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43. 훈민정음과 한글과 한국말

― ‘쉬운 말’과 ‘어려운 말’



  ‘밥값’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은 세 가지 뜻으로 씁니다. 첫째는 “밥을 먹는 데 드는 값”입니다. 둘째는 “끼니가 될 밥을 먹으며 치르는 값”입니다. 셋째는 “밥을 먹은 만큼 하는 일”입니다. 시를 쓰는 정호승 님은 《밥값》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집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공기관이든 여느 회사이든 학교이든 ‘밥값’이라는 낱말은 거의 안 씁니다. 으레 ‘식대(食代)’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밥을 밖에서 사다 먹자고 할 적에도 한자말을 빌어 ‘식당(食堂)’이라는 낱말을 써요. 한국말로 ‘밥집’을 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맛집’이라는 낱말이 꽤 퍼졌습니다. 맛있게 하는 밥집을 가리키는 ‘맛집’일 텐데, 이러한 낱말을 쓰는 흐름을 잘 살핀다면, ‘밥집’이라는 낱말도 앞으로 넉넉히 쓸 만하리라 봅니다. 구내식당이나 학생식당 같은 곳이라면 ‘밥터’라는 낱말을 새로 지을 수 있어요. 책을 사고파는 곳을 가리켜 ‘책방’이라고도 하지만 ‘책집’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책이 있는 곳, 이를테면 도서관이나 서재라 한다면 ‘책터’라는 낱말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돈을 내고 빨래를 맡기는 곳은 ‘빨래방’입니다. 이와 달리, 예부터 마을에서 빨래를 하려고 모이는 곳은 ‘빨래터’예요. ‘터’라는 낱말은 ‘집’이나 ‘방’과 다른 자리에서 써요. 그래서, 돈을 내고 노래를 부르는 작은 방이라면 ‘노래방’이라 할 테지만, 노래를 즐겁게 듣거나 누리는 곳, 이를테면 ‘음악회관’이나 ‘콘서트장’이나 ‘음악감상실’ 같은 곳은 ‘노래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시교육으로 찌든 ‘학교’가 아닌 참답게 삶을 배우는 곳을 가리켜 ‘배움터’라는 이름을 새롭게 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하면 이곳저곳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글이요, 지구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손꼽는 글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틀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한글을 높이 사기만 할 뿐, 정작 한글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는 한국말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기 일쑤입니다.


  한겨레는 왜 ‘모든 소리를 담을 만한 글’을 쓸까요? 한국말은 모든 소리를 귀여겨듣고 즐겁게 입으로 들려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왜 뛰어나다고 손꼽을 만한 글일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쉽고 빠르게 익히면 우리가 입으로 나누는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거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건사하도록 옮겨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을 쉬운 글로 담아 삶을 쉽게 지으면, 모든 사람이 날마다 아름답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엽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모처럼 한글을 생각한다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한결 깊거나 넓게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글날 하루만 반짝 스치듯이 지나가기보다는 한 해 내내 말과 글이 서로 맺고 얽는 흐름을 톺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는 밥을 먹습니다. 우리는 밥그릇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하고 도란도란 밥 한 그릇을 나눕니다. 다만, 밥그릇에 담은 밥을 나누지, 밥을 담는 그릇을 나누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한글날을 기린다고 할 적에는 ‘그릇’이 되는 글(한글)이 아니라 ‘알맹이(밥)’가 되는 말(한국말)을 제대로 기리면서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릇을 먹지 않고 밥을 먹어요. 우리는 껍데기를 먹지 않고 알맹이를 먹어요. 우리가 옷을 입는 까닭은 옷을 지키려는 뜻이 아니라, 옷이 감싸는 알맹이인 몸을 지키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우리 몸에 깃든 마음을 지킵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사람이요 숨결이라고 할 적에는, 몸뚱이만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몸뚱이에 깃든 넋이 저마다 다르면서 애틋하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한글날을 기려야 한다면, 그릇인 글 때문이 아니라, 그릇에 담는 말 때문입니다. 지난날 훈민정음을 처음 지었다고 할 적에 중국글과 중국말만 있었다면 훈민정음이 오늘날처럼 빛이 날 까닭이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게다가 처음 훈민정음이 태어나고 나서 오백 해 가까이 한글이 푸대접을 받은 발자국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훈민정음이 왜 푸대접을 받았을까요? 임금님이 새로운 우리 글자를 짓기는 했으나, 이 새로운 글자를 한겨레 모든 사람이 두루 배워서 쓰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임금님 둘레에 있는 몇몇 지식인과 권력자만 쓰도록 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에서 물을 만지거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여느 사람한테 훈민정음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훈민정음은 오직 양반과 사대부와 임금님 둘레 몇몇 사람만 배워서 아주 조금 쓰던 글입니다. 이런 ‘죽은 글’이 오백 해쯤 흐른 개화기 언저리가 되어, 비로소 여느 사람 손으로 넘어와 ‘산 말’로 깨어납니다.


