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02) -의 : 생명의 소중함


미쓰마사는 어린이들을 즐거운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작가인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을 재치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영리함을 지닌 훌륭한 작가이다

《안노 미쓰마사/송해정 옮김-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시공주니어,1999) 31쪽


 즐거운 상상의 세계로

→ 즐거운 상상 세계로

→ 즐거운 꿈나라로

→ 즐거운 꿈누리로

 생명의 소중함을

→ 생명이 소중함을

→ 소중한 생명을

→ 아름다운 목숨을

→ 아름다운 숨결을

 …



  이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즐거운 상상 세계”나 “소중한 생명”처럼 손보면 돼요. 적어도 이렇게 적어야 한국말입니다. 먼저 이렇게 손보고 나서 더 마음을 기울이면, “상상 세계”를 “꿈나라”나 “꿈누리”로 손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생명”이란 “매우 귀중한 생명”을 가리켜요. 그러니, 매우 귀중(貴重)한 생명이란 무엇일까 하고 더 헤아리면, “귀하고 중요한 생명”이라는 뜻이 되니, “아름다운 목숨”이나 “사랑스러운 목숨”처럼 손볼 만합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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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마사는 어린이들을 즐거운 꿈나라로 끌어들이는 멋진 작가이면서, 아름다운 목숨을 솜씨 있게 그릴 줄 알 만큼 똑똑하고 훌륭한 작가이다


‘매력(魅力)’은 “사로잡는 힘”을 가리킵니다.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작가”는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작가”나 “끌어들이는 멋진 작가”로 손봅니다. “-인 동시(同時)에”는 “-이면서”로 손질합니다. ‘생명(生命)’은 ‘목숨’으로 손질하고, “재치(才致) 있게 표현(表現)할”은 “솜씨 있게 그릴”로 손질합니다. “영리(怜悧)함을 지닌”은 “똑똑한”이나 “똑똑하고”로 다듬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05) 성격의 


여기에다 《사랑의 선물》에는 다시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에 이야기의 옷을 입힌 소년소설 성격의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

《이재복-우리 동화 이야기》(우리교육,2004) 73쪽


 소년소설 성격의 이야기들도

→ 소년소설 같은 이야기도

→ 소년소설과 같은 이야기도

→ 소년소설 갈래인 이야기도

→ 소년소설 갈래에 드는 이야기

→ 소년소설도

 …



  이야기 가운데에는 소년소설이라는 ‘성격(性格)’인 이야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가리켜 ‘성격’이 어떻다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놓고는 ‘성격’을 따지기보다는 ‘갈래’를 나누어야 옳다고 느낍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소년소설 같은 이야기도”처럼 손질해서 ‘같은’을 넣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소년소설도 있다”처럼 아주 단출하게 끊을 수 있어요. 4347.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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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사랑의 선물》에는 다시 이 땅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옷을 입힌 소년소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다 《사랑의 선물》에는 다시 이 땅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옷을 입힌 소년소설도 있다


“현실(現實)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에 이야기의 옷을 입힌”이라는 글월에서 ‘살아가는’과 ‘삶’은 겹말입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에 옷을 입힌”으로 손보거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에 옷을 입힌”이나 “이 땅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옷을 입힌”으로 손봅니다. “이야기들도 들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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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아기들 - 2016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독서지도 연구회 선정, 2015 어린이도서연구회, 아침독서신문 선정 바람그림책 20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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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3



씨앗을 먹고 씨앗을 심는다

― 나무의 아기들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펴냄, 2014.4.5.



  밥을 끓여서 먹습니다. 밥을 차려서 함께 먹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에 숟가락을 폭 넣어 한 술 뜹니다. 따끈따끈한 밥알이 몸으로 들어와서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밥알은 쌀알입니다. 쌀알은 벼알입니다. 벼알은 볍씨입니다. 볍씨는 풀씨요 풀알입니다. 풀이 맺는 씨라서 풀씨이고, 풀이 맺은 알이기에 풀알입니다.


  보리밥은 보리알이고 보리씨입니다. 수수나 서숙은 수수밥이나 서숙밥이 되는데, 수수씨나 서숙씨입니다. 밥을 먹는 사람은 씨앗을 먹는 사람이요, 밥을 짓는 사람은 풀이 베푼 열매를 지어서 누리는 사람입니다.


  옥수수 한 자루를 먹을 적에도 씨앗을 먹습니다. 옥수수자루에 달린 알갱이는 모두 씨앗입니다. 옥수수자루를 얻으면, 이 옥수수자루를 잘 말리고 건사해서 이듬해에 알맞게 불린 뒤 땅에 심습니다. 자그만 알갱이 하나에서 아주 단단하면서 굵은 옥수수줄기가 올라오고, 옥수수꽃이 피며, 다시금 옥수수 알갱이를 얻어요.





