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3
알레산드로 가티 지음,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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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72


 

‘돈벌기’인가 ‘삶짓기’인가

―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알레산드로 가티 글

 줄리아 사그라몰라 그림

 김현주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4.10.10.



  돈을 버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일 뿐입니다. ‘돈벌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돈벌기는 그예 돈벌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돈벌기를 하는 어떤 사람은 ‘나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쁠까요? 아닙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쁘지 않고 ‘나쁘다고 할 만한 짓’을 하기 때문에 나쁩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을 두고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사랑스럽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을 놓고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름답게 돈을 벌 노릇이요, 사랑스럽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착하게 돈을 벌 노릇이고, 사이좋게 돈을 벌 노릇입니다. 이웃을 아끼면서 돈을 벌 노릇이요, 지구별을 가꾸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숲을 푸르게 돌보면서 돈을 벌 노릇이고,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돈을 벌 노릇입니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사랑이 자라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아름답게 나눌 돈이 태어납니다. 사랑스러운 삶일 적에 사랑스러운 노래가 흐르고, 사랑스러운 노래로 사랑스레 나눌 돈을 얻습니다.



.. 드디어 꼬마 페그의 머릿속이 완벽하게 정리됐다. 원래부터 민트 할아버지를 찾으러 도시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바보 같은 버스들이 여름 동안 내내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정말 실망이 컸다.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투덜이가 있으니 어쩌면 어마어마할지도 모르는 대모험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 “아클레토르페 씨요? 그 사람이 누구죠” “네, 저랑 함께 도시에 가고 있어요. 지금 저기 앉아 있잖아요.” 꼬마 페그가 아클레토르페 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그냥 곰인형이잖아요!” 단추 눈 경찰이 흘끔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33, 55쪽)



  ‘더 많은 돈을 남기기’가 아니라 ‘즐겁게 살기’가 꿈이고 삶이라면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커다란 회사를 꾸릴 적이든, 마을에 조그마한 가게를 꾸릴 적이든, 언제나 같습니다. 더 많은 돈을 남기면 더 많은 돈은 어디에 쓸까요? 다시 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쓸까요? 더 많은 돈을 더 많이 모으면, 이렇게 더 많이 모은 돈은 더욱더 많은 돈을 남기는 데에 쓰면 될까요?


  돈을 가지려 한다면, 1억이든 1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가질 수 있습니다. 가지려 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100억이나 100조를 가져서 무엇을 할 만할까 생각해 보셔요. 이렇게 돈을 모으고 나서야 꿈을 키울 수 있는지, 아니면 오늘부터 내 꿈을 지어서 누리려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돈을 버는 동안에도 누릴 수 있는 꿈을 생각해 보셔요. 그저 돈만 모으거나 버는 나날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도 언제나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꿈’이 되도록 삶을 지어 보셔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워서 날마다 누리는 사람이 나중에 돈을 모은 뒤에도 꿈을 펼치거나 이룹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돈을 모으고 나서도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는 채 다시 돈만 더 키우거나 불리고 맙니다.



.. 고속도로 갓길에서 보는 풍경은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와는 달리 아주 처량했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도랑 옆에 무심하게 자란 기다란 풀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진흙이 잔뜩 묻고 먼지까지 뒤집어써서 누렇게 된 데다가 주위에는 버려진 잡지, 빈병 등 갖가지 쓰레기들이 함께 나뒹굴었다 … 그랬다. 사실은 먹구름이 낀 게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지붕에 덮여 있었던 것이다! 꼬마 페그는 자세히 보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붕에 덮인 건 아니었다.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은 거대한 고가도로와 철길이었다 ..  (47, 79쪽)



