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70] 푸름이



  ‘어린이’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때에는 아이들이 더 어려운 터라, 일제강점기에 아이들이 제대로 사랑받으면서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린 사람”을 뜻하는 ‘어린이’라는 낱말을 방정환 님이 지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린이 나이를 지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나이가 되면, 여러모로 고단하면서 힘겹습니다. 한창 자라면서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무렵에 입시지옥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 흐름을 살피던 사람들이 ‘청소년’ 나이에 이른 푸른 숨결을 나타낼 만한 ‘푸름이’라는 낱말을 지었어요. 어느 한 사람이 지은 낱말이라기보다 곳곳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온 낱말입니다. 푸르게 자라고, 푸르게 생각하며, 푸르게 꿈꾸고, 푸르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넋을 담았어요. 다만, ‘푸름이’라는 낱말은 아직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이러한 낱말을 모르는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교사가 많습니다. 꼭 어떤 낱말이나 이름을 잘 지어야 제대로 사랑받거나 자랄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 열네 살부터 열아홉 살 사이를 살아가는 고운 넋이 맑으면서 푸르게, 풀과 나무처럼 푸르며 넉넉하게 사랑과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60) 후의 1


8·15 후의 춘원은 온데간데 존재도 없었다. 8·15 전까지만 해도 민족의 우상처럼 존경받던 춘원이

《송건호-한국현대인물사론》(한길사,1984) 348쪽


 8·15 후의 춘원은

→ 8·15 뒤 춘원은

→ 8·15 뒤로 춘원은

→ 8·15가 되고부터 춘원은

→ 8·15가 되자 춘원은

 …



  한국말사전 말풀이에서 볼 수 있듯이, ‘後’라는 한자말이 아닌 ‘뒤’나 ‘다음’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납시다”나 “십 분 뒤에도”로 적으면 돼요. “며칠 지나고 다시 만납시다”나 “십 분 지나도”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며칠 있다가 다시 만납시다”나 “십 분 있다가”로 적어 볼 수 있어요.


  ‘뒤’와 ‘다음’ 말고 ‘나중’을 넣어도 어울립니다. ‘지나다’나 ‘지나가다’라는 움직씨를 넣어도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前’을 쓸 까닭이 없이 ‘앞’이나 ‘앞서’나 ‘먼저’를 쓰면 됩니다. “그때를 전후로”가 아닌 “그때를 앞뒤로”이며, “그 일이 있기 전에”가 아닌 “그 일이 있기 앞서”입니다.


 8·15부터 춘원은

 8·15 때부터 춘원은

 8·15를 맞이하고부터 춘원은

 8·15를 지나고부터 춘원은


  알맞게 쓸 낱말과 말투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앞과 뒤를 살피고 이곳과 저곳을 돌아볼 노릇입니다. 지난날을 비롯해 앞날까지 즐거이 쓸 말을 어떻게 추슬러야 한결 나은가를 찾아볼 노릇입니다. 나와 이웃이 모두 넉넉하고 아름다이 가꿀 말과 글은 어떤 모습인가 하고 곰곰이 보듬을 노릇입니다.


  마음을 담는 말이니까요. 생각을 거두는 말이니까요. 뜻을 싣고 넋을 펼치는 말이니까요.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하고 함께 쓸 말이며,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과 같이 쓸 말이니까요. 아이한테 물려줄 말이요, 동무와 어깨를 겨눌 말이며, 한집 사람들이 즐거이 쓸 말이니까요.


 후에 연락하다 → 다음에 연락하다 / 나중에 연락하다

 후에 딴 말씀을 → 나중에 딴 말씀을 / 그때 가서 딴 말씀을


  그냥저냥 쓰는 말이 아닌 꼼꼼히 살피며 쓰는 말입니다. 얼렁뚱땅 쓰고 그치는 말이 아닌 차근차근 헤아리며 쓰는 말입니다. 아무렇게나 쓰는 말이 아닌 믿음과 사랑을 듬뿍 담아서 쓰는 말입니다. 4341.5.16.쇠/4342.5.10.해/4347.10.1.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8·15 뒤로 춘원은 온데간데 없었다. 8·15 앞서까지만 해도 겨레에 별처럼 섬겨지던 춘원이


“온데간데 존재(存在)도 없었다”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나 “온데간데 없는 사람이었다”나 “온데간데 없었다”로 다듬습니다. “8·15 전까지만”은 “8·15가 되기 앞서까지만”이나 “8ㆍ15 앞서까지만”으로 손보고, “민족(民族)의 우상(偶像)처럼 존경(尊敬)받던”은 “우리 겨레 별처럼 받들리던”이나 “겨레한테 별처럼 섬겨지던”으로 손봅니다.



