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의 계단 1
무츠 도시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05



내 마음도 네 마음도 하늘

― 천국으로의 계단 1

 무츠 토시유키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3.7.25.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로 마실을 나옵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면소재지 초등학교로 돌려서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두 아이는 아주 좋아합니다. 놀이터에 가는구나, 하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닿은 두 아이는 맨발이 됩니다. 이 가을에 맨발로 운동장을 휘젓습니다. 이 놀이기구를 타고, 저 놀이기구에 매달립니다. 누나가 앞장서서 달리며 동생을 이끌고, 동생은 누나와 함께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를 합니다.


  포근하게 햇볕이 내리쬡니다. 바람이 싱그럽게 붑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살랑살랑 흔들리고, 풀내음과 꽃내음이 상큼하게 퍼집니다.



- ‘이, 이건 말도 안 돼! 느닷없이 이런 일이 어딨어? 내 인생은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잖아. 앞으로도 더욱더 즐거운 일들이 많이 있는데! 죽기 싫어. 장난하지 말란 말야!’ (10쪽)

- “너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자신이란? 타인이란? 인간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17쪽)

- “너 자신을 믿어 봐.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사는 거야. 너, 너는 그렇게 나쁜 인간이 아니야.” (29쪽)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작은 꽃송이를 알아봅니다. 조그마한 꽃이 노랗게 폈다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이 꽃한테는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들꽃 이름 한 가지를 듣습니다. 다만, 이 들꽃 이름을 이제까지 꽤 자주 들려주었지 싶어요. 아이는 꽃이름을 머릿속에 잘 담아 노래하듯이 읊을 때가 있지만, 그만 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 둘레에서 뜯어서 먹는 풀을 놓고도, 이름을 잘 떠올리는 날이 있지만 이름을 영 모르는 날이 있어요. 한두 번, 또는 열 번이나 스무 번, 또는 백 번이나 이백 번 듣는다고 해서 잘 알 수 있지는 않구나 싶습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까닭이라면, 이 똑같은 일이 재미있거나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이 똑같은 일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삭히지 못할 적에는 알지 못합니다. 아는 듯할 적에는 알지 못합니다. 알 때에 압니다.


  맨발로 노는 즐거움을 아니 맨발로 놉니다. 작은 풀꽃이 곱다고 느끼니 어느 곳에 가든 작은 풀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새 몸에 배거나 익었기 때문에 달갑잖은 몸짓이 톡 튀어나옵니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지만 별빛이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지 않으니 별숨을 마시지 못합니다.



- ‘이 재수없는 아저씨가 그 코이치 씨란 말이지. 내 아름다운 추억의 만화를 만들어 준 에니메이터였을 줄이야.’ (47쪽)

- “지로가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딱 소리를 내면!” (59쪽)





  무츠 토시유키 님이 빚은 만화책 《천국으로의 계단》(학산문화사,200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는 아직 스물이 안 됩니다. 따로 학교를 다니지 않으며, 아버지한테서 절집을 물려받아 스님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절집 일에는 마음을 안 쏟습니다. 바깥에서 노닥거리는 데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그만 저도 모르게 목숨을 잃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하늘나라에 간 주인공 아이는 어리둥절합니다.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처음 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한 적 없고, 죽은 뒤 어찌 되는가를 헤아린 적 없습니다. 막상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니 비로소 두려움과 무서움이 겹칩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 “뭐가, 뭐가 운명이야! 그런 게 운명이라면, 여기서 내려다보는 당신들 눈엔 우리가 얼마나 하찮게 보이겠어! 인간을 만들어 놓구선! 책임도 안 지고!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더 쓰레기야! 사람 마음의 아픔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쓰레기들이라고! 수명이라면 얼마든지 내 수명을 줄 수 있어!” (84쪽)

- “인간의 눈물에는, 그것 말고도 ‘무언가’가 더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소.“ (91쪽)





  죽고 나서야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 넋은 어떻게 될까요. 죽지 않고 아직 씩씩하게 살 적에 삶을 생각할 수 있으면 우리 넋은 어떻게 흐를까요.


  사는 동안 삶을 즐겁게 돌아보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삶을 아끼고 돌보면서 하루하루 씩씩하게 살림을 보듬는 길은 누가 찾을 수 있을까요.


