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일기 1 탈코일기 1
작가1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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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4.9.

만화책시렁 740


《탈코일기 1》

 작가 1

 북로그컴퍼니

 2019.2.26.



  《탈코일기》를 읽었다. 그린이는 후련할까? 후련하다고 여길 만큼 이 나라가 비뚤고 뒤틀렸다는 뜻일 텐데, 사내를 모조리 후려치고 휘두르고 찔러죽이고 때려죽이면 될까?


  《탈코일기》를 읽으면, ‘놈(사내)’이 싫다면서 ‘놈’하고 똑같은 머리카락에 옷에 몸매로 가려고 한다. “놈이 누리는 힘맛”을 보면서 “놈이 여태 뭇사람을 후리고 괴롭혔듯, 똑같이 놈을 후리고 괴롭히면, 이 나라가 아름답게 바로잡히거나 일어설” 수 있다고 여기는구나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쌈박질에 밉질에 앙갚음으로 가득하다.


  죽음을 앞두고 드러누워서 말도 못 하고 눈도 못 뜨는 늙은 아버지 얼굴에 침을 퉤 뱉는 일이 ‘기뻐서 비웃음이 나올’ 만한 일인가? 길거리에 담배를 꼬나물고 길바닥에 침을 퉤퉤 갈기는 얼뜬 젊은사내한테야말로 침을 뱉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 힘이 없는 늙은네한테 침을 갈긴들 무엇이 바뀌는가? 오히려 더 밉질(혐오)이 불거질 뿐이다. 길거리에서 거친말을 일삼으면서 삥을 뜯는 얼뜬 사내들한테 침을 갈기면서 ‘갚아’ 줄 노릇이다.


  안 쉬울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침을 뱉지 말자. 드러누운 늙은이한테든, 길거리에서 바보짓을 일삼는 젊은사내와 술에 전 아재들한테 거친말을 해준들, 그들은 한 마디도 안 듣는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바보인 줄 그자리에서 바로바로 말해 주어야 한다.


  이름은 ‘탈코르셋’이지만, 정작 속내는 ‘가부장권력마초라는 탈을 쓰기’인 《탈코일기》라고 느낀다. ‘마초’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서 주먹질(복싱)을 배우고, 힘없는 늙은네한테 침을 뱉는 짓이란, 그냥 ‘마초’일 뿐, 터럭만큼도 ‘페미니즘’일 수 없다. 더욱이 가만히 있는 사내한테 칼을 휘두르고 마구마구 쑤셔대어 피범벅으로 죽이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여성해방’이나 ‘성평등’일 수도 없다. 그저 쌈박질이다. 그저 불길(분노·혐오)일 뿐이다.


  온누리 모든 얼뜨기와 바보를 칼로 찔러서 죽이고, 주먹으로 두들겨패서 죽이면 무엇이 남을까? 얼뜨기가 아닌 사내는, 바보가 아닌 사내는, ‘쌈박질 가시내’나 ‘주먹질 가시내’나 ‘침뱉는 가시내’하고 살림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싶을까?


  가시내 눈으로 보아도 ‘쌈박질 사내’나 ‘주먹질 사내’나 ‘침뱉는 사내’하고 같이 살아가고플 수 없다. 사내 눈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와 푸름이 눈으로 보면 더더욱 똑같이 바보스럽고 얼뜬 굴레일 뿐이다.


