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돋는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후박나무 곁에 조그맣게 새싹이 돋는다. 새싹은 다른 가랑잎과 대면 아주 작다. 줄기도 작고 잎도 작다. 그러나 앞으로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며 다섯 해와 열 해가 흐르면, 우람한 나무 곁에서 제법 커다란 나무로 설 수 있겠지.


  나무가 맺은 씨앗은 나무로 자란다. 나무가 씩씩하게 자라면 숲이 우거진다. 숲이 우거지면 푸르면서 싱그럽게 바람이 불고, 이 바람은 우리를 모두 아름답게 살찌운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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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등교’ 책읽기



  요즈음 학교마다 ‘9시 등교’를 하느니 마느니 놓고 말이 떠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일이 없으니 아랑곳할 까닭이 없기는 한데, 참 대수롭지 않은 일로 정부와 교사와 어버이와 아이들 모두 헤매도록 하는 셈이로구나 싶다. 왜냐하면, 학교에는 9시에 가든 10시에 가든 8시에 가든 7시에 가든 아무렇지 않다. 학교에서 무엇을 하느냐를 살펴야 한다.


  9시에 맞추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할 적에, 8시가 아니라서 맞벌이 부부한테 힘들다면? 그러면 회사에서는 맞벌이 부부한테 맞추는 정책을 내놓아야지. 회사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맞벌이 부부를 헤아리는 정책을 나란히 꺼내거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8시가 아닌 9시에 하느니 마느니를 놓고 따질 까닭이 없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 8시보다 9시가 낫다면 이대로 가야 맞다. 왜 그러하겠는가? 학교는 아이들이 다니면서 삶을 배우는 곳이지, ‘학부모’가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회사를 가기 빠듯하거나 때가 잘 안 맞는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알맞으면서 회사에 가기에도 좋은 데로 옮겨야겠지. 아니면, 어버이 스스로 회사에 ‘복지 정책’을 따지거나 바라야 한다.


  도시에서는 ‘9시 등교’를 놓고 따지는데, 시골에서는 아무도 이런 시간을 안 따진다. 시골에서는 웬만한 읍내와 면내 중·고등학교에 기숙사가 있다. 섬이나 두멧자락에서 아침에 맞추어 학교에 올 수 없으니, 아예 기숙사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그나저나, 9시 등교를 하든 8시 등교를 하든,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모두 ‘대학바라기 입시지옥’ 얼거리가 그대로라면,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틀은 하나도 안 바뀌는 셈이다. 등교를 따지기 앞서 입시지옥부터 없앨 노릇이다. 입시지옥이 없어지면, 아이들은 새벽 6시에도 신이 나서 혼자서 씩씩하게 학교에 갈 테니까.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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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63. 사진으로 읽는 문학



  문학을 가만히 그립니다.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로 엮어 말로 담을 때에 문학이라고 합니다.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로 엮어 그림으로 그리면 그림(또는 미술)이 되고,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로 엮어 사진으로 보여주면 사진이 됩니다.


  문학은 문학이면서 예술입니다. 그림은 그림이면서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진이면서 예술입니다. 그리고, 예술이 되는 문학이나 그림이나 사진은 언제나 삶입니다. 생각과 느낌은 삶에서 피어나거든요. 삶에서 이야기가 샘솟거든요. 우리가 나누는 말은 언제나 삶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사진읽기를 하는 이들 가운데 ‘사진비평’을 한다고 하면서, 생각과 느낌을 읽기보다는 이론과 사조를 살피면서 이런 이론과 사조로 사진을 재거나 따지는 일이 잦습니다. 문학읽기에서도 이와 엇비슷합니다. ‘문학비평’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생각과 느낌을 읽지 않고 이론과 사조에 따라 문학을 재거나 따지는 일이 잦아요.


  이론과 사조로 사진을 재거나 따지는 일은 ‘비평’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비평이란 이론과 사조로 사진을 갈기갈기 찢는 일일는지 모릅니다. 문학비평이 이제껏 했듯이 말이지요.


