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교본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8



사진기를 어떤 마음으로 쥐는가

― 전쟁교본,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엮음

 이승진 옮김

 한마당 펴냄, 1995.5.3. (2011년 2월에 다시 나옴)



  우리 집 큰아이가 아직 첫돌이 되지 않았을 적을 떠올립니다. 여섯 달 즈음이던 큰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습니다. 일곱 달 즈음에는 혼자서 사진기를 켰고, 여덟아홉 달 즈음에는 두 손을 덜덜거리면서 사진기를 들고는 찰칵 하고 찍었습니다. 첫돌조차 안 된 아기로서는 사진기를 두 손으로 들며 찍기 퍽 어렵습니다. 손가락이 안 닿기 때문입니다. 첫돌 즈음에는 머리 위로 사진기를 들어올리면서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는 어릴 적부터 사진기가 익숙합니다. 사진기는 아이한테 놀잇감입니다. 이를테면, 지난날에는 사람들 누구나 시골에서 살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지기였기에, 지난날에는 아이라면 누구나 호미가 놀잇감이고 서너 살 즈음 되면 낫도 놀잇감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예닐곱 살에도 지게를 지고 싶어서 만지작거리고 열 살 언저리에는 ‘내 지게’를 아버지나 할아버지한테서 선물로 받았어요.


  아기 적부터 사진기를 만진 아이는 ‘한글’을 모르면서도 디지털사진기를 솜씨 있게 만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두 돌이 될 즈음부터 디지털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찍은 사진 들여다보기’를 할 줄 알았고, 사진기를 워낙 놀잇감으로 좋아하기에 조그마한 디지털사진기를 따로 장만해서 선물로 주었더니 ‘동영상 찍기’를 스스로 찾아내었어요. 이때부터 큰아이는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는 몸짓을 스스로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놉니다. 아버지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마실을 다니면,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서 한손에 디지털사진기를 들고 ‘바람을 찍’고 ‘구름을 찍’습니다. 나무를 찍기도 하고 풀과 꽃을 찍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식구는 시골마을에서 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늘 마주하거나 바라보는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풀과 꽃이 큰아이한테는 가장 가깝거나 살갑거나 반갑거나 사랑스러운 ‘사진감’이 됩니다.





- 스페인 해변. 뭍에서 나와 돌 많은 바닷가로 올라서면 여인들은 자주 발견한다네. 팔과 가슴에서 묻어나는 검은 기름을. 가라앉은 선박들의 마지막 흔적을.

- 그대, 신의 아름다운 창조물을 갖겠다고 신발이 벗겨지도록 미친 듯 치고받는 저 신사 분들. 서로들 더 잘났다고, 더 잔혹하다고 뽐내며, 그대를 강간할 권리를 더 갖겠다고 저러는 거라오.



  우리 집 큰아이는 2015년이 되면 여덟 살입니다. 이 아이는 사진기를 갖고 놀면서 한 가지를 알아차립니다. 아이가 담고 싶은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고 알아차려요. 사진기로 동생도 찍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찍습니다. 이웃도 찍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찍습니다. 곧 여덟 살을 맞이할 아이한테 사진기는 ‘모든 것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담도록 돕는 재미난 놀잇감’입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님은 시를 쓰고 사진을 함께 엮어서 1955년에 《전쟁교본,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라는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처음 나오고, 2011년에 다시 나옵니다. 책이름에 드러나듯이, 베르톨트 브레히트 님은 ‘사진이 저지르는 거짓말’을 ‘시’라는 문학을 빌어서 넌지시 밝힙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기록’이라는 이름을 받는 사진이지만, 이러한 이름과 달리 사진은 ‘거짓말을 하는 전쟁교본’이라고 살그마니 꾸짖습니다.


  참말 사진은 거짓말을 할까요? 참말 사진이 하는 기록은 거짓말일까요? 참말 사진은 전쟁에 이바지를 하거나 전쟁을 터뜨리는 구실을 맡을까요?


