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숲이 되려고 기다리는 씨앗



  밥 한 그릇은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이면서, 다시 벼라고 하는 풀이 돋도록 하는 씨앗입니다. 밥이란, 솥이나 냄비에 물을 붓고 쌀을 넣어 끓여서 얻는 먹을거리입니다. 쌀이 밥으로 바뀝니다. 쌀은 겨를 벗긴 벼입니다. 겨를 통째로 먹어도 되지만, 씹기에 한결 수월하도록 겨를 벗깁니다. 겨란 쌀알을 감싸는 껍질입니다. 쌀알에는 씨눈이 있고, 이 씨눈이 바로 새롭게 벼풀로 자라도록 이끄는 알맹이입니다.


  벼도 풀입니다. 벼에서 얻는 볍씨인 나락은 쌀알이면서 풀알입니다. 풀알이란 풀열매입니다. 풀열매를 먹는 우리들은 풀밥을 먹는 셈입니다. 풀밥을 먹으니 풀내음을 먹고, 풀숨을 받아들입니다.


  볍씨 한 톨은 새로운 볍씨를 백 알 즈음 내놓습니다. 이듬해에 새롭게 심어서 돌볼 씨앗을 남긴 뒤, 한 해 내내 즐겁게 쌀밥을 지어서 먹습니다.


  씨앗을 먹기에 목숨을 얻습니다. 새롭게 싹이 틀 수 있는 씨앗을 밥으로 지어서 먹기에 목숨을 잇습니다. 씨앗은 땅에 깃들면 새로운 풀이나 나무가 되고, 우리 몸에 들어오면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나무의 아기들》(천개의바람 펴냄,2014)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빚은 이세 히데코 님은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첼로, 노래하는 나무》 같은 그림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을 그리는 이세 히데코 님은 ‘숲·나무·씨앗·노래·사랑·삶’을 한데 엮어서 쉽고 보드라운 결로 이야기합니다. 《나무의 아기들》이라는 그림책은 ‘나무가 낳는 아기 = 씨앗’이라는 얼거리를 바탕으로 ‘씨앗은 다시 어머니 나무가 되는 넋’이라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벽오동 아기는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바람의 여행을 떠나지요(4쪽).” 나무는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르기에 나무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우리 둘레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서 자라는 나무한테 누가 어떤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붙였을까요? 표준말로 가리키는 이름뿐 아니라, 고장마다 다 다르게 가리켰을 이름을 헤아려 보셔요.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셔요. 은행나무가 있나요? 방울나무가 있나요? 느티나무가 있나요? 소나무가 있나요? 벚나무가 있나요? 자, 이밖에 도시에서는 어떤 나무를 더 구경할 수 있나요? 아파트에는 없을 테지만, 퍽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습니다. 살구를 좋아하면 마당에 살구나무를 심을 만하고, 복숭아를 좋아하면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돌볼 만합니다. 포도나무를 마당에 심을 수 있고, 동네 빈터에 오동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마다 다른 이야기를 심습니다. 뽕나무를 심을 적에는 뽕나무가 자라는 결과 함께 누리는 이야기가 있고, 느릅나무를 심을 적에는 느릅나무가 자라는 결과 같이 누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어떤 뜻을 함께 품는가요.


  “북풍이 지나가면 도토리들이 투두둑 떨어져요(10쪽).” 시골마을 우리 집 마당과 뒤꼍에서 자라는 나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에는 한 해 내내 마을 멧새가 쉼없이 찾아듭니다. 여름에 후박꽃이 핀 뒤 후박알이 까맣게 맺는데, 멧새는 후박알을 먹으려고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애벌레를 잡아먹고 싶어서 찾아와요. 날씨가 포근한 남녘은 늦가을에도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어요. 늦가을부터 돋는 갓이랑 유채를 살펴보면, 갓잎과 유채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애벌레를 어김없이 볼 수 있습니다. 한 해 내내 푸른 잎사귀를 내놓는 후박나무에도 늦가을에 애벌레가 있어요. 열매와 애벌레를 찾는 멧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오면, 우리 집에는 구성진 노래잔치가 벌어집니다. 새마다 노랫소리가 다르니 언제나 다른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 있을 뿐이라 할 테지만, 이 나무 한 그루가 있기에 새들이 찾아와서 쉬면서 노래해요.


  한편, 새는 모든 애벌레를 샅샅이 잡아먹지 않습니다. 애벌레 몇 마리 귀엽게 놓아 줍니다. 왜 그러할까요? 애벌레를 샅샅이 잡아서 먹으면, 다음에는 더 잡아먹을 애벌레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벌레가 커서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난 뒤, 다시 알을 낳아 새로운 애벌레가 자라야 새도 두고두고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나무는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서 새 잎을 틔울 수 있고, 애벌레는 나뭇잎뿐 아니라 풀잎을 골고루 갉아먹으면서 풀도 알맞게 보듬습니다. 그리고, 이 애벌레가 깨어나 나비나 나방이 되어야, 쉴새없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받이를 하지요. 나무나 풀은 잎사귀를 애벌레한테 조금 내주고 꽃가루받이를 하니, 서로 돕고 보살피는 사이라고 할 만합니다.


