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집게놀이 1 - 세발자전거에



  작은아이가 빨래집게놀이를 한다. 진작 이 놀이를 했다. 큰아이도 어릴 적에 빨래집게놀이를 꽤나 즐겼다. 어느 날 빨래를 널려고 집게를 찾으니 모조리 어디론가 사라지기 일쑤인데, 이때에 으레 큰아이가 빨래집게로 머리카락이나 옷을 잔뜩 집어서 놀아서 안 보였다. 이런 놀이를 작은아이가 어느새 물려받는다. 아니, 물려받는다기보다 아이들 몸에 이러한 ‘놀이 유전자’가 있을는지 모른다. 세발자전거 손잡이에 빨래집게를 잔뜩 꽂으며 노는 모습을 보다가 허허 웃는다. 아버지더러 웃으라고 이렇게 놀는지 모른다. 4347.11.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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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사이먼 베틀북 그림책 90
바바라 매클린톡 지음, 문주선 옮김 / 베틀북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7



내가 너 때문에 산다

― 아델과 사이먼

 바바라 매클린톡 글·그림

 문주선 옮김

 베틀북 펴냄, 2007.10.10.



  동생한테는 누나가 있어서 즐겁습니다. 누나한테는 동생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둘은 서로 보듬고 아끼면서 하루를 마음껏 즐깁니다. 누나는 칠칠맞은 동생을 건사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상냥하게 웃으면서, 때로는 부아를 내면서, 예쁜 동생을 데리고 이곳저곳 나들이를 다닙니다.


  바바라 매클린톡 님이 빚은 그림책 《아델과 사이먼》(베틀북,2007)에 나오는 아델과 사이먼은 서로 아끼는 사이좋은 누나와 동생 사이입니다. 누나는 동생을 돌보다가 으레 골이 납니다. 제발 네 물건을 아무 데나 흘리면서 잃지 말라고 말하지만, 동생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줄줄이 흘립니다. 어디에서 잃는지 하나도 모르고, 잃었어도 근심을 하지 않아요. 장갑 한 짝을 떨어뜨려도 다른 한 짝이 아직 남았다 말하고, 다른 한 짝마저 어느새 길에 흘립니다.





.. 아델과 사이먼은 길모퉁이 채소 가게에서 비스킷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아주머니는 사과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사이먼이 아델의 옷을 잡아끌었어요 ..  (6쪽)



  일곱 살 아이가 네 살 동생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졸음이 얼굴에 가득한 네 살 동생은 잠자리로 파고들면서 말합니다. “나, 누워서 읽을래.” 일곱 살 아이는 동생이 바라는 대로 잠자리에 누워서 읽도록 해 줍니다. 그림책을 들고 와서 동생한테 종알종알 읽어 줍니다. 일곱 살 아이는 ‘책 읽어 주기’를 오래오래 합니다. 한 권 읽고 두 권 읽고 세 권 읽고, 거침없고 지치지 않습니다.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칠 일이 없습니다. 참말 즐기는 놀이라면 고단할 턱이 없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라면 지치지 않고 고단하지 않아요. 늘 웃음이 피어납니다. 늘 따스한 손길과 눈길이 되어 마음 가득 기쁜 웃음이 샘솟습니다.





.. “있잖아, 누나. 내 장갑 한 짝 못 봤어?” “또야?” 둘은 장갑을 찾아 여기저기 다녔어요.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지요. 그래도 사이먼은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아직 한 짝이 남아 있잖아요 ..  (12∼13쪽)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살고, 아이는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삽니다.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삽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손이 되고, 너그러운 마음이 됩니다.


  그림책 《아델과 사이먼》은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꼬물꼬물 앙증맞으면서 애틋한 그림이 가득한 책에는 숨은그림찾기 같은 얼거리이면서, 두 아이가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동네 모습이 넉넉하게 흐릅니다. 두 아이는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이웃을 만납니다. 두 아이(가 아닌 동생 혼자)는 온갖 물건을 흘리지만, 따순 이웃은 이 아이(가 아닌 동생 혼자)가 흘린 물건을 찬찬히 찾고 주워서 집으로 가져다줍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제자리로 갑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제길로 흐릅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제대로 짝을 찾습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제 넋을 빛냅니다.