ㅍㄹㄴ


‘솔직히 불편하다. 내가 어떻게 벗은 코르셋인데. 내가 어떻게 유지하는 탈코르셋인데, 내가 이걸 어떤 심정으로 벗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화장품을 부쉈는데, 내가 왜 탈코를 …….” (57쪽)


“여기가 A 정거장 맞아?” “네, 맞아요(아님).” (71쪽)


“욕 먹어도 괜찮아요. 한귀로 흘리세요. 그 사람보다 우월하고 완벽한 나에 취해서 천대하듯 지적하는 거 아니잖아요. 적어도 그 사람보다는 뭔가를 더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충분히 담론의 가치가 있다 생각해서 말을 꺼낸 거잖아요. 그냥 차단당하면 속상한 게 당연하죠.” (247쪽)


+


《탈코일기 1》(작가 1, 북로그컴퍼니, 2019)


우선 탈코르셋을 했지만 그걸 커밍아웃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서로 독려하기 위해 창작된 만화입니다

→ 먼저 사슬을 벗었지만 이를 밝히기 힘든 사람들을 다독이고 서로 북돋우려고 그렸습니다

→ 무엇보다 굴레를 벗었지만 이를 보이기 힘든 사람들을 달래고 서로 힘내려고 그렸습니다

4쪽


지금 누워 있는 이 남자는 나의 부친이다

→ 여기 누운 이 사내는 우리 아버지이다

10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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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생 한동훈
심규진 지음 / 새빛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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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9.

까칠읽기 65


《73년생 한동훈》

 심규진

 새빛

 2023.12.25.



“책을 가려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갸우뚱하면서 생각해 본다. 나는 모든 말글을 몇 가지로 맞대어서 생각한다. 첫째 ‘아이’를 바라볼 적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둘째 ‘들숲메바다’를 마주할 적에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셋째 ‘사랑’이라면 어떠한가 하고 생각하고, 넷째 ‘나너우리’라는 살림빛이라면 어떠한지 생각하며, 다섯째 ‘씨앗과 꽃’이라는 숨빛이라면 어떠한지 더 생각해 본다.


어떤 아이라도 가려야 할 까닭이 없다. 들숲메바다는 어떤 숨붙이도 안 가린다. 사랑은 가리지 않고 그저 품어서 풀어낸다. 나와 너와 우리는 이때에만 좋거나 저때에는 나쁘다고 안 가린다. 씨앗은 언제나 자그마하지만 모두 다르게 빛나고, 꽃도 더 좋은 꽃이나 더 나쁜 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책은 가려읽어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고 느낀다. “책은 몽땅 읽어야 한다고 말해야 맞다”고 느낀다. 이른바 ‘좋은책’만 읽으려고 하면 ‘좁은눈’으로 갇힌다. 이른바 ‘나쁜책’을 아예 멀리하면 거꾸로 ‘나쁜눈’이 된다고 느낀다. 어느 책이건 가리지 않으면서 읽을 때에 비로소 ‘열린눈’과 ‘트인눈’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글빗(비평)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모든 책을 고루고루 읽으면서 스스로 눈길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고 생각을 열어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숲빛과 들빛과 바람빛과 바다빛으로 날개돋이를 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신문기자뿐 아니라 우리(일반독자)도 비평가도 ‘스스로 좋아하는 책’에 너무 사로잡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출판사’라면 ‘덮어놓고 좋아하기’ 일쑤이다.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그만 ‘좁히’면서 ‘좇아다니’느라 이웃을 모조리 ‘쫓아내’면서 스스로 ‘종(노예)’이 되고야 만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아이곁에서 사랑을 품으면서 들숲메바다로 살림을 짓는 씨앗과 꽃을 안팎으로 고루 헤아릴 적에, 비로소 ‘사람’으로 선다고 느낀다.


책을 가려읽지 말자. 좋은책을 찾지 말자. 아니, 그저 ‘책’을 읽자. 그리고 ‘스스로 배울 책’을 챙기자. 읽기에 까다롭거나 버거우면, 더 오래 품을 들여서 천천히 읽을 노릇이다. 수월하게 읽을 만한 책이면, 되읽으면서 ‘미처 놓친 곳’이 있지 않은지 돌아볼 노릇이다.


어쩐지 요즈음에는 ‘우리(일반독자)가 읽기 수월한 책’에 꽂히거나 추켜세우는 물결이 드센 듯싶다. “읽기 수월하기에 좋은책”일 수 있을까? 읽기 수월하기에 오히려 ‘나쁜책’이지 않을까? 


