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 - 농촌 위기와 시인 김남주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5
김덕종.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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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4



‘풀 열매’를 먹으면서 사는 이웃

―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

 김덕종·손석춘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12.7.



  밥을 짓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짓습니다. 밥은 쌀과 보리 같은 곡식으로 짓습니다. 곡식은 ‘穀食’이라는 한자로 적고, ‘곡물(穀物)’과 뜻이 같은 낱말입니다. 이 두 가지 낱말은 ‘풀 열매’, 그러니까 ‘풀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곡식’이라는 한자를 쓰기보다는 ‘식량(食糧)’이라는 한자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식량’은 ‘양식(糧食)’과 같은 낱말이고, 이 한자말은 ‘먹을거리’를 가리킵니다. 아무래도 ‘먹을거리’라 ‘식량·양식’이라는 낱말은 ‘풀 열매’만 가리키지 않고 ‘고기’도 가리킬 테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식량 주권’이나 ‘식량 자급’이라 할 적에는 ‘고기’는 따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땅을 일구어 거두는 ‘풀 열매’만 헤아립니다.



.. “누가 이야기해 주지도 않고,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기에 쌀 보기를 쉽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야 너희들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애들이 시골에서만 태어났지 쌀농사 짓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하지요. 문제는 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식량을 사올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든 식량 자급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 “민주당 정권 시절에 농업정책 어땠습니까? 쌀 수입, 한·칠레FTA, 한·미FTA 다 했잖아요.” ..  (11, 14, 78쪽)



  지구별 모든 겨레는 제 먹을거리를 스스로 일구어 살았습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제 밥을 제 손으로 지어서 먹었습니다. 먹을거리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지구별이 된 지 얼마 안 됩니다. 풀 열매를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인 지구별이 된 지 고작 백 해라고 할 만합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제 삶을 잊거나 잃습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한국을 비롯해 지구별 모든 나라는 스스로 흙을 안 가꾸거나 안 돌봅니다.


  먹을거리를 스스로 짓지 않을 적에는 손수 흙을 돌볼 일이 없습니다. 남이 거둔 풀 열매를 먹는 사람은 제 땅에서 나는 풀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남이 거두는 풀 열매만 돈을 치러서 사다가 먹는 사람은, 흙이 어떠한지 살피지 않으며, 땅을 살리거나 북돋우는 길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회와 정치와 문화와 교육을 돌아본다면, 농림부라고 하는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가운데 손수 흙을 가꾸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적어도 텃밭이나마 가꾸는 농림부 공무원이 있을까요? 손수 텃밭을 일구는 농림부 장관이나 차관은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요?


  손수 흙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시골일(농사)을 알 수 없습니다. 손수 흙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시골지기(농사꾼)가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따라 흙을 어떻게 건사하고 가꾸어 풀 열매를 맺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농업 정책’은 흙을 모르고 풀 열매를 모르며 시골조차 모르는 지식인끼리 책상물림으로 꾀할 뿐입니다. 흙을 살리거나 풀 열매를 가꾸거나 시골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없는 농업 정책만 있습니다.



.. “민주가 아닌 것은 독재입니다.” … “쌀독에 쌀이 떨어져 봐요. 이웃집에 빌리러 가야 합니다. 구걸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종이 됩니다.” … “20년 동안 쌀값은 하나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개방 농정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봤을 때는 수입 개방에 따른 아무런 대책 없이 문을 열어버린 거지요. 농자재 값도 천정부지로 뛰었어요. 농약 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비료 값은 비료 만드는 회사들끼리 담합해서 올리고.” ..  (11, 15, 16쪽)



  중앙정부는 ‘농협’이라는 기관을 세웁니다. 농협이라는 기관은 시골지기가 거둔 풀 열매를 사들여서 도시사람한테 웃돈을 얹어 파는 일을 합니다. 샛장수라 할 농협인데, 농협은 해마다 살림을 키우며 건물도 높다랗게 지을 뿐 아니라, 농협 공무원은 일삯을 꽤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골지기는 갈수록 고단하고 힘듭니다. 농협은 살림을 불리고 돈을 늘리지만,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려는 사람은 나날이 줄기만 합니다.


  가만히 보면, 농협 공무원 가운데 텃밭이나마 일구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농협 공무원 가운데 손수 논을 짓는 사람도 아주 드뭅니다.


