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시집 한 권 읽는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달리는 20분 동안 시집을 내처 읽는다. 읍내에서 볼일을 마친 뒤 우리 마을로 돌아오려고 군내버스를 다시 기다리면서 시집을 마저 읽는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에 맞추어 시집 한 권 읽기에 넉넉하다. 시골자락 이야기가 흐르는 《정선아리랑》 노랫가락이 제법 구성지다. 읍내에서 20분을 달린 군내버스가 우리 마을 어귀에서 멈춘다. 마을 할매와 할배가 한 분씩 이 버스를 타고 함께 돌아왔다. 두 분은 나한테 “올라가시요잉.” 하고 인사하신다. 그렇구나 이곳 시골 어르신은 서로 이렇게 인사말을 하고, 젊은 나한테도 이런 인사말을 들려주는구나. 어디를 ‘올라가’느냐고 따질 까닭은 없다. 그저 나도 이웃 할매와 할배도 저마다 이녁 보금자리로 ‘올라갈’ 뿐이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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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
박세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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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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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4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2.11.25.



  눈빛으로 마음을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낯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입으로 말을 꺼내도 마음을 못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찬찬히 글로 길게 적어서 보여주어도 마음을 못 헤아리는 사이가 있습니다.


  왜 누구는 마음을 읽고, 왜 누구는 마음을 못 읽을까요. 왜 누구는 마음을 즐거이 읽으려 하지만, 왜 누구는 마음을 꽁꽁 닫아걸까요.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유택 교수가 누리는 삶을 그리는 만화책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는 셈일까요. 유택 교수는 머잖아 정년퇴직을 헤아릴 만한 나이로 접어듭니다. 유택 교수는 이제껏 겪거나 헤아리지 못하던 일도 겪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됩니다. 제때에 맞추어 움직이고, 제자리에 맞게 생각하는 삶이지만, 앞으로는 제때와 제자리가 모두 흔들리거나 어긋날 수 있다고 하나둘 느낍니다.





- “그런데 테라야마. 교실 안에서는 실내화를 신는 게 어떨까?” (7쪽)

- “테라야마. 너는 왜 언제나 웃고 있지?” “유택이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왜냐면,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내 일이니까.” (12쪽)

-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테라야마에게 물어 보려고 마음 먹었다. 너는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니?’ (17쪽)



  무엇이 궁금하면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는 유택 교수는, 궁금한 대목이 있으면 수수께끼를 풀 때까지 생각하고 거듭 생각합니다. 어느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를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기 때문에, 실마리가 어느새 살며시 찾아옵니다. 이를테면, 둘레에서 여러 가지 일이 터지면서 실마리를 깨닫습니다.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 저런 일에 부딪히면서 넌지시 실마리가 됩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해님과 같은 웃음입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해님과 같이 웃는 사람은 이런 웃음을 스스로 느끼지 않아요. 그저 해님처럼 웃을 뿐입니다. 해님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따사로이 어루만지듯이, 해님웃음을 짓는 사람은 둘레 사람 누구한테나 맑고 밝으면서 따스한 숨결을 베풉니다.





- “줄곧 물어 보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응? 뭐지?” “당신은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슨 소린가 했더니.” “네?” “아마 당신하고 비슷할 거야. 당신은 인간을 연구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인간을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31쪽)

- “하나 물어 보세. 자네가 내 집에 오고 1주일 간, 이야기를 들으며 쭉 궁금하게 여긴 게 있었는데, 좋은 역이란 뭔가?” “좋은 역?” (73쪽)

- “어떻게 너는 그렇게 언제나 태양처럼 웃을 수 있지?” “응?” “가르쳐 줘! 네 웃음의 비밀을!” (82∼83쪽)



  웃음은 심리학으로든 무슨무슨 학문이나 과학으로든 풀 수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삶은 심리학이나 교육학이나 이런저런 학문이나 과학으로나 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연구 대상’이 아니라, ‘목숨’이요, ‘사랑을 받아 꿈을 키우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으며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는 과학이나 학문으로 밑뿌리를 밝힐 수 없습니다. 왜 노래가 나오는지, 왜 어떤 노래가 어느 때에 흘러나오는지, 이런저런 것을 놓고 ‘사례 연구’는 할 수 있을 테지만, 막상 학문이나 과학을 하는 이는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밥을 짓거나 옷을 깁거나 집을 짓는 사람은 스스럼없이 언제나 노래를 불러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는 어버이는 늘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동무와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노상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 “아, 이를 어쩐다. 난 그런 골치 아픈 건 모르고, 그렇게 시들시들한 얼굴 하지 말고. 자! 이 당근이나 먹어 봐! 맛이 기차다고!” (84쪽)

- ‘나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산타의 존재를 믿을 뻔했던 순간의 그 흥분 때문일까. 이유가 있는 답인지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무렵부터, 내 연구 대상에 사람의 마음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124쪽)

- “자네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마 하나일 걸세. 이제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의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왜냐하면 그토록 자존심이 강한 자네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냈으니까.” (184쪽)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허물이나 울타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안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온갖 허물이나 울타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읽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을 안 읽기에 어깨동무를 안 합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서로 삶을 북돋아 줍니다. 마음을 안 읽으면서 그예 등을 돌립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요. 낮에는 해와 파란 빛깔을 보고, 밤에는 별과 까만 빛깔을 보아요. 눈을 들어 멀리 살펴요. 낮에는 들과 숲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와 밤구름을 보아요.