다시 더 생각해 본다. “가려읽는 사람은 스스로 어둠에 눈을 가리고 만다”고 할 수 있다. “나쁜책이란 없고, 책에 담긴 속내를 못 알아보는 눈이기에 얕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쓴 글부터 늘 되읽고 되새긴다. 나 스스로 나를 깨우칠 글을 쓰려고 하기에, 내가 쓴 글부터 나를 일깨우는 밑거름으로 삼으려 한다. 이러면서 나를 둘러싼 뭇사람 글을 몽땅 챙겨서 읽으려고 한다. 2025년 시골살림 눈으로 보자면, 시골에는 책집도 책숲도 아예 없거나 너무 허술한 탓에, 서울이나 큰고장에 마실을 가지 않고서는 책읽기를 널리 하기 힘들다. 그래서 바깥일로 마실을 가면 요새는 “하루 500권 읽기”를 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하루 이틀 사흘 몇날에 걸쳐 ‘한 달치 책’을 몰아서 읽으며 한 달 동안 시골집에서 이 여러 책을 가만히 되새긴다.


책이 늘 둘레에 넉넉히 있는 서울사람이라면 굳이 “하루 500권 읽기”를 할 까닭이 없을 만하지만, 시골사람은 다르다. 거꾸로 보면, 시골사람은 들숲메바다가 언제나 곁에 있으니 서두를 까닭이 없이 들숲메바다를 날마다 느긋이 바라보고 헤아린다. 서울사람이라면 모처럼 들마실이나 숲마실이나 바다마실을 가면 그야말로 듬뿍듬뿍 품으려고 애쓰겠지.


+


《73년생 한동훈》이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2023년에 진작 나온 줄 알았지만 기다려 보았다. 바로읽기를 하기보다는 기다려 보고서 읽자고 여겼고, 2025년에 장만해서 읽는다. 그런데 글쓴이는 ‘팬덤’으로 쓰고 말았네. ‘팬덤’이 아닌 ‘아이 생각’이나 ‘숲 생각’이나 ‘사랑 생각’이나 ‘너나우리 생각’이나 ‘앞날을 밝힐 씨앗 생각’을 안 한 탓에 그저 어느 누가 이름·힘·돈을 얻고서 나라지기로 올라서야 한다고 여기는구나 싶다.


나라지기는 누가 해도 된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 줄줄이 나라지기를 맡은 요즈음인데, 누가 나라지기를 맡았든 대수롭지 않다. 새 나라지기를 누가 맡아도 안 대수롭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꿈을 그리면서 어떻게 아이곁에 서는 어진 어른으로 살림하겠는지 밝힐 노릇이다. 그러나 《73년생 한동훈》에는 글쓴이 나름대로 한동훈이라는 사람한테서 어떤 빛과 그늘을 보았는가 하는 줄거리가 없다. 그저 한 사람을 올려세우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뿐이다.


왜 오늘날 숱한 사람들이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서 싸우겠는가? 다들 “책을 가려읽는 탓에 싸운다”고 할 수 있다. 이쪽에 서기에 이쪽 책만 읽으니 속이 좁다. 저쪽에 선다면서 저쪽 책만 읽으니 속야 얕다. 한쪽은 속좁고, 다른쪽은 속얕다.


서로 저희 쪽 책만 읽는 탓에 “왜 쟤들은 저렇게 멍청하게 굴어?” 하면서 엉뚱하게 말을 한다. ‘저쪽’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면 “저쪽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뿐 아니라,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저쪽 목소리가 담긴 글이나 책을 아예 안 읽으면서, 더욱이 저쪽 사람들을 아예 끊고 안 만난다면, 그저 저쪽을 미워하는 말만 쏟아내면서 끝없이 싸우고 만다.