  시골일은 ‘아홉 시 땡’으로 열고 ‘여섯 시 땡’으로 닫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으레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시골사람한테 아침 아홉 시는 한창 일할 때이거나 새벽일이나 아침일을 마치고서 살짝 숨을 돌리면서 쉬는 때입니다.


  시골사람한테는 공휴일이나 일요일이나 주말이 없습니다. 풀은 날마다 자랍니다. 공휴일이기에 풀이 안 자라지 않습니다. 나락은 날마다 익습니다. 가을이 되어 주말에는 안 익는 나락이란 없습니다. 일요일이기에 비가 안 오지 않습니다. 비는 때가 되면 내립니다.


  시골사람은 달력이나 시계를 보며 일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바람과 해님과 비와 흙을 살피면서 일합니다.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먹는 ‘풀 열매’인 ‘곡식·양식·먹을거리’는 한 해 내내 흐르는 바람과 해와 비와 눈과 흙이 어우러진 숨결입니다.



.. “언론도 정부 당국자의 이야기에만 관심 있지 직접 피해자인 농민들 이야기나 국민들이 쌀 개방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이 신문이나 저 신문이나 받아쓰기나 하고 말입니다. 공중파 방송들도 마찬가지예요. 소위 진보언론도 기사 한두 번 쓰다가 꼬리 감추듯 사라져버립니다 … 왜 싸웠는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별 관심이 없습디다.” … “82년 말부터 전두환은 동생 전경환을 새마을운동본부 본부장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 친구가 소 수입 전면에 나서서 왕창 수입을 해옵니다. 정부 정책은 농민들에게 100만 원, 200만 원씩 소 입식 자금을 푸는 거였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서너 사람이 입식 자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10만 원 20만 원에 수입한 송아지를 70만 원 100만 원씩 받고 농민들에게 크게 선심이나 쓰듯이 판 셈이지요 … 전두환 형제가 짜고 농민들을 사냥한 겁니다.” ..  (20, 63쪽)



  김덕종 님과 손석춘 님이 나눈 생각을 그러모은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김덕종 님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는 아저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덕종 님한테 작은형은 김남주 시인이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 《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를 읽으면, 시골을 지키면서 흙을 가꾸는 이야기에다가, 김남주 시인이 누린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 이야기를 살몃살몃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스스로 되고자 했으나 끝내 되지 못한 ‘시골지기 삶’을 꾸리는 김덕종 님 삶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삶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일구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톺아볼 만합니다.



.. “새마을운동 없었으면 농민들이 계속 힘들게 살았을까요? 우리나라 농민들 엄청 부지런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새마을운동 없었어도 그 성실함으로 충분히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지붕 개량하고 길 내고 해서 빚으로 남았습니다 … 농촌 젊은이들은 견디다 못해 서울로 식모살이 가거나 시커먼 공장 굴뚝에 처박혀 저임금으로 최소한의 사람 대접도 못 받고 살았습니다.” … “새마을운동 한답시고 쉬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북 장구 치면서 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 농민들은 허리도 못 펴고 일했습니다. 쉴 수 있는, 놀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지요.” ..  (70, 71쪽)



  김덕종 님은 “학교보다는 동네에서 아이들과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는 게 더 신이 나고 재미있었습니다. 학교에선 사실 맘껏 놀 수 없잖아요(33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동네에서 흙을 밟으면서 놀던 아이들은 흙내음과 함께 씩씩하게 자랍니다. 마을에서 풀을 뜯으면서 놀던 아이들은 풀빛과 함께 튼튼하게 자랍니다. 제 보금자리에서 어버이 일손을 거들면서 살림을 꾸리던 아이들은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곱게 자랍니다.


  그런데 지난 백 해 사이에 지구별 모든 나라는 시골이 무너집니다. 지난 백 해 사이에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 넋와 얼이 흔들립니다.


  손수 먹을거리를 짓지 않으니 생각이 딱딱하거나 메마릅니다. 손수 흙을 일구지 않으니 사랑이 크지 못합니다. 손수 풀을 뜯거나 나무를 심지 않으니 꿈이 퍼지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일구는 사람은 다른 이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짓는 사람은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삶을 손수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시골을 떠난 이들이 도시를 세우면서 전쟁무기를 만들고, 정치권력을 세우며, 종교집단을 거느리고, 노예와 식민지를 늘립니다. 시골을 등진 이들이 도시를 키우면서 계급을 세우고, 신분을 가르며, 갖가지 차별을 일삼습니다.


