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철 추위



  해마다 대학입시철에 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그러려니 하고 여기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꾸 생각하니 그러한 생각대로 간다고 느끼기도 했다.


  오늘 문득 대학입시철을 돌아보다가 한 가지를 느낀다. 대학입시철은 사람들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다. 누구보다 앳된 푸름이들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다. 그런데, 꽁꽁 얼어붙는 마음이 너무 차갑다. 왜 그런가 하면, 대학입시철을 맞이하는 앳된 푸름이는 ‘시험을 잘 치르자’는 생각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 치르자’는 어디로 나아가는가? 바로, 내 동무보다 내가 더 점수가 잘 나오도록 ‘시험을 잘 치르자’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너도 나도 모두 시험을 잘 치르자는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라, ‘내가 너보다 점수가 잘 나오도록 시험을 잘 치르자’는 생각이나 마음이다.


  대학입시철을 맞이하면, 이러한 생각과 마음이 고빗사위를 맞는다. 가장 꼭대기에 이른다. 차갑디차갑게 굳고 딱딱한 생각과 마음이 모이니, 다른 어느 때보다 꽁꽁 얼어붙으면서 추운 날씨가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대학입시라는 굴레와 수렁이 사라지면 ‘대학입시철 추위’란 말끔히 걷히리라 느낀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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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20) 너무


아기 탄생 축하해. 사진 봤어. 너무 귀엽더라. 아이는 이름 그대로 한일 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

《이시카와 이쓰코/손지연 옮김-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 229쪽


 너무 귀엽더라

→ 참 귀엽더라

→ 아주 귀엽더라

→ 대단히 귀엽더라

→ 그야말로 귀엽더라

 …



  ‘너무’는 어떤 자리에 쓰는 낱말일까 생각해 봅니다. 외따로 ‘너무’로도 쓰지만, ‘너무하다’ 꼴로도 씁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고만 풀이를 하고, 이 낱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올바른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너무 크다”라든지 “너무 빨리 달리다” 같은 보기글을 싣지만, 이러한 보기글에서 어떻게 뻗어야 하는가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너무하다’ 뜻풀이를 보면, “비위에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도에 지나치게 하다”로도 쓴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뜻을 살피면, ‘너무’는 아무 자리에나 쓸 수 없는 낱말인 줄 조금 헤아릴 만할까요. “너무 작네”라든지 “너무 늦었어”라 말할 적에 어떤 느낌일까요? “아주 작네”라든지 “아주 늦었어”라 말할 적에는 어떤 느낌인가요?


 너는 오늘 매우 늦었구나

 너는 오늘 너무 늦었구나


  늦은 모습을 가리키면서 ‘매우’나 ‘몹시’나 ‘퍽’이나 ‘꽤’나 ‘아주’를 넣으면, 다른 느낌은 없이 ‘많이 늦다’를 힘주어 말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너무’를 넣으면, 늦은 모습을 나무라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무척 배불러서 더 못 먹어요 (?)

 너무 배불러서 더 못 먹어요 (o)


  배가 많이 부르다고 할 적에 “무척 배불러서 더 못 먹어요” 꼴로 말하는 일은 드뭅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무척 배불러요.”처럼 쓸 뿐입니다. “배불러서 더 못 먹어요”라 말할 적에는 어느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만큼보다 더 먹었다는 뜻이고, 이러한 자리에 ‘너무’를 넣을 수 있습니다. “무척 배부르구나”라 할 적에는 배가 많이 부르다는 뜻과 느낌만 나타내고, “너무 배부르구나”라 할 적에는 지나치게 먹어서 배가 많이 부르다는 뜻과 느낌을 나타냅니다.