  ‘훈민정음’에서 ‘한글’로 이름을 바꾼 까닭이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처음 이 글을 지은 분 뜻과 같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누리려고 썼습니다. ‘한글’이라는 새 이름을 지은 분은 이 글을 몇몇 사람만 홀로 차지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온누리 모든 사람이 즐겁게 배워서 아름답게 쓰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도 ‘글 권력(지식·학문·정치)’을 누리는 이들은 한자와 한자말을 즐겨씁니다. 오늘날 새로운 ‘글 권력’을 누리는 이들은 알파벳과 영어를 즐겨씁니다.


  우리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먹는 사람입니다. 옷을 아끼는 사람이 아닌 몸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몸에 깃든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한글은 한글대로 아끼되, 제대로 아끼고 사랑하며 보듬을 것은 ‘말’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태어나 살던 한겨레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나누던 ‘말’을 제대로 바라보고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을 노릇입니다. 말을 살릴 때에 넋이 살고, 넋이 살 때에 사랑이 살며, 사랑이 살 때에 사람이 삽니다.


  지난 오백 해 남짓 훈민정음을 쓴 분들은 무엇보다 ‘한국 지식인이 한자 소리를 하나로 모두어서 쓰도록 틀을 세우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내 삶을 스스로 가꾸면서 아름답게 새로 지어 날마다 즐겁게 사랑을 나누자는 뜻’으로 한글에 한국말을 담아서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쉬운 말’을 ‘쉬운 글’에 담을 때에 삶이 사랑스레 열립니다. ‘어려운 말’을 ‘어려운 글’에 담을 적에 삶이 차갑고 무섭게 닫히거나 갇힙니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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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바랄 수 있는 한 가지는 오직 하나라고 느낀다. 튼튼하게 자라서 씩씩하게 눈을 뜨고 사랑스레 손길을 뻗어 아름답게 삶을 가꾸기. 그런데, 아기가 걸음마를 떼고 말을 할 즈음, 어버이마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는 듯하다. 예전에는 이렇게 바뀐 일이 없었을 텐데,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더 빨리 더 많이 온갖 입시지식을 집어넣어서 더 거칠게 ‘비교 우위 경쟁’을 시키려 하지 싶다. 개구리 올챙이 적을 모른다는 옛말대로, 어른들은 아기를 낳을 적 마음을 모두 잊거나 잃었을까. 아이들이 열 살이건 열다섯 살이건 스무 살이건, 처음 아기가 우리한테 와서 태어날 무렵 마음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 아가야》 같은 그림책을 곁에 놓고서.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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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가야
알리키 브란덴베르크 글, 그림 | 김명숙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2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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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이 만든 사회에 아이들을 집어넣을 때와 어른들이 가꾼 터전에 아이들을 부를 때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즐겁게 부르는 ‘어른 스스로 아름다이 가꾼 터전’이 아니다. 매연과 공해와 폭력과 전쟁과 입시와 차별과 돈벌이와 자살 따위로 얼룩진 이런 사회는 ‘살기 좋도록 가꾼 터전’일 수 없다. 그러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른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쳐야 할까. 어른들이 할 일과 걸어갈 길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까. 동시집 《맛의 거리》를 읽는다. 이 동시집을 쓴 곽해룡 님은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군 뒤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마음인지 돌아본다. 어른들이 만든 바보스럽거나 우악스러운 사회에 아이들을 집어넣고서 ‘어쩔 수 없잖아?’ 하고 으쓱거리는 눈길일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앞으로 즐겁게 기운을 내어 아름답게 삶을 가꿀 수 있도록 이끄는 마음일는지, 가만히 돌아본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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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거리
곽해룡 지음, 이량덕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11,500원 → 10,350원(10%할인) / 마일리지 5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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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달리 읽을 책 (사진책도서관 2014.9.2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내가 도서관을 처음 열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책손이 되어 찾아온 분들이 ‘추천해 주기 바라는 책’을 여쭈면, 눈앞에 보이는 책부터 손수 끄집어 내어 읽으라고 말한다. 우리 도서관은 목록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추천하는 책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어떤 책도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읽은 책을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사진책이건 만화책이건 그림책이건 시집이건 어린이문학이건 인문책이건, 일찌감치 읽었든 오늘 다 읽었든, 우리가 저마다 다른 삶자리에서 다 다르게 누리면서 즐길 이야기란 무엇인가 짚는 ‘책느낌글’을 쓴다.