  시골사람은 학교를 안 다녔어도 이웃사랑을 했고,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으로 마을살이를 북돋았습니다. 시골사람은 책을 모르고 글을 안 배웠어도 서로 돕고 아끼면서 따사로운 하루를 지었습니다.


  도시사람은 학교를 다니고 책을 읽으며 종교 경전이 읊는 대로 예배당에서 비손을 올려도, 막상 이웃사랑이나 두레나 품앗이나 울력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배운 사람들이 전쟁무기를 만들고, 배운 사람들이 차별을 일삼으며, 배운 사람들이 갖가지 부정부패를 저지릅니다.


  손석춘 님은 “이 땅의 농민은 지난 120년 동안, 아니 지난 5000년 내내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위한 정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주들의 권력인 왕조들과 일본제국주의는 물론, 해방 후 지금까지의 모든 정권은 농민을 수탈 대상 또는 기껏해야 ‘표밭’으로 삼았지요. 헌법이 명문화한 ‘주권자’로서 농민을 진심으로 대한 정권이 과연 있었던가요(112쪽).” 하고 묻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도시’는 언제나 죽음 구렁텅이로 내달립니다. 세계 문화에서 ‘도시’는 늘 전쟁과 노예와 식민지 굴레에 갇힙니다.



.. “아버지는 고무신이 닳는 것이 아까워 논밭에 가다가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다가 누구라도 눈에 띄면 창피스러워서 얼른 신고 그랬다는 겁니다.” ..  (26쪽)



  우리는 모두 ‘풀 열매’를 먹는 이웃입니다. 나와 너는 풀이 맺는 열매를 나누어 먹으면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동무입니다. 서로서로 풀 한 포기 심고 풀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풀노래를 부를 적에 이 땅이 되살아납니다. 다 같이 나물 먹고 남새 심으며 풀꽃동무가 될 적에 아름다운 나라가 됩니다. 손수 흙을 일구지 않는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기자와 학자와 지식인과 작가와 의사와 교사와 변호사와 공무원 들은 도시에서 아스팔트를 파먹으라고 할 노릇입니다. 생각과 뜻과 사랑과 믿음을 키우고 싶은 이라면, 씩씩하게 도시를 박차고 시골로 가서 조용히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10퍼센트만 넘어도 정치는 바뀝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20퍼센트를 넘으면 사회는 놀랍도록 바뀝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30퍼센트를 넘고 40퍼센트를 넘으면 입시지옥 따위는 발을 붙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군대와 경찰 모두 사라지면서 참다운 평화가 이 나라에 깃듭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50퍼센트를 넘으면 저절로 남북이 하나가 될 테고,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60퍼센트를 넘고 70퍼센트에 이르면 돈이 사라지면서 가난과 굶주림 모두 사라집니다.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80퍼센트를 넘으면 지구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모든 사람이 자급자족을 하면 이 지구별에는 어떤 기운이 넘칠까요?


  내 밥을 내가 손수 길러서 먹는다면, 어느 누구도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 따위는 안 씁니다. 내 밥을 내가 손수 지어서 먹으면, 어느 누구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책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날마다 노래와 웃음과 춤과 이야기가 넘치는 잔치마당이 됩니다. 삶은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4347.12.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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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40. 2014.11.28. 가끔은 책돌이



  누나는 놀다가도 책을 손에 쥐기도 하지만, 산들보라는 놀고 다시 놀고 또 놀 뿐, 책을 손에 쥐는 일이 드물다. 산들보라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 준 일이 드물기 때문일까. 누나가 그림책을 읽어 주면 옆에 달라붙어서 잘 들여다보는 산들보라이다. 산들보라는 아무래도 몸을 많이 쓰면서 놀고 싶은 마음이로구나 싶고, 누나가 끝끝내 같이 놀아 주지 않을 적이 되면 비로소 ‘가끔 책돌이’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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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글쓰기 길동무
3. 누구와 읽을 글을 쓰나


  내가 쓴 글은 누구한테 읽힐까요? 내가 쓴 글을 읽을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음으로 글을 쓰고, 마음을 글로 쓰면서, 내가 쓴 이 글을 누구와 읽으려 하는지 생각합니다. 나 혼자 읽을 글인가요? 내 짝꿍한테만 읽힐 글인가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읽힐 글인가요? 여러 동무한테 골고루 읽힐 글인가요? 낯선 사람한테까지 읽힐 글인가요?