.. 여름이 시작될 무렵, 느릅나무 아기는 빛의 조각처럼 하늘을 헤엄쳐요 ..  (2쪽)



  가을과 겨울에 감알을 먹습니다. 감알은 새빨갛기도 하고 발그스름하기도 합니다.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합니다. 나무에 달린 감알을 톡 따서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하고, 나무에서 딴 감알을 두고두고 천천히 먹기도 합니다.


  감알을 먹으면 아주 단단하고 야무진 씨앗이 나옵니다. 감알을 먹는다고 할 적에는 감씨를 품은 살점을 먹는 셈입니다. 감씨를 곱게 품은 살점을 먹으면서 감씨가 바깥으로 나옵니다.


  능금알이나 배알을 먹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나무가 맺는 열매에는 씨앗이 속살을 품으면서 조용히 잠을 잡니다. 풀이 맺는 열매는 씨앗이자 알맹이를 통째로 먹고, 나무가 맺는 열매는 속살을 먹고 씨앗을 흙에 돌려줍니다.




.. 둥글둥글, 뾰족뾰족, 길죽길쭉, 포동포동, 납작납작, 삐죽삐죽, 매끈매끈 …… 닮은 것 같지만 다 다른 도토리 형제들 ..  (12쪽)



  사람은 모두 작은 씨앗에서 비롯합니다. 풀벌레와 새와 짐승과 물고기도 아주 작은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지구별에서 함께 사는 모든 이웃과 동무는 아주 조그마한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어쩌면, 지구별도 어마어마하게 넓은 온누리에서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일 수 있습니다. 지구별이라는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드넓은 온누리를 맑게 비추는 작은 빛줄기가 될는지 모릅니다.


  이세 히데코 님이 빚은 그림책 《나무의 아기들》(천개의바람,2014)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무가 낳은 아기는 나무씨입니다. 풀이 낳은 아기는 풀씨이고, 꽃이 낳은 아기는 꽃씨입니다. 사람은 사람씨를 낳습니다. 풀벌레는 풀벌레씨를 낳습니다. 짐승은 짐승씨를 낳습니다. 별은 별씨를 낳고, 바람은 바람씨를 낳습니다.


  씨앗 한 톨은 아주 조그마한데, 이 작은 씨앗에는 모든 이야기가 깃듭니다. 풀이나 꽃이나 나무로 자라는 이야기가 씨앗 한 톨에 고스란히 깃듭니다. 사람으로 자라는 이야기가 씨앗 한 톨에 낱낱이 깃듭니다. 


  씨앗을 먹는 사람은 씨앗을 돌봅니다. 씨앗을 돌보는 사람은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은 씨앗을 바라봅니다. 씨앗을 바라보는 사람은 씨앗을 사랑합니다. 씨앗을 사랑하는 사람은 씨앗을 노래합니다. 씨앗을 노래하는 사람은 씨앗을 꿈꿉니다. 씨앗을 꿈꾸는 사람은 씨앗을 나눕니다.




.. 더 대단한 건 달맞이꽃 아기예요. 30년이든 100년이든 자면서 기다리지요 ..  (20쪽)



  그림책 《나무의 아기들》에 나오는 씨앗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무가 낳은 씨앗은 ‘어머니 나무’ 곁을 떠나기 싫기도 하지만, 얼른 어머니 품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찾아가고 싶기도 합니다. 어머니한테서 떨어지는 씨앗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바람을 타기도 하지만, 혼자 씩씩하게 바람을 가르기도 합니다.


  나무씨 한 톨은 어미나무 앞에 톡 떨어지기도 하고, 나무씨 두 톨은 새가 날름 먹어서 먼먼 곳까지 날아가서 물찌똥이랑 새로운 숲에 토옥 떨어지기도 합니다. 나무씨 석 톨은 빗물을 타고 졸졸졸 흐르다가 낯선 마을에 닿기도 하고, 나무씨 넉 톨은 사람들이 씨주머니에 곱게 건사해서 두고두고 아끼기도 합니다.


