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 매기호 비룡소의 그림동화 132
아이린 하스 글 그림, 이수명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4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네

― 꿈의 배 매기호

 아이린 하스 글·그림

 이수명 옮김

 비룡소 펴냄, 2004.8.20.



  아이들이 새벽같이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왜냐하면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잡니다. 이와 달리 놀 겨를이 없거나 놀 길이 막힌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라는 곳이 있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을 살피면, 참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늦습니다. 학교에 늦지 않더라도 빠듯하게 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일이 재미없거나 괴롭거나 따분하거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시험성적이나 시험공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아니 참다운 삶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서로 사랑스레 어우러질 만하리라 느껴요.



.. 어느 날 밤, 마거릿 반스타블은 별에게 빌었어요. 북극성님, 바다의 별님, 내 이름을 딴 배를 갖고 싶어요 ..  (3쪽)




  아이들은 이튿날 새롭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 새롭게 놀 생각으로 번쩍 눈을 뜹니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늘 틀에 박힌 채 고달픈 일을 되풀이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야 한다면, 아마 어떤 아이도 잠들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아침이 새롭지 않고 늘 똑같은 일을 고달프게 되풀이해야 한다면, 돈을 버는 일이 지겹다면, 돈을 애써 벌어도 집삯과 빚과 이곳저곳에 들어가야 한다면, 일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일하는 보람이 없으면 아침마다 몸이 무거워요.


  아이들은 꿈을 꾸면서 잠듭니다. 어른들은 어떻게 잠들까요? 어른들도 꿈을 꾸면서 잠들까요? 아니면, 꿈은 하나도 없이 마냥 힘들다 힘들어 힘들어 죽겠네 하는 소리만 읊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질까요?



.. 눈부신 아침이 오면, 마거릿은 갑판을 북북 문질러 닦고 항해할 준비를 하면서 오래된 뱃노래를 불렀어요 ..  (9쪽)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를 읽습니다. ‘매기호’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마거릿’이 모는 배 이름입니다. 마거릿은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애타게 빌었어요. 마거릿은 잠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뭇별한테 기쁘게 바랐어요. 그러고는 꿈을 꾸지요. ‘내 배’를 몰아 거친 물결을 헤치면서 바다를 가로지르고 싶다는 꿈을 꾸어요.


  자, 마거릿이라는 어린이 앞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으로 마거릿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마거릿은 어떤 이야기를 맞이할까요?



.. 매기호는 항해를 계속했어요. 산들바람은 상냥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지요. 제임스는 부드러운 벨벳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잤고,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15쪽)



  꿈을 꾸었기에 꿈을 이룹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마땅해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을 이루지 않아요.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데 무엇을 이루겠어요? 생각한 꿈이 없는데 어디로 나아갈까요?


  아이들은 즐겁게 놀 생각을 품으면서 밤에 잠듭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놀아요.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도 꿈을 꿀 노릇입니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곱게 품어야 합니다.


  생각을 지어야 꿈이 나타납니다. 생각을 지을 때에 꿈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어 꿈이 나타나도록 했으면, 이제부터 꿈을 누려야지요. 생각을 지어서 꿈을 그렸으면, 이제부터 꿈길로 나아가야지요.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거릿은 바이올린으로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그리고 제임스를 요람에 누이고 부드럽게 흔들었지요. 또 제임스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 주었고요 ..  (27쪽)



  그림책에 나오는 마거릿이라는 아이한테 ‘얘, 어서 방 좀 치워!’ 하고 윽박지른다면 아이는 고달픕니다. 그러나,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 수 있고, 제 이름을 딴 배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아무도 어떤 일을 안 시켰어도 스스로 청소를 합니다. ‘얘, 네 동생 좀 봐!’ 하고 다그치면 아이는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아 바다를 가로지르고픈 꿈을 키운다면, 함께 배를 타고 즐겁게 나들이를 하고픈 동무를 찾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누가 심부름으로 동생 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즐겁고 사랑스레 동생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데, 번역은 그리 살갑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집 일곱 살 아이한테 그냥 건네려 했지만, 이곳저곳 손질할 대목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그림책은 그야말로 어린이 눈높이대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날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문학에서 쓰는 낱말이나 말투를 섣불리 그림책에 넣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만나는 낱말과 말투로 생각을 지어요.