  대통령한테 편지를 띄울 수 있고, 국회의원이나 군수나 시장한테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분이나 이웃 어른한테 편지를 쓸 수 있고, 멀리 떨어진 벗한테 편지를 적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 편지를 쓰려 하면, 받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씁니다. 어버이한테 쓰는 편지와 이웃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 쓰는 편지는 다릅니다. 동무한테 쓰는 편지와 동생이나 언니한테 쓰는 편지는 다릅니다. 궁금해서 여쭐 이야기를 적는 편지와 어떤 일을 바라면서 적는 편지는 다릅니다. 따지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편지와 도움을 바라는 뜻을 담는 편지는 다릅니다.

  편지를 쓸 적에는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편지쓰기가 사뭇 다릅니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잘 알 만한 사람이라면 한결 단출하게 쓸 테지만,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거의 모르거나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아주 꼼꼼하게 쓸 테지요. 도움을 바라는 편지를 쓰려 한다면, 왜 도움을 받아야 하고 어떤 도움을 바라며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밝혀야 합니다.

  서울사람이 같은 서울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할 적과, 서울사람이 전남 고흥에 있는 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할 적은 다릅니다. 같은 서울사람이라면, 서울을 이야기하기에 한결 수월합니다. 그러나 서울을 모르는 다른 고장 사람한테 서울을 이야기하자면 이것저것 먼저 알려주거나 밝힐 대목이 많습니다. 이와 거꾸로 보면, 전남 고흥에 있는 사람이 다른 고흥사람한테 고흥을 이야기할 적에는 퍽 수월합니다. 그리고, 고흥사람이 서울사람한테 고흥을 이야기하자면 여러모로 먼저 알려주거나 밝힐 대목이 많아요.

  동생이 없어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과 동생이 있어 아기를 돌본 일이 잦은 사람이라면, 갓난아기 이야기를 나눌 적에 사뭇 다릅니다. 동생이 없어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저귀’나 ‘배냇저고리’라는 말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알아도 막상 기저귀나 배냇저고리가 어떻게 생겼고, 기저귀를 어떻게 채우거나 배냇저고리를 어떻게 입히는지 하나도 모를 수 있어요. 아기를 돌본 일이 없는 사람한테 ‘기저귀 채우기’나 ‘기저귀 갈기’를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이를 알려줄 만할까요? 아주 낱낱이 밝혀야 하고, 자잘한 데까지 꼼꼼하게 짚어야 하겠지요. 이와 달리, 아기를 으레 돌보거나 잘 돌본 사람이라면 무척 가볍고 쉽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요.

  짜장면을 아직 먹은 적 없는 사람한테 짜장면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짜장면 맛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장어나 석류를 먹어 본 적 없는 사람한테, 후박꽃이나 동백꽃을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제비나 박쥐를 본 적 없는 사람한테, 벼베기나 풀베기를 한 적 없는 사람한테, 그물 손질이나 대패질을 한 적 없는 사람한테, 이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서 들려줄 수 있을까요.

  나 혼자 읽을 글이라 한다면, 내가 아는 대로 쓰면 끝납니다. 다른 사람한테 읽힐 글이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잘 알아듣도록 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 수 있으나 하나도 모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눈길을 둘 수 있으나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읽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인가에 따라, 글에 담으려는 마음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달라집니다. 글을 쓸 적에는 이 글을 읽을 사람을 또렷이 생각하면서 그 사람 눈높이에 맞춥니다.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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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40) ‘해’와 ‘햇살’ (떠오르는 햇살 위)


곧 떠오르는 햇살 위로 펄떡펄떡 힘차게 뛰어오르는 잉어 한 마리가 그려졌지

《김소연·이승원-소원을 말해 봐》(비룡소,2014) 23쪽


 떠오르는 햇살 위로

→ 떠오르는 해를 보며

→ 떠오르는 해와 함께

→ 떠오르는 해님처럼

 …



  아침에 해가 뜹니다. 저녁에 해가 집니다. 뜨고 지는 별은 ‘해’입니다. 해를 두고 ‘해님’이라 하기도 합니다. ‘해님’이라 할 적에는 해를 섬기는 뜻과 해를 가까이 여기려는 마음이 함께 깃듭니다.


