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89) -화化 189 : 습관화


오래 습관화된 통제적 방식으로 행동할 때 의도치 않게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댄 뉴하스/안진희 옮김-부모의 자존감》(양철북,2013) 9쪽


 오래 습관화된

→ 오래 버릇이 된

→ 오래 길든

→ 오래 젖어든

→ 오래 뿌리내린

 …



  ‘습관화’는 한자 ‘習慣 + 化’로 엮은 낱말입니다. 한자말 ‘습관’이기에 뒤에 ‘-화’가 달라붙습니다. 한국말 ‘버릇’이라면 뒤에 ‘-화’가 달라붙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버릇’이라는 낱말을 살피면 “(1)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 (2) 윗사람에 대하여 지켜야 할 예의”로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버릇’과 ‘습관’은 뜻이 같은 낱말입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다른 하나는 한자말입니다. 하나는 예부터 한국사람이 쓰던 낱말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들어온 말입니다.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생활의 습관화가 필요하다

→ 같은 때에 자고 일어나는 삶을 뿌리내려야 한다

→ 같은 때에 자고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습관화된 행동은 고치기 어렵다

→ 버릇이 된 몸짓은 고치기 어렵다

→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

 일기 쓰기를 습관화하다

→ 일기 쓰기를 몸에 붙이다

→ 일기 쓰기를 늘 하다


  버릇으로 삼는 일이란 ‘늘 하는’ 일입니다. 버릇이 되도록 하는 일이란 ‘삶이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몸에 붙이’고 ‘손에 익’도록 할 때에 버릇이 된다고 합니다.


  어느새 길들 수 있습니다. 어느덧 젖어들기도 합니다. 시나브로 뿌리를 내리고, 차근차근 익숙합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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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짓눌려 버릇이 된 몸짓일 때에, 뜻하지 않게 둘레 사람과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오래 습관화된 통제적(統制的) 방식(方式)으로 행동(行動)할 때”는 “오래 짓눌려 버릇이 된 몸짓일 때에”나 “오래 짓눌려 버릇이 되어 움직일 때에”로 손질합니다. “의도(意圖)치 않게”는 “뜻하지 않게”로 손보고, “자기(自己) 자신(自身)과”는 “나와”로 손보며, “주위(周圍) 사람들에게 고통(苦痛)을 줄 수도”는 “둘레 사람들을 괴롭힐 수도”로 손봅니다.



습관화(習慣化) : 습관으로 되거나 습관이 되게 함

   -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생활의 습관화가 필요하다 /

     습관화된 행동은 고치기 어렵다 / 일기 쓰기를 습관화하다

습관(習慣) :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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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x츠바사 8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3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 유키×츠바사 8

 타카하시 신 글·그림

 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타카하시 신 님이 빚은 만화책 《유키×츠바사》(대원씨아이,2014)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거친 사회에 시달리면서 아프고 슬픈 아이들이 나오는 《유키×츠바사》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만든 모습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만든 모습입니다. 나쁘다 좋다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세워서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입니다.



- ‘옛날부터 줄곧 쭉 전하고 싶었던 말도, 잊어버리고 싶은 일도, 눈처럼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5쪽)

- ‘하찮은 우리에게 정신 팔리는 법조차 없이 우리의 한숨도, 모습도 요란한 소음 속에 너무도 쉽게 사라져서 돌아갈 곳 잃은 강아지처럼 나는 선배의 손을 잡고 계속 달렸다.’ (49쪽)




  아이는 어떤 목숨일까 생각합니다. 아이는 왜 태어났을까 돌아봅니다. 아이는 수험생이 되려는 목숨일까요, 아니면 아이는 입시준비생으로 살아야 할 목숨일까요. 아이는 입시지옥을 뚫고서 취업지옥도 가로질러야 할 목숨일까요.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생각합니다. 어른은 아이를 왜 낳았을까 돌아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입시지식을 알려주려고 낳았을까요, 아니면 어른은 아이가 대학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낳았을까요. 어른은 아이를 예비 대학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바라볼까요.