하루 동안 항해를 하고, 멋진 친구도 생기게 해 주세요

→ 하루 동안 바다를 가르고, 멋진 동무도 사귀게 해 주세요

태양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 해님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 나뭇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아이들한테 ‘항해’라는 말을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라면 이런 한자말을 써도 된다고 할 테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쓰면, 뜻풀이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나 동무는 ‘생기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동무는 ‘사귑’니다.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하늘에 걸린 따뜻한 별은 ‘해’나 ‘해님’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는 새는 없습니다.



그의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있네

→ 그대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에 있네

낮에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 낮에 사과나무 그늘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갯가재도 냄비 속에 넣었어요

→ 갯가재도 냄비에 넣었어요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위’나 ‘아래’나 ‘속’을 엉뚱하게 씁니다. 외국 말투를 섣불리 한국말로 옮깁니다. 바다 위쪽이라고 여겨 “바다 위에 있네”라 할 수 있겠으나, 배(집)는 “바다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다 밑 어딘가를 가리킬 때에는 “바닷속에 있다”처럼 적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 소풍을 간다는 말은 어딘가 안 어울립니다. “나무 아래”란 어디일까요? 땅속일까요? 뿌리 밑일까요? “나무 그늘”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국을 끓일 때에는 “냄비에 넣”습니다. “냄비 속”에 넣지 않아요. 냄비 속이란 어느 곳일까요?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마거릿은 제임스를 멋지게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제임스는 울기 시작했어요. 폭풍이 오고 있었던 거예요

→ 제임스는 울어요. 비바람이 와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 저녁이 끝나고 / 저녁을 다 먹고



  토씨 ‘-의’를 얄궂게 붙여서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라 적었습니다만, 이런 말투도 그림책에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어른문학에서도 이런 말투는 손질해야 합니다. ‘시작’은 일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거의 군말입니다. “울기 시작했어요”가 아니라 “울어요”로 적어야 합니다. “오고 있었던”은 영어 번역 말투이고, 뒤에 붙은 “거예요”는 군더더기입니다. ‘저녁’이라는 낱말은 때를 가리키면서 끼니를 가리킵니다. ‘식사’라 하는 한자말은 덜어냅니다.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 오래된 노래를 켰어요

담요 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 잠이 들었답니다

→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답니다



  마거릿이라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켜서 동생을 재웁니다. 그러니, “바이올린을 켰어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굳이 ‘연주’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담요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하는데, 담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요 안”이라는 자리도 없습니다.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겠지요.


  그림책 번역에 마음을 깊고 넓게 기울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외국 그림책이기에 한국 어린이한테도 널리 읽힐 만합니다만, 아름다운 그림책은 아름다운 말과 글과 이야기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도록 더욱 마음을 기울여서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네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을 익히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줄거리만 훌륭하거나 그림만 예쁘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넣는 말 한 마디까지 알뜰살뜰 여밀 줄 알아야 합니다.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듯이, 꿈꾸는 어른이 사랑스럽습니다. 꿈을 살가이 담은 그림책이 아름답고, 꿈을 맑으면서 밝은 말과 글로 엮어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름답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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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 에누리 책’ 읽지 말자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어느 누리장터에서 박시백 님 만화책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펴냄)을 부록과 이것저것 끼우고 책꽂이까지 덩달아 얹어서 129,900원에 판다고 한다. 이 만화책에 붙은 제값(정가)은 217,000원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끼우는 값을 치면, ‘반값 에누리’보다 더 싸게 파는 셈이다.


  곰곰이, 곰곰이, 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박시백 님이 빚은 만화책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반값 에누리 책’으로 마구 팔아치워도 될 만한가? 이 책은 그만 한 값어치밖에 안 되는가? 이 책이 참말 ‘떨이’로 팔아넘겨도 될 만한가?