  숲은 나무 한 그루로 이루지 않습니다. 숲은 수많은 나무로 이룹니다. 숲은 나무로만 이루지 않습니다. 숲은 나무와 풀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룹니다. 숲에는 나무와 풀만 있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숲아이가 숲에서 깃듭니다. 나뭇줄기에 구멍을 내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숲아이가 있습니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어 지내는 숲아이가 있습니다. 풀잎이랑 나뭇잎을 먹는 숲아이가 있습니다. 나무를 타며 놀거나 쉬는 숲아이가 있습니다. 풀벌레가 풀잎과 나뭇잎을 갉습니다. 새가 애벌레를 잡습니다. 애벌레를 거쳐 나비로 깨어나는 숲아이가 있고, 고운 숲노래를 베푸는 숲아이가 있습니다.




.. 민들레 엄마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된 뒤에도 키가 자라요. 아기들아, 날아가렴. 저 멀리. 더 높이 ..  (28∼29쪽)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씨앗과 나무와 풀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숲을 그린 《나무의 아기들》입니다. 어린이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씨앗 한살이를 읽을 테지요.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지구별 한살이를 헤아릴 테지요. 어린이는 이 그림책을 되읽으면서 씨앗이 빚는 숲을 읽을 테고, 어버이는 이 그림책을 가만히 되읽으면서 숲과 사람과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얼크러지는가 하는 이음고리를 살필 테지요.




 여름이 시작될 무렵(2쪽)

→ 여름이 될 무렵

 빛의 조각처럼(2쪽)

→ 빛조각처럼

 닮은 것 같지만 다 다른 도토리 형제들(12쪽)

→ 같은 듯하지만 다 다른 도토리 형제들

→ 닮았지만 다 다른 도토리 형제들

 배를 타고 바람의 여행을 떠나지요(4쪽)

→ 배를 타고 바람 나들이를 떠나지요

→ 배를 타고 바람 마실을 떠나지요

 나무 위에서 3년이나 있었지요(19쪽)

→ 나뭇줄기에서 세 해나 있었지요

→ 나뭇가지에서 세 해나 있었지요

 ​언제까지나 안고 있으려고(22쪽)

→ 언제까지나 안으려고

 모두들 다시 만나게 될 거야(30쪽)

→ 모두들 다시 만날 테야

→ 모두들 다시 만나자



  그런데, 이 멋지고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일본말에서 한국말로 옮길 적에 몇 군데를 조금 더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는 한국말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헤아리면 됩니다. 살몃살몃 돌아보면 됩니다. 아이와 읽을 그림책이고 어른도 수없이 되읽을 그림책이니, 말마디 하나하나 더 꼼꼼히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말과 글을 새롭게 익히기도 합니다. 정갈하면서 사랑스러운 그림을 정갈하면서 사랑스러운 말마디로 빚어서 읽을 수 있으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야기씨 한 톨이 우리 가슴에서 자라리라 믿습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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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47) 재再- 6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우리 강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4대강, 재자연화가 가능할까요

《박창근,이원영-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2014) 84쪽


 재자연화가 가능할까요

→ 다시 자연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 다시 자연이 될 수 있을까요

→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

→ 되살릴 수 있을까요

→ 되돌릴 수 있을까요

 …



  ‘재자연화’라는 한국말은 없습니다. 지식인이 아무렇게나 지은 한자말입니다. 한국 지식인이 엉성하게 지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한국사람은 ‘再자연’이든 ‘자연化’이든 안 씁니다. 자연이 되어야 한다면 “자연 되기”라 할 뿐이고, 다시 자연이어야 한다면 “다시 자연”이라 할 뿐입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망가진 냇물을 살리는 길을 살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냇물 살리기”가 ‘재자연화’인 셈입니다. “자연으로 돌리다”나 “자연이 되다”처럼 풀어낼 수 있지만, 이보다는 “다시 살리다”나 “되살리다”나 “되돌리다”처럼 거듭 풀어낼 적에 비로소 제 뜻과 느낌이 살아나리라 생각합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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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우리 강을 어떻게 살릴는지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4대강, 되살릴 수 있을까요


“살릴 것인가에 대(對)해”는 “살릴는지”나 “살리는 이야기”나 “살릴 수 있는가를 놓고”로 다듬습니다. ‘가능(可能)할까요’는 ‘될까요’나 ‘이루어질까요’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0) 재再- 5 : 재인식


진정한 만남이란 자신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무엇인가를 다시 알아보고 재인식하는 것과 같은 묘한 체험입니다

《김은영-캠프힐에서 온 편지》(知와 사랑,2008) 285쪽


 다시 알아보고 재인식하는

→ 다시 알아보고 다시 느끼는

→ 다시 알아보고 느끼는

→ 다시 알아보고 깨닫는

 …



  한자말 ‘재인식’은 “다시 인식”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처럼 “다시 알아보고 재인식하는”처럼 적으면 어딘가 얄궂습니다. 아니, 겹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시 알아보고”처럼 적었으면 “다시 알아보고 인식하는”처럼 적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한자말 ‘인식(認識)’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식하는’은 ‘아는’을 가리키는 셈이요, 이 보기글은 “다시 알아보고 다시 아는”처럼 이야기를 풀어낸 셈입니다.