  만화책 《유키×츠바사》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몹쓸 짓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른한테 노리개가 되어야 합니다. 겉차림은 고등학생이지만, 알맹이는 ‘아이다움’을 건사하거나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떤 힘으로 사회에 맞서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기운을 내어 사회에 부딪혀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사회에 그대로 녹아들어 다른 어른들이 저희한테 했듯이 새로운 아이들을 똑같이 길들이거나 짓누르면서 괴롭혀야 할까요.





- ‘그렇구나. 이게, 아픔과 억울함과 외로움과 함께, 괴롭힘 당하는 시간이면 언제나 고등학교 옥상에서 들려왔던 만신창이의 노래.’ (66∼67쪽)

- ‘물장사 하는 여자? 근데 저 사람 거의 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츠바사. 저 녀석 이런 데서 알바 하고 있나? 그래서 늘 학교에도 지각하고.’ (84∼85쪽)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아이는 할 것이 없습니다. 어른이 다 짠 사회에서 아이는 할 일이 없습니다. 어른이 다 이룩한 사회에서 아이는 할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담임이나 수업을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학원에 갈는지 말는지, 학원에 간다면 어떤 학원에 갈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제 삶을 고르지 못하고, 제 길을 고르지 못합니다. 오늘날 같은 제도권 사회에서 아이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입히는 옷을 입습니다.


  아이는 어떤 목숨인가요. 아이는 어떤 숨결인가요.






- “다 알아! 보나마나 미성년자지? 난 경찰이니까 친하게 지내 두면, 상당히 이득일걸?” (106∼107쪽)

- ‘어느새 당연한 일처럼 아침이 돌아왔다. 눈 속에 파묻힌 안쪽 하구레 온천의 여명은 비록 산에 가려져 다소 늦지만, 아침햇살이 비추지 않는 날은 없다는 걸, 바보처럼 곧 중학교도 졸업하는 이제야 깨달았다.’ (136∼137쪽)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아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사랑’이 되려면, 이 사회는 없어져야 합니다. 어른이 만든 사회와 제도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에서 아이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회와 제도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걷어치워야 아이는 비로소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도 복지도 아이를 낳지 못해요. 정치도 경제도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문화나 예술은 아이를 낳을까요? 아닙니다. 그 어느 것도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는 힘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아이가 태어납니다.


  대통령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국회의원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나 기자나 지식인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꿀 아이들은, 여느 수수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만나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속삭일 때에 태어납니다.






- “그렇게 현실 속의 난 집안이 정해 놓은 레일 위에서 살기로 결심했지만, 난, 좀더 속도감 있는 삶을 살고 싶어.” (175쪽)

- “매일 매일 정말 매일, 울면서 강해지고 싶다고 기도했지. 그래서 싸움 잘 하는 사람을 동경해.” (188∼189쪽)

- “싸움은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도 고통을 느낀다는 게 중요하거든. 누구나 얻어맞으면 아프고, 때린 사람도 훨씬 아프니까. 그 아픔을 서로 느끼는 거지. 그런 마음이 없으면 싸움은 아무 의미도 없어.” (214쪽)



  만화책 《유키×츠바사》에 나오는 아이들이 노래를 듣습니다. 사회가 지은 노래가 아닌, 아이들이 지은 노래를 듣고, 어른들이 만든 노래가 아닌 사랑으로 태어난 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악기를 켜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신나게 노래를 나누고 싶습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불러서 함께 누리는 노래입니다.


  이제 ‘사회제도’는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와 경제와 교육 모두 그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삶을 바라보고 사랑을 키우는 꿈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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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인가 ‘떨이 모으기’인가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다룬다.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사고판다. 그러나, 헌책도 새책도 그저 똑같은 책이다. 물건을 사고팔 적에는 새책과 헌책이 값이 다르지만, 물건이 아닌 책을 손에 쥐어 읽을 적에는 ‘1000원을 주고 장만한 《태백산맥》’을 읽든 ‘10000원을 주고 장만한 《태백산맥》’을 읽든 똑같다. 1000원을 주고 장만한 책을 읽기 때문에 ‘마음 울림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꼭 10000원을 주고 장만한 책을 읽어야 ‘마음 울림이 생기’지는 않는다.


