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75] 벼슬아치



  나는 어릴 적에 ‘벼슬아치’와 ‘벼슬’이라는 낱말을 둘레에서 익히 들었습니다. 내 둘레 어른들은 으레 ‘벼슬아치’와 ‘벼슬’을 말했어요. 요즈음 이 낱말은 거의 못 듣습니다. 아마 ‘벼슬아치’와 ‘벼슬’ 같은 낱말을 떠올리면서 이야기할 만한 어른이 거의 돌아가셨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면 요즈음 듣는 낱말은 무엇인가 하면 ‘공무원(公務員)’과 ‘공직(公職)’입니다. 요즈음 어른들은 어른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으레 ‘공무원’이나 ‘공직’을 말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둘레 어른들이 흔히 읊는 낱말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테지요. 그러니까,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듣고 배우며 받아들이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른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알맞게 말을 한다면, 아이들은 저절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알맞다 싶은 말을 익힙니다. 어른들이 거칠거나 우악스럽거나 어리석게 말을 한다면, 아이들도 저절로 거칠거나 우악스럽거나 어리석다 싶은 말을 익혀요.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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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10 - Vol.11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93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 사진잡지 《포토닷》 11호

 포토닷 펴냄, 2014.10.1.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 작가상’을 노순택 님한테 주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아직 ‘국립사진관’이나 ‘국립사진전시관’이 없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사진전시도 하고, 이렇게 사진가한테 주는 상도 ‘미술관’에서 줍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11호에서는 이 이야기를 “성실한 사진가 노순택이 이 ‘실성’한 시대에, ‘넝마주이’처럼 수집한 수상한 장면들이 국가기관이 수여하는 최고의 미술상을 차지하게 된 최근의 ‘사건’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48쪽/최연하).”와 같은 말로 차분히 다룹니다.


  노순택 님이 ‘올해를 밝힌 작가’로 꼽힐 수 있는 까닭이라면 아무래도 ‘등돌리지 않는 눈길’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그곳 이야기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담으려고 했던 몸짓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늘 그곳에 있어야 그곳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곳에 있지 않다면 그곳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늘 그곳에 있어야, 그곳 이야기를 가슴으로 담아서 글로 적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꾼이든 글꾼이든 그림꾼이든 모두 ‘오늘 바로 그곳’에서 함께 살면서 숨을 쉬어야 비로소 ‘내 이야기를 새롭게 빚어’서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포토닷》 11호에서 다루는 외국 사진가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레나 에펜디라고 하는 분은 “종종 바로 촬영을 시작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대개는 카메라를 꺼내기 이전에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얻은 신뢰와 친밀감은 카메라 앞에서의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내가 그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그들을 어떠한 잣대로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관찰자로서만 존재한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마음을 연다(68쪽/레나 에펜디).” 하고 밝힙니다.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이 서로 이웃이 될 때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이웃이 될 뿐 아니라, 동무가 되고, ‘같은 지구사람’이 될 때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든 ‘남’을 찍지 못합니다. ‘남’을 찍는 사진이라면 겉훑는 모습을 담을 뿐입니다. 남이 아닌 나를 찍어야 할 사진이고, 남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아니라 나를 이야기하는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남을 찍거나 남을 글로 보여준다고 해 보았자 ‘남’이 어떤 삶이거나 마음인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이라고 하는 사람은 바로 ‘남’ 스스로 보여주어야 제대로 드러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를 찍은 사진인지 남을 찍은 사진인지, 사진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찍은 사진인지 동무를 찍은 사진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사진에 사랑이 깃들었는가 안 깃들었는가 하는 대목이 드러나니까, 누구를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찍으려 했는지 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진에서 가장 이중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진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사진가는 상처받고 끔찍한 상황을 담아내 아이콘이 되는 이미지, 예술을 창조하지만,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그 결과를 찬양하고, 사진가들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비극은 실재하고 사람들은 짐작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데, 우리들은 미적 감각을 지닌 예술가의 시선으로 이를 미화하고 특별하게 보이게 만든다(71∼72쪽/레나 에펜디).”와 같은 이야기는 무엇을 밝힐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다 하더라도, 우리는 ‘작가’가 아닙니다. 참말 우리는 ‘이웃’이나 ‘동무’입니다. 때로는 ‘한집 사람’입니다. ‘한식구’예요.