  같은 낱말을 되풀이하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다시 알아보고 느끼는”이나 “다시 알아보고 깨닫는”이나 “다시 알아보고 돌아보는”처럼 앞뒤에 다른 낱말을 넣어서 뜻이나 느낌을 살리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다운 만남이란 내가 잊어버렸던 그 무엇인가를 다시 알아보고 느끼는 듯한 새로운 일입니다

참된 만남이란 내가 잊어버렸던 무엇인가를 다시 알아보고 느끼 듯이 새롭습니다


‘진정(眞正)한’은 ‘참된’이나 ‘참다운’으로 다듬고, “잊어버리고 있었던”은 “잊어버렸던”으로 다듬으며, “재인식(再認識)하는 것과 같은”은 “다시 느끼는 듯한”이나 “다시 깨닫는”으로 다듬습니다. “묘(妙)한 체험(體驗)입니다”는 “새로운 일입니다”나 “새롭습니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76) 재再- 4


대부분의 자연식품 상점은 자신들이 제공한 백을 재사용하는 고객들에게

《그레그 혼/조원범,조향 옮김-Living Green》(사이언스북스,2008) 137쪽


 재사용하는 고객들에게

→ 다시 쓰는 손님한테

→ 되가져오는 손님한테

→ 가져와서 쓰는 손님한테

 …



  한국말사전에 안 실린 ‘재사용’이라는 한자말이지만, ‘재활용(再活用)’이라는 한자말과 함께 두루 쓰이는구나 싶습니다. ‘再’를 앞에 붙인 두 한자말 ‘재사용·재활용’인데, 한자 말풀이 그대로 ‘다시 사용’하거나 ‘다시 활용’하는 일을 가리켜요. ‘사용’이나 ‘활용’이란 ‘씀/쓰기’를 가리키는 만큼, 두 낱말이 쓰이는 자리는 모두 “다시 쓰기”나 “되쓰기”나 “거듭 쓰기”나 “되살리기”처럼 알맞게 풀어내어 쓰면 뜻과 느낌이 또렷합니다. 쉽고 즐겁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4341.9.5.쇠/4347.12.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거의 모든 자연식품 가게는 이곳에서 마련한 가방을 다시 쓰는 손님한테


‘대부분(大部分)의’는 ‘거의 모든’으로 손질하고, ‘상점(商店)’은 ‘가게’로 손질하며, ‘자신(自身)들이’는 ‘저희가’나 ‘이곳에서’로 손질합니다. ‘제공(提供)한’은 ‘준’이나 ‘마련한’ 으로 손보고, ‘백(bag)’은 ‘가방’이나 ‘주머니’로 손보며, ‘고객(顧客)’은 ‘손님’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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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7] 책읽기

― 책을 왜 읽고 읽히는가



  누군가 나한테 묻습니다. ‘융’이란 사람을 얼마나 잘 아느냐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융’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을 스무 해쯤 앞서 읽은 일이 떠오르지만, 막상 이분이 쓴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렀는지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융’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셈입니다. 요즈막에 이분 책을 읽은 사람이야말로 이분을 안다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즈막에 융을 읽은 사람은 융과 얽혀서 무엇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책에 적은 줄거리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이녁 삶으로 녹여서 펼친 이야기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걸어간 길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펼친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으로 녹여서 삶을 즐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알까요.


  책을 읽는 까닭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새롭게 배워서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씩씩하게 가꿀 기운을 내가 스스로 길어올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다른 사람은 책읽기를 달리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입니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요, 도시내기는 도시내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숲과 하늘과 들을 바라보는 사람과 오늘 이곳에서 자가용을 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책은 왜 읽어야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책을 읽으라고 신나게 말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지옥에 갇히도록 하는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아름답게 엮어서 아이들한테 베풀까요.


  아름다운 책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못 알아보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한편, 아름다운 책을 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고 읽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안 알아보고 안 읽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 ‘아름다운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은 그저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은 그저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지만, 삶을 일구지 못하거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있는 줄 모르지만,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가까이한 적이 없으나,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도 안 거들떠보는 책에 깃든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면서,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면, 책을 왜 읽는지 먼저 생각하고 느끼면서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밥을 먹을 적이나 길을 나설 적이나 학교를 다닐 적이나 흙을 일굴 적이나 나무를 심을 적에도 모두 같습니다.