  알레산드로 가티 님이 글을 쓰고, 줄리아 사그라몰라 님이 그림을 넣은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책속물고기,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쁜 회사’가 나오고 ‘우유를 팔지 않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나쁜 회사’에 ‘우유를 파는 일’이란 나쁜 짓이 될 테니 이렇게 안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나쁜 회사’는 왜 나쁠까요? 무엇이 나쁠까요? 어떻게 나쁠까요?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를 읽으면, 나쁜 회사라고 하는 곳이 무엇이 어떻게 왜 나쁜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짓을 하기에 나쁘다고 할 만한지 하나도 밝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유 회사’가 저지르는 나쁜 짓은 아이들이 알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나쁜 짓’까지는 몰라도 되고, ‘나쁜 회사’에 따지러 간 할아버지를 찾아나서는 ‘모험’만 들려주는 줄거리가 아이들한테 한결 재미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시골마을에서 젖소를 돌보는 씩씩한 가시내가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는 어린이입니다만, 할아버지가 만든 멋진 ‘자동차(그렇지만 몹시 느리게 달리는)’를 몰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도시로 찾아갑니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할아버지를 찾아내어 시골마을로 돌아옵니다. ‘나쁜 회사’가 어떤 나쁜 짓을 하는지 나중에 밝힌다고도 하는데 ‘신문에 나오는 한 줄짜리 글’로 두루뭉술하게 적을 뿐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씩씩한 가시내’가 움직이는 흐름에 맞추어 모험 이야기를 잘 풀어냅니다. 다만, 이 작품을 큰 틀에서 이끄는 ‘나쁜 회사’가 어떻게 왜 얼마나 나쁜가 하는 대목은 하나도 안 보여줍니다. 이야기를 푸는 눈길을 둘로 나누어서, 다른 한쪽에는 ‘나쁜 회사다운 나쁜 모습’을 찬찬히 밝힐 수 있어야, 시골 가시내가 누리는 모험 이야기가 더욱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이 아쉽습니다. 나쁜 회사 때문에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도시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가 나오는데, 정작 어떤 대목에서 무엇을 하느라 ‘도시에 있는 우유 회사’가 나쁜지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작품을 읽을 아이들도 책을 덮으면서 살짝 김이 샐 만하거든요.



.. “다른 길이 있어. 그런데 옷이 조금 더럽혀질 거야.” “그런 건 걱정 마. 나보고 ‘웅덩이랑 아주 친한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 … “계단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런데 부탁이 있어, 나도 함께 데려가 줘. 그리고 너희 농장에 나를 숨겨 줘.” 꼬마 페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카일의 제안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  (118∼119, 124쪽)



  한국에서 적잖은 ‘우유 회사’가 나쁜 짓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적잖은 우유 회사는 나쁜 짓을 저질렀습니다. 지난날 저지른 나쁜 짓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방사능 분유’가 있습니다. 소련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핵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동유럽과 서유럽 하늘을 덮었습니다. 이 때문에 동유럽과 서유럽에서는 퍽 오랫동안 ‘유럽에서 나온 우유’를 사고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젖소가 짠 젖에서 끔찍하도록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왔거든요. 이때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방사능 우유’를 ‘방사능 분유’로 가공해서 한국에 매우 싸디싼 값으로 팔았습니다. 이러한 ‘방사능 분유’가 한국에서 아주 많이 팔렸습니다.


  돈만 생각했기에, 돈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돈이 아닌 삶과 사랑과 꿈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나쁜 짓’이 불거집니다. 지난날에는 그런 나쁜 짓을 누가 알아채느냐 했을 테지만, 나쁜 짓은 열 해 뒤이건 스무 해 뒤이건 서른 해 뒤이건, 때로는 이백 해나 삼백 해 뒤이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도 나중에 환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도 열 해 뒤나 스무 해 뒤나 이백 해 뒤나 삼백 해 뒤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삶을 지어야지요. 어떤 삶을 지어야 할까요. 아름답고 사랑스레 삶을 지어야지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은 무엇일까요. 나와 네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꾸는 길이지요.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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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44. 말은 흐르지만 사회는 갇혀서

― ‘한국말’은 어디에서 있는가



  일본사람 사노 요코 님이 쓴 글을 윤성원 님이 한국말로 옮긴 《나의 엄마 시즈코상》(이레,2010)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106쪽에서 “남동생은 상처받은 마음을 동물을 통해 치유하려 했다. 사랑새를 애지중지하며 정성껏 돌보았다.” 같은 글월을 봅니다. 이 글월에서 ‘사랑새’라는 이름을 보고 살짝 놀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잉꼬(いんこ)’라는 일본말을 쓸 뿐, ‘사랑새’라는 한국말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잉꼬’라 말하면서, 이 이름이 일본말인 줄 알아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일본사람이 가리키는 이름 말고 한국말로 예부터 가리키던 이름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사람이 예부터 가리키던 한국말을 배우거나 들은 사람은 어느 만큼 될까요?