  사람들은 문학비평 때문에 문학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문학에서 생각과 느낌을 읽고 이야기를 누리려고 합니다. 사진은 어떠한가요? 사진을 읽으면서 이론과 사조를 알아야 할까요? 사진을 읽을 적에 은유와 비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까요? 소재는 무엇이고 주제는 무엇이다, 하고 시험문제에서 다루듯이 사진이나 문학이나 그림을 재거나 따져야 할까요?


  오늘날 사진비평은 문학비평처럼 자꾸 엇나갑니다. 여느 사람들이 아무도 안 쓰는 딱딱하고 어려운 일본 한자말과 서양말을 뒤섞어서 울타리를 쌓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은 논문을 쓰거나 예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읽은 뒤에 ‘사진이야기’를 쓴다고 한다면, 사진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즐거웠고 사진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자랐으며 사진을 읽고 나서 내 삶을 스스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기쁨을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사진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나 ‘어느 사진가 한 사람이 꾀한 표현기법’을 따지는 일은 ‘사진이야기’도 ‘사진비평’도 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문학을 읽습니다. 문학으로 사진을 읽습니다. 비평이라는 틀이나 잣대가 아닌, 내 삶과 네 이야기라는 즐거움으로 사진을 문학으로 읽고 문학을 사진으로 읽습니다. 사진 한 장에 깃든 숨결을 읽으면서 우리가 누리는 삶을 읽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는 손길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꾸면서 사랑할 삶을 읽습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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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62. 너랑 내가 좋아서



  길을 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사진기를 들이미는 사람이 더러 있을 테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굳이 아무한테나 사진기를 들이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끌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는데 이 사람도 찍고 저 사람도 찍는다 한들, 이렇게 찍어서 ‘건질 사진’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길을 가는 누구나 사진에 찍힐 수 있습니다. 누구나 모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모델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골라서 사진을 찍는 일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 사람을 찍을 만하고, 이튿날은 저 사람을 찍을 만하며, 그 다음날에는 그 사람을 찍을 만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찍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길에서 만난 연예인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냥을 하는 아저씨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시에서 아주 수수하다 보이는 사람한테 눈길이 사로잡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할머니한테 눈길이 사로잡히고, 어떤 사람은 어린이한테 눈길이 사로잡힙니다.


  사진을 찍는 길은 한 갈래가 아니니, 이렇게도 찍을 만하고 저렇게도 찍을 만합니다. 사람을 찍을 적에 사람을 보면서 찍을 수 있을 테고, 사람을 찍지만 그림이 될 만하다 싶은 모습을 찾아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어떻게 찍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찍든 ‘내가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내 이야기’가 없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못 붙입니다.


  서울사람은 부산에도 가고 광주에도 갈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가고 중국에도 갈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 가고 싶은 대로 갈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간다고 할 적에는 ‘나 스스로 누리고 싶은 바깥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여행입니다. ‘내가 사는 터전’에서 멀리 벗어난대서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삶을 짓거나 누릴 때에 비로소 여행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살며 그저 서울에서 맴돌더라도, 날마다 내 나름대로 즐겁게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삶을 짓거나 누리는 사람은 ‘내 집이나 내 동네에서 천천히 돌아다녀’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이나 아이슬란드까지 가지 않아도 ‘여행’이요, 배를 타고 여러 날 바다를 가르더라도 ‘여행이 아닐’ 수 있어요.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이루는 노래입니다.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일구는 꿈입니다. 이야기는 너랑 내가 좋아서 새롭게 짓는 사랑입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 찍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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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00. 나는 날 테야 (2014.10.3.)



  시골순이인 누나가 앞서 달리면서 폴짝폴짝 훨훨 난다. 시골돌이인 동생은 뒤따르면서 “날아야지! 날아야지!” 노래한다. 가벼운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르는 새처럼 두 팔을 쪽 펴고 휘휘 가을바람을 시원하게 타고 오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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