저쪽에서 이쪽을 보는 눈도 똑같다. “왜 이놈들은 이렇게 마구 굴어?” 하면서 뜬금없이 말을 한다. ‘이쪽’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면 “이쪽 목소리”를 귀여겨들을 뿐 아니라, 만나서 이야기할 일이다. 이쪽 목소리가 담긴 글이나 책을 아주 안 읽으면서, 덮어놓고 이쪽 사람들을 깔보고 비아냥대기만 한다면, 그냥 이쪽을 싫어하는 말만 내뱉으면서 그지없이 다투고 만다.


모든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을 나란히 써야 사람답다. 모든 사람은 왼발과 오른발을 나란히 써야 걸을 수 있다. 《73년생 한동훈》을 쓴 분은 예전에 ‘좌편향’이었다가 요새 ‘우편향’을 한다고 밝히지만, 글쓴이는 ‘진영논리’만 댈 뿐, 꿈(계획·대안·정책·비전)이 안 보인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모든 빛과 그늘을 풀어내어 이야기롤 들려줄 노릇이라고 본다. 앞으로 어른으로 설 아이들이 어질고 슬기롭게 온누리를 일구는 손길과 발걸음으로 잇도록 눈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어떤 ‘팬덤’으로도 새길을 열지 못 한다. ‘좋은책(팬덤)’이 사라지고서 그저 ‘사랑책’과 ‘숲책’과 ‘아이곁책’과 ‘씨앗책’일 때라야 비로소 새길을 연다.


ㅍㄹㄴ


이 책은 70년대생으로서 가장 좌편향된 세대로 꼽히는 40대인 내가 왜 보수가 되었나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했습니다. (429쪽)


+


《73년생 한동훈》(심규진, 새빛, 2023)


정권의 탄압을 함께 겪어낸 브로맨스를 공유하고 있다

→ 나라가 눌러도 함께 두텁게 겪어내었다

→ 나라힘에 밟혀도 함께 겪어낸 바 있다

57쪽


판결을 너무 나이브하게 예단했던 것 아닌가 싶다

→ 판가름을 너무 물렁하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 너무 어리숙하게 가리려 하지 않았나 싶다

60쪽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 가만히 구경해야 한다

→ 마음을 안 써야 한다

→ 흘려듣고 넘겨야 한다

437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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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8. 종이에 적는 글



  예전에 굳이 ‘글(시·문학)’을 쓴다고 여기지 않을 적에는, 둘레에 있는 어느 종이에라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마음빛을 몇 줄로 옮겨서 건네었다. 이를테면 ‘젓가락 싸개’라든지 ‘수저 싸개’라든지 ‘밑종이(휴지)’라든지, 어느 종이에라도 몇 마디나 몇 줄을 적어서 이웃님한테 드렸다.


  요즈음은 ‘글(마음을 그리는 이야기)’을 적어서 건넬 적에 이웃님이 차분히 되새기고 돌아보면서 이웃님 마음속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음씨앗’으로 삼아 보시기를 바란다. 한동안 네모반듯하게 빛종이(색상지)를 잘라서 적어 드렸는데, 여느종이에 연필로 적은 글은 이내 연필자국이 번지는 줄 느꼈다. 그래서 글씨가 안 번지는 붓과 종이를 헤아려 보았다. 여러 종이를 헤아리며 써 보다가, 천종이(캔버스)는 손이 닿거나 오래 있어도 잘 이을 만하다고 느껴서 천종이를 쓰기로 했다.


  천종이에 글을 적어서 건네려면 돈이 좀 많이 듭니다. 천종이에 글을 적어서 건네는 만큼 살림돈이 줄어든다. 다만, 이쯤은 즐겁게 할 만한 이웃나눔이라고 느낀다. 또한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돈으로 이웃나눔을 하는 길”보다는 “마음을 사랑하는 글을 스스로 늘 새롭게 써서, 이 ‘마음사랑글’로 이웃나눔을 하는 길”을 가자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즐겁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이웃나눔은 “마음사랑글을 늘 새롭게 써서 건네주는 일”이라고 본다. 제법 오래 건사할 만한 천종이를 목돈을 들여서 장만하고, 꽤 품을 들여서 천천히 옮겨적은 다음에 건넨다. 어느 분이 보기에는 천종이쯤이야 돈이 얼마 안 들겠지. 나한테는 목돈이 드는 일이다. 나는 2003년에 마지막으로 출판사를 그만둔 뒤로 2025년에 이르도록 ‘한달벌이(월평균수입)가 50∼70만 원’이거든.