  하루가 흘러 밤이 되다가는 다시 아침이 됩니다. 아침에 동이 튼 뒤 밝고 따스한 낮이 됩니다. 차츰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고 별이 돋는 밤이 됩니다. 하루는 언제나 흐릅니다. 삶은 언제나 흐릅니다. 내 삶은 한 자리에 고이지 않습니다. 늘 흐르면서 달라지고, 언제나 흐르면서 새 모습이 됩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은 바로 나요, 즐거움을 모르는 채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기쁘게 웃는 사람은 바로 나요, 기쁨을 모르는 채 눈물조차 없이 메마른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 “회사는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어! 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아! 아버지도, 아마 그걸 바라고 계실 거야!” (157쪽)

- “저런 악마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인간이란 참 바보 같단 생각을 하곤 해. 하찮은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고, 돈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어.” (191쪽)





  내 마음이 하늘인 줄 안다면, 네 마음이 하늘인 줄 압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 줄 안다면, 네 마음이 사랑인 줄 압니다. 내 마음이 하늘인 줄 모르기에, 네 마음이 하늘인 줄 모릅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 줄 모르니, 네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 “초능력 따위 빌리지 않겠어! 엄마는, 내가 내 힘으로 구할 거야!” (200쪽)

- ‘마음속까지 벚꽃이 피었다.’ (109쪽)



  만화책 《천국으로의 계단》은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길은 바로 이곳에 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나 스스로 찾는 삶이 나 스스로 가꾸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사랑할 하루가 나 스스로 누리는 하루입니다.


  새벽에 큰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쉬가 마렵답니다. 쉬를 누이고 들어가는 길에 미역을 끊어서 불립니다. 동이 트고 멧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노래를 부르면, 천천히 일어나 새롭게 미역국을 끓여야지요. 국물이 잘 우러나도록 끓이는 미역국은 우리 집 네 사람이 모두 맛나게 먹으면서 몸에 새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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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놀이 8 - 그리고 오려서



  빛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가위를 집어 빛종이를 오린다. 한참 종이인형으로 놀다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놀이를 한다. 빙긋빙긋 웃는 종이인형이 마룻바닥에서 나를 보고 웃는다. 나도 종이인형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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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참깨꽃



  마을 어귀 빨래터 옆에 참깨꽃이 핀다. 이곳은 마을 할매와 할배가 자주 오가는 자리인데, 참깨풀이 용케 꽃까지 피운다. 모른 척하셨을까, 아니면 알 면서 꽃까지 보려고 그대로 두셨을까. 늦가을에도 시멘트 쪼개진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줄기와 잎까지 퍼뜨린 뒤 꽃을 활짝 피운 참깨풀이 대단하다. 기운도 좋고, 냄새도 좋으며, 꽃송이 빛깔도 좋다. 아이들과 함께 늦가을꽃을 가만히 바라본다. 우리 마을 어귀 늦가을 참깨꽃은 나중에 씨앗까지 맺을 수 있을까? 부디 씨앗까지 맺기를 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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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72] 숨결



  손길이 닿는 곳에서

  싹이 트고 뿌리가 내려

  푸른 숨결 흐른다.



  내 목숨이 되는 숨결입니다. 내 목숨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내 목숨을 밝히는 숨결이면서, 내 목숨을 가꾸는 숨결입니다. 내 손길이 닿으면서 새롭게 자랍니다. 네 손길이 닿으면서 기쁘게 큽니다. 우리 손길이 닿으면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무엇이든 자라게 합니다. 언제나 무럭무럭 키웁니다. 그러니,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바로 이곳에서 푸른 숨결이 흐르도록 온힘을 쏟습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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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삼천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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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7



전쟁은 오직 ‘폭력·학살·강간’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글

 손지연 옮김

 삼천리 펴냄, 2014.9.19.



  기다립니다. 반가운 벗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기로 한 뒤, 어느 날 어느 곳에 가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먼산바라기를 하고, 책을 뒤적이다가, 공책을 꺼내 글을 살짝 씁니다.


  반가운 벗이 오랫동안 안 온다면, 혼자 하늘바라기를 더 할 수 있습니다. 반가운 벗이 때를 맞추어서 온다면, 하늘바라기는 그칩니다. 이제부터 서로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기다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으로 어느 한 가지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보는 일일까요?