후(後)

 1. 뒤나 다음

   - 며칠 후에 다시 만납시다 / 십 분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2. = 추후(追後)

   - 후에 연락하마 / 후에 딴 말씀 하지 마십시오

 3. ‘뒤나 다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 후더침 / 후보름 / 후서방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56) 후의 2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서 냉전 하에서 이 상자에 비쳐지는 세계도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되었다

《이마무라 요이치/김이랑 옮김-영상 미디어와 보도》(눈빛,1998) 6쪽


 세계대전 후의 동서 냉전 하에서

→ 세계대전 뒤 동서 냉전에서

→ 세계대전을 치른 동서 냉전에서

→ 세계대전을 겪은 동서 냉전에서

→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서 냉전에서 

→ 세계대전이 지난 뒤 동서 냉전에서

 …



  ‘後 + 의’는 한국말 ‘뒤’를 밀어내며 쓰입니다.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말 그대로 “세계대전 뒤”를 이야기하는 자리인데, 세계대전 뒤라고 한다면, “세계대전을 치른 다음”이나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이나 “세계대전이 지난 다음”이라 할 수 있어요. “세계대전을 겪은 다음”이나 “세계대전이 몰아치고 난 뒤”라든지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찬찬히 살펴서 또렷하게 적어야지 싶어요. 우리 마음 그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적으면 됩니다. 말치레가 아닌 속가꿈으로 나아가면 돼요.


 세계대전 뒤 이어진 동서 냉전에서

 세계대전 뒤 찾아온 동서 냉전에서

 세계대전 뒤 생겨난 동서 냉전에서

 세계대전 뒤 이루어진 동서 냉전에서


  내 몸을 살리듯 내 말을 살릴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내 마음을 살리듯 내 글을 살릴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내 넋을 살리듯 내 말투를 살리고, 내 얼을 살리듯 내 글투를 살려야지 싶습니다. 내 삶을 하나하나 살리면서 내 생각을 하나하나 살리고, 내 말과 글 또한 하나하나 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5.10.해/4347.10.1.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서 냉전에서 이 상자에 비치는 세계도 아주 다른 두 세계가 되었다


“냉전(冷戰) 하(下)에서”는 “냉전에서”나 “찬바람에서”로 다듬어 봅니다. ‘비쳐지는’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비치는’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전(全)혀’는 ‘아주’나 ‘사뭇’으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69) 후의 3


사흘 후의 일이었다

《사노 미오코/정효진 옮김-귀수의 정원 1》(서울문화사,2011) 6쪽


 사흘 뒤 일이었다

→ 사흘이 지난 일이었다

→ 사흘 뒤였다

→ 사흘이 지났다

 …



  보기글을 살피니, 한국말 ‘뒤’를 넣더라도 자칫 “사흘 뒤의 일”처럼 적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단출하게 “사흘 뒤 일이었다”로 적으면 됩니다. 더 단출하게 다듬는다면 “사흘 뒤였다”나 “사흘이 지났다”로 적으면 돼요.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화과를 소쿠리에 담는 즐거움



  아이들이 며칠에 한 차례씩 “무화과 있어요? 무화과 없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그래, 무화과를 딸까?” 하고 대꾸하며 무화과를 따러 뒤꼍으로 갑니다. 아이들이 묻지 않아도 조용히 무화과를 따서 물에 씻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달라붙습니다. 아마 무화과알 냄새를 맡았겠지요.


  소쿠리에 하나 담고 둘 담고 셋 담습니다. 한 알 두 알 석 알 차츰 늘어납니다. 아직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그리 안 크고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무화과는 몇 알 안 됩니다. 앞으로 무화과나무가 넓고 크게 퍼지면, 가을에 무화과 열매를 소쿠리 가득 따서 그야말로 밥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네 살 아이가 “무화과 많다!” 하고 외치면, 일곱 살 아이가 “자, 세 볼까!” 하면서 하나씩 셉니다. 조그마한 아이들한테는 오늘 딴 무화과 열 알만 하더라도 많을는지 모르는데, 이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 우리 집 무화과는 한결 크게 자라서 아이들 나이와 몸에 맞게 더 많이 열매를 나누어 줄 테지요.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턱 소리와 함께 떨어진 모과



  아이들을 불러 뒤꼍에서 무화과를 따는데 그야말로 크게 ‘턱!’ 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아주 살짝 생각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는다. 또 모과가 떨어졌구나. 모과나무 앞에 떨어진 샛노란 모과를 본다. 참 커다랗구나. 이렇게 커다란 아이가 나무에 잘 달렸네.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손으로 집어 본다. 아주 크다. 꽤 무겁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무에 달린 채 햇볕을 아주 잘 머금은 듯하다. 아직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모과알을 손에 쥐고 살살 돌린다. 얼마나 이쁘장한 모과요, 얼마나 야무진 모과인가 하고 생각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우렁차고, 땅을 울리는 결도 싱그럽다. 높은 가지에 매달린 모과를 어떻게 따야 할까 생각했는데, 굳이 안 따도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모과알이 굵고 크게 맺히면 저 스스로 떨어지니까. 게다가 굵고 단단한 모과알은 흙바닥에 떨어진들 안 깨진다. 다친 자국도 없다. 좋네. 알맞게 며칠에 하나씩 떨어지니 차근차근 집에 두어 고운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듬뿍 나누어 준 뒤 쪼글쪼글 마른 모과는 다시 흙한테 돌려주면 되지.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7



마음을 지키는 이웃

― 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글·그림

 정효진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1.9.30.