.. “누나, 내일도 나 데리러 올 거지?” “응, 그래야지.” 아델이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사이먼은 누나가 잔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얼른 잠들어 버렸답니다 ..  (31쪽)



  그림책을 덮습니다. 나한테도 사랑스러운 형이 한 사람 있습니다. 우리 형한테도 사랑스러운 동생이 한 사람 있을 테지요. 우리 집 곁님한테는 사랑스러운 동생이 두 사람 있습니다. 우리 집 곁님을 사랑스러운 언니와 누나로 여기는 동생은 오늘도 저마다 제 삶자리에서 즐겁게 하루를 빚을 테지요.


  서로 아끼는 마음이 모여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마을을 이룹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지구별을 이룹니다. 4347.11.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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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전라도닷컴> 2014년 11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집에서 먹는 무화과



  시골과 도시는 어떻게 다를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와 곁님은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지냅니다. 첫째 아이는 도시에서 태어나 네 살 적부터 시골에서 살고, 둘째 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셋째 아이는 이듬해에 시골에서 태어납니다. 나와 곁님은 도시에서 살던 지난날을 그릴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도시살이를 그리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첫째 아이만 하더라도 도시에서 태어나 지낸 이야기를 얼마 못 떠올립니다.


  시골에서는 한 해 두 해 흐르는 결을 날마다 새롭게 느낍니다.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를 느끼고, 밭자락에서 돋는 풀(나물)을 새롭게 만나며, 해마다 봄에 찾아오는 제비를 새삼스레 마주합니다. 해마다 똑같은 씨앗을 논밭에 심더라도 해마다 다른 기운을 느껴요. 철마다 다른 기운을 느끼고, 달마다 다른 기운을 느껴요.


  도시에서는 한집에서 열 해나 스무 해를 살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삯을 치르며 지내는 집이라면, 다달이 치를 삯이나 해마다 오르는 전세에 살림이 기우뚱합니다. 도시에서는 한집에서 다섯 해나 열 해나 스무 해를 살더라도 ‘달라지는 결이나 흐름’을 잡아채기 어려워요. 한집에서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살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이쯤 살면 재개발 소리가 튀어나오면서 집이고 나무이고 몽땅 갈아엎습니다. 이른바 ‘고향’을 누릴 수 없는 도시입니다.


  고향이 없는 도시와 고향이 있는 시골은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보다 삶이 다릅니다. 고향이 있는 시골이란, 언제나 아늑한 보금자리입니다. 고향이 없는 도시란, 언제 어디로 떠나거나 옮겨야 할는지 까마득한 나그네입니다. 도시에서는 늘 ‘새로운 집으로 옮긴다’고 말하지만, 새로운 집이란 도시에 없어요. 모두 똑같은 집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건물 모양새로는 새로움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낳지 않거나 이야기를 짓는 터전이 아니라면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기에는 좋겠지요. 그런데, 나그네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스스로 건사할 수 없습니다. 이곳저곳 떠돌기 때문입니다. 한집을 아늑한 보금자리로 삼아서 지내는 시골사람은 어느새 ‘토박이’가 됩니다. 토박이는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스스로 건사합니다. 토박이는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일구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제 보금자리에서 길어올리고,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제 삶터에서 부릅니다.


  올가을에 우리 집에서 ‘우리 뒤꼍 무화과나무’ 열매를 기쁘게 얻습니다. 무화과나무 곁에 있는 모과나무도 아이들 머리통만 한 굵고 단단한 알을 베풉니다.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불기까지 ‘우리 집 무화과’를 즐깁니다. ‘우리 집 감’도 즐깁니다. 아이들을 불러 무화과알을 받거나 모과알을 받거나 감알을 받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키가 더 자라면 손을 뻗어 무화과를 딸 테고, 팔다리에 힘이 붙으면 나무를 타서 감을 따리라 생각해요.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선 바람은 꽤 선선하고, 시월에서 십일월로 넘어서는 바람은 퍽 쌀쌀한데, 아침에 해가 떠서 한낮이 되면 볕이 퍽 포근합니다. 설렁설렁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싶은 이즈음, 마당과 뒤꼍과 옆밭에 새로운 싹이 오릅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돋는 봄풀이요 봄나물입니다. 봄풀이니까 가을풀도 될는지 모릅니다. 여름이 저물어 겨울이 다가오는 들과 숲은 우리한테 푸른 숨결을 나누어 주고 싶어 가을나물을 베풀는지 모릅니다. 봄까지꽃을 훑고 갈퀴덩굴을 똑똑 따며 민들레잎을 살짝살짝 끊습니다. 보들보들 보드라운 가을풀을 뜯어 비빔밥을 합니다.