  그런데, ‘사랑새’라는 이름을 잘 살려서 옮긴 책은 “우리 엄마 시즈코”가 아닌 “나의 엄마 시즈코상”입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私の’로 적었을 테지만, 이를 한국말로 제대로 옮기자면 “내 엄마”라 하든 “우리 어머니”라 해야 올바릅니다. 왜냐하면, ‘나의’는 한국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내’와 ‘너·네’가 한국말입니다. ‘나의·너의’는 모두 잘못 쓰는 말입니다. “동물을 통(通)해 치유(治癒)하려 했다”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겉모양은 한글이지만 알맹이는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말로 제대로 적자면 “동물로 다스리려 했다”나 “짐승을 곁에 두어 달래려 했다”로 고쳐써야 합니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하며 정성(精誠)껏 돌보았다”는 겹말입니다. ‘애지중지’와 ‘정성껏’은 같은 뜻입니다. 무엇보다 ‘애지중지’이든 ‘정성껏’이든 한국말로 다시 옮기면 ‘살뜰히’나 ‘알뜰히’입니다. 두 가지 말을 함께 쓰고 싶다면, “사랑새를 알뜰살뜰 돌보았다”처럼 한국말로 제대로 적으면 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집에서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말을 어떻게 알려주거나 물려줄까요.


  학교는 ‘배우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교과서 지식만 배우는 곳이 되기 일쑤입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으면 배울 수 없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교과서는 대학입시에 얽매여 대학입시 지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다고 한다면 ‘대학입시 지식을 배우’는 셈입니다.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배우지 않습니다. 교과서 지식을 배울 뿐이니,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슬기롭게 배우지 못합니다.


  얼마 앞서 전남 고흥 도화면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학교 2학년 푸름이가 쓴 글에 “타인을 배려하라” 같은 말마디가 있어서, 이 말마디를 칠판에 적고 다른 푸름이한테 “타인을 배려하라”가 무슨 뜻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가 무슨 뜻인가 하고 물으니, 아무도 아무 말을 못합니다.


  왜 푸름이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가 무슨 뜻인지 아무 말을 못할까요? 아주 마땅합니다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같은 말은 이 말을 듣는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 어린이도 알아들을 말이요, 학교 문턱을 못 밟은 사람도 모두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이와 달리 “타인을 배려하라” 같은 말마디는 ‘한국말로 다시 풀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훈화라든지 지식인이 쓰는 글에 ‘타인’이나 ‘배려’ 같은 말마디가 흔히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곧바로 느끼거나 알 만한 말이 아닌 셈입니다. ‘다른 한국말’로 옮기거나 ‘한국말로 제대로’ 거듭 풀어야 하는 말인 셈입니다.


  한자말은 한자말일 뿐, 한국말이 아닙니다. 영어는 영어일 뿐, 한국말이 아닙니다. 일본말은 일본말일 뿐, 한국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한국말이 무엇인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하면서 지냅니다. 이러면서 한자말과 영어와 일본말이 뒤죽박죽 파고듭니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얼거리가 퍽 오랫동안 뿌리를 내립니다.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해방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백 해 동안 ‘시름시름 앓는 한국말’입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잘못 쓰는 낱말이나 말투’가 아주 많은 사람들 입과 손에 들러붙습니다. 틀림없이 잘못 쓰는 말이지만, ‘잘못인 줄 못 느끼’기도 하고, ‘잘못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매무새가 없’기도 합니다. 잘못 깃든 버릇대로 내처 달립니다. 잘못 물든 버릇을 바로잡아서 슬기롭고 똑똑하며 아름답게 거듭나려는 매무새를 찾아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오덕 님은 지난날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을 선보였습니다. 이 책은 ‘이대로만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 쓰는 말이 이렇게 많이 있다’고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러니, 하나하나 찬찬히 짚으면서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바라보아서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다스릴 줄 알아야 ‘말과 넋과 삶이 함께 살아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사람은 이녁 말마디를 하나부터 열까지 하루아침에 모두 뜯어고치거나 바로잡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녁 말마디를 날마다 한 가지씩 가다듬어서 찬찬히 바로잡거나 고칩니다. 어떤 사람은 이녁 말마디를 하나도 안 고치고 하나도 안 다듬습니다.