  모든 사람이 《태백산맥》이나 《토지》를 읽어야 하지 않는다. 《삼국지》나 《성경》을 모든 사람이 읽을 까닭이란 없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다. 왜냐하면,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우리한테 대수로울 한 가지는 ‘스스로 지어서 가꾸는 삶’이지 ‘더 읽어야 할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100권 읽으나 1권 읽으나 10만 권 읽으나 똑같다. 삶은 한 살을 살다가 죽거나 백 살을 살다가 죽으나 오백 살을 살다가 죽으나 똑같다. 다를 까닭이란 조금도 없다.


  책을 읽을 적에는 즐거운 숨결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읽어 아름다운 넋이 되었는가 아닌가를 살필 줄 알면 된다. 삶을 가꿀 적에는 즐거운 하루를 누려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꿈을 키웠는가 아닌가를 헤아릴 줄 알면 된다. 이밖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해야 즐겁지 않다. 아이들은 제기차기를 못해서 안 즐겁지 않다. 아이들은 연날리기를 반드시 해야 하지는 않다. 구슬치기를 해도 즐겁고, 돌멩이 하나를 만지작거려도 즐겁다. 손가락으로 꼬물거리며 놀아도 재미나며, 물방울을 튀겨도 신난다.


  명작이나 걸작이란 없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란 없다. 오직 책이 있을 뿐이요, 오직 이야기를 얻을 뿐이며, 오직 사랑을 받아서 나눌 뿐이다.


  다 달리 읽을 책이란, 다 달리 사랑하면서 가꿀 삶이라는 뜻이다. 다 달리 삶을 가꾸면서, 다 달리 길을 열 때에 아름답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처럼 입시지옥이 되어 모두 똑같이 바보가 되는 짓을 하면 할수록 ‘뒤에 숨은 독재정치’가 커진다. 오늘날 도시 문명 사회처럼 ‘사람들 스스로 돈 버는 기계’가 되고 말면, ‘뒤에 숨은 독재권력’이 늘어난다. 권정생 할배가 이녁 책이 ‘느낌표 추천도서’로 안 뽑히기를 바랐을 뿐 아니라, 아예 손사래까지 친 까닭을 사람들이 아직 제대로 못 읽는 듯하다.


  산들보라는 풀개구리 한 마리를 보며 좋다고 웃는다. 사름벼리는 길다란 걸상에 엎드려 만화순이가 된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 산들보라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여기 창문! 여기 창문 닫아!” 하고 외치면서 논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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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11. 2014.9.30.ㄴ 작은아이 작은책



  작은아이가 작은책을 손에 쥔다. 자그마하니까 작은책이다. 커다랗다면 큰책일 테지. 책순이는 첫째이니 ‘큰아이’이지만, 아직 몸이 작고 힘이 여리니 ‘작은아이’이기도 하다. 씩씩하게 뛰노는 아이요, 한껏 뛰놀다가 기운이 빠지면 책을 손에 쥐어 땀을 식히는 멋진 놀이순이 책순이로 지낸다. 즐거움을 생각하고 노래하자. 그러면 언제나 즐거우니까. 즐거움을 사랑하고 꿈꾸자. 그러면 즐거움이 우리 둘레로 팔랑팔랑 날아가면서 골고루 퍼질 테니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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