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124. 2014.11.16. 풀밥접시에



  읍내에서 꽤 오랜만에 튀김닭을 사먹으면서 조금 남았다. 남은 것은 알뜰히 챙겨서 집으로 가져왔고, 이튿날 아침에 고구마와 감자와 동글배추와 양파와 버섯을 고루 삶은 뒤 마지막에 ‘딱딱하게 굳은 튀김닭’을 얹어서 가볍게 익힌다.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 기운이 밴 ‘딱딱하게 굳은 튀김닭’은 새로운 맛이다. 그러고 보면, 튀김닭에 고구마맛이 스미도록 해도 재미있을 듯하다. 삶은고구마를 으깨어 반죽에 섞은 뒤 튀김옷으로 삼아도 재미있는 맛이 나오리라 본다. 두 아이가 찬찬히 숟가락을 놀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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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손길



  네 손길을 타면서 책이 빙긋 웃는다. 즐겁게 웃으면서 들여다보니 책이 너를 보며 웃는다. 내 손길을 타면서 책이 싱긋 웃는다. 기쁘게 웃으면서 들여다보니 책이 나를 보며 웃는다.


  아직 손길을 타지 않은 책은 뻣뻣하다. 아직 손길을 못 탄 책은 빳빳하다. 손길을 한 번 탄 책은 부드럽다. 손길을 두 번 탄 책은 보드랍다. 손길을 세 번 탄 책은 살갑다. 손길을 네 번 탄 책은 사랑스럽다.


  내 손길을 탄 책을 아이들이 물려받아 읽는다. 아이들 손길을 탄 책을 나중에 새로운 아이들이 물려받아 읽는다. 책 한 권은 한 사람한테만 읽히지 않는다. 여러 사람한테 두루 읽히려고 빚는 책이다. 기나긴 해에 걸쳐 꾸준하게 읽히려고 빚는 책이다.


  나무 한 그루는 즈믄 해를 너끈히 산다. 책 한 권이 즈믄 해를 가기는 쉽지 않으나, 책에 깃든 이야기는 즈믄 해를 너끈히 흐를 수 있도록 엮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즈믄 해를 살아낼 만한 이야기일 때에 책에 담아서 나눌 만하다.


  한두 해가 흐른 뒤에는 잊히는 이야기라면, 열 해쯤 지난 뒤에는 찾는 손길이 없는 이야기라면, 백 해쯤 뒤에는 들여다볼 값어치를 못 느끼는 이야기라면, 즈믄 해쯤 뒤에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할 이야기라면, 이러한 이야기는 책으로 찍혀 나와도 우리 가슴에 남지 못한다. 앞으로 즈믄 해를 흐를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니라 한다면, 오늘 이 나라에서 아무리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하더라도 어떤 꿈이나 사랑도 끌어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교과서나 문제집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 그런데, 이런 교과서나 문제집은 사람들 가슴에 얼마나 남을까. 고작 열 해 뒤만 보더라도 교과서나 문제집이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너무 많은 아이와 어른이 교과서와 문제집에 얽매인다. 책다운 책을 손에 쥐지 못한다. 책다운 책을 사귀지 못한다. 입시와 대학교와 학벌과 도시 문명과 돈벌이에 얽매여 그만 교과서와 문제집에 사로잡히고 만다.


  책을 읽는 손길이 삶을 가꾸는 손길로 흐른다. 책을 아끼는 손길이 이웃을 사랑하는 손길로 흐른다. 책을 엮어 아이한테 물려주는 손길이 보금자리와 마을을 아름답게 보듬는 손길로 거듭난다. 오늘 이곳에 책 한 권이 있다. 4347.11.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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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76] 시인은



  겨울에도 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그마한 들풀이 올망졸망

  고개 내민 모습을 찾는다.



  시인이 되는 사람은 스스로 설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이로구나 싶어요. 스스로 설 자리를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 자리에나 서지 않고, 어떤 자리에 서든 스스로 그곳에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겠지요. 들풀과 같은 사람이 시인입니다. 들풀과 같은 이웃을 사귀려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 모두 들녘을 푸르게 덮는 고운 들풀과 같습니다. 4347.11.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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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밥



쌀알과 함께 폭 지어 먹고

감자랑 같이 푹 삶아 먹고

떡하고 섞어 고이 볶아 먹고

그냥 칼로 썩썩 썰어 먹고

겨우내

고구마밥 한 그릇

냠냠



4347.1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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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15. 우리가 듣는 노래 (2014.9.25.)



  노래가 흐른다. 아이들이 ‘노래 그림책’을 만지작거리니, 기계에 갇힌 노래가 끝없이 똑같은 가락으로 흐른다. 노래가 흐른다. 아이들은 노래 그림책을 만지작거리면서 저희끼리 늘 다른 가락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흐른다. 노래 그림책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 적에, 마당 한켠에 선 우람한 나무가 가지를 흔들면서 노래를 부른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노래한다. 풀벌레가 둘레에서 노래한다. 개구리도 노래를 한다. 마을고양이 몇 마리가 시끄럽다고 느끼는지, 우리 집 처마 밑 종이상자에 앉아서 낮잠을 자다가 길게 하품을 하며 다른 데로 간다. 아이들은 노래 그림책을 만지작거릴 뿐이지만, 수많은 노래가 골고루 흐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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