  냠냠 맛있게 밥 한 그릇 비운 뒤, 익산에서 조촐히 살림을 가꾸는 문영이 님이 쓴 《내 뜰 가득 숨탄것들》(지식산업사 펴냄,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시골아이였고, 아이들 어머니였다가, 이제 정갈한 살림과 겨레말을 보듬고 싶은 넋을 가꾸는 작은 할머니 문영이 님은 “온누리는 보이지 않는 제 씨앗 사랑으로 꽉 짜여 있어, 그 힘으로 모든 숨탄것들이 살아가지만, 식물이나 동물에게서 애틋한 그 속내가 보일 때, 마음대로 심고 마음대로 쳐대는 사람이란 교만도 고개 숙는다(41쪽).” 같은 이야기를 적습니다. 살림 꾸리던 이야기, 아이들 돌보던 이야기, 밭 가꾸는 이야기, 나물과 꽃이랑 얽힌 이야기를 알뜰살뜰 여밉니다.


  할머니 한 분이 쓴 책은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학자가 들려주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할머니 한 사람이 쓴 책은 할머니 삶입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문학이나 예술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들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시골 아이와 시골 어른 마음자리에 들내음이 고루 스밀 수 있기를. 아이들과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시골내기와 도시내기 마음밭에 들노래가 찬찬히 퍼질 수 있기를. 가을꽃을 똑똑 끊어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두 손에 꽃을 들며 바람을 가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거듭합니다. 온누리에 고운 이야기꽃이 가득 필 수 있기를.


  슬기로운 할머니는 언제부터 슬기로울까 궁금합니다. 슬기로운 할머니는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까 궁금합니다. 나는 머잖아 할아버지가 되어 우리 아이들과 새로운 아이들한테 어떤 슬기나 이야기를 물려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는 사람이 어버이일까요. 아이와 함께 씨앗을 심는 사람이 어버이일까요. 아이와 함께 보금자리를 가꾸는 사람이 어버이일까요. 그러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아이와 함께 나무를 노래하고, 아이와 함께 씨앗을 사랑하며, 아이와 함께 숲집을 돌볼 줄 알 때에 어른이 되리라 느낍니다. 어디에서나 누구나 ‘우리 집 나무’와 ‘우리 집 열매’를 누린다면 생각을 아름답게 지어서 하루를 알차게 사랑하리라 봅니다. 4347.10.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도서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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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54) 표하다表 1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까지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제인 구달/박순영 옮김-희망의 이유》(궁리,2000) 9쪽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 참으로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 참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더없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 무척 고맙다는 뜻을 밝히고 싶다

 …



  “의견을 나타내다”를 가리키는 외마디 한자말 ‘表하다’라 한다면, 이 낱말 앞에 ‘사의(辭意)’나 ‘조의(弔意)’나 ‘경의(敬意)’나 ‘의사(意思)’ 같은 낱말을 넣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낱말에 쓰인 ‘意’는 바로 ‘의견(意見)’이라는 말마디에 쓰인 ‘意’하고 같기 때문입니다.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사의를 나타내다”나 “조의를 밝히다”나 “경의를 밝히다”나 “의사를 밝히다”처럼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의·조의·경의·의사’ 같은 한자말도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사의를 표하다 → 그만두겠다고 말하다 . 물러나겠다고 하다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다 → 유족한테 안됐다고 말하다

 찬성의 뜻을 표하다 → 찬성한다는 뜻을 나타내다 . 찬성한다고 밝히다

 경의를 표하다 → 우러른다고 말하다 . 받들어 모시다

 엇갈린 의사를 표하고 → 엇갈린 뜻을 밝히고


 여느 한자말이든 외마디 한자말이든, 쓸모가 있으면 쓸 노릇입니다. 어떠한 한자말이든 쓸모가 없다면 쓰지 않을 노릇입니다. 쓸 만하기에 쓰고, 쓸 만하지 않기에 안 써야 올바릅니다. 이냥저냥 쓴다든지 얼렁뚱땅 쓴다든지 남들이 쓴다고 따라서 쓰는 일은 조금도 알맞지 않아요. 말뜻을 하나하나 살피고, 말느낌을 곰곰이 되씹으며, 말쓰임새를 찬찬히 헤아려야 합니다. 쓸 만하지 않은데 자꾸 쓰니까 얄궂은 말투가 퍼질 뿐 아니라, 옳지 못한 말버릇에 익숙해집니다. 4336.10.16.나무/4342.8.6.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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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기 앞서, 이제까지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더없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를 시작(始作)하기 전(前)에”는 “이야기를 꺼내기 앞서”나 “이야기를 하기 앞서”나 “이야기를 펼치기 앞서”로 다듬어 봅니다. ‘진심(眞心)으로’는 ‘참으로’나 ‘더없이’로 손보고, ‘감사(感謝)’는 ‘고마움’으로 손봅니다.