  “느티나무 엄마는 아기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가 봐요. 언제까지나 안고 있으려고 가지째 떨어진대요(22쪽).”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집니다. 한여름에는 그늘에서 시원하게 쉽니다. 겨울에도 나무는 가지를 벌리면서 춤을 춥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무엇보다 겨울에는 나무가 찬바람을 가려요. 차디차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나무가 고스란히 받아서 노래로 바꾸어 줍니다. 나무가 우거지면 바깥소리를 막지요. 나무는 우리 보금자리에 시끄러운 바깥소리가 덜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도록 가립니다. 집이나 건물을 둘러싸고 나무가 겹겹이 있으면, 자동차 구르는 소리를 거의 다 막을 만해요.


  소리를 막는 울타리를 높게 세운들 소리를 제대로 막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한 겹만 있어도 웬만한 소리를 거뜬히 막고, 나무가 두 겹이 있으면 거의 모든 소리를 막으며, 나무가 세 겹으로 둘러싸면 바깥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안쪽에서는 포근해요. 게다가 나무가 자라서 우람하게 서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골고루 퍼지면서 아름다운 삶터를 이룹니다. 나무는 언제나 푸른 바람을 일으키니 우리 가슴에서 푸른 이야기가 싹틀 수 있습니다.


  숲이 되려고 기다리는 씨앗은 오랫동안 흙 품에 안겨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이 되려고 기다리는 ‘사람씨앗’이지 싶어요. 오늘까지 고요히 잠잘 수 있고, 이튿날에도 아직 긴잠에서 안 깨어날 수 있지만, 머잖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온누리를 환하게 밝히는 고운 사랑이 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착하고 참다운 멋진 사랑이 돼요.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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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스티커순이 입막기



  스티커순이가 되는 사름벼리가 문득 ‘스티커 판’으로 입을 막는다. “아버지, 나 이러면 이 못 닦지?” 그래, 그렇게 하면 너는 이를 못 닦아. 그런데 말이야, “그렇구나. 그리고 그러면 밥도 못 먹겠네?” “응? 아, 그렇구나!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네가 스스로 생각해 보렴.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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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놀이 4 - 마루문에 가득가득



  놀이순이가 먼저 스티커를 붙인다. 하나를 붙이더니 둘을 붙이고, 이내 스티커를 잔뜩 가져와서 동생과 나란히 붙인다. 동그란 스티커를 다 붙인 뒤에는 스티커 판까지 붙인다. 놀이순이와 놀이돌이는 우리 집을 이쁘장하게 꾸미는 꾸밈순이요 꾸밈돌이 노릇까지 한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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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10 - 방 한쪽에 보자기 깔고



  방 한쪽에 보자기를 곱게 깐다. 이러고 나서 소꿉상자에서 소꿉을 하나씩 꺼낸다. 아이들은 제 몫으로 먼저 하나씩 깔고, 인형 몫으로 또 하나씩 깐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소꿉놀이를 한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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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3. 이름 없는 사진



  우리가 찍는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는 사진감(소재)이거나 아니거나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을 다른 사람이 아직 찍은 적이 없든, 앞으로도 찍을 사람이 없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으려는 사진을 그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찍었든, 또 아주 많구나 싶도록 사진책이 많이 나왔든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우리 삶’을 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진감을 다룬다고 할 적에도, 나와 네가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곳은 같아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릅니다.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르니, 우리가 찍는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감돕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든, 풀 한 포기를 찍든, 꽃 한 송이를 찍든, 우리는 늘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실어 다 다른 꿈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야기’와 ‘삶’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더 멋있게 찍으려 하거나 더 남다르게 찍으려 할 적에는 이야기와 삶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누가 찍어도 거의 똑같아 보이거나 아주 닮은 사진만 나옵니다.


  사진은 ‘표현 기법’이 아닙니다. 사진은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기법이나 방법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사진하고 동떨어집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와 같아요. 자꾸 기법이나 방법에 기울면 기울수록 글이나 그림이 아닌 겉치레나 겉짓이 되고 맙니다. 이야기가 없이 기법과 방법에 매달리는 사진이 있으면, 우리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읽을까요? 바로 기법과 방법을 읽습니다. 기법과 방법만 읽는다면, 자꾸 새로운 기법과 방법만 좇기 마련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무쇠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가스불에 냄비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장만한 ‘공장에서 지은 밥’을 물을 끓여서 덥혀 먹을 수 있습니다. 밥짓기도 여러 갈래로 살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밥짓기는 ‘기법과 방법’일 뿐입니다. 무쇠솥으로 지은 밥은 그야말로 맛있습니다만, 편의점에서 산 ‘공장에서 지은 밥’으로도 우리 사랑과 꿈을 따순 손길로 어루만져서 아주 맛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야기란 바로 ‘사랑과 꿈’입니다. 사진에 담는 삶이란 바로 ‘따순 손길’입니다.


  우리가 찍을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와 삶’을 어느 만큼 담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어떤 장비를 쓰든, 어떤 기법이나 방법을 쓰든, 언제 어디에서 찍든, 누구를 찍거나 무엇을 찍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 ‘이야기’를 살피면서 가꾸고, ‘삶’을 노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넋이면 됩니다.


  이름이 있는 사진도 없고, 이름이 없는 사진도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작가도 없고, 이름이 없는 작가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냐, 이야기가 없는 사진이냐, 이렇게 가를 수만 있습니다. 삶이 깃든 사진이냐, 삶이 안 깃든 사진이냐, 이렇게 가르기만 합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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