  쥐꼬리만 한 한달벌이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쥐꼬리만큼 쓰면 쥐꼬리만큼 벌면서 살아갈 수 있다. 아무쪼록 이웃님 누구나 즐겁게 글빛을 누리시기를 바라기에 천종이를 골라서 품과 돈을 들여 새글을 옮겨적어서 건넨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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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원칙


 누구의 원칙인지는 → 누구 틀인지는 / 누가 따지는지는 / 누가 재는지는

 오늘의 원칙은 → 오늘 눈금은 / 오늘 눈길은 / 오늘 길눈은

 자네의 원칙이지만 → 자네 잣대이지만 / 자네가 세우지만


  ‘원칙(原則)’은 “1.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 ≒ 본칙 2. [철학]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를 가리킨다는군요. ‘-의 + 원칙’ 얼거리라면 ‘-의’를 털고서 ‘자·잣대’나 ‘길·길눈·길불·길빛·길잡이·길라잡이’나 ‘곬·뜻·소리’로 손볼 만합니다. ‘얼개·얼거리·틀·틀거리·뼈대’나 ‘눈·눈길·눈결·눈꽃·눈금’이나 ‘눈높이·눈가늠·눈대중·눈망울·눈썰미’로 손볼 수 있어요. ‘삶·삶길·살림길·삶틀’이나 ‘밑·밑동·밑틀·밑절미·밑판’이나 ‘밑바탕·바탕’으로 손보고, ‘가늠하다·가누다·따지다·재다’나 ‘세우다·서다·하다·하나치’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키·키높이·키재기’나 ‘-를 따라·-를 보고·워낙’이나 ‘읽눈·읽빛·읽는눈·읽는눈길·읽는눈빛’으로 손볼 수 있어요. ‘보는눈·보는눈빛·보는눈길·봄눈·봄빛’이나 ‘알림·밝힘’으로 손보아도 돼요. ㅍㄹㄴ



때문에 조각작품을 만들면서 그리스 식의 원칙을 따르려는 작가가 있다면

→ 그래서 깎을 적에 그리스다운 틀을 따르려는 이가 있다면

→ 이리하여 빚을 적에 그리스 눈길을 따르려고 한다면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칸딘스키/권영필 옮김, 열화당, 2000) 17쪽


이러한 두 개의 원칙이 서로 힘겨루기를 해 왔던 것이다

→ 이러한 두 잣대가 서로 힘겨루기를 해 왔다

→ 이러한 두 가지가 서로 힘겨루기를 해 왔다

→ 이러한 두 갈래가 서로 힘겨루기를 해 왔다

《전쟁인가 평화인가》(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 녹색평론사, 2004) 31쪽


표준어 선정의 원칙이 처음 잡혔고

→ 표준말을 뽑는 얼개를 처음 잡았고

→ 표준말을 고르는 틀을 처음 잡았고

→ 표준말을 가리는 길을 처음 잡았고

《언어는 인권이다》(이건범, 피어나, 2017) 177쪽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 가만히 구경해야 한다

→ 마음을 안 써야 한다

→ 흘려듣고 넘겨야 한다

《73년생 한동훈》(심규진, 새빛, 2023) 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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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우주 宇宙