  기다립니다. 곰곰이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찬찬히 바라보면서 기다립니다. 봄에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겨울에 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저기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쟁을 일으킨 이들이 제대로 뉘우치고 참답게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 “어째서 일본 정부는 그토록 전쟁을 좋아하는 걸까요? 이번에도 와 보니 해외에 군대를 파견한다고 하더군요. 난 군인을 보는 것만으로 온몸이 떨려요(김학순).” … “야자나무와 암페라가 쌓여 있고, 강물이 흐르는 곳에 위안소가 자리잡고 있었어요. 정말 비참했죠. 그곳 부대원들은 말이 해병이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굶주려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병사들은 여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 들었어요. 그런 해골이 덮친다고 생각해 보세요(시로타).” …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평화로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시키는 겁니다. 눈을 감고 푹 찌릅니다. 빠지지 않으면 힘껏 잡아 뺍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짓을 반복하는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 부대에 새로 신병이 들어오면 이들이 선임이 되어 두들겨 패고 마귀로 변모시키는 노력을 하게 되죠(데쓰무라 고).” ..  (21, 31∼32, 82∼83쪽)



  전쟁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저, 전쟁은 ‘폭력’입니다. 전쟁무기는 ‘폭력무기’입니다.


  사람들은 잘못 알기 일쑤인데,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오직 전쟁에 씁니다. 평화를 지키는 자리에서는 전쟁무기가 덧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어요. 내가 너한테 총을 내밀어 보셔요. 총을 내밀기에 너와 나 사이가 평화로운가요? 내가 네 앞에서 날카로운 칼을 흔들어 볼까요. 칼을 휘휘 휘두르면 너는 평화롭다고 여길까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남녘과 북녘이 전쟁무기를 놓고 다툽니다. 전쟁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고 떠벌입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떠벌입니다. 전쟁무기가 없으면 남녘이 북녘으로 쳐들어온다고 저쪽에서 떠벌이고, 전쟁무기가 없으면 북녘이 남녘으로 쳐들어온다고 이쪽에서 떠벌입니다. 서로서로 떠벌입니다.


  그러면, 전쟁무기가 그득그득 많은 오늘날, 누가 누구를 괴롭힐까요?


  어느 누구도 누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남녘과 북녘 모두 정치권력자가 ‘여느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괴롭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연모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정치권력자가 사람들을 짓밟거나 괴롭히는 연모입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워 온갖 엉터리 정책을 일삼습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워 사람들 목소리를 짓눌러요. 전쟁무기가 없어도 군사쿠테타가 일어났을까요. 전쟁무기가 없어도 군국주의나 제국주의나 식민지가 생겼을까요.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전쟁무기를 하루 빨리 없애야 합니다. 총과 칼을 녹여야 합니다. 총알과 미사일을 뜯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만드는 과학자를 쫓아내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을 닫아야 합니다.



.. 이 비디오를 보고 문득 우리 반 남자애들에게 불신감이 들었어. 이 애들도 어른이 되면 돈으로 성을 사고 강간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 점차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이른바 ‘3광 작전’이라는 방화, 살인, 약탈이 포함된 작전을 명령했다. 여기에 무자비한 인체 실험과 세균전까지 계획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재앙’ 그 자체였다 … “일본군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인의와 자애의 마음을 저버린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행동은 머지않아 일본 국내 각 개인의 성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암묵적으로 강도를 좋은 것이라 가르치는 것과 같다나가이 가후).” ..  (38, 96, 97쪽)



  전쟁은 ‘학살’입니다. 학살은 한국에서 수없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1980년에도 전라도 광주에서 학살이 있었고, 요 몇 해 앞서는 서울 용산에서 학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경상도 밀양에서도 ‘학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경상도 밀양에 있던 전경과 경찰은 총을 쏘지 않았으나, ‘입으로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주먹질과 발길질로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시골사람은 손에 무엇을 쥐었을까요? 송전탑을 시골에 박지 말라면서 외친 할매와 할배는 두 손에 흙을 쥐고 나락을 쥐었습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오직 사랑과 평화를 두 손에 쥔 채 전경하고 경찰한테 맞섰습니다. 전경과 경찰은 두 손에 무엇을 쥐었을까요? 전쟁과 권력입니다. 여기에 학살입니다. 전쟁과 권력이 만나니 학살이 태어납니다.