  말은 흐릅니다. 말은 흐르니 말은 언제나 새롭게 거듭납니다. 고인 말이란 없습니다. 갇힌 말도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얼마나 잘 흐르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학교와 사회와 정치와 문화는 부드럽게 잘 흐르는가요?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흐르는가요? 말은 사회를 고스란히 담습니다. 한국말이 한국말다움을 잃는다면, 한국 사회가 ‘한국 사회다움’을 잃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이 ‘한자말과 영어와 일본말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 시름시름 앓는다’면 한국 사회가 제자리를 못 찾고 이러저리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요?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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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하고 같이 잘래



  큰아이가 “아버지하고 같이 잘래!” 하고 노래를 부른다. 저녁나절에 면소재지 도화고등학교에 ‘글쓰기 강의’를 다녀온 뒤 집에서 다른 일을 좀 할까 싶었으나, 큰아이가 노래노래 부르는 터라,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면서 등허리를 살짝 펴기로 한다. 두 아이 머리를 쓸어넘기고, 두 아이 팔다리를 주무른다. 두 아이 이름을 넣어 자장노래를 고쳐서 부르기도 한다. 예쁜 아이 착한 아이 코코 잘 자렴 하고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살그마니 일어나서 옆방으로 가려 했는데, 그만 두 아이와 함께 나도 잠들고 만다. 몇 시간쯤 곯아떨어졌을까. 바깥일을 보고 들어오니 등허리가 꽤 결렸는데, 등허리가 거의 풀린다. 아이들은 아버지 몸을 알아보았을까. 고단할 적에는 좀 쉬어야 하니까 얼른 자라고 부른 셈일까. 큰아이는 이불을 걷어차며 잔다. 이불을 거두어 새로 여민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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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4.11.30. 큰아이―둘이 쓰기



  글순이는 동생더러 연필 위쪽을 잡으라 한다. 글순이는 연필 아래쪽을 단단히 쥐면서 글을 쓴다. 둘이 함께 쓰는 글이다. 글순이는 동생더러 글씨를 어떻게 쓰는지지켜보라 하는데, 동생은 손만 줄 뿐, 누나가 쓰는 글은 쳐다보지 않고 딴짓을 하면서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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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아, 고마워 네버랜드 과학 그림책 5
이마이 유미코 그림, 고바야시 마사코 글,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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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1



사랑스러운 이웃을 느끼며

― 눈물아 고마워

 이마이 유미코 그림

 고바야시 마사코 글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2.6.10.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내려설 적에, 처마 밑에서 으레 푸드득 소리가 납니다. 밤새 우리 집 처마 밑에 깃들던 딱새나 참새입니다. 가을에 바다 건너 따스한 나라로 건너간 제비는 야무지게 손질한 둥지를 석 채 남겼고, 이 가운데 두 채에 딱새 두 마리와 참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겨울나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날마다 나를 보건만 날마다 아침이면 푸드덕 날아서 대문 위로 드리운 전깃줄에 앉습니다.


  옛날과 견주면 시골에 남은 새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짓수도 옛날과 대면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시골에서 뜸부기나 후투티 같은 새를 보기는 몹시 어렵고, 흔하디흔하다던 종달새나 꾀꼬리를 만나기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렁조롱이를 어쩌다가 한 마리 스치듯이 만나지만, 매를 못 본 지 퍽 오래되었어요. 까치와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으레 보지만, 왜가리는 아직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따오기나 두루미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 “눈에 모래가 들어가서 너무 아팠어. 그런데 눈물이 나와서 모래를 빼 줬어.” ..  (8쪽)



  겨울로 접어든 남녘 시골마을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아침저녁으로 퍽 쌀쌀하게 바람이 불어,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얼음이 업니다. 그러나 이 얼음도 해가 차츰 높이 솟으면서 살살 녹을 테지요.