  우리 둘레에서 흐르는 바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여겨들어요. 우리 둘레에서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와 잠자리는 무슨 이야기를 밝히는지 눈여겨보아요. 이러면서 삶을 생각해요. 나는 어떤 목숨으로 태어났을까요. 내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목숨으로 살아왔을까요. 이 실마리를 푸는 길에 슬기로운 사랑이 씨앗 한 톨로 자랍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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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 - 일본 문학 다림세계문학 20
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이경옥 옮김, 이토 치즈루 그림 / 다림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9



어른과 아이가 함께 지을 삶

―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

 후쿠다 다카히로 글

 이토 치즈루 그림

 이경옥 옮김

 다림 펴냄, 2008.3.6.



  아이들 사이에서 잠들 적에 아이들은 으레 따사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살가운 손길로 내 가슴을 토닥입니다. 종달새처럼 종알종알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내가 이 아이들한테 종달새처럼 노래를 들려주면서 지냈기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까, 아니면 내가 종달새처럼 노래를 들려주지 않았어도 아이들 마음은 언제나 노래와 같을까 하고.


  낮에 읍내에 다녀옵니다. 오늘은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고 나 혼자 다녀옵니다. 아이들은 이동안 집에서 도란도란 재미있게 놀면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고마우면서 예쁜지 모릅니다. 요 며칠 동안 아이들이 “꼬기 밥 먹고 싶어.”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돼지고기이든 소고기이든 닭고기이든 물고기이든, 어떤 고기라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온 뒤, 곧바로 고기를 볶습니다. 먼저 감자와 고구와와 당근과 배추를 자박자박 볶습니다. 이러고 나서 고기를 얹어서 함께 볶고, 곧이어 양배추와 감을 잘게 썰어서 섞은 뒤, 고깃국물이 밸 즈음 밥을 풀어서 따뜻하게 익힙니다.


  자, 맛있게 먹자. 넉넉하게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 가요코 선생님의 수화는 물결처럼 아름답다. 선생님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마저 잊곤 한다. 듣지 못하는 나보다도 몇 배는 자연스럽다 … 5학년 때는 여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6학년이 되자마자 일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다. 말을 잘하는 아이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등부 전교생을 모두 합쳐도 여덟 명밖에 되지 않는 이 농아 학교에 있는 것보다 일반 학교로 전학 가는 편이 그 아이에게는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  (10, 13쪽)



  겨울을 앞둔 가을바람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그러나 해가 높이 뜨는 낮에는 제법 따스합니다. 낮에는 평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높은 하늘과 예쁜 구름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몽글몽글 단단해지는 동백나무 꽃망울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한겨울에도 몇 아이는 붉은 꽃송이를 터뜨릴 테고, 곧 다가올 겨울이 지나면 새봄에 다시금 멋진 꽃잔치를 베풀 테지요.


  우리 집 동백나무는 해마다 키가 자랍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도 해마다 키가 자랍니다. 해마다 그늘을 넓히고, 해마다 가지를 뻗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나무를 지켜보면서 즐겁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결을 바라볼 수 있기에 마음 한 자락이 넉넉합니다. 앞으로 이 나무가 자라고 더 자라면 그야말로 멋진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새롭게 아이를 낳을 무렵에는 참으로 푸르게 우거진 보금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 우리 나무와 함께 푸른 숨결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자.



.. 언니는 말없이 다가와 불쑥 어깨부터 두드린다. 그리고 내가 불평하면 늘 빠르게 뭐라고 대답한 뒤 되풀이해 주지 않고 가 버린다. 빠르게 말하면 내가 못 알아본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 텔레비전에서는 처음 보는 여자 가수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금발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한 드레스. 엄마와 언니의 눈길이 텔레비전으로 옮겨 갔다. 어떤 가수일까?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저 가수들은 나와는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  (31, 36쪽)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멋진 누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베트남이든, 라오스이든 필리핀이든,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터전에서 태어나 자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따사로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늑한 삶터를 일구어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고속도로나 골프장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푸르게 우거진 숲과 들과 멧골이야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과 산업개발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른 꿈과 따순 사랑이야말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입시지옥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참다운 배움과 착한 가르침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지 싶습니다.


  후쿠다 다카히로 님이 글을 쓰고, 이토 치즈루 님이 그림을 넣은 청소년문학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다림,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꼭 이 책에 붙은 이름이 아니어도, 우리가 살림을 꾸리면서 삶을 짓는 이곳은 참으로 멋진 자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멋진 넋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슬기로우면서 해사한 숨결입니다.



