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11.11. 큰아이―파랑 볼펜



  파랑 볼펜을 즐겨쓰는 그림순이는 볼펜 한두 자루쯤 아주 빨리 쓴다. 아버지한테서 건네받은 지 얼마 안 된 듯싶은데 볼펜 여러 자루가 다 닳는다. 쉬잖고 그리고, 다시금 그리니, 그야말로 볼펜이 남아나지 않는다. 크레파스나 빛연필도 그려서 닳아 없앤다. 큼지막한 종이에 그리면서 놀기도 하지만, 손으로 종이를 알맞게 잘라서 꼬물꼬물 앙증맞게 ‘그림꾸러미’를 엮으면서 놀기도 한다. 한참 그림놀이를 하다가 다른 놀이를 하면서 마룻바닥에 그림꾸러미와 볼펜을 덩그러니 놓는다. 차츰 기우는 낮햇살이 스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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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1.8. 큰아이―파란 집에서



  파랑을 좋아하는 큰아이는 그림을 그릴 적에 으레 파랑 물결을 이룬다. 파랑 빛연필과 파랑 크레파스와 파랑 볼펜을 손에 달고 산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어릴 적에 까망 말고 다른 빛깔을 못 썼다. 어른들은 우리더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적에 밑금을 ‘까망’으로만 하고 다른 빛깔은 나중에 입히라고 했다. 일기장이든 공책에 까망 아닌 다른 빛깔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참으로 크게 나무랐다. 왜 온갖 빛깔 가운데 마음에 드는 빛깔로 그림을 못 그리게 했을까. 왜 수많은 빛깔 가운데 까망 하나만 손에 쥐도록 했을까. 파랑으로도 빨강으로도 노랑으로도, 푸른 빛깔과 짙푸른 빛깔과 옅푸른 빛깔로도 얼마든지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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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73] 손재주



  손으로 살살 실을 자아 옷을 짓고

  손으로 착착 땅을 일궈 밥을 짓고

  손으로 삭삭 글을 써서 책을 짓고



  처음부터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손재주는 손을 놀리는 동안 차근차근 늡니다. 즐거운 숨결을 손에 불어넣습니다. 기쁜 노래를 손에 담습니다. 신나는 꿈을 손에 싣습니다.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면서 두 손에 따스한 기운이 넘칩니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서 두 손에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납니다. 글을 쓰고 책을 지으면서 두 손에 너그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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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1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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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2



위에 있으니 즐겁니?

―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8.7.15.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를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에서 낳아서 키우셨다고 하는데, 나는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이 어떠했는지 아주 어렴풋하게만 그립니다.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곱 살 즈음부터 지낸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여러모로 많이 떠오릅니다. 이무렵 나는 이 집이 ‘집’이라고 여겼습니다. 작은아버지 사는 집을 찾아가고, 고모님이나 이모님 댁을 찾아가고 나서야 ‘다른 집’이 있는 줄 알았고, 집마다 살림살이가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하고 견줄 수 없이 커다란 집을 보았고, 우리 집보다 더 작은 집을 보았습니다. 방과 마루가 따로 없이 한 칸짜리로 이룬 그야말로 조그마한 집을 보았고, 두 층으로 지은 집을 보았어요.



- 지구를 따라 도는 상·중·하층 3개로 구분된 거대한 링 시스템 맨션. 우리들은 그 거대한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6쪽)

-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려선 장소를 찾고 싶다고.’ (34쪽)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른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조그마한 집에서 옹송그리면서 살고, 왜 누구는 커다란 집에서 널널하게 살까요. 왜 누구는 햇볕이 안 드는 집에서 살고, 왜 누구는 마당이 있는 커다란 집에서 살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와 지내면서 우리 집과 다른 집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왜 우리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무는 왜 크고작은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집을 모릅니다. 아기는 커다란 집이든 자그마한 집이든 살피지 않습니다. 아기는 오직 어버이 사랑을 헤아립니다. 오로지 어버이 사랑을 바라봅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혼자 서고 걸음마를 익히며 뛰놀 적에도 그저 어버이 사랑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집이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는 살피지 않습니다.