표하다(表-) : 태도나 의견 따위를 나타내다

   - 사장에게 사의를 표하다 /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다 / 찬성의 뜻을 표하다 /

     경의를 표하다 / 그런 식으로 엇갈린 의사를 표하고 나선 것은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592) 표하다表 2


뿐만 아니라 어미 마돈니나에게 늘 존경을 표했다

《엘케 하이덴라이히/김지영 옮김-검은 고양이 네로》(보물창고,2006) 17쪽


 어미에게 늘 존경을 표했다

→ 어미를 늘 섬겼다

→ 어미를 늘 깍듯이 모셨다

→ 어미를 늘 고이 모셨다

→ 어미를 늘 우러렀다

→ 어미한테 늘 얌전히 굴었다

 …



  어미 고양이한테 어떤 모습인가 하고 밝히는 대목입니다. 어미 고양이를 ‘존경’한다는 말은, 어머 고양이를 ‘높이 여긴’다는 뜻입니다. ‘섬긴다’거나 ‘받든다’고 할 만해요. “깍듯이 모신다”거나 “어미한테 얌전히 굴다”나 “어미한테 늘 다소곳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9.7.23.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뿐만 아니라 어미 마돈니나를 늘 깍듯이 모셨다


“뿐만 아니라”처럼 적으면 틀립니다. “그뿐만 아니라”나 “이뿐만 아니라”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존경(尊敬)’이라는 한자말은 그대로 쓸 수 있을 테지만, ‘섬기다’나 ‘받들다’나 ‘높이다’나 ‘우러르다’ 같은 한국말로 풀어서 쓸 수 있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702) 표하다表- 3


그에 비해 크고 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왜 굳이 ‘사소한’ 것들을 다뤄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학자들도 있다

《강성민-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2004) 33쪽


 의문을 표하는 학자들

→ 궁금해하는 학자들

→ 묻는 학자들

→ 물음표를 찍는 학자들

 …



  아리송하구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묻습니다. 아무래도 알쏭달쏭하니까 묻습니다. 왜 이러나 싶어 궁금하다고 여깁니다. 궁금하다고 말하며, 궁금하기에 묻습니다. 4339.11.10.쇠/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보다 크고 바쁜 일이 가득 쌓였는데, 왜 굳이 ‘하찮은’ 것들을 다뤄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에 비(比)해 크고 급(急)한 문제(問題)들”은 “그와 견줘 크고 서두를 문제들”나 “그보다 크고 바쁜 일이”로 다듬습니다. “산적(山積)해 있는데”는 “쌓였는데”나 “넘치는데”나 “많은데”로 손보고, ‘사소(些少)한’은 ‘작은’이나 ‘자잘한’이나 ‘하찮은’으로 손보며, ‘의문(疑問)’은 ‘궁금함’으로 손보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는’으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39) 표하다表 4


그렇다고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오숙희-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그린비,1991) 12쪽


 지지를 표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 따르는 쪽도 아니었다

→ 옳다 말하지도 않았다

→ 맞다고 하지도 않았다

 …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지지’를 그대로 두면서, “그렇다고 내 생각에 손뼉치며 지지를 밝히는 모습도 아니었다”처럼 고쳐쓸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렇게나마 고쳐쓰려고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반갑습니다. 처음부터 빈틈없이 가다듬거나 추스르자면 만만하지 않으나, 이와 같이 하나하나 살피면서 말마디를 갈고닦는다면, 시나브로 말마디뿐 아니라 생각마디까지 아우를 수 있습니다. 살갑게 아우르고 아리땁게 아우르며 싱그러이 아우릅니다.