  사진책 《전쟁교본》에 나오는 여러 ‘우두머리(독재정권 지도자)’를 들여다보면, 사진은 거짓말도 할 수 있다고 알아차릴 만합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려는 이는 사진기를 손에 쥐면 사진기로 거짓말을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철공소에서 쇠붙이로 낫이나 호미를 만들지 않고 장갑차나 미사일이나 총알이나 비행기 따위를 만듭니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부추기려는 사람은 연필을 쥐어 종이에 글을 쓸 적에 ‘천황 만세!’라든지 ‘종군위안부가 되어라!’라든지 ‘카미카제가 되어 목숨을 바쳐라!’ 따위를 외칩니다.




- 오, 그대, 자식 걱정에 애태우는 여인이여! 우린 당신이 사는 도시 위로 온 사람들. 우리에겐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목표였다오. 왜냐고 묻는다면, 알아주오. 공포 때문이었다는 걸.

- 한 해변이 붉은 피로 물들어져야 했다. 일본, 미국, 그들 누구의 것도 아닌 해변이. 그들은 말한다. 서로 죽이라 강요받았다고. 그래, 나는 믿는다, 믿고 말고. 그러나 딱 하나 물어 보자. 누구로부터?



  온누리를 티없이 바라보려고 하는 어린이가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 아이는 사진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사진기로 삶을 지어서 놉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온누리를 휘어잡아 독재정권 문어발을 더 뻗으려는 어른이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 어른은 사진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전쟁에 미친 어른은 전쟁을 부르짖고 싶어서 사진기를 내세웁니다. 전쟁에 미친 어른은 총칼을 앞세워 사진가한테 ‘사람들이 전쟁에 나설 수 있도록 거짓 사진’을 찍으라고 시킵니다.






- 르포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공포스러운 무기가 되어 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자료들은 진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 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예전 대통령 한 분이 밀어붙인 4대강사업은 자그마치 22조 원이나 허투루 쏟아부은 바보짓이라고 드러났습니다. 이런 바보짓 이야기는 4대강사업을 밀어붙인 대통령이 물러나고 나서야 ‘예전에 4대강사업을 부추기면서 아주 훌륭한 정책이라고 외친 신문과 방송’까지 한목소리로 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함부로 밀어붙인 대통령한테 22조 원을 뱉어내라고 하는 목소리나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런 정책을 함께 머리를 맞대어 밀어붙인 지식인과 교수와 기자와 공무원한테 잘못을 묻는 목소리나 움직임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 글·그림·사진은 어떤 일을 벌였을까요. 이들은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사람들한테 ‘참말’을 밝히거나 보여주었을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감추거나 꾸몄을까요.


  《흐르지 않는 강》(눈빛 펴냄,2014) 같은 사진책이 나오고,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 같은 이야기책이 나옵니다. 이에 앞서 《나는 반대한다》(느린걸음 펴냄,2010)라든지 《4대강 X파일》(호미 펴냄,2011)이라든지 《강은 흘러야 한다》(미들하우스 펴냄,2009) 같은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대강에 부가 흐른다》(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2009) 같은 책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참말을 쓸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쓸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참말을 보여줄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보여줄까요.


  사진기를 어떤 마음으로 쥐는가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기는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말을 합니다. 사진기는 스스로 비틀기나 감추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스스로 비틀거나 감춥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르기(트리밍)를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름이나 파일에서 어느 대목을 숨기거나 지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필름이나 파일에 어떤 모습을 슬그머니 끼워넣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도 왜 거짓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일까요? 《전쟁교본》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읽습니다. 





- “여보게 형제들, 지금 무얼 만들고 있나?” “장갑차.” “그럼 겹겹이 쌓여 있는 이 철판으론?” “철갑을 뚫는 탄환을 만들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왜 만들지?” “먹고살려고.”



