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08. 2014.11.1.ㄱ 아침 입가심 까마중 



  아침 입가심으로 까마중을 훑는다. 이슬이 곱게 내려앉은 까마중을 오른손으로 따고 왼손에 그러모은다. 작은 접시를 둘 밥상에 놓고, 두 아이한테 반씩 나누어 준다. 나는 두 알만 먹는다. 지난해에는 늦가을까지 까마중을 누렸는데 올해에는 어쩌다가 조금 맛보는구나. 까마중이라는 이름과 까마중알 맛을 너희는 잘 떠올릴 수 있겠니? 아버지가 훑어 주지 않아도 우리 집 마당과 뒤꼍에서 너희가 언제라도 마음껏 훑어서 먹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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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한테 읽히려고 쓴다는 ‘청소년시’를 읽으면 거의 모든 작품이 ‘입시지옥에서 쪼그라드는 가녀린 넋’을 노래한다. 아무래도 중·고등학교가 한국에서 입시지옥 말고는 아무것이 아니니, 청소년시에서 이런 이야기만 다룰밖에 없겠구나 싶다. 그런데,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입시지옥에서 기계나 종이 되는 바보스러운 하루’만 그리니, 이런 시집을 읽으면서 참으로 무거우면서 거북하다. 틀림없이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이지만, 푸름이한테 입시지옥만 있을까? 어른들은 청소년시로 입시지옥만 노래해야 하는가? 입시지옥만 노래할 노릇이 아니라, 입시지옥을 없애려고 힘쓸 일이 아닐까? 입시지옥을 만든 사람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입시지옥을 만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를 만들지 않았다. 어른들이 만든 학교이고, 어른들이 만든 입시지옥이다. 어른들은 학교와 입시지옥을 만들고서, 청소년시도 만들면서 청소년시로는 그예 입시지옥만 다룬다. 어딘가 좀 얄궂은 모양새 아닌가. 《그래도 괜찮아》라는 청소년시 꾸러미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 시집이 참말 100% 입시지옥 이야기만 다뤘으면 너무 끔찍해서 끝까지 못 읽었겠다고. 군데군데 ‘푸른 꿈’과 ‘푸른 삶’ 이야기가 있어서, 겨우 끝까지 읽는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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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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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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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22.

 : 장갑과 모자를 찾는 철



- 장갑과 모자를 찾는 철이다. 들길을 거닐 적에는 굳이 장갑과 모자를 찾지 않아도 되지만,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장갑과 모자를 찾아야 한다. 찬바람이 싱싱 불고, 샛자전거나 수레에 앉아서 함께 움직이자면 자칫 몸이 얼 수 있으니까.


- 자전거순이는 모자를 안 쓰겠다고 앙앙거리더니 우는 얼굴이 된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맛을 네가 아직 못 깨닫는구나. 아무리 따스한 고장인 고흥이지만, 이제는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면 저녁바람이 몹시 차단다. 너는 엊그제 손이 시렵다면서 샛자전거에서 언손을 호호 불면서 녹였어.


-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들길에서 한 차례 세운다. 돌콩이 자라는 곳에서 살짝 쉬기로 한다. 아이들이 저녁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추울 테니 숨을 돌리는 한편, 아직 알맹이가 달린 돌콩이 보여 얼마쯤 훑는다. 돌콩 씨앗을 주머니에 넣는다. 우리 도서관 둘레에 뿌리려 한다. 이듬해 봄에 우리 도서관 둘레에서 딸기싹도 새로 돋고 돌콩싹도 씩씩하게 날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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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자라는 도서관 (사진책도서관 2014.10.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아이들과 도서관에 간다. 책순이는 걸상을 받치고 높은 곳에 꽂힌 그림책을 하나씩 꺼내어 읽는다. 책순이는 이 그림책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고 떠올린다. 그래, 네가 어릴 적에 본 그림책이지. “그런데 이 책들 왜 집에 안 놔요?” 책순아, 이 그림책을 조그마한 우리 집에 모두 두면 우리가 집에서는 옴쭉달싹 못한단다. 집에 둔 책도 가뜩이나 많아 더 옮겨야 하지.