  귀를 기울여요.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이웃은 옆집에 사는 사람일 수 있고, 풀밭에서 노래하는 벌레일 수 있습니다. 이웃은 옆마을에서 흙을 일구는 할매일 수 있고,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할배일 수 있으며, 하늘을 흐르는 구름일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할까요? 내 이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사랑을 가꾸고 싶을까요?



- ‘이 세상은 의외로 재미있구나.’ (4쪽)

- “ 생사의 문턱은 몇 번이나 넘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서, 이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그리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마음을 가져서 이 저택에 간단히 들어온 게야.” (17쪽)




  사노 미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귀수의 정원》(서울문화사,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는 ‘귀수’가 나오고 ‘정원’이 나옵니다. 사람이 아닌 넋이 나오고 온갖 풀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뜰이 나옵니다.


  귀수는 귀수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그런데, 귀수 가운데에는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넋이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에도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숨결이 있습니다. 여기에, 귀수 가운데 사람을 이웃과 벗님으로 여기는 넋이 있고, 사람 가운데 귀수를 따사로운 이웃과 벗님으로 생각하는 숨결이 있습니다.



- “나는 백화초목을 보살피는 능력밖에 없는 운무의 정령. 능력이라곤 이 아담한 정원을 윤택하게 만드는 게 고작. 허나, 수고를 아끼워 않고 자비를 베풀면 반드시 윤택하게 자라나지. 천계도, 인간계도 마찬가지야. 하늘의 마음은 작은 것 안에서 더더욱 잘 나타나는 법이다.” (27쪽)

- “어떤 모습이건 나는 유일하다. 이 세상이 이루어진 이후로 쭉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28쪽)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짓을 누구보다 잘 알아채기도 합니다. 사람인 탓에 사람을 가엾게 여기거나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람인 탓에 사람이 싫거나 미울 수 있어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들도 우리 이웃이 될까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든지 전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도 우리한테 이웃이나 벗님이 될 만할까요.


  어떤 아이도 전쟁을 생각하며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도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을 터뜨립니다.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무기를 늘립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생각일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는 생각일까요?



- “잡초가 이런 데까지 나다니. 뽑아 버리자.” “잠깐, 무라이. 그대로 둬. 그건 잡초가 아니라 이삭여뀌라는 풀꽃이야.” (45쪽)

-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카후.” “이, 인간 말씀이신가요?” “그래, 인간이다. 숭배받는 걸 당연타 여기는 천계의 신들보다 말이다.” (67쪽)

- “꽃이야 매년 피는 것! 꺾어도 무에 하나 아까울 것 없는 목숨이다, 꽃도 사람도!” “올해의 꽃과 내년의 꽃은 달라. 인간도, 아무리 환생을 반복하는 중생이라 해도 그 생은 단 한 번뿐, 꺾어도 아깝지 않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 (80쪽)




  만화책 《귀수의 정원》을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썼어도 사람답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귀수라는 옷을 입었어도 사람다운 이들이 있습니다. 풀과 나무라는 껍데기를 썼지만 사람다운 숨결이 가득하기도 하고, 사람이라는 옷을 뒤집어쓰기만 할 뿐,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겉도 속도 사람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넋을 가꾸려는 이들이 있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꿀 삶은 어떠할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눌 사랑은 어떻게 보듬으면서 어깨동무할 적에 서로 기쁘게 웃을 만할까 생각합니다.


  참말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한테 일삯을 달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주면서 밥값을 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준 뒤에 밥값 내놓으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한테서 밥값을 받을까요? 우리는 누구한테서 ‘돌봄 일삯’을 받을까요?



- “그 소나무는 그리지 마! 카후! 마을사람들 모두 ‘객사 소나무’라고 부른다고. 얼마 전에도 노인이 죽었대. 불길한 소나무야.” “그런 말은 소나무에게 실례잖아.” (117∼118쪽)

- “질투도 소중한 마음의 일부. 연모하는 마음 뒤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벌레인 게지요.” (168쪽)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그렇지요. 그러면,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인데,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돌보거나 아끼는지 궁금합니다.


  꼭 돈이 있어야 할까요? 누구도 누구한테도 돈을 주거나 받지 않으면서 삶을 가꿀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돈이란 없이 오직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면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내 아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받지 않듯이,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바라지 않듯이, 우리가 서로한테 돈을 바라지 않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간다면, 이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길을 열 수 있으리라 느껴요. 평등도 민주도 평화도 통일도 자유도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태어나리라 느껴요.



-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데.” (178쪽)

- “그 소나무를 그리자. 그 가지 하나하나, 솔잎 한 가닥 한 가닥까지. 이 그림을 완성할 즈음, 형형색색의 봄이 찾아오리라.” (181∼182쪽)



  그림을 그립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쟁이는 이녁대로 용을 그립니다. 나는 나대로 내 마음을 지키는 살가운 이웃을 그립니다. 내가 내 이웃을 사랑스레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길을 천천히 그립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를 아끼고 돌보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만히 그립니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