 내 생각에 손뼉치며 맞장구치는 모습도 아니었다

 내 뜻에 힘껏 손뼉치며 맞다고 하는 쪽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매무새도 아니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생각을 열면서 말길을 엽니다.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 한 줄 갈고닦습니다. 차근차근 한 마디씩 손질하고, 천천히 한 줄씩 새롭게 적습니다. 4342.8.6.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렇다고 내 생각에 기꺼이 손뼉을 치며 옳다 하지도 않았다


‘의견(意見)’은 ‘생각’으로 다듬습니다. ‘적극적(積極的)으로’는 ‘힘껏’이나 ‘기꺼이’나 ‘손뼉치며’로 손질하고, ‘입장(立場)’은 ‘쪽’이나 ‘모습’으로 손질해 봅니다. ‘지지(支持)’는 앞뒷말을 헤아리면서 ‘따르다’나 ‘옳다고 여기다’나 ‘맞다고 이야기하다’ 들로 풀어내 줍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7) 표하다表 5


인디언은 부족의 주신이 준 옥수수밭에 늘 감사를 표했다

《조지프 코캐너/구자옥 옮김-잡초의 재발견》(우물이 있는 집,2013) 223쪽


 늘 감사를 표했다

→ 늘 고마워 했다

→ 늘 고맙다고 인사했다

→ 늘 고맙다고 노래했다

→ 늘 고맙다고 얘기했다

 …



  한자말 ‘감사’를 자꾸 쓰기 때문에 ‘表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이 자꾸 뒤따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한국말 ‘고마움’을 쓸 적에도 “고마움을 표하다”처럼 엉뚱하게 쓰는 사람이 늘어요.


  고맙다고 말할 적에는 “고맙다고 말하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고맙다는 뜻을 밝히려면 “고맙다는 뜻을 밝히다”라 해야 올발라요. 보기글에서는 옥수수밭을 지으면서 고맙다고 밝히는 이야기인데, 인디언 부족에서는 말로만 고맙다고 나타낼 수 있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수 있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노래했다”나 “고맙다고 얘기했다”나 “고맙다는 뜻에서 잔치를 열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인디언은 부족에서 섬기는 신이 준 옥수수밭을 늘 고마워 했다


“부족의 주신(主神)”이라고만 적으면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부족에서 섬기는 신”이나 “부족에서 모시는 높은 신”쯤으로는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감사(感謝)’는 ‘고마움’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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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82) 약간의 4


사방이 담으로 둘러져 있고, 패랭이꽃이라도 한 뿌리 심어져 있는 햇살이 잘 드는 이 작은 뜰을 사이에 두고 이웃과 약간의 공간을 두게 된다

《조르주 뒤크로/최미경 옮김-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눈빛,2001) 70쪽


 이웃과 약간의 공간을 두게 된다

→ 이웃과 조금 틈을 둔다

→ 이웃과 살짝 틈을 둔다

→ 이웃과 얼마쯤 떨어져 지낸다

→ 이웃과 어느 만큼 떨어져 지낸다

 …



  내가 사는 집과 이웃이 사는 집이 꼭 맞붙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이에 조그맣게 뜰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마당이나 고샅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두 집은 마당이나 고샅, 또는 뜰이나 텃밭을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집니다. 두 집은 살짝 떨어져 지냅니다. 서로 어느 만큼 떨어진 채 오순도순 어울려 살아갑니다. 4339.4.20.나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온통 담으로 두르고, 패랭이꽃이라도 한 뿌리 심은 햇살이 잘 드는 이 작은 뜰을 사이에 두고 이웃과 살짝 떨어져 지낸다


‘사방(四方)’은 ‘온통’이나 ‘둘레가’로 다듬고, “한 뿌리 심어져 있는”은 “한 뿌리 심은”으로 다듬습니다. ‘공간(空間)’은 ‘자리’나 ‘틈’으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72) 약간의 5


사실 드렁허리를 교실에서 애완동물로 기르기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소노다 마사하루/오근영 옮김-교실 일기》(양철북,2006) 49쪽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 웬만큼 용기가 있어야 했다

→ 적잖이 용기를 내야 했다

→ 제법 씩씩해야 했다

→ 꽤 씩씩해야 했다

 …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가리키는 한자말 ‘용기(勇氣)’입니다. 용기를 말한다면, 용기가 대단한 사람이 있을 테고, 용기가 얼마 없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보기글에서는 용기가 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용기가 좀 있어야 한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약간의 용기”가 아닙니다. 한자말 ‘용기’를 한국말 ‘씩씩함’으로 고쳐서 쓸 적을 헤아려 봅니다. “약간의 씩씩함”처럼 말을 할 사람이 있을까요? 얼토당토않은 이런 말투를 슬기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4339.10.20.쇠/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만 드렁허리를 교실에서 애완동물로 기르기에는 조금 용기를 내야 했다