  전쟁무기가 윽박지르니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사람들은 죽고 싶지 않아 징용으로 끌려가고 징병으로 끌려갑니다. 게다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는 이 나라 가시내를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고 가서 ‘성노예’로 괴롭혔습니다. 전쟁은 폭력이면서 학살입니다.



.. 다다미 두 장, 그곳은 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매서운 추위에, 듣도 보도 못한 이국땅에서 365일 그곳에 갇혀 밤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소녀들.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강제한 것은 다름아닌 천황의 군대였다 … 황금주 씨의 경우, 일본군에게 강간죄, 상해죄, 감금죄, 인신매매죄 등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1910년 파리에서 체결된 〈매춘업을 위한 부녀매음 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은 본인이 원하더라도 미성년자에게 매춘 행위를 시키는 것을 금하며, 매춘을 위한 목적으로 강제로 성인 여성을 유괴한 자는 처벌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 어째서 병사들은 이토록 성욕에 굶주려 있으며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걸까 … 대일본제국은 종이 한 장으로 일본인 남성들을 사지로 내몰았으며 혐오스러운 ‘동양의 마귀’가 되기를 독려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성을 관리하기 위하여 ‘위안소’를 만들었던 것이다 ..  (67, 78∼79, 81쪽)



  전쟁은 ‘강간’입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쥔 이들은 거의 모두 사내입니다. 정치권력을 손에 쥐고 전쟁을 일으키는 이도 거의 모두 사내입니다. 사내는 전쟁무기를 앞세워 가시내를 짓밟습니다. 사랑도 평화도 모르는 사내들은 가장 바보스러우면서 어리석은 길로 갑니다. 왜냐하면, 손에 총과 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총칼을 들이밀면서 옷을 벗깁니다. 아니, 손찌검과 발길질로 옷을 찢습니다.


  이런 자리에는 아무런 사랑이 없습니다. 사내와 가시내가 만나 살을 섞을 때에는 오직 사랑과 평화가 감돌아 아름다운 씨앗을 빚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낳아야 아기가 태어납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학살 어린 핏빛으로 짓밟는 자리에는 오직 ‘강간’만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끔찍한 폭력과 학살과 강간을 일삼다가 원자폭탄 두 방을 맞습니다. 아무리 저지레와 잘못을 일삼았어도 이들이 원자폭탄을 맞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피해자 의식’을 내세웁니다. ‘피해자 의식’을 내세워 일본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내세우면서 저지른 모든 저지레와 잘못을 슬그머니 덮거나 감추려 합니다. 일본사람 나스 마사모토·니시무라 시게오 두 사람이 빚은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사계절 번역,2004) 같은 그림책이 바로 이 같은 얼거리로 태어났습니다. 이 그림책은 ‘피해자 의식’으로 가득 찬 모습이 아주 짙고 넓게 나타납니다.


  그래요. 일본도 원자폭탄을 맞아서 아픕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일본으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해야 했던’ 식민지 조선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아서 죽은 식민지 조선사람’한테 한 푼조차 배상을 하지 않았으며 ‘원자폭탄 피해 조선사람’을 치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천황의 적자’인 일본의 아이들은 ‘총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기간이 지나면 부모를 떠나 소개해야 했다. 이와 달리 조선의 어린 소년 소녀들은 공습이 격렬한 일본의 군수공장 노동자로 가차 없이 차출되어 갔다 … 집이 무너진 탓에 근처 텐트 안에 모포만 깔아 놓은 ‘임시 위안소’가 마련되었다. 그곳도 군인들로 붐볐다. 그들에게 한 사람의 소녀는 인간이 아니라 하반신만 존재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 도대체 세상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이 좋아서 자신의 몸을 판단 말인가 … 아이누, 아이즈, 타이완 등지에서 자행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강간 행위는 정복한 땅의 여성들에게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일본군의 야만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98, 111, 125, 132쪽)



  이시카와 이쓰코 님이 쓴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1933년에 태어난 이시카와 이쓰코 님은 일본에서 똑똑히 두 눈을 뜨고 슬기롭게 삶을 읽으면서 사랑스럽게 일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녁은 일본 정부가 이렇게 괴롭히거나 저렇게 들볶아도 씩씩합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일본 정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김없이 꾸짖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밝히는 일에 앞장서고, 전쟁에 눈이 먼 일본 정부와 지식인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면서 일깨우는 길에 힘을 보탭니다.