  자, 밥을 왜 먹는가요? 길을 왜 나서는가요? 학교를 왜 다니나요? 흙을 왜 일구나요? 나무를 왜 심나요?


  남이 이 까닭을 밝혀서 나한테 알려주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이 까닭을 알아내야 합니다. 밥을 왜 먹는지 남이 나한테 알려주어야 ‘밥을 왜 먹는지’ 안다면, 이런 사람은 바보입니다. 여행길이든 마실길이든 왜 길을 나서려 하는지 스스로 모르면서 남한테 묻는 사람은 여행도 마실도 다니지 못합니다. 학교를 왜 다니는가 하는 까닭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흙을 왜 일구는지 모른다거나 나무를 왜 심는지 모른다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하나도 모르는 셈입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까닭은 언제나 스스로 찾아야 환하게 깨닫습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즐거움은 늘 스스로 살펴서 느껴야 제대로 깨닫습니다.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기쁘거나 재미있는가 하는 대목은 노상 스스로 짚고 되새길 수 있어야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곱게 깨닫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로 삼는 책입니다. 어느 책이든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아무 책이나 동무로 삼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가슴에 담는 책은 한결같이 하나입니다.


  빛이 되고 숨이 되며 노래가 되는 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꿈이 되고 사랑이 되며 삶이 되는 책은 어떻게 알아볼까요. 이야기가 되고 바람이 되며 햇살이 되는 책은 누가 쓸까요. 내 가슴속에서 자라는 씨앗을 들여다봅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내 넋으로 살찌우는 숲을 껴안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눈을 뜨고, 스스로 사랑스럽게 다시 태어나면서 스스로 사랑스럽게 책 하나에 손길을 따숩게 내밉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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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고등학교 도서관 만화책 ㄴ



  요즈음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로 만화책을 몰래 가져와서 서로 돌려읽곤 했다. 만화책이 있는 아이도 없는 아이도 학교에서 만화책 한 권을 같이 읽으면서 즐거운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국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이나 군립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좀처럼 장만하거나 갖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만화책을 ‘책’으로 안 여긴다. 만화책 가운데 몇 가지는 도서관에도 들어가고 ‘추천 교양도서’ 이름을 받지만, 어여쁜 이야기와 그림으로 어여쁜 꿈과 사랑을 심도록 이끄는 멋진 만화책이 두루 알려지거나 읽히지는 않는다.


  지난날에는 학교에서 교사가 왜 만화책을 빼앗아서 찢거나 불살랐을까. 왜냐하면, 교사 스스로 만화책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학교에서 왜 만화책을 먼저 장만해서 도서관에 갖출 수 있는가. 왜냐하면 오늘날 교사 가운데에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보고 자라면서 ‘만화책도 아름다운 책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챈 어른이 있기 때문이다.


  숲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숲이 베푸는 기운을 모른다. 나무를 심어서 돌본 적 없는 사람은 나무와 함께 일구는 살림을 모른다. 풀을 손수 뜯어서 먹은 적 없는 사람은 풀내음이 우리한테 어떤 사랑인지를 모른다. 기저귀를 손수 갈며 빨래해서 말리고 갠 적이 없는 사람은 아기를 돌보는 하루가 얼마나 고되면서 즐거운지를 모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문학은 오직 글로 이야기를 엮는데, 만화책은 글과 그림을 함께 쓰기 때문에, 만화책에서 흐르는 글은 문학과 같고, 만화책에 깃드는 그림은 예술과 같다. 문학과 예술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질 때에 어여쁜 만화책이 태어난다. 그냥저냥 따분하거나 이냥저냥 읽어치우는 만화책이 있지만,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이 있다.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은 문학과 예술을 고루 갖춘다.


  시골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도 아름다운 숨소리를 만화책에서 배울 수 있기를 빈다. 시골 어른들도 도시 어른들도 사랑스러운 노랫소리를 만화책에서 얻을 수 있기를 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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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짓왕 2014-12-05 08:02   좋아요 0 | URL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젊은층들 중에서도 만화책은 그저 애들이나 읽는 수준 낮은 책에 불과하며, 그 만화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작품성을 띠는지를 전혀 알아보려 시도조차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주류 도서의 서글픈 운명인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4-12-05 09:23   좋아요 0 | URL
슬픈 운명일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책 하나`를
스스로 등돌리면서
아름다운 이야기하고
스스로 멀어지는 셈이로구나 싶기도 해요.

누구나 스스로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하지만
아예 모르기도 하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