  이리하여, “너무 귀엽더라”라 말한다면, 귀엽기는 한데 못마땅하다 싶도록 귀엽다는 뜻이 됩니다. 이를테면, 샘이 난다든지 골이 나는 느낌을 나타낸다고 할 만합니다. “너 말이야, 오늘 너무 예쁘잖니?” 하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은 예쁘게 안 보일 만큼 혼자 지나치게 예쁘다는 뜻과 느낌입니다. “오늘 몹시 예쁘구나” 하고 말한다면, 여느 때에도 예쁘지만, 오늘은 더욱 예쁘다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너무 좋아

 너무 기뻐


  요즈음 “너무 좋아”나 “너무 기뻐”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무척 많이 늘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때와 곳을 가려서 써야 합니다. “너무 좋아”나 “너무 기뻐”는 반가움이나 고마움이나 좋음이나 기쁨하고는 동떨어지는 이야기를 밝히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갈 길이 너무 멀구나”라든지 “너무 높아서 못 올라가겠어”처럼 써야 알맞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라 말한다면, 마음속으로는 좋다고 느끼지 않지만 비아냥거리거나 투덜거리는 말씨입니다. “너무 기뻐”라 말한다면, 마음으로는 안 기쁘지만 입으로만 기쁜 척하는 말씨입니다.


  ‘너무’는 ‘너무하다’ 꼴로도 씁니다. ‘너무’라는 낱말을 어느 자리에 써야 할는지 헷갈린다면, ‘너무하다’를 넣으면 한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네가 한 짓은 너무하지 않니

 너무한다 싶도록 나를 괴롭히는구나

 나를 깔보다니 너무하네요


  갓 태어난 아기가 귀엽다면 “참 귀엽더라”라든지 “대단히 귀엽더라”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아기가 귀엽지 않다고 느낀다면 “너무 귀엽더라”처럼 말하면 됩니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갓 태어난 아기 축하해. 사진 봤어. 참 귀엽더라. 아이는 이름 그대로 한일 두 나라를 잇는 다리 같은 사람으로 크길 바라


“아기 탄생(誕生) 축하(祝賀)해”는 “갓 태어난 아기 축하해”나 “아기가 태어났다니 기뻐”로 손질합니다. “한일 간(間)의 가교(架橋) 역할(役割)을 하는”은 “한일 두 나라를 잇는 다리 같은”이나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 같은”으로 손보고, ‘성장(成長)하길’은 ‘크길’이나 ‘자라길’로 손봅니다. ‘가교’나 ‘역할’은 일본 한자말이고, ‘성장’도 일본사람이 아주 흔히 쓰는 한자말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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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87. 어둠이란 있을까



  사진을 찍는 일을 놓고 흔히 ‘빛과 어둠’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빛과 그림자’를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며, ‘하양과 까망’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이러한 말이 맞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말은 조금도 맞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은 아주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과 밤’을 말합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된다고 합니다. ‘해와 달’도 말하지요. 해가 지면 달이 뜬다고 말해요. 그러나, 달빛이란 처음부터 따로 없어요. 해가 달을 비추어 생기는 빛이기에, 달빛은 정작 달빛이 아니라 ‘햇빛’입니다. 햇빛을 달에 대고서 볼 뿐입니다.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란 무엇일까요? 빛을 비추면서 생기는 ‘빛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라고 하는 ‘새로운 빛’이 생깁니다. 아니,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은 ‘수많은 빛결 가운데 한낱 조그마한 조각’이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사진으로 찍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바라봅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람을 찍을 때에는 오직 사람만 봅니다. 나무를 찍을 적에는 오직 나무만 봅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저 그러한 줄 알 때에, 비로소 ‘사진으로 아로새기는 빛’이 어떠한 무늬요 갈래이며 숨결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안셀 아담스라고 하는 분은 ‘존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짓고 ‘빛을 가르는 틀’을 세웠습니다. 이녁은 오직 빛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시스템’은 ‘빛 계단’이나 ‘빛틀’이나 ‘빛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을 크게 아우르면서 보는 한편, 빛이 드리우는 때와 곳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빛조각을 조그맣게 따로따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오직 ‘사진’을 생각해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작품이 될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사진이 ‘전시장에 걸어서 비싸게 팔릴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이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이 사진이 ‘사회나 문화나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빛’만 바라볼 뿐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사진을 찍는 우리는 ‘사진’과 ‘빛’을 이루는 ‘삶’과 ‘사랑’을 바라보면서 슬기롭고 따스하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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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놀기 (사진책도서관 2014.11.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네 살 작은아이는 집에서든 길에서든 들에서든 도서관에서든 그저 콩콩 뛰고 통통통 달린다. 일곱 살 큰아이도 네 살 적에는 제 동생처럼 그야말로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거나 달렸다. 다만, 일곱 살이 되고 보니, 뛰거나 달릴 적에는 뛰거나 달리지만, 동생과 달리 가만히 서서 책에 흠뻑 빠지는 재미를 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달리다가 우뚝 멈춘다. 다시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달린다. 또 우뚝 멈춘다. 이러다가 다시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달린다. 이 아이들더러 ‘뛰지 말라’고 해도 될까? 이 아이들한테 ‘달리지 말라’고 해도 될까?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지 않아야 할 곳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다칠 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만 다치지 않고, 문명 사회가 무너질 만한 것도 많다. 이를테면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아이들이 뛰거나 달릴 수 없다. 송전탑 둘레에서 아무것이나 만질 수 없다. 고속도로를 가로지를 수 없고, 골프장에서는 꽃송이 하나조차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도서관이나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건물이나 이런저런 곳에서 뛰지도 말고 달리지도 말라고 이르거나 윽박지른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된다고 말한다. 옛날 같으면 어른들은 꼭 한 마디만 했다. “얘들아, 밖에 나가서 놀아라.” 그러면, 아이들은 학교 밖이나 도서관 밖이나 집 밖에서 얼마나 마음껏 뛰어놀 만할까?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신나게 뛰놀고 싶을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학교 골마루에서 그야말로 개구지게 뛰놀고 싶을밖에 없구나 싶다. 왜냐하면, 길이나 골목이나 동네나 집에서 도무지 뛰거나 구르거나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고무줄놀이를 물려주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온갖 놀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물려받거나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뛰거나 달리지도 못한다.