 우주 만물 → 온숨 / 온빛 / 뭇숨결 / 뭇빛

 우주에 가득 차다 → 두루 가득 차다 / 모드 가득 차다 / 온누리에 가득 차다

 대의를 우주에 밝혀서 → 큰뜻을 널리 밝혀서

 광활한 우주 → 드넓은 별 / 가없는 곳 / 너른누리

 우주를 왕복하다 → 별누리를 오가다

 우주에 관하여 연구하다 → 바깥누리를 살피다 / 별터를 헤아리다


  ‘우주(宇宙)’는 “1.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 2. [물리] 물질과 복사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 3. [천문] 모든 천체(天體)를 포함하는 공간 4. [철학] 만물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수학적 비례에 의하여 질서가 지워져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강조할 때에 사용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용어이다”으로 풀이합니다. ‘온·온것·온곳’이나 ‘온누리·온누리판·온땅’이나 ‘온숨·온목숨·온숨결’로 담아낼 만합니다. ‘모두·뭇목숨·뭇숨결·뭇넋·뭇빛’이나 ‘온빛·온터·온판’으로 담아내고요. ‘별·별나라·별누리·별터·별판·이웃별’로 담아낼 수 있고, ‘고루·골고루·고루눈·고루길·고루빛·고루보다’나 ‘곳·곳곳·터·터전’으로 담아내지요. ‘너머·너머꽃·너머길·너머빛·너머누리·너머나라’나 ‘누리·뉘·널리·둘레·다른곳’으로 담아도 어울립니다. ‘두루·두루눈·두루보다·두루길·두루빛·두루넋·두루얼’이나 ‘먼곳·먼데·멀다·멀디멀다·머나멀다’로 담아낼 만하고, ‘바깥·밖·바깥누리·밖누리’나 ‘빗장열기·빗장풀기·빗장트기’로 담아냅니다. ‘열다·트다·환하다·활짝·훤하다’나 ‘저·저기·저곳·저쪽·저켠·저자리’로 담아내어요. ‘즈믄·즈믄길·즈믄꽃·즈믄빛’로 담아내고, ‘하나되다·한몸마음·한마음몸’이나 ‘하늘·하늘꽃·하늘별·하늘빛’으로 담아냅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우주’를 셋 더 싣습니다만, 다 털어냅니다. ㅍㄹㄴ



우주(牛酒) : 쇠고기와 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주(隅柱) : [건설] 건물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 = 귀기둥

우주(虞主) : [역사] 궁중에서 우제(虞祭)를 지낼 때에 쓰던 뽕나무로 만든 신주



저 광활한 우주속으로

→ 저 가없는 너머로

→ 저 너른 누리로

→ 저 까마득한 곳으로

→ 저 드넓은 밖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박정만, 실천문학사, 1988) 12쪽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 생생한 삶! 둘레가 저렇게 뭉클하다

《마음의 수수밭》(천양희, 창작과비평사, 1994) 15쪽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어떤 것도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 없다

→ 모두 끊임없이 바뀌지만 무엇도 온누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헬렌 니어링/이석태 옮김, 보리, 1997) 239쪽


우주의 한 중심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아라

→ 온누리 한복판인 줄 뒤늦게 깨달아라

《끊어진 현》(박일환, 삶이보이는창, 2008) 5쪽


우주라는 가정 하에 하는 훈련이니까요

→ 온누리라고 생각하며 갈고닦으니까요

→ 바깥누리로 여기며 다스리니까요

→ 바깥으로 보며 담금질을 하니까요

《트윈 스피카 6》(야기누마 고/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2014) 185쪽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 온누리를 이야기하면서

→ 별누리 이야기를 하면서

《트윈 스피카 8》(야기누마 고/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2014) 410쪽


왜 저렇게 링(우주 건물)이 아름다운지 아세요?

→ 왜 저렇게 고리(누리집)가 아름다운지 아세요?