-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살고 있는 링 시스템 높이가 고도 35000미터나 되는데 그 벽을 닦는 거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있어요. 실제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 목숨 보장, 작업복 관리에 꽤 비용이 들어서, 의뢰인에게 청구하는 금액도 커지고, 그래서 언제나 의뢰하는 쪽은 정부나 상층에 사는 고소득자들뿐이에요. 누나는 창문 닦는 일을 왜 의뢰했어요? 누나는 우리랑 같은 하층 주민이잖아요?” (45∼46쪽)

- “조금 닦인 틈새로 바깥을 봤어. 얼굴 딱 붙이고 말이야. 살짝 보인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 진짜 하늘과 땅. 하층이면 인공 빛밖에 없잖아. 초등학생이 돼서 중간층에 갈 수 있기 전엔, 자연광이 좋은 이유를 잘 모르지.” (47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08) 첫째 권을 읽습니다.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더는 살 수 없어 지구 바깥에 띠 같은 집을 길게 두른 뒤, ‘위·가운데·아래’ 세 층으로 나누어서 지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바깥으로 떠나야 한 사람들은 ‘세 계급’으로 나눈 셈입니다. 사람들은 세 가지 신분으로 갈리는 셈입니다.


  만화에만 나오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지구별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반지하와 옥탑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삯이 밀려 괴로운 사람이 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에도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 집삯뿐 아니라 한 해 집삯에 이르는 돈으로 하룻밤을 묵는 호텔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쓰는 밥값을 어떤 사람은 한 끼니 먹는 데에 쓰기도 합니다.


  먼 앞날, 지구별이 아주 망가져서 더는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때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이곳에서 신분과 계급으로 층이 갈립니다. 위와 아래가 갈립니다. 누군가는 위와 아래에 있고, 누군가는 위로 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 ‘나에게 지금 밝은 방 같은 건 없지만 외롭지도 않아.’ (75쪽)

- “나는 결국 날 위해서 하는 거다. 이 일이 좋아졌으니까. 일단은 좋아하게 되는 게 우선. 그 다음은 스스로 생각해라.” (184쪽)




  위에 있는 사람은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은 흐뭇할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슬플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사랑이 없이 메마르거나 캄캄할까 궁금합니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다 한들 ‘위’라는 자리는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위’라는 자리에 있더라도, 즐겁지 않고 사랑을 모르며 갑갑한 굴레에 갇혀 쳇바퀴질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아래’라는 자리에 있으나,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즐거울까요?


  스스로 노래하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웃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스스로 춤추고 꿈꾸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짓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토성 맨션’이라는 곳에서 아래층에 있는 이들이 ‘위층 유리창’을 닦아 주지 않으면, 위층 사람은 늘 어둡고 퀴퀴하면서 차디찬 삶을 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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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장만하려는 마음



  내 넋이 한결 즐거우면서 따스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책 한 권을 장만할 적에 아무 책이나 장만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한 책을 살핍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던 어느 책을 어느 때에 퍽 싸게 판다면 장만할 수 있지만, 내가 장만할 책은 값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로 헤아립니다.


  내 몸이 오늘 하루 기쁘게 기운을 내어 내가 바라는 일과 놀이를 씩씩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밥을 짓습니다. 그래서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 아무렇게나 짓지 않습니다. 가장 넉넉하고 푸지게 누릴 수 있는 밥을 짓습니다.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면서 밥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조용조용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배추를 썹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릇과 접시를 소담스럽게 밥상에 올립니다.


  별을 올려다봅니다. 나무를 바라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습니다. 이 가을에 새로 돋는 풀잎에는 어떤 기운이 서리나 하고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뜯습니다. 가을에 새로 돋은 풀잎은 내 몸에 어떤 숨결로 스며들까 하고 생각하면서 칼로 송송 썰어서 살살 무칩니다. 늦가을 찬바람에도 씩씩하게 돋는 풀처럼, 늦가을 찬바람쯤 기쁘게 맞을 수 있는 몸이 될 테지요. 늦가을 눈부신 별빛과 포근한 햇볕처럼 빙긋 웃는 숨결이 될 테지요.


  내가 즐겁게 일구는 삶이 내 이웃한테 노래가 되어 퍼집니다. 내 이웃이 기쁘게 가꾸는 삶이 나한테 노래가 되어 찾아옵니다. 가는 노래는 오는 노래가 되고, 가는 사랑은 오는 사랑이 됩니다. 책상맡에 놓은 책 한 권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읽는 책은 머잖아 아이들이 읽는 책이 됩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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