  해가 뜨면 ‘햇살’이 퍼집니다. 해가 뜨면서 ‘햇빛’이 온누리를 비춥니다. 해가 뜰 적에 ‘햇볕’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따스하게 내리쬡니다.


  “햇살이 뜬다”라든지 “햇빛이 뜬다”라든지 “햇볕이 뜬다”고 할 수 없습니다. 햇살은 ‘퍼진다’거나 ‘드리운다’거나 ‘뻗는다’고 합니다. 햇빛은 ‘비춘다’거나 ‘밝힌다’고 합니다. 햇볕은 ‘쬔다’거나 ‘내리쬔다’거나 ‘따뜻하게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살·빛·볕’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떠오르는 햇살”처럼 적습니다. 잘못 적었습니다. 햇살은 떠오를 수 없습니다. 해가 뜨면서 퍼지는 빛줄기를 가리켜 ‘햇살’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그림책에 이처럼 한국말을 잘못 적으면, 이 그림책을 읽는 어른과 아이는 한국말을 엉뚱하게 받아들입니다. 잘못된 말마디를 깨닫고는 이 대목을 지운 다음 바로잡는 슬기로운 어버이가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말마디인지 모르는 채 그냥 읽는 어버이가 퍽 많습니다. 책에 적힌 말투이기 때문에 ‘책에 적힌 말투가 틀리겠느냐?’ 하고 잘못 생각하는 어버이도 꽤 많습니다.


  이 보기글을 더 살피면, “햇살 위로”라 하는데, “떠오르는 햇살”을 “떠오르는 해”로 바로잡더라도 이래저래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그림에 나오는 잉어 한 마리는 해보다 높은 위쪽으로 뛰어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잉어가 해보다 위로 뛰어오른다고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잉어는 “해를 보며” 뛰어오른다고 해야 맞습니다. 잉어는 “해와 함께” 뛰어오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잉어는 “해처럼” 뛰어오른다고 할 만합니다. 4347.12.10.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곧 떠오르는 해를 보며 펄떡펄떡 힘차게 뛰어오르는 잉어 한 마리를 그렸지


“한 마리가 그려졌지”는 “한 마리를 그렸지”나 “한 마리가 나타났지”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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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07) -의 : 우리 존재의 신비


우리 존재의 신비를 탐색하고 연구하여 이해할 방법들이 아예 없는 것일까? 그래서 얻은 이해로 우리의 이성理性과 현대 과학에서 얻은 우주에 관한 지식을 아울러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일까

《디팩 초프라/이현주 옮김-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 20쪽


 우리 존재의 신비를 탐색하고

→ 신비로운 우리 넋을 살피고

→ 놀라운 우리 숨결을 살펴보고

 …



  우리는 모두 놀라운 목숨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은 모두 놀라운 숨결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찾아보고 살피면서 헤아릴 수 있으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구나 슬기롭게 깨달으리라 봅니다. 내가 나를 살피면서 슬기로운 넋이 되고, 나를 둘러싼 온누리를 헤아리면서 똑똑하고 올곧은 얼이 됩니다. 두 가지를 아울러 보듬으면서 튼튼하고 사랑스러운 삶으로 거듭납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존재’나 ‘신비’ 같은 한자말하고 ‘-의’를 섞습니다. 이밖에 ‘탐색·연구·이해·방법·이성·만족’ 같은 한자말을 잇달아 적습니다. 마음이나 넋이나 얼을 깊이 헤아리자면 이러한 한자말만 써야 한다고 여기는 분이 많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런 한자말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요 백 해 안팎이 아닌, 이백 해 앞서 오백 해 앞서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은 생각을 깊이 못 했을까 궁금합니다. 천 해나 이천 해 앞서 이 땅에서 생각을 주고받던 사람은 넓거나 깊게 헤아리는 숨결이 아니었을까 궁금합니다.