  전쟁은 독재정권 우두머리가 일으킨다고 하지만, 전쟁에 나서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전쟁무기는 우두머리 한 사람이나 전쟁을 꾀하는 몇몇 장군과 정치꾼이 만들지 않고 바로 ‘우리’가 만듭니다. 우리는 왜 총칼을 손에 쥐면서 군인이 되거나 공장에서 전쟁무기를 만들까요? 바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면서 전쟁 꼭둑각시가 되거나 허수아비나 총알받이가 됩니다. 우리 스스로 힘이 없다고 여기기에 전쟁 수렁에 빠지고, 개발바람에 휩쓸립니다.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정부에서 정책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입시지옥에 씩씩하게 맞서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과 전쟁을 부추기는 언론과 정책에 야무지게 손사래를 칠 때에 비로소 ‘거짓말’이 꽁무니를 뺍니다.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기에 바뀌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삶을 새롭게 바꾸면서 아름답게 지을 때에 바뀌는 삶입니다.


  《전쟁교본》이라는 사진책은 ‘시’라는 노래를 빌어 사진이 일삼는 거짓말을 까밝힙니다. 그러니까, 사진은 거짓말을 일삼을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면, 언제나 기쁘며 멋진 ‘참말’로 삶을 지을 수 있는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이 어느 쪽으로 나아갈는지, 어느 길에 서는 사진이 즐거울는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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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37) 하게 되다(입음꼴·피동) 2


경호원 여우 아저씨들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순찰을 돌게 되는데, 물감을 쓰거나 어른이 도와주는 그림은 다 빼앗아서 찢어 버립니다

《이정록-미술왕》(한겨레아이들,2014) 11쪽


 순찰을 돌게 되는데

→ 돌아보는데

→ 돌아다니는데

→ 둘러보는데

→ 살펴보는데

→ 살피며 다니는데

 …



  이 보기글에서는 “순찰을 돌게 되는데”를 “순찰을 도는데”로 고쳐야 올바릅니다. “-게 되다” 꼴로 적으니 글투가 엉성합니다. 조금 더 살펴서, 한자말 ‘순찰(巡察)’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살핌. ‘돌아봄’으로 순화”처럼 풀이합니다. 한국사람이 쓸 낱말이 아니라고 풀이하는 셈인데, ‘순찰’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어른이 무척 많습니다. 알맞게 ‘돌아봄’으로 고쳐쓰는 어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보면 “순찰을 돌다” 같은 보기글을 싣습니다. “돌아봄을 돈다”라 말하는 꼴입니다. 아무래도 말이 안 됩니다. “순찰을 돌다”가 아니라 “돌아보다”나 “살피며 돌다”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사건 발생 지역 주변을 순찰하다

→ 사건이 난 곳 둘레를 돌아보다

→ 말썽이 터진 곳 둘레를 돌아보다

 순찰을 나가다

→ 돌아보러 나가다

→ 둘러보러 나가다

→ 살피러 나가다

 우범 지역의 순찰을 크게 강화하였다

→ 범죄가 잦은 곳을 자주 돌아보기로 했다

→ 범죄가 날 만한 곳을 자주 살피기로 했다


  이 보기글을 곰곰이 더 생각합니다. ‘경호원 여우 아저씨’는 남이 시킨 일을 받아서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돌아보(순찰을 돌)’지 않습니다. 다른 이가 여우 아저씨더러 돌아보라고 시켰기에 돌아봅니다. 그러면, 이러한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돌아보는 일을 맡았는데”라든지 “둘러보는 일을 하는데”처럼 적든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 경호원 여우 아저씨한테 돌아보라고 시켰는데”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경호원 여우 아저씨들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돌아보는데, 물감을 쓰거나 어른이 도와주는 그림은 다 빼앗아서 찢어 버립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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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1) 칠하다漆 3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서 칠하란 말이야

《이정록-미술왕》(한겨레아이들,2014) 15쪽


 꾹꾹 눌러서 칠하란

→ 꾹꾹 눌러서 그리란

→ 꾹꾹 눌러서 바르란

→ 꾹꾹 눌러서 쓰란

 …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도 어른도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는 붓을 쓰기도 하고, 연필을 쓰기도 하며, 물감을 쓰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는 종이에 여러 가지 빛깔을 입힙니다. 빨간 크레파스를 쓰면 빨간 빛깔을 입힙니다. 파란 물감을 쓰면 파란 빛깔을 입힙니다. 까만 연필을 쓰면 까만 빛깔을 입힙니다.