  뒤꼍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복숭아나무를 들여다봅니다. 겨울눈이 날마다 새삼스레 부풉니다. 마당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도 꽃망울을 단단하게 맺었는데, 겨울에도 따순 볕이 이레쯤 이어지면 곧바로 터지려고 하는지 새빨간 잎이 살짝 보입니다.


  낮에는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보고, 밤에는 별이 초롱거리는 하늘을 봅니다. 낮에는 파란 물결을 보고, 밤에는 까만 물살을 봅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시골자락도 고즈넉합니다. 가을까지 드문드문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었지만, 이제 풀벌레 노랫소리는 모조리 잠듭니다.


  아침에 마당을 둘러보다가 봄까지꽃이 앙증맞게 맺은 조그마한 꽃망울을 살핍니다. 어느새 꽃대까지 내놓았으니 곧 꽃송이를 터뜨릴 듯한데, 겨울에 싱싱 부는 찬바람에 어떻게 꽃잎을 열까요. 그러나, 찬바람도 내내 불지 않을 테고, 시나브로 포근한 볕살과 바람이 흐를 테니, 이 겨울에 우리 집 아이들은 이쁘장한 꽃손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 “엄마는 울보라고 흉보는걸.” 소라가 투덜대자, 눈물이 말했어요. “그건 마음의 눈물이야.” ..  (14쪽)



  이마이 유미코 님이 그림을 그리고, 고바야시 마사코 님이 글을 쓴 《눈물아 고마워》(시공주니어,2002)를 읽습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서 눈물이 나고, 슬픈 일이 있어서 눈물이 나며, 가슴이 시린 책을 읽으며 눈물이 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살몃살몃 들려줍니다. 날마다 눈물이 조금씩 흐르면서 눈을 뜰 수 있고, 눈을 눈물이 살포시 감싸기에 무엇이든 즐겁게 바라보면서 하루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볼을 타고 흘러야 눈물이 아닙니다. 볼을 타고 흐르지 않아도 우리 눈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차갑거나 메마른 사람은 눈물조차 없다고 말합니다만, 볼을 타고 흘리는 눈물은 없더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면, 두 눈에는 눈물이 꼭 있어요.


  그리고, 볼을 타고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지만 가슴으로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가슴으로 아끼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꿈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눈물이 있어요.



.. “소라야, 우리는 하는 일이 아주 많아. 그러니까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마음껏 울어도 돼.” 눈물은 가슴을 쫙 폈어요 ..  (25쪽)



  그림책 《눈물아 고마워》는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숨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은 수많은 숨결이 어우러집니다. 눈과 코와 입이 있습니다. 눈물이 있고 콧물이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이 있습니다. 눈썹과 머리카락과 나룻이 있습니다. 어느 하나 대수롭지 않은 숨결이란 없습니다. 모든 곳이 저마다 아름답고, 모든 숨결은 하나하나 새롭습니다.


  옆을 돌아보셔요. 우리 둘레에는 아름다운 이웃이 있습니다. 내가 알아보는 이웃이 있고, 내가 미처 못 알아본 이웃이 있습니다. 내가 알아보는 이웃이기에 더 살갑지 않습니다. 내가 미처 못 알아본 이웃이기에 안 살갑지 않습니다.


  눈을 감싸면서 맑은 빛을 보여주는 눈물처럼, 눈을 감싸다가도 마음을 적시는 뜨거운 기운을 밝히는 눈물처럼, 우리 둘레에는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습니다. 새 한 마리가 살가운 이웃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풀 한 포기가 반가운 이웃입니다. 구름 한 점과 별 하나가 모두 애틋한 이웃입니다. 나는 너한테 이웃이 되고, 너는 나한테 이웃이 됩니다. 눈물은 눈물꽃으로 피어나서 온누리를 맑고 밝게 보듬습니다. 4347.1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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