁜 모습 사진 공모"를 했는데,

그 공모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몇 해째

'책 읽는 모습' 사진만 하더라도 여러 천 장을 찍었는데

이런 공모를 하는구나...

그래, 공모에 우리 아이 사진을 띄운다는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이 책하고 놀면서 사는 모습을

차곡차곡 갈무리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리하여, 지난 2013년 가을에는

전남 순천에 있는 작은 헌책방에서

'책순이' 사진잔치도 조촐하게 열었다.


앞으로도 '책순이' 사진은 꾸준히 이어진다.

우리 집 책순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나중에는 이 아이가 제 아버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책돌쇠' 이야기를 엮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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