  아이는 어른이 쓰는 말을 물려받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곁에서 어른이 “네가 그린 빨강이 참 곱구나” 하고 말하면 아이는 “네가 ‘그린’”이라는 말마디를 들으면서 말을 익힙니다. 둘레에서 어른이 “네가 칠한 풀빛이 이쁘구나” 하고 말하면 아이는 “네가 ‘칠한’”이라는 말마디를 들으면서 말을 배웁니다.


  어느 한 가지 말을 배워야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말은 ‘그리다’입니다. 한국말은 ‘그리다’를 비롯해서 ‘입히다’와 ‘바르다’와 ‘묻히다’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쓰다’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그리다·입히다·바르다·묻히다·쓰다’는 느낌과 뜻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림으로 이루는 빛깔과 모양은 그때그때 다르기 마련이니, 어느 낱말을 골라서 넣느냐에 따라 그림을 이루는 모습뿐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漆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을 쓰면 이도 저도 아닙니다. 그저 뭉뚱그릴 뿐입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옳게 써야 말빛을 살립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익혀서 써야 말느낌을 살립니다. 한국말을 올바로 살펴서 써야 말넋을 살찌웁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서 그리란 말이야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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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책넋 돌보기

38. 빨리 읽는 책, 오래 읽는 책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책’이 많이 고팠습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곳이었고, 학교도서관은 1992년에 비로소 조그맣게 문을 열었습니다. 열린 도서관은 아니고 닫힌 도서관이라서 쪽글에 ‘빌리고 싶은 책’을 적어서 내밀어야 비로소 며칠 동안 빌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 이 학교에서는 빈 교실 한 칸을 도서관으로 바꾸었습니다. 책꽂이는 작고 책조차 몇 가지 없었습니다. 이무렵 인천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도 도서관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거나 모양만 있기 일쑤였습니다. 시립도서관에도 새로운 책보다 낡은 책이 훨씬 많았고, 이때에는 아직 구립도서관이 없었습니다. 학교마다 학교 앞에 조그마한 책방이 있기는 하지만, 온갖 책을 두루 갖추는 곳이 아니라 수험서와 교재가 훨씬 넓게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면서 문방구 노릇을 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책이 읽고 싶을’ 적에는 제법 큰 새책방에 갔습니다. 제법 큰 새책방에는 새로 나오는 책도 있지만, 나온 지 꽤 지난 책을 쏠쏠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법 큰 새책방은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오래도록 읽힐 만한 알찬 책’을 갖추었습니다. 도서관이 제대로 없고, 도서관이 있어도 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던 지난날에는, 동네에 있는 제법 큰 새책방, 그렇지만 아주 크지는 않은 이곳이 몹시 고마운 책쉼터 구실을 했습니다.


  새책방에 찾아가서 가만히 서서 책을 읽자면 눈치를 봅니다. 새책이란 ‘팔 물건’입니다. 손때를 타면 다른 사람이 사들이기에 나쁩니다. 새책방에 갈 적에는 옷차림부터 깨끗이 하고 손도 깨끗이 씻습니다. 책방에 닿을 때까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갑니다. 책방에 닿고서 책을 살필 적에는 눈으로만 살핀 뒤, ‘아, 읽고 싶어라’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 있을 적에 비로소 손바닥을 비벼서 한 번 더 깨끗이 한 뒤 집습니다. 손때가 탈세라 살며시 쥐고 살며시 넘깁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읽습니다. 책 하나를 든 채 너무 오래 가만히 서면 ‘책은 안 사고 그냥 읽고 가는’ 줄 알아챌 테니까요. 책방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팔아서 장사를 해야 하는 곳’이니 ‘책읽기’만 즐길 수 없습니다. 어느 만큼 책읽기를 즐겨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사서 볼 책을 너무 오래 만지면 안 되지요.