  예술이 되도록 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문화가 되도록 하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이 즐겁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노래하려고 찍는 사진이요, 동무와 노래하는 기쁜 삶을 가꾸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무엇일까요.


  “어려서 제일 싫어했던 작가 중 한 명이 다이안 아버스였다. 무표정하고 우울한 사진이 증명사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외롭고 불확실했던 미국 유학 시절에 뉴욕의 한 서점에서 아버스의 사진집을 다시 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사진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걸 깨우치면서 ‘내가 사진을 잘못 배웠구나, 내 인생을 걸고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87쪽/변순철).”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을 잘못 배웠다면, 학교에서 잘못 가르쳤을까요, 배우는 사람이 잘못 받아들였을까요.


  무엇을 이야깃감으로 삼든, 사진 한 장 찍을 적에는 온삶을 들일 노릇입니다. 글 한 줄을 쓸 적에도 온넋을 바칠 노릇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지어서 함께 먹을 적에도 온힘을 쏟을 노릇입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미래가 막막했을 때 사진관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시작했는데 일부러 아버지에게서 배우지 않았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아버지가 못 미더웠다. 그런데 대학에 와 보니 아버지가 했던 것을 학교에서 가르쳤다(103쪽/안주영).”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집에서 아버지한테서 배울 수 있던 사진을 굳이 대학교에 가서 배웠다고 합니다. 집에서 배우는 사진과 대학교에서 배우는 사진은 무엇이 다를까요. 졸업장이나 경력이 없는 작가와 졸업장이나 경력이 있는 작가는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사진’을 읽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작가 이름’을 읽는 사람인가요. ‘다이안 아버스’이니 놀랄 만한 사진이고, ‘이름 안 난 작가’이니 안 놀랄 만한 사진인가요.


  “열심히 촬영하고 돌아와 컴퓨터로 사진을 고른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진이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니 전부 애정이 가고 대상들도 다 예뻐서 그 사진이 그 사진 같다(125쪽/김주원).”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기에 이 사진이 모두 예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들여서 찍은 사진일 때라야 비로소 예쁩니다. 온힘을 기울여서 찍은 사진이라면 100장을 찍었을 때에 100장 모두 즐거우면서 반갑습니다. 온힘을 기울이지 못한 사진이라면 1장이나 10장만 찍었어도 영 못 미덥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은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안승일 님은 백두산 곁에서 하얀 숨결을 마시면서 하얀 사진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요? 우리들은,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빛깔이 되어 어떠한 마음을 어떠한 사랑으로 담아서 보여주는가요? 사진기를 손에 쥔 오늘날 우리들은 저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사진길을 걷고, 사진책을 내거나 읽으며, 사진 하나로 생각을 주고받는가요(133쪽/최종규)?”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진은 늘 마음으로 찍습니다. 내 마음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은 늘 삶으로 찍습니다. 내 삶이 어떤 길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사진이 거듭납니다.


  장비로 찍는 사진이 아닌, 마음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손놀림이나 기계질로 찍는 사진이 아닌, 삶으로 찍는 사진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작가와 비평가는 사진을 얼마나 어떻게 읽을까 궁금합니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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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러미 선물



