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뜨거운 밥 먹을 적에



  산들보라는 온몸으로 밥을 먹는다. 큰아이 사름벼리도 산들보라만 하던 때에 온몸으로 밥을 먹었다. 자그만 입을 앙 벌리고, 두 팔과 두 다리까지 쓰면서 온몸을 슬슬 흔들며 춤을 추듯이 밥을 먹는다. 고픈 배에 밥을 얼른 넣으려고 뜨거운 밥을 제대로 후후 불어 식히지 않고 덥석 넣고는 “하! 하! 하!” 하면서 입을 하 벌린 채 식히기 일쑤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놀이가 된다. 그래,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아이들만 하던 나이에 이렇게 밥놀이를 했구나 싶다. 그때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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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1-07 17:31   좋아요 0 | URL
아이 표정도 그렇지만, 저는 저 밥상 위 밥과 국에 눈길이 가네요^^
맛있겠다~

파란놀 2014-11-07 19:05   좋아요 0 | URL
하양물감 님도 즐겁게 밥을 누리고
오늘 하루도 예쁘게 마무리지으셔요~ ^^ 고맙습니다~
 

파썰기



  파를 썰 때면 으레 어릴 적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한테 처음 부엌칼을 쥐도록 하던 일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는데, 거의 안 떠오르지만, 아마 파썰기가 아니었을까. 처음 파를 썰던 때에는 큰파는 그야말로 크구나 하고 여겼다. 어쩌면 이렇게 파는 클까 하고 생각했다. 아이 몸에서 자라 어른 몸이 된 오늘날, 나는 두 아이를 먹여살리는 밥을 짓는다. 어른 몸으로 큰파를 썰 때면, 큰파라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큰파를 어른 입에 맞게 굵게 썰면, 아이들이 먹기에 퍽 나쁘다. 큰파를 아이들이 먹도록 하자면, 가로로도 썰고 세로로도 썰면서 조그마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작으면서 고운 빛이 어우러지도록 썰면,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는다. “뭐 썰어?” “파.” “파?” “응.” “아, 우리 집 마당에도 심은 그 커다란 파?” “응.”


  파를 잘게 썰면서 파한테 말을 건다. 얘야, 우리 집 아이들한테 곱게 스며들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맛난 밥이 되어 주렴. 우리 집 아이들한테 푸른 숨결이 되어 주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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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12. 2014.10.18.ㄴ 삶은달걀 풀밥



  저녁을 차릴 적에는 아침에 남은 밥을 새로 짓기로 한다. 달걀을 삶은 뒤 잘게 썰어서 나물무침에 섞는다. 아침에 먹고 남은 국을 다시 끓이고, 저녁에는 두부를 국물로 덥혀서 접시에 놓는다. 우리 몸이 되는 밥을 기쁘게 맞이하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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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111. 2014.10.18.ㄱ 인형이 지켜보는 카레밥



  한창 밥을 짓는 동안 아이들이 부엌에서 인형놀이를 한다.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오래된 인형을 밥상에 척 얹으면서 논다. 아버지가 밥을 예쁘게 짓는지 골을 내면서 짓는지 인형이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래, 그래, 노래하면서 밥을 지을 테니, 너희도 노래하면서 밥을 먹으렴. 오늘은 호박버섯국에 카레밥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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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07 12:21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방금 [그림책 읽는 아버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책이 유난히 좋은걸요~?^^ 단행본으로 내셔도 참 좋겠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늦가을 누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호박버섯국에 카레밥도 참 맛나보입니다!!^^

파란놀 2014-11-07 12:25   좋아요 0 | URL
우체국이 바쁜 철이 아닌지 금방 닿았네요~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기를 빌고 또 꿈꿉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즐거운 하루가 되면서
늘 맑은 웃음과 노래 나누어 주셔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37) 천혜의 1


시베리아로 진출한 러시아가 극동의 부동항을 건설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청어람미디어,2006) 51쪽


 천혜의 조건을

→ 하늘이 내린 조건을

→ 타고난 조건을

→ 훌륭한 조건을

→ 좋은 조건을

 …



  말뜻 그대로 적을 때에 가장 쉬운 글입니다. 꾸밈없이 적을 적에 가장 고운 글입니다. 있는 그대로 쓸 때에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글입니다. 수수하게 적을 적에 가장 맑게 빛나는 글입니다.


  “하늘이 베푼 은혜”를 뜻한다는 한자말 ‘천혜’를 빌어 “천혜의 조건”으로 글을 쓸 수 있으나, “하늘이 베푼 조건”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천혜의 보고”나 “천혜의 관광 자원”으로 글을 쓸 수 있지만, “하늘이 베푼 보고”나 “하늘이 내린 관광 자원”으로 적을 수 있어요.


 천혜를 입다

→ 하늘이 베푼 은혜를 입다

→ 하늘 은혜를 입다


  보기글에서는 ‘타고난’이나 ‘훌륭한’이나 ‘좋은’이나 ‘괜찮은’을 쓸 수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이나 ‘더없이 좋은’이나 ‘그지없이 훌륭한’이나 ‘가없이 뛰어난’을 쓸 수도 있어요.


  얼지 않는 항구를 가리켜 한자말로 ‘부동항’이라고 흔히 적는데, 얼지 않는 항구는 겨울에도 쓸 수 있는 항구이니 ‘겨울 항구’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0.7.10.불/4347.11.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시베리아로 뻗은 러시아가 북동아시아 끝에 겨울 항구를 지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진출(進出)한’은 ‘나아간’이나 ‘뻗은’으로 손질하고, “극동의 부동항(不凍港)”은 “북동아시아 끝자락 얼지 않는 항구”나 “북동아시아 끝에 겨울 항구”로 손질합니다. ‘건설(建設)할’은 ‘지을’이나 ‘놓을’로 손봅니다.



천혜(天惠) : 하늘이 베푼 은혜. 또는 자연의 은혜

    - 천혜의 보고 / 천혜의 관광 자원 / 천혜를 입다 / 천혜의 조건이 좋은 것이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92) 천혜의 2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성소입니다. 추수가 끝나 가는 마을 들판은 한 폭의 아름다운 만다라입니다

《이해선-인연, 언젠가 만날》(꿈의지도,2011) 316쪽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성소입니다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타고난 성소입니다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이 훌륭한 곳입니다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이 거룩한 자리입니다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은 무엇을 말할까 가만히 생각합니다. “하늘이 베푼” 것이라면 아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이지 싶어요. 그러니까, 이 보기글은 같은 뜻을 잇달아 적은 겹말인 셈입니다.


  다만, 같은 뜻을 잇달아 적더라도 느낌을 한결 깊거나 짙게 나타내고 싶은 마음일 수 있어요. 그러면, ‘천혜 + 의’ 꼴로 일본 말투를 쓰지 말고, ‘타고난’이나 ‘훌륭한’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으면서 거룩한 곳입니다”처럼 손질해도 됩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이 거룩한 자리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 가는 마을 들판은 아름다운 만다라입니다


‘성소(聖所)’는 개신교에서 쓰는 한자말입니다. 인도 불교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이 한자말을 빌어서 쓸 만하지만, “거룩한 곳”이나 “거룩한 자리”로 손보면 한결 낫고 잘 어울립니다. ‘추수(秋水)’는 ‘가을걷이’나 ‘벼베기’로 손질합니다. ‘만다라(曼陀羅)’는 이 글월에서 그대로 두면 될 텐데,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는 마을 들판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아름다운 그림입니다”로 손보아도 돼요. “한 폭의 아름다운 만다라”는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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