  박시백 님 만화책 《조선왕조실록》이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알차다고 한다면, ‘반값 에누리 책’이 아닌 ‘제값 다 받는 책’으로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요즈음 흐름으로 보더라도, ‘10퍼센트 에누리’와 ‘10퍼센트 우수(적립금)’를 붙일 수 있을지라도 ‘반값 에누리’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사는 새책은 우리한테 얼마나 피와 살이 될까 알쏭달쏭하다.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을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사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파는 까닭은 뭘까?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이러한 값으로 내놓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값으로 책을 팔면서, 사람들이 다른 출판사 다른 아름다운 책을 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노릇이라고 느낀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 아주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조선왕조실록》을 217,000원이 아니라 129,900원으로 붙여서 내놓아도 될 만하다. 아니, 이제부터는 책값을 이렇게 고친 뒤 ‘제값대로 받기’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처음부터 제값이 아닌 뻥튀기 값을 붙였기에, 이렇게 ‘반값 에누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출판사에서 반값 에누리로 책을 팔기에 이 나라 책마을이 어지럽다. 출판사에서 반값 에누리로 내놓는 책을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덥석 장만하기 때문에, 이 나라 책마을은 도무지 제자리를 못 찾고 그저 어지럽기만 하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박시백 님 만화책이 ‘반값 에누리 책’이 되었으니,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아이들한테는 안 보여줄 생각이다. 내 이웃들한테도 이런 만화책은 아이들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알릴 생각이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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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캡슐 속의 필통 창비아동문고 145
남호섭 지음 / 창비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35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것은

―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 글

 남궁산 그림

 창비 펴냄, 1995.9.30.



  노란 탱자알을 따면 단단한 열매에서 상큼한 냄새가 물씬 흐릅니다. 단단한 탱자알을 아이들 손바닥에 살그마니 올리면, 어느새 탱자내음이 아이들 손을 거쳐 아이들 온몸으로 확 퍼집니다.


  탱자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탱자알을 맛나게 먹지는 않습니다. 탱자나무는 울타리 구실을 합니다. 탱자알은 그윽한 냄새를 한껏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마다 구실이 다릅니다. 어느 나무는 달디단 열매를 잔뜩 나누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이 되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숲에 불이 나더라도 더 퍼지지 않게 막아 줍니다. 어느 나무는 새를 잔뜩 불러모아 노래잔치 이루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어느 나무는 열매로 우리 아픈 몸을 다스립니다. 



.. 눈 오신다. / 이사하는 날 아침 / 이삿짐 위에 눈 쌓인다. // 이제 이사 안 가도 되는 거지? ..  (첫눈)



  소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소나무가 아니라면 집을 지을 만한 나무를 찾기 어렵습니다. 소나무 아닌 다른 나무는 많이 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숱한 전쟁과 부역 때문에 온갖 나무가 숲과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전쟁은 한국전쟁만이 아닙니다. 부역은 일제강점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조선과 고려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때에도 온갖 전쟁이 끔찍하게 잦았고, 궁궐을 짓거나 성곽을 올리거나 절집을 키우느라 큰나무가 남아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처음부터 소나무로 집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느티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굵고 단단하면서 곧게 잘 자라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으로 알맞춤했다고 해요. 정치권력이 일으킨 전쟁과 부역 때문에 느티나무가 거의 씨가 마르면서, 그 다음으로 소나무를 썼다고 합니다.


  얼추 즈믄 해쯤 되었다고 하던가요. 다시 말하자면, 즈믄 해쯤 앞서 ‘집을 지을 만한 느티나무’는 자취를 감춘 셈이라고 할까요.