  책마을 일꾼은 ‘사람들한테 아름답게 읽힐 책’을 엮어야 한다. 책마을 일꾼부터 ‘두고두고 건사해서 앞으로 오백 해를 잇고 즈믄 해를 이을 만한 책’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들 가슴에 따순 햇볕처럼 스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보여야 한다. ‘이럭저럭 읽을 만하면서 값싼 책’이 아니라 ‘아무래도 읽어야겠다 싶도록 눈길을 끌어서 왕창 에누리하며 팔 책’이 아니라, ‘책다운 책’을 펴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책마을은 아직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려 힘쓰는 사람이 무척 많지만, 아름답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적잖은 사람들은 안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안 아름다운 책과 출판사에 많이 휘둘린다.


  반값으로 후려쳐서 파는 새책을 사서 읽든, 반값조차 아닌 70%나 90%까지 후려쳐서 파는 새책을 사서 읽든, 우리는 언제나 ‘책’을 사서 읽을 뿐이다. 그러니까, 책을 사서 읽으려 할 적에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장만하는가? 내가 두고두고 건사해서 죽는 날까지 곁에 둘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내가 기쁘게 읽어 마음을 살찌우고 삶을 환하게 빛내도록 이끌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로 사서 줄 만한 책을 장만하는가?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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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29. 2014.11.2. 글책 처음 읽기



  책순이가 처음으로 ‘글만 있는 책’을 읽으려 한다. 아니 꽤 읽는다. 어디까지 읽는가 보자 하고 지켜보니 제법 오래 읽는다. 그런데 ‘그림책’ 아닌 ‘글책’을 아이가 읽을 적에는 글책에 나오는 ‘잘못 쓴 말’을 모두 바로잡아 줄 수 없다. 그림책에서는 몽땅 손질해서 읽히지만, 글책은 책을 손질할 수 없다. 글만 있는 책에 죄 죽죽 긋고 새 낱말을 적어 넣으면, 이때에는 책읽기를 아예 할 수 없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온통 ‘잘못 쓰는 말’투성이라 할 만하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면서 아름답게 쓰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 아이가 마음 놓고 읽을 만한 동시집이나 동화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이원수나 권정생이나 백석이나 현덕이나 임길택은 이럭저럭 낫지만, 이분들 글에도 ‘잘못 쓴 말’이 제법 있다. 이를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알아차리는 어른은 매우 드물다. 그러면, 우리 책순이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글책에서는 몇 군데만 더러 짚어 준다. 아이가 글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모든 말을 다 알아듣지는 않는다. 그저 글씨를 보고 읽을 뿐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글투 가운데 아이가 입에 담아서 읊는 말이 있으면, 그때 넌지시 알려줄 수 있다. 아무쪼록, 책순이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고, 아름다운 넋을 가꾸며, 아름다운 말로 생각을 지을 수 있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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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없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자존’은 세 가지인데, 이 가운데 ‘自存’은 “(1) 자기의 존재 (2) 자기 힘으로 생존함”을 가리키고, ‘自尊’은 “(1)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킴 (2) 자기를 높여 잘난 체함”을 가리킨다. 《부모의 자존감》이라는 책은 이 가운데 어느 뜻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까. 아마 ‘自尊 2’을 빼고 다른 세 가지를 모두 가리킬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어버이한테서 받은 생채기를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다시 물려주려는 삶이 아닌, 나 스스로 나를 깨달아 나를 지키고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아야 할 노릇이요, 이러한 이야기를 담는 《부모의 자존감》이 되리라 느낀다. 아주 마땅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남한테서 사랑을 받기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한테서 사랑을 못 받기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남이 나를 사랑하든 말든, 나는 늘 나를 사랑할 노릇이다. 남이 나한테 사랑을 베풀든 말든, 나는 즐겁게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과 동무를 기쁘게 사랑할 노릇이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대서 나도 이웃을 안 도와주어도 되지 않는다. 아무렴.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니까 꼭 남들도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외쳐야 하지 않는다. 아무렴. 길은 스스로 열고, 삶은 스스로 짓는다. 그러고 보면, 《부모의 자존감》은 ‘어버이로서 홀로서기’를 이야기하는 책인 셈이다. 이 책은 ‘어버이답게 아름답기’를 다루는 책이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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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존감-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서
댄 뉴하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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