  이 책에도 잘 나타나지만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은 모두 ‘소녀’입니다. ‘어린 가시내’입니다. 꿈을 키우고 사랑을 노래하고 싶던 어린 가시내를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모질게 짓밟았습니다.


  여기에서 잘 헤아려야 하는데, 일본 군인과 정부만 ‘위안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에 부역한 이들도 이러한 일을 똑같이 저질렀습니다. 이를테면, 김활란과 모윤숙 같은 슬프고 딱한 이들이 이러한 일에 앞장섰어요.


  이들은 왜 아픈 이웃을 바라보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아픈 동무를 지키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독립을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독립을 기다리면서 씩씩하게 싸우는 길에 손을 보태지’ 못했을까요?



..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안소’라는 곳. 그곳은 병사들이 공공연하게 여성을 윤간하던 곳이다 … 우선 지적할 것은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은 매우 폭력적인 국가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이면서 이웃 나라들을 오직 병탄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온갖 음모와 궤변으로 해외파병을 정당화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정복당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정복할 땅과 자원, 훈장과 명예, 그리고 여자의 몸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사기와 폭력, 살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질렀는데, 여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면 이 모든 행위는 ‘성전’으로 둔갑해 버렸다 … “일본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당했는지. 나는 살해당한 중국인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만행을 여러분께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지요(완아이화).” ..  (117, 141, 192쪽)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한테, 그러니까 ‘성노예 피해 할머니’한테, ‘강간 피해 할머니’한테 제대로 뉘우치고 보상을 해야 마땅합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가 먼저 이 할머니를 따사로이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먼저 이 할머니를 품은 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한테 뉘우치고 보상을 하도록 이끌어야지요.


  한편,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왜 ‘위안부’라고 하는 끔찍한 ‘제도’를 일본 군대가 만들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잘 살펴보셔요. 한국에 있던 ‘주한미군 기지’마다 둘레에 ‘창녀촌’이 있습니다. 주한미군 기지뿐 아니라 ‘한국 군대’ 둘레에도 ‘창녀집’이 있습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과 용산역 같은 기차역이라든지, 상봉이나 강변 같은 버스역 둘레에는 ‘군인옷 입은 젊은 사내한테 달라붙어서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놀다 가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아마 이런 아주머니는 아직 제법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군대가 있는 곳마다 ‘창녀촌’이 생깁니다. 군대가 있는 곳마다 성폭력과 성추행이 잇달아 생깁니다. ‘평화로운 한국’ 군대에서도 ‘높은 계급 사내’가 ‘낮은 계급 가시내(직업군인)’를 폭력과 계급을 내세워서 괴롭힙니다. ‘평화로운 한국’ 군대에서도 ‘높은 계급 사내’가 ‘낮은 계급 사내’를 폭력과 계급을 앞세워서 두들겨 패거나 괴롭히거나 성추행을 저지릅니다.



.. 강간을 저지른 쪽은 전쟁 때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고, 뒷날 보통 시민으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데, 피해 여성들은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말이야.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아 … 이 세상에 폭력과 지배는 필요치 않아. 폭력이나 지배는 용기와 반대 개념인 것 같아. 그리고 누가 됐든지, 사람을 도구로 삼을 권리 따윈 없어 ..  (212, 215쪽)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폭력과 학살과 강간이 끊이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오지 못합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정작 자유와 민주와 평등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참다운 평화와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기다립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사랑과 꿈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생각합니다. 기다리면서 지켜봅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고, 푸르게 우거진 숲을 지켜봅니다. 우리 아이들과 살아갈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날 하루를 생각하고, 내가 두 발을 디디는 이곳에 사랑씨앗을 한 톨 심습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208031738061&pt=nv


이 책을 쓴 분을 <레이디경향>이라는 곳에서 만난 기사가 있다.

아주 반가우면서 뜻있는 기사로구나 싶다.

이 글도 읽어 주시기를 바라고,

내 이웃과 동무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삶과 마음을 사랑스럽게 북돋우는 슬기를 얻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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