.. 대공원의 공중 열차보다 / 훨씬 숨막히고 식은땀 나는 / 전철 안에서 / 그 날 나의 가장 큰 소망은 / 기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전철 안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한 대에 천 억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사들이려고 합니다. 천억 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한 대만 살 생각이 아니라 백 대쯤 사들이려 할는지 모릅니다. 열 대를 산다면 1조요, 백 대를 산다면 10조인데, 이런 비행기를 사들인다면, 유지비와 관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정부에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 값비싼 전쟁무기를 자꾸 사들이려 합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래서, 한국과 맞닿은 북녘에서도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고 합니다.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아니 저쪽에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면 더 뛰어나고 더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정부에서 외칩니다.


  이리하여, 북녘에서는 밥을 굶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북녘에서는 배를 곯다 못해 죽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남녘에서는 가난에 쪼들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니, 제아무리 용을 써서 돈을 번다 한들 살림살이가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에 들이는 돈은 끔찍하게 많아서, 민주이든 복지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모두 뒷전이 되어, 사회는 메마르고 정치와 경제는 매몰차기만 합니다.



.. 노오란 포클레인을 / 꿈속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 아이들뿐이다 ..  (포클레인을 꿈꾸며)



  어른들은 핵발전소를 짓습니다. 핵발전소 못지않게 쓰레기와 매연을 낳는 화력발전소를 자꾸 짓습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면서 도시까지 무서운 송전탑을 수천 개씩 멧봉우리마다 척척 처박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자가 우리 멧자락에 쇠못을 수없이 박았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우리 정부가 스스로 멧자락마다 ‘쇠못보다 훨씬 무서운 송전탑’을 끝없이 박고 다시 박습니다.


  왜 도시에 ‘에너지 자급’을 할 생각이 없을까 궁금합니다. 왜 집집마다 ‘에너지 자급’을 하도록 시설을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전기로 사람들을 다스리거나 거머쥐어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꼼짝을 못하도록 옭아매려는 뜻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끔찍한 쓰레기를 선물로 남깁니다. 깨끗하거나 싱그럽던 냇물을 몽땅 시멘트덩이로 바꾸는 짓을 일삼은 어른입니다. 시골마을에 농약바람이 불게 하면서, 석면 공해 지붕을 모조리 뒤집어씌운 어른입니다. 남북이 평화롭게 나아갈 길은 안 찾고, 남북이 서로 전쟁무기로 다투도록 내모는 어른입니다. 이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새로운 선물까지 갖다 안깁니다.



.. 선배 언니들은 / 아무렇지도 않게 / 그 옆을 지나치는데 // 올해 처음 / 개나리 담장을 보게 된 / 신입생들은 / 모두 한마디씩 하며 / 지나갔습니다. // “여기 개나리가 있었네.” ..  (개나리)



  남호섭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을 읽습니다. 백 해쯤 뒤를, 또는 오백 해쯤 뒤를 생각해서 타임 캡슐을 묻는다고 하는데, 굳이 묻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핵쓰레기는 오백 해뿐 아니라 오십만 해는 갈 테니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과 가전제품은 땅속에서도 안 썩어 오백 해뿐 아니라 천 해쯤 거뜬히 갈 수 있으니까요.


  남호섭 님이 동시에 쓴 대로, 아이들은 “노오란 포클레인을 꿈속까지 끌고 들어”간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꿈속에서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노오란 포클레인”을 생각하거나 꿈으로까지 꿀까요? 왜 아이들이 꿈속에서 훨훨 날지 않고, 신나게 놀지 않으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노오란 포클레인”을 보여주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따스한 사랑이나 푸른 꿈을 이야기하지 않나요?



.. 우리의 제일 높은 산 이름 / 우리의 제일 오랜 산 이름 / 백두산, / 왜 백두산 담배는 없을까 ..  (담배 심부름)



  동시에서까지 삽차 이야기라든지 물질문명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서까지 담배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 메마르거나 갑갑하게 만든 굴레를 동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앞으로 슬기롭게 가꾸어 사랑스레 일굴 꿈을 동시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문에 나지 않고 방송에 나타나지 않으며 책에 적히지 않지만,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어른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이 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란, ‘슬기로운 어른’이 아름답게 가꾸는 삶과 사랑일 때에 환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는가요. 이 나라에서 아이는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는가요. 이 나라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주려 하는가요. 이 나라 아이는 어른한테서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할까요.