  그래서, 새책방으로 ‘책을 읽으러 갈’ 적에는 ‘돈을 치러서 장만할 책’을 먼저 고릅니다. ‘돈을 치러 장만할 책’은 어깻죽지에 꽂습니다. ‘나, 이 책 살 생각이에요’ 하고 알리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한두 권을 사면서 적어도 서너 권은 읽으려는 마음이니 책을 아주 빨리 눈치껏 읽을밖에 없습니다. ‘빨리읽기(속독)’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나, 눈치를 보면서 읽다 보니 줄거리를 잽싸게 헤아려서 알아내려고 여러모로 용을 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책방에 서서 눈치 보며 읽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느 책 하나를 빨리 훑어서 줄거리를 헤아리더라도 ‘다 읽은 책을 장만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책도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고등학생 적에 새책방에서 ‘몰래 빨래 읽기’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넉넉히 벌어서 ‘내 마음을 아름답게 움직인 모든 책을 기쁘게 장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루이제 린저 님이 쓴 《분수의 비밀》(한빛문화사 펴냄,1979)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누리는 삶과 어른들이 아이를 다루거나 마주하는 삶이 어떠한가를 찬찬히 밝히는 사랑스러운 어린이문학입니다. 1979년에 처음 나온 책이지만 오랫동안 판이 끊어졌기에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2010년에 새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1979년에 나온 낡은 책으로 읽으면, 27쪽에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고, ‘수지, 너는 잘 못 보았어.’ 하긴 그때 사람들이 흘깃 보았을 때 볼 수 있는 것 이상은 보지 못했거든요.”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대목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란 무엇일까요. 잘 보는 눈과 잘 못 보는 눈이란 무엇일까요. 남이 흘깃 보는 만큼 보는 눈과 내가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은 내가 오늘 어떻게 사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잘 보는 눈이란 꾸미지 않고 고스란히 보는 눈입니다. 잘 못 보는 눈이란 참모습 앞에서는 눈을 감거나 가린 채 내 길을 제대로 못 걷는 모습입니다. 남이 흘깃 보는 만큼 보는 눈이란 사랑이 없이 지나치는 눈입니다. 내가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란 내 손길에 사랑을 담아서 삶을 가꾸려는 몸짓입니다.


  책은 빨리 읽어도 됩니다. 책은 천천히 읽어도 됩니다. 책은 많이 읽어도 됩니다. 책은 적게 읽어도 됩니다. 책은 백만 권을 읽어도 됩니다. 책은 하나도 안 읽어도 됩니다. 삶을 살찌울 수 있으면, 책을 빨리 읽든 천천히 읽든 대수롭지 않고 모두 똑같습니다. 내 오늘을 스스로 사랑할 수 있으면, 책을 많이 읽어도 즐겁고 적게 읽어도 즐겁습니다.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책을 몇 권 읽더라도 생각을 슬기롭게 빛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 아이와 전교 꼴등을 한 아이가 있다면, 전교 1등을 한 아이가 마음까지 착할까요? 전교 꼴등을 한 아이가 마음까지 나쁠까요? 아니지요. 전교 1등은 그저 전교 1등일 뿐입니다. 전교 꼴등은 그예 전교 꼴등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교 1등이 되거나 전교 꼴등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을 빨리 읽거나 많이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느리게 읽거나 안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내 삶을 가꿀 수 있는 결이 무엇인지 스스로 똑바로 살펴서 기쁘게 책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착한 아이는 그저 착합니다. 착한 아이는 학교에서 시험성적이 몇 등이건 따지지 않으면서 착합니다. 착한 아이는 그 아이네 어버이가 부자이건 가난뱅이이건 따지지 않으면서 착합니다. 착한 아이는 얼굴이 이쁘건 못생기건 언제나 착합니다.