  오늘 아침과 낮에 도서관에 가서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해야 했기에, 새벽 일찍 밥을 끓였고, 아침 일곱 시 즈음부터 배고프다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여덟 시 살짝 넘어서 밥상을 차려서 먹인다. 이러구러 집일을 마치고 나서 아침 열 시 반 즈음 도서관으로 나와 책걸상을 맞추면서 자리를 잡는다. 비가 샌 곳은 걸레질을 해서 바닥을 훔친다. ‘이야기 나누는 일’은 세 시 즈음에 마친다. 손님을 모두 떠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손님들이 ‘아이들 주라’면서 빵을 두 꾸러미 선물로 주셨다. 집에 닿아 빵꾸러미를 펼치니 두 아이가 달라붙는다. 작은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빵을 한 조각이라도 더 먹겠다면서 낮잠을 버틴다. 그리고, 낮잠 버티기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아침 열한 시부터 낮 세 시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몸이 좀 고단했을까. 등허리가 결려 자리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려는데 쉬 펴기 어렵다. 빵꾸러미 선물이 아니었으면 오늘 샛밥을 어째 먹였을까 싶다. 다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 손님이었으니 이런 선물을 챙겨 주셨구나 싶기도 하고, 나도 아이들 옆에서 몇 조각 집어먹으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저녁 여덟 시 이십 분이 되어 겨우 두 아이를 자리에 눕힌다. 작은아이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도 거의 곯아떨어지려 하는데 쉬 잠들려 하지 않다가, 자장노래를 두 가락 뽑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니 느긋하게 꿈나라로 간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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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산초등학교 어머님



  오늘(2014.10.13.) 아침 열한 시에 ‘순천 송산초등학교 어머님’ 여덟 분이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셨다. 두 시간 남짓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면소재지 밥집으로 옮겨 조금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송산초등학교’ 이름은 낯설지 않았는데,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앞서 ‘학교 발자취’를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어머님하고 나눌 이야기만 생각했다. 오늘날 학교는 아이들한테 입시교육만 시키는데, 이런 입시교육에서 어버이 스스로 벗어나서 아이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가꾸거나 짓는 즐거운 삶’을 몸으로 보여주고 알려줄 때에 제대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국말이 걸어온 길’과 엮어서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오늘 나눈 이야기는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나 ‘우리 말글 모임’에서는 도무지 나누지 못한 이야기였다. 학자나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연구자나 운동가는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지식’에 얽매인 탓에 스스로 생각을 열지 못한다. 몇 가지 낱말을 옛책에서 자료를 뒤져 ‘말뿌리(어원)’ 캐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늘 쓰는 가장 쉽고 너른 낱말은 어떤 낱말조차 말뿌리를 알지 못한다. ‘하늘’ 말뿌리가 무엇인지, ‘사람’ 말뿌리가 무엇인지, ‘쑥’이나 ‘마늘’ 말뿌리가 무엇인지 알거나 밝힐 수 있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아무도 없다.


  송산초등학교 어머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문득 떠올라서 송산초등학교라는 곳을 길그림으로 살피고 학교 누리집에도 들어가 본다. 이러면서, 이곳 송산초등학교가 한때 분교로 바뀌었고 전교생이 열한 아이까지 줄었으나, 이제 학생이 백스물로 늘었으며, 분교에서 본교로 다시 바뀐 ‘거의 처음’이라 할 놀라운 곳인 줄 알아낸다. 아니, 우리 집을 고흥으로 옮길 무렵 이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고흥으로 옮길 무렵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쁜 곳이 가까이 있구나 하고 느낀 그곳 어머님들을 오늘 만난 셈이니, 여러모로 즐거웠고 놀라웠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기사 1 http://news.donga.com/3/all/20101028/32173318/1


기사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94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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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4-10-13 21:3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만화책은
찬찬히 고르거나 살피시기 힘들리라 생각해서
제가 즐겁게 읽은 작품 가운데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이는 분이 빚은
단편만화를 골라 보았어요.

이분은 <아기와 나>로 한국에 이름을 알렸고,
요즈음은 <순백의 소리>라는 대단한 작품을 연재한답니다~
 
기차 할머니 저학년 책내음문고
파울 마르 지음, 유혜자 옮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 책내음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69


 

우리 곁 슬기로운 이웃

― 기차 할머니

 파울 마르 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펴냄, 2000.3.15.