  책순이가 손에 쥐는 그림책은 책순이가 태어난 뒤 장만한 그림책도 있으나, 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앞서 아버지가 하나둘 모은 그림책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맞이하기 앞서 그림책을 두루 읽으면서 살았다. 왜냐하면, 그림책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은, 단출한 글과 그림으로 모든 이야기를 담아서 들려준다. 짤막한 그림책이라 여길 수 없다. 수없이 되읽으면서 언제나 새롭게 깨닫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다. 아이도 어른도 그림책을 한 번 장만하면 백 번쯤 가볍게 되읽는다. 그야말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은 천 번도 읽고 이천 번도 읽는다. 온누리 어떤 책을 이렇게 천 번쯤 읽을 수 있을까? 온누리 어떤 책이 천 번쯤 읽도록 이끌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도서관이 자란다. 어른과 함께 도서관이 자란다. 도서관은 ‘건물’이 아니다. 도서관은 ‘책’이 아니다. 도서관은 마을과 함께 오래오래 뿌리를 내리면서 이어가는 ‘이야기’이다. 도서관이 마을에 있어야 하는 까닭은 ‘책 문화’나 ‘교육 복지’ 때문이 아니다. 도서관은 마을에서 ‘모든 마을사람과 함께 자라는 쉼터요 삶터’ 구실을 한다.


  우리 도서관을 둘러싼 나무와 풀이 모두 뽑히고 사라진다. 너무 휑뎅그렁하다. 하루 빨리 이 도서관을 우리 것으로 삼아야,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있던 나무를 함부로 뽑아 없애는 짓을 막을 수 있다. 이 도서관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사이에서 살가운 쉼터와 삶터와 책터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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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 책읽기



  씨앗 가운데에는 큰 씨앗이 있을는지 모르나, 거의 모든 씨앗은 참으로 작다. 참말 씨앗은 모두 작다. 작디작은 씨앗이 있고, 잘디잔 씨앗이 있다. 아주 티끌과 같다 싶은 씨앗까지 있다. 그런데 조그맣디조그마한 씨앗은 우람하게 자란다. 작디작은 씨앗이 무척 크게 자란다.


  씨앗은 새로운 숨결로 태어날 바탕이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는 모든 숨결이 골고루 깃들기에, 이 씨앗이 흙에 안겨 곱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면, 바야흐로 아름다운 새 빛이 태어난다.


  책 한 권을 읽어서 온누리를 다 알 수도 있겠지. 그러나, 책은 모든 것을 한 권으로 다 알도록 이끌지 않는다. 한 권으로도 얼마든지 넉넉하지만, 한 권으로 길동무가 되려고 한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책 한 권을 읽었다면 이 책 하나를 ‘끝냈다’는 소리가 아니라, 이 책 한 권을 발판으로 삼아서 내 길을 새롭게 걸어갈 기운을 얻는다는 소리이다.


  우리는 ‘읽어치우려’고 책을 손에 쥐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기쁨과 웃음으로 일구고 싶기에 책을 손에 쥔다. 성경 한 권을 읽는다고 해 보자. 한 권을 다 읽었으니 끝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으니 다 아는가? 성경 아닌 다른 책도 이와 같다.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다 읽었으니 잘 아는가? 글쓴이보다 더 잘 아는가?


  책을 읽어서 알 수 있는 대목은 오직 하나이다. ‘어느 책 하나를 한 번 읽었다’는 대목을 알 수 있다. 이밖에 다른 대목은 아직 알 수 없다.


  모든 실마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모든 실마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수십 권이나 수백 권이나 수천 권에 이르는 참고도서를 옆에 놓아야 실마리를 끌어내지 않는다. 참고도서는 한 권조차 없을지라도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가 있을 적에 곧바로 알아챌 수 있어야 실마리를 잡는다.


  씨앗은 흙에 안겨 자란다. 느티씨를 보았는가? 느티씨 한 톨은 대단히 작다. 그런데, 아기 손톱보다 훨씬 작은 느티씨는 천 해도 살고 이천 해도 살며 삼천 해도 산다. 아주 우람하게 큰다.


  편백나무 씨앗은 얼마나 작을까. 소나무 씨앗은 얼마나 작을까. 벚나무 씨앗이나 은행나무 씨앗은 얼마나 작을까. 참말, 우람한 나무는 얼마나 작은 씨앗을 내놓는가. 이 작은 씨앗은 한두 해 살다 죽으려고 깨어나지 않는다. 나무씨는 백 해나 이백 해쯤 살다가 죽으려고 깨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즈믄 해를 살고, 두 즈믄 해나 열 즈믄 해까지도 살려고 깨어난다.


  사람은 몇 해쯤 살려고 새로운 목숨으로 깨어나는가? 우리는 고작 백 해만 살다가 죽으려고 깨어나는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고 깨어나서 삶을 꾸리는가? 우리는 무슨 뜻을 이루려고 깨어나서 책을 손에 쥐는가? 우리는 어떤 씨앗으로 태어난 목숨이며, 우리는 어떤 나무로 자라고 싶은 숨결인가?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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