..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이렇게까지 단어 공부를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농아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많은 단어들을 외우게 하려고 한다. 고헤이는 벌써부터 싫증을 냈고 나도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농아 학교에서는 다른 일반 초등학생들처럼 느긋하게 공부를 할 수 없는 걸까 … “가요코 선생님보다 몇 배나 빨라. 가요코 선생님은 늘 우리들 쪽을 보고 말씀하시지만 일반 학교 선생님들은 그렇지가 않아. 칠판에 글을 쓰면서 말씀하시거나 다른 곳을 보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어.” ..  (75, 80쪽)



  아스라한 옛날에, 이 나라 옛사람은 나라를 세워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나라를 세웠으면 이녁이 세운 나라를 아름답게 가꿀 노릇일 텐데, 서로 더 너른 땅을 누리려는 마음을 품고 다툼질을 일삼았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나 가야를 떠올려 보셔요. 왜 이들 나라는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고, 왜 자꾸 전쟁을 벌이면서 이웃나라 땅을 거머쥐려고 했을까요. 왜 서로 돕지 않고, 왜 서로 아끼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고구려는 만주로 뻗고 또 뻗으면서 다른 이웃나라를 짓밟기까지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고구려 영토 확장’이라 말하지만, 이는 ‘식민지 넓히기’와 똑같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으로 쳐들어오는 짓은 나쁘고, 고구려가 만주로 쳐들어간 짓은 좋다고 함부로 말해도 될까요? 칼이나 총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밟는 짓은 누가 해도 얄궂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곳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않고,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고 또 만들면서 이웃나라를 넘보는 짓은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 내가 그곳에 있는데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내 어깨 너머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엄마의 말이 끝나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건 나인데. 더운데도 땀도 닦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찬 보리차도 마시지 않고 쭉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엄마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내내 여기에 서서 엄마가 내게 말하기를 꼼짝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 나는 뒤를 돌면서 언니가 들고 있던 유리컵을 그대로 집어던졌다. 컵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거칠게 부서졌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크게 질렀다. 결코 말이 되지 않는,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하는 소리를 몸을 구부려 가면서 질러댔다 ..  (118∼119쪽)



  예부터 어느 나라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예부터 어느 나라이든 스스로 흙을 가꾸고 숲을 이루면 ‘자급자족’이 됩니다. 애써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야 ‘밥을 얻’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아서 종으로 부려야 ‘옷을 얻’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가 평화를 부릅니다. 싸움은 싸움을 부릅니다. 사랑은 사랑을 부릅니다.


  아이들한테 칼싸움을 가르치고 칼놀이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칼싸움과 칼놀이를 물려받아 ‘싸울아비’가 됩니다. 아이들한테 호미질을 가르치고 그림그리기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사랑과 꿈으로 보금자리를 짓는 슬기로운 넋을 가꿀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누구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겨야 할까요. 어른인 나부터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할머니가 직접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편안히 쉴 곳이 없다면 만들면 돼. 네가 바란다면 이 세상 어디든 네 마음에 드는 곳이 될 수 있을 거야. 단념하지 말 것. 꿈을 버리지 말 것. 자신을 믿을 것.’ ..  (171쪽)



  청소년문학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나》에 나오는 아이는 ‘소리를 거의 못 듣’습니다. 소리를 못 듣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이 아이한테 너그럽지 못합니다. 이 아이가 너무 괴롭도록 들볶습니다. 이 아이가 너무 외롭도록 다그칩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휘둘리게 밀어넣으면 누가 즐거울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굳이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서서 삶을 스스로 일구도록 가르칠 노릇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손수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면서, 삶을 손수 짓고, 사랑과 꿈을 함께 손수 짓도록 이끌 때에 아름다운 나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 슬기롭게 지을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태어난 이 지구별은 아름다운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기쁘게 꿈을 꾸면서 가꿀 사랑스러운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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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에 서면



  책방 앞에 서면 살짝 떨린다. 오늘 이곳에서 어떤 책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설렌다. 나는 어떤 책을 만날까. 나는 어떤 책을 손에 쥘까. 나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 나한테 찾아올 책을 알 수 없다. 새책방에서든 헌책방에서돈 모두 같다. 새로 나온 책 가운데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눈길을 받지 못한 책이 있기 마련이고, 헌책방 책시렁에 놓인 책 가운데 이제껏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책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책을 마주하든, 책을 알아볼 몫은 나한테 있다. 책을 아끼고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이다.


  책방 앞에 서면 큰숨을 한 차례 들이마신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뒤 눈을 즐겁게 다시 뜬다. 이러고 나서 책방 문을 연다. 기쁜 목소리로 책방지기한테 인사를 한 뒤 가방을 내려놓는다. 홀가분한 몸으로 책시렁을 찬찬히 둘러본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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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서 돌아가는 길



16절 그림종이 한 꾸러미

아이들이 노래하는 고기 한 꾸러미

국으로 끓일 버슷 한 꾸러미

이렁저렁 가방에 넣어

질끈 어깨에 멘다.


1700원 버스삯 손에 쥐고

16시 40분 군내버스

언제 들어오나 기다린다.


저잣마실 마친 할매와 할배

저마다 이녁 마을 돌아갈

버스 꽁무너 기다린다.



4347.1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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