  도서관을 꾸린다고 할 적에 ‘폐교’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무엇이었나 하고 가만히 돌아본다. 다른 무엇보다 운동장 때문이다. 폐교 자리에 도서관을 세우면, 운동장은 아이들 놀이터가 될 수 있다. 어른한테는 너른 운동장이 이야기터요 쉼터이면서 쉼터가 된다.


  요즈음은 농약을 너무 많이 쓸 뿐 아니라, 농약이 몸에 나쁜 줄 아예 잊는 사람조차 많다. 시골에서 농약 안 치는 곳을 찾기 아주 어렵다. 그러나, 시골에서도 폐교 자리에는 농약을 안 친다. 아이와 어른 모두 걱정없이 뒹굴거나 뛰놀 뿐 아니라, 풀을 만지고 숲을 누릴 만한 곳은 시골에서 폐교 자리라고 느낀다.


  나는 어릴 적에 뛰놀기를 몹시 즐겼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그야말로 날마다 쉬잖고 뛰어다녔다. 학교는 나한테 놀이터였다. 동네도 놀이터이지만, 운동장이 드넓고, 골마루가 긴 학교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로 여겼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도서관을 놀이터로 삼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도서관을 책터요 놀이터요 쉼터요 조그마한 숲으로 느낄 수 있도록 꿋꿋이 가꾸고 싶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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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차린 뒤



  밥을 다 차린 뒤 으레 사진기를 찾는다. 찬거리가 푸지든 몇 없든 한두 장 사진으로 건사한다. 곁님이랑 아이하고 누리는 밥이 어떠한가 돌아본다. 처음에는 밥차림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을 안 했지만, 우리 밥차림을 수수하게 사진으로 담자고 생각한 어느 날부터 밥차림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은 손으로 수저를 들어 입으로 넣으면서 먹을 뿐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고 눈으로 빛깔과 무늬를 바라보는구나 하고 느낀다. 똑같은 밥과 반찬이어도 접시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겉모습으로만 밥차림을 따질 수 없다. 밥 한 그릇으로 몸을 살찌우려는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느낀다. 밥 한 그릇을 빌어 마음을 담고, 밥 한 그릇을 거쳐 마음을 나눈다.


  손이 바쁘면 아이들을 부른다. “벼리야, 보라야, 아버지한테 사진기를 가져다주렴.” 아이들은 사진기 하나를 둘이 함께 든다. 작은아이가 혼자 들 만한 무게이지만, 두 아이는 놀이를 하듯이 사진기를 천천히 나른다. “자, 사진기 가져왔어요.” “고마워.”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수저를 든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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