  길은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찾습니다. 말은 말을 살피려는 사람이 살핍니다. 이웃과 생각을 슬기롭게 나누려 하면 슬기로운 빛이 밝습니다. 동무와 마음을 사랑스레 나누려 하면 사랑스러운 꿈이 자랍니다. 4347.12.10.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놀라운 우리 숨결을 찾아보고 살펴서 깨달을 길이 아예 없을까? 이렇게 깨달은 슬기와 현대 과학에서 얻은 우주 지식을 아울러 채울 수 없을까


‘신비(神秘)’는 ‘놀라움’으로 손보고, ‘탐색(探索)하고’는 ‘찾고’나 ‘찾아나서고’나 ‘찾아보고’로 손보며, “연구(硏究)하여 이해(理解)할 방법(方法)들이”는 “살펴보고 깨달을 길이”로 손봅니다. “아예 없는 것일까”는 “아예 없을까”로 손질하고, “그래서 얻은 이해로”는 “이렇게 깨달은 슬기로”로 손질합니다. “우리의 이성理性과”는 이 대목에서 “우리 슬기와”로 손질해야 제대로 어울리지 싶습니다. “우주에 관(關)한 지식”은 “우주 지식”이나 “우주를 다루는 지식”이나 “우주에 얽힌 지식”으로 다듬고, “만족(滿足)시킬 수 없는 것일까”는 “채울 수 없는가”나 “누릴 수 없을까”로 다듬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08) -의 : 계절의 영향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겨울이면 의기소침해지는 사람도 밝은 햇볕을 쬐면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 몸뿐 아니라 나무, 꽃, 나비, 박테리아 등 지구의 모든 생물체에 생화학적 영향을 미친다

《디팩 초프라/이현주 옮김-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 52쪽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 계절이 크게 영향을 끼쳐서

→ 철에 따라 크게 달라져서

 계절의 변화는

→ 철이 바뀌면

→ 철이 바뀔 적에

 …



  한국말은 ‘철’이고, 한자말은 ‘季節’입니다. 한글로 적더라도 ‘계절’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season’을 한글로 ‘시즌’으로 적는다고 하더라도 ‘시즌’은 한국말이 아닌 영어입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르게 쓰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학교와 사회와 문학에서 한자말 ‘계절’을 익숙하게 쓸 수 있지만, 한국말은 예나 이제나 ‘철’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안 쓰면 오히려 한국말이 낯섭니다. 한국말이 아닌 외국말이라 하더라도 한국사람이 외국말을 자꾸 쓰고 거듭 쓰면 도리어 외국말이 익숙합니다. “계절의 영향”이나 “계절의 변화”처럼 글을 쓰는 까닭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계절’이나 ‘영향’을 그대로 두더라도 “계절이 크게 영향을 끼쳐서”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계절이 변화하면”처럼 적을 수 있을 테지요. 토씨 ‘-의’를 알맞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어떤 낱말을 어떻게 쓰는지 제대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2.10.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철에 따라 크게 달라져서 겨울이면 축 처지는 사람도 포근한 햇볕을 쬐면 마음이 훨씬 좋아진다. 철이 바뀌면 사람 몸뿐 아니라 나무, 꽃, 나비, 박테리아 같은 지구별 모든 목숨이 골고루 달라진다


‘의기소침(意氣銷沈)해지는’은 ‘풀이 죽는’이나 ‘축 처지는’으로 손질합니다. 햇볕은 따뜻한 기운이기에 ‘밝은 햇볕’처럼 쓰지 못합니다. “따순 햇볕”이나 “따뜻한 햇볕”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밝은’을 넣으려면 “밝은 햇빛”처럼 적어야 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겨울철에 따뜻하게 내리쬐는 볕을 가리키니 “포근한 햇볕”으로 적어야 알맞습니다. ‘기분(氣分)’은 ‘마음’으로 손보고, ‘등(等)’은 ‘같은’으로 손보며, “지구의 모든 생물체(生物體)”는 “지구별 모든 목숨”으로 손봅니다. ‘생화학적(生化學的)’은 ‘골고루’나 ‘두루’로 다듬고, “영향(影響)을 미친다”는 “바꾼다”나 “달라지게 한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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