  파울 마르 님이 글을 쓰고, 프란츠 비트캄프 님이 그림을 넣은 《기차 할머니》(중앙출판사,2000)는 2013년에 새로운 출판사(책내음)를 만나서 다시 나옵니다. 널리 사랑받는 어린이책이니, 이렇게 꾸준히 나올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문학 《기차 할머니》는 어린이가 혼자 기차로 나들이를 떠나는 길에 만난 할머니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기차 나들이를 떠나는 어린이는 ‘젊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가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젊은 사람하고는 함께 앉지 못합니다. 자리가 없네요. 아이가 앉을 만한 빈자리는 할머니 옆입니다.


  아이는 ‘늙은 사람’ 옆에 앉아야 하니,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 달리는 길이 따분하거나 싫으리라 지레 생각합니다.


  아마, 따분하거나 싫을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늙기에 따분할 만할까요? 나이가 젊지만 생각이 굳거나 닫히거나 막힌 사람일 때에 따분하거나 괴롭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볼 모습이란 ‘나이’라는 숫자가 아닌, 삶을 사랑하거나 가꾸거나 아끼는 ‘숨결’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럼 가까운 곳으로 함께 갔다 와요.” 울리가 조르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아니, 그것도 안 돼!” “그렇지만 난 어디든 가고 싶어요.” “그럼 너 혼자 가렴.” 엄마가 말했어요. “좋아요. 그럼 나 혼자 갈게요.” ..  (14쪽)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롭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알아채거나 느끼지 않으니, 아름다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고 하는 만큼, 사랑과 꿈을 키우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터라, 사랑도 꿈도 모두 동떨어진 채 살아요.


  다만, 그뿐입니다. 슬기롭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고, 어리석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로울 뿐이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꿈으로 나아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을 뿐이기에 어리석은 길에서 헤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길로 접어들 때에 활짝 웃을 만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기쁘게 노래하거나 춤을 출 만할까요.



.. “차표를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이런저런 경험이 많지. 차표를 잃어버린 적이 나도 백 번은 넘을 거야. 그렇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까 물건을 찾는 방법도 알게 되더구나.” ..  (49쪽)



  어린이책 《기차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는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아이를 맞이합니다. 차표를 어디엔가 잃은 아이를 찬찬히 달래면서 어디에서 잃었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하고 함께 생각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차표를 찾도록 도운 다음에는, 아이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슬기로운 마음을 밝힐까요? 할머니는 어릴 적에 이녁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슬기로운 넋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기차 나들이를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아이는 이날 처음으로 깨달은 ‘늙은 사람 슬기와 재미와 웃음’을 마음으로 깊이 담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겠지요.


  아이는 언제까지나 아이로 살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젊은이도 되고 늙은이도 됩니다. 아이는 천천히 깨닫습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하면, 어린이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사람’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에는 할머니가 얼마나 슬기로울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할머니는 한국이건 일본이건 유럽이건 모두 텔레비전에 얽매일 텐데,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할머니는 얼마나 슬기로울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어린이는 맑은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젊은이는 푸른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여느 어른이나 할매나 할배는 어떠할까요? 이들은 슬기로운 넋이 될 수 있을까요?



.. “그래? 그럼, 내가 나이를 제대로 봤구나. 너도 안드레아스처럼 옛날이야기 듣는 것 좋아하니?” 할머니가 물었어요. “어떤 이야기인데요?” 울리가 물었어요. “안드레아스는 내가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면 제일 좋아하지.” …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이 없었거든. 그래서 심심하니까 형제들끼리 하는 놀이를 많이 했지.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도 쳤고.” ..  (52, 75쪽)



  우리 곁에 슬기로운 이웃이 있습니다. 전화기를 끄고 옆을 둘러보아요. 우리 둘레에 아름다운 이웃이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끄고 둘레를 살펴보아요. 우리 가까이에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두리번두리번 헤아려요.


  할머니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풀 한 포기와 새 한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도 모두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을 이루는 따사로운 이웃은 저마다 슬기로우면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스스로 슬기로운 이웃이 되어 내 곁에 있는 사람들한테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활짝 웃고 노래해요. 기쁘게 춤추면서 어깨동무를 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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