  어른이 만든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눈망울에서 빛을 잃습니다. 눈망울에서 빛을 잃은 아이들은 개나리꽃도 지나치고 들꽃도 지나치며 겨울눈도 지나칠 테지요. 아이들 눈망울이 싱그러이 살아나도록 이끌 수 있는 동시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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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달랜다



  아이들한테 아침을 차려 주고 난 뒤 고단해서 살짝 자리에 눕는다. 설거지는 마쳤고, 빨래는 한숨 돌리고 나서 할 생각이다. 한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삼십 분쯤 눈을 붙였을까, 우체국 일꾼 목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떠서 소포를 받은 뒤 시계를 보았을 때에는 삼십 분쯤 지난 듯하다. 우체국 일꾼은 작은 책꾸러미 하나를 건네준다. 따로 시킨 적이 없는 책인데 누가 보냈을까 궁금하게 여기며 봉투를 뜯는다. 아, ㅊ이라는 곳에서 보낸 책이다. 비노바 바베 님 교육책이 얼마 앞서 새로 나왔다 했는데 ‘서평쓰기 책’으로 보내 주었다.


  졸음을 떨치고 책을 펼친다. 예전에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비노바 바베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슬기로운 숨결이 있다. 이러한 숨결을 만나면 ‘사라진 기운’이 돌아오고 ‘없던 힘’이 천천히 솟는다. 책이란 이러할 때에 책이라고 느낀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덟째 책 《새 문명》과 나란히 놓고 함께 읽어 본다. 따사로운 바람이 살며시 분다. 이윽고 책을 모두 덮고 기지개를 켠다. 신나게 빨래를 한다. 어제와 그제 비가 꽤 많이 내린 터라 이틀 사이에 빨래 몇 점만 했더니, 제법 쌓였다. 슬슬 추위가 다가오니 곧 두꺼운 옷가지를 빨래하느라 등허리가 꽤 결리겠네 싶다.


  빨래를 마무리짓고 마당에 넌다. 한가을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는다. 눈부신 햇볕을 받는 곡식은 잘 익으리라. 빨래도 잘 마를 테고, 내 마음에도 즐거운 이야기가 샘솟을 테지. 빨래를 다 널었으니 자전거를 몰아 서재도서관에 가서 살짝 아이들과 논 다음, 우체국에 다녀와야겠다. 책 한 권을 선물처럼 받으면서 새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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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96. 2014.9.17. 아이들 밥버릇과 고기



  모처럼 고기를 밥상에 올린다. 고기를 밥상에 차릴 때면 늘 큰아이 어릴 적 밥버릇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고기를 딱히 안 먹지는 않으나 굳이 챙겨서 먹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큰아이는 어릴 때에 고기맛을 거의 본 일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갈 때면 으레 고기가 나온 밥상을 구경하는데, 큰아이는 고기에는 도무지 손을 대지 않았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수 입에 넣어 주려 하면 싫어하고, 밥그릇에 얹으면 못마땅했다. 큰아이는 네 살로 접어들 무렵부터 천천히 고기를 조금 맛보았고, 이제는 그럭저럭 먹는다. 곰곰이 돌아본다. 사람이 살아온 나날을 곰곰이 돌아온다. 사람들이 고기를 즐겨먹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돌아본다. 사람은 고기를 얼마나 자주 먹었을까? 아예 안 먹지는 않고, 아주 드물게 먹지 않았으랴 싶다. 옛날 옛적부터 사람들은 풀과 열매를 먹었으리라 느낀다. 몽골이나 알래스카 같은 데에서는 고기를 늘 먹을밖에 없었겠지만, 여느 삶터에서는 참말 풀과 열매가 몸을 살찌우는 밥이었으리라 느낀다. 어쨌든, 밥상으로 차렸을 때에는 즐겁게 먹으면 된다. 아이들아, 우리 맛나게 먹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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