《토성 맨션 7》(이와오카 히사에/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2015) 238쪽


그는 어쩌면 우주 밖 어느 행성에서 파견된 스파이일지도 모른다

→ 그는 어쩌면 바깥 어느 별에서 온 몰래꾼일지도 모른다

→ 그는 어쩌면 다른 어느 별에서 온 엿듣개일지도 모른다

《백수 선생 상경기》(백성, 문학의전당, 2015) 50쪽


물질적으로 볼 때 내 몸은 우주의 구성성분과 같다

→ 바탕으로 볼 때 내 몸은 온누리 밑감과 같다

→ 숨결로 볼 때 내 몸은 온누리 속빛과 같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류대영, 생각비행, 2016) 66쪽


우리의 모호한 질문에 대해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바로 수라는 답을 준 것이다

→ 우리가 설핏 물어볼 때 온누리 뭇숨결을 이루는 틀거리가 바로 셈이라고 알려주었다

→ 우리가 얼핏 물을 때 온누리 뭇목숨을 이루는 그루터기가 바로 셈값이라고 알려주었다

《수학의 수학》(김민형·김태경, 은행나무, 2016) 15쪽


작지만 완전한 우주지

→ 작지만 오롯이 누리지

→ 작지만 옹근 온누리지

《삶은 달걀》(이루리·나명남, 북극곰, 2017) 23쪽


천 년의 우주수를 보는 순간

→ 즈믄살이 누리나무를 보자

→ 즈믄해 살아온 나무를 보니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박두규, 모악, 2018) 64쪽


우주 공간도 이 해역도, 산 인간의 생 따위는 허무하게 비칠 뿐이다

→ 별 바깥도 이 바다도, 산 사람 삶 따위는 허울로 비칠 뿐이다

→ 별 너머도 이 바다도, 산 사람 하루 따위는 초라히 비칠 뿐이다

《사이보그 009 완결편 3》(이시노모리 쇼타로·오노데라 조·하야세 마사토/강동욱 옮김, 미우, 2018) 87쪽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길 원치 않는다는 말은 고양이를 곁에 두는 것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 내가 온누리 한복판이 되길 안 바란다고 해서 고양이를 곁에 두면 싫다는 뜻이 아니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어슐러 K.르 귄/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2019) 55쪽


사악한 자들은 이 우주를 지옥으로 보고

→ 나쁜 놈들은 온누리를 불수렁으로 보고

→ 못된 이들은 이 누리를 불밭으로 보고

《마음의 요가》(스와미 비베카난다/김성환 옮김, 판미동, 2020) 280쪽


모음에는 우주의 큰 뜻을 담았어

→ 홀소리에는 온빛을 담았어

→ 홀소리에는 온누리를 담았어

《아빠가 들려주는 한글 이야기》(김슬옹, 한솔수북, 2022) 26쪽


한데 우리가 없어도 지구가 있고 우주도 있지만 시(詩)는 없다

→ 그런데 우리가 없어도 푸른별 있고 온누리 있지만 노래는 없다

《은엉겅퀴》(라이너 쿤체/전영애·박세인 옮김, 봄날의책, 2022) 165쪽


광대한 우주의 흐름 안에서 흐르고 있을 뿐임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너른누리에서 흐를 뿐이라고 온몸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 너른빛으로 흐를 뿐인 줄 온몸으로 그리고 싶었다

《나무 마음 나무》(홍시야, 열매하나, 2023) 46쪽


우주처럼 깊은 과거의 역사가 존재한다

→ 온누리처럼 깊고 오래되었다

→ 별누리처럼 깊으며 오래 흘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박지혜, 스토리닷, 2023) 37쪽


우주를 선구적으로 개척하는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거든요

→ 누리를 먼저 뚫고나가는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거든요

→ 너머를 일찌감치 뚫는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거든요

《미래 세대를 위한 우주 시대 이야기》(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 7쪽


그의 철학에 고갱이가 될 영원회귀의 우주론을 착상했다

→ 그이 넋에 고갱이가 될 한꽃길을 떠올렸다

→ 그이 생각에 고갱이가 될 늘빛길을 찾았다

→ 그이 눈꽃에 고갱이가 될 온길을 그렸다

《니체 읽기의 혁명》(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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