  어느 책을 읽든, 내가 손에 쥔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찬찬히 살필 수 있으면 됩니다. 빨리 읽더라도 이야기를 못 살핀다면 읽으나 마나입니다. 천천히 읽더라도 이야기를 못 깨닫는다면 읽으나 마나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42킬로미터를 두 시간 만에 달리는 사람과 열 시간이 걸려도 못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결이 다른 두 사람더러 똑같은 길을 똑같이 달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42킬로미터를 두 시간 만에 달리면서 이녁대로 이녁 삶을 일구면서 새롭게 누립니다. 한 사람은 42킬로미터를 달릴 엄두를 안 내면서 이녁대로 다른 삶을 스스로 재미나게 일구면서 새롭게 누립니다.


  책 한 권을 ‘빨리’ 읽는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읽는 빠르기가 다릅니다. 사람마다 몸이 달라, 누구는 밥을 많이 먹으면서 살이 안 찌고 누구는 밥을 적게 먹어도 살이 찝니다.


  다만, 한 가지를 덧붙일 수 있어요.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은 그만큼 책읽기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다른 것은 안 쳐다보고 오로지 책만 쳐다보기에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세포 하나까지, 머리카락 하나까지, 핏줄 하나까지, 그야말로 온몸과 온마음을 쏟아서 책으로 빠져들면 누구나 책을 무척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오롯이 기울이면서 쏟을 적에는 어떤 일이든 아주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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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02. 밝은 눈빛



  일곱 살 아이가 마을 어귀에 있는 빨래터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소리쟁이’라는 풀을 한 잎 뜯어서 가지고 옵니다. 아이는 이 풀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소리쟁이’야.” 하고 알려줍니다. 아이는 “‘소리쟁이’? 아, 소리쟁이로구나.”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한 번 듣고 나서 풀이름을 곧바로 머리와 몸과 손과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풀이름을 까맣게 잊은 뒤 나중에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나도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을 곧잘 까먹었습니다. 언제나 어머니한테 여쭈었어요. 어머니는 나한테 도감이요 사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치지 않고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도 “나도 몰라. 그냥 풀이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맛있습니다. 풀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시내기도 소리쟁이라는 풀은 무척 달고 맛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상추나 배춧잎이나 깻잎 말고는 거의 풀을 구경해 보지 못한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눈을 살며시 감고 소리쟁이 잎사귀 하나를 잎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 ‘풀이 이렇게 맛나네?’ 하고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소리쟁이는 아주 흔한 풀입니다. 다만, 흔한 풀이되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도 아무 데에서나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을 다 뜯어서 먹지는 않습니다.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굳이 먹지 않습니다. 왜 안 먹을까요? 망가진 땅이나 더러워진 땅에서 나는 풀은 망가지거나 더러워진 흙을 되살리는 일을 해요. 그러니, 이 풀이 씩씩하게 흙을 되살리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봅니다. 두 해 네 해 여섯 해 가만히 지켜보면, 풀은 씩씩하고 기운차게 올라옵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나면서 돋고 시들고 죽고 다시 돋고 시들고 죽고를 되풀이하면서 흙을 살립니다.


  봄이든 늦가을이든, 소리쟁이잎을 보면 갓 돋을 적에는 멀끔하지만 조금 자란다 싶으면 어느새 진딧물이나 풀벌레가 잔뜩 달라붙어서 갉아먹습니다. 더없이 맛난 풀인 줄 진딧물과 풀벌레가 재빠르게 알아챕니다.


  벌레 먹는 풀과 벌레 안 먹는 풀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벌레가 먹는 풀이란 그만큼 싱그럽고 맛난 풀이라는 뜻입니다. 벌레가 안 먹는 풀이란 ‘벌레가 싫어하는 풀’일 수도 있으나, 요즈음은 농약과 비료 때문에 벌레조차 가까이하지 못하는 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풀을 먹을 적에 우리 몸이 살아날까요? 어떤 풀을 알고 사귀면서 가까이할 적에 우리 눈빛을 밝힐 수 있을까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아는 사람은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한 잎을 톡 끊어서 입에 넣지요. 소리쟁이라는 풀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옆에 이 풀이 우거져도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쳐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무엇을 사진으로 찍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는 누구를 이웃이나 동무로 삼고, 어느 마을에서 어떤 삶을 가꾸는지 살필 노릇입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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