다만 드렁허리를 교실에서 기르며 귀엽게 여기자면 조금 씩씩해야 했다


‘사실(事實)’은 “털어놓고 말하면”으로 손볼 낱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다만’이나 ‘그저’로 손보아도 됩니다. ‘필요(必要)했다’는 ‘내야 했다’나 ‘있어야 했다’로 다듬습니다. ‘애완동물(愛玩動物)’은 그대로 둘 수 있고, ‘귀엽게 돌보는 짐승’이나 ‘귀엽게 여기는 짐승’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20) 약간의 6


약간의 걷기를 감수하는 부지런한 주차습관이 환경적으로 우수하다

《박용훈-도로에서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수문출판사,1994) 68쪽


 약간의 걷기를 감수하는

→ 웬만한 길은 걷는

→ 웬만하면 걷는

→ 멀지 않다면 걷는

→ 조금 멀어도 걷는

 …



  보기글은 여러모로 어설픈 짜임새입니다. 임자말이 ‘주차습관’인데, 한국말은 이렇게 안 씁니다. ‘임자말(주차습관) + 풀이말(우수하다)’로 엮는 한국말 얼거리에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금 멀어도 걷도록’ ‘차를 대는 버릇을 들이는’ ‘부지런한 몸가짐이어야’ ‘훌륭히 환경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을 밝히려는 보기글이라고 느낍니다. 이러한 뜻을 제대로 밝히려면 글짜임부터 몽땅 손질해서 새로 써야지 싶어요.


  생각해 보셔요. “약간의 걷기를…” 하고 쓰는 말은 얼마나 엉성한가요.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가 어지럽게 섞인 이러한 말투를 똑똑히 깨달아 올바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9.11.26.해/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조금 멀어도 걷는 부지런한 몸가짐으로 차를 대야 환경을 살린다

웬만한 길은 걷는 부지런한 몸가짐으로 차를 대야 환경을 지킨다


‘감수(甘受)하는’은 “달게 받아들이는”이나 “기꺼이 받아들이는”이나 “거리끼지 않는”으로 손질하고, ‘주차습관(駐車習慣)’은 ‘차를 대는 버릇’으로 손질합니다. 그런데, “환경적(環境的)으로 우수(優秀)하다”는 무슨 소리일까요.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일는지, 아니면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는 소리일는지 궁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35) 약간의 7 : 약간의 공격적인 태도


이렇게 빈틈없는 모습은 처음 봐. 심지어 약간의 공격적인 태도까지

《기선-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3》(서울문화사,2006) 145쪽


 약간의 공격적인 태도까지

→ 퍽 공격스러운 모습까지

→ 제법 치고 나오기까지

 …



  공격스러운 모습을 조금 엿볼 수 있으면 “조금 공격스러운”이나 “살짝 공격스러운”처럼 적으면 됩니다. 많이 매섭지 않고 조금 매서우면 “조금 매서운”이라 하면 되고, 아주 얌전하지 않고 살짝 얌전하구나 싶으면 “살짝 얌전하다”고 하면 돼요.


  우리는 “약간의 핑계를 대자면 말이야” 하고 말하지 않아요. “핑계를 조금 대자면 말이야”처럼 말합니다. “그 사람은 건망증이 있더라” 하고 말하지, “그 사람은 약간의 건망증이 있더라” 하지 않습니다. 찌개를 끓일 때에는 “소금을 좀 넣어야겠어”라 합니다. “약간의 소금을 넣어야겠어”라 하지 않습니다.


  한편, 이 보기글을 더 헤아리면, 놀이나 운동을 할 적에 ‘공격스러운’ 모습이라면, 가만히 있거나 맞은편이 들어올 적에 맞받는 모습이 아니라, 먼저 ‘치고 나간다’거나 ‘치고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4339.12.6.물/4347.11.1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렇게 빈틈없는 모습은 처음 봐. 게다가 제법 치고 나오기까지


‘심지어(甚至於)’는 ‘게다가’나 ‘더구나’로 다듬습니다. “공격적(攻擊的)인 태도(態度)까지”에서는 ‘태도’라는 낱말을 덜고 ‘-적’을 떼어 “공격스럽기까지”나 “치고 나오기까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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