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안 먹으면서 살기



  사람은 밥을 꼭 먹어야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밥 때문에 몹시 힘들었기에 곧잘 이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먹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김치를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니, 오늘날 한국에서는 밥상맡이 늘 거북할 뿐 아니라 고단했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우물거리다가 삼켜야 했는데, 김치를 억지로 씹어서 삼키면 뱃속이 좋을 턱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김치를 먹지 않았으면, 나는 어릴 적에 밥을 즐겁게 먹었을까? 어쩌면 그러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어릴 적에는 크림이 조금이라도 있는 빵이나 케익을 손에 대지도 못했다. 크림빵이나 케익을 먹으면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언젠가는 생일상에 올라온 크림케익을 먹다가 그만 왈칵 게우고 나서 넋까지 잃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달걀이나 떡도 잘 먹지 않았다. 여느 때에는 그럭저럭 먹지만, 한동안 안 먹다가 모처럼 먹으면 꼭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새로운 먹을거리’를 자꾸 먹이셨다.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에는 공장에서 찍는 가공식품이 쏟아질 때였고, 유럽에서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우유를 몽땅 내버려야 하던 터라, 우유를 ‘가루’로 만들어서 한국에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하던 때요, 이러저러해서 ‘새로운 유제품’이 무척 많이 나왔다. 요플레라든지 푸딩 비슷한 것이라든지 요구르트라든지, 그리고 우유라든지 참으로 많이 돌았다. 이런 것 가운데 처음 내 입에 닿는 것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불렀고, 아무리 먹어도 입에 맞지 않아서 누가 거저로 주어도 먹고픈 마음이 없었다.


  밥도 힘들고 주전부리도 고단했다. 다른 사람은 단팥빵이니 크림빵이니 무엇이니 저것이니 하는 빵을 즐긴다지만, 내가 가장 즐긴 빵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식빵’이고, 그나마 ‘식빵 아닌 빵’을 고르라 할 적에는 ‘소보루빵’만 골랐다. 식빵도 기름을 많이 쓴다지만, 식빵보다 기름을 더 쓴 빵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낳았다.


  어릴 적에 ‘하루 세 끼니’란 죽음과 같았다. 아침 낮 저녁에 먹어야 하는 밥은 그저 무시무시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갔는데 동무네 어머님이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김치처럼 삭힌 것을 못 먹는데, 이런 반찬이 있으면 동무네 집에서까지 얼마나 끔찍한가. 게다가 김치를 못 먹는 모습을 바깥에서 들키면 학교나 동네에서 얼마나 놀림을 받는가. 아니, 알 사람은 웬만큼 알아, 동네에서 놀다가도 아주머니들이 “쟤는 김치를 못 먹는 아이라지?” 하고 수다를 떨면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밥은 왜 먹을까? 밥은 왜 먹어야 할까?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즐겁게 일하거나 놀려고 밥을 먹는가? 그러면, 즐겁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못 먹는 것을 억지로 먹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피를 먹을 수 있지 않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많이 먹어도 모자란 사람이 있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줄이고 줄여서 거의 안 먹다시피 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그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국민학교 산수 수업에서, 나는 혼자 이런 ‘수열’을 생각했다.


  나흘째 아무것도 못 먹고, 닷새째 밥이나 물을 조금도 입에 못 대면서 보낸다. 엿새나 이레가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뭘 조금만 입에 대도 곧바로 물똥이 나온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니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는 멀거니 구경을 하거나 자리에 드러눕는다. 밥내음은 따로 욕지기가 나지 않는다. 밥을 보아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배앓이와 물똥 때문에 안 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밥을 부르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에는 그때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를 또렷하게 깨닫는다. ‘단식’이나 ‘금식’이 아니어도 ‘밥 없는 삶’이 될 수 있고, 밥에다가 물조차 없는 삶으로 여러 날 보내면서 몸이 허전하거나 힘들지 않다.


  어릴 적에 한 가지 더 생각한 적이 있다. 하도 밥먹기가 힘들다 보니 ‘밥 안 먹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는데, 풀이나 나무를 보면 뿌리가 땅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지만, 따로 ‘밥을 먹는 얼거리’는 아니다. 해와 바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에 비가 있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아니, 모든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즈믄 해를 살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떠할까? 사람도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사람이 살 수 있으면, 입으로 넣는 것이 없으니, 밑으로 나올 것도 없다. 입으로도 밑으로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이 없으니 몸은 늘 그대로 흐를 테며, 몸에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다시 넣어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하는 흐름이 사라진다면, 몸이 아프거나 늙을 일도 없으리라 느낀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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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안 먹으면서 글쓰기



  닷새째 ‘밥을 안 먹으면’서 글을 쓴다. 오늘 아침까지 몸살 기운을 털지 못해 몹시 고단했지만, 낮을 지나고 저녁이 되니 몸살 기운은 슬슬 사라진다. 나흘째 밥을 먹지 못하다가 닷새째에는 조금 먹어도 될까 싶어 한술 떴더니 웬걸, 밥 한술에다가 모과차 한 잔까지 알뜰히 물똥으로 나온다.


  내 몸을 차분히 지켜보기로 한다. 밥을 안 먹으면서 얼마나 더 지낼 만한지 바라보기로 한다. 오늘 저녁을 보내고 이튿날부터 다시 밥을 먹을는지 모르지만, 며칠 더 밥을 안 먹을는지 모른다.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밥을 더 바라지 않으며, 딱히 밥을 기다리지 않는다. 날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도 함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억지로 밥을 떠넣고 싶지 않다.


  밥을 안 먹다 보니, ‘밥 안 먹는 삶’을 머릿속으로 갈무리하면서 글을 쓴다. 어느 모로 보면 ‘밥을 못 먹다’ 보니, 밥을 안 받아들이는 몸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글을 쓴다.


  글은 어떻게 쓰는가?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쓴다. 밥을 먹으면서 산다면, ‘밥 먹는 삶’을 글로 풀어낸다. 밥을 안 먹으면서 산다면, ‘밥을 안 먹는 삶’을 글로 풀어낸다. 시골에서 흙을 짓는 사람은 시골살이나 흙짓기를 글로 쓰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아이키우기를 글로 쓴다. 날마다 인문책만 읽는 사람은 ‘인문책 이야기’를 글로 쓴다. 날마다 신문이나 방송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글로 쓴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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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16 21:47   좋아요 0 | URL
음. 밥을 못드신다니 걱정이 앞서네요.
일부러 하는 단식이 아닌 이상..

파란놀 2014-12-16 21:54   좋아요 0 | URL
걱정할 일이란 없습니다.
몸은 외려 훨씬 튼튼하고
생각과 머릿속은 아주 또렷하거든요 ^^

`밥 안 먹기`와 얽혀 쓴
다른 두 가지 글을 읽어 주셔요.
그러면, 어느 한 가지 길이
슬기롭게 열릴 만하리라 느껴요.
 

섣달 동백나무 꽃망울에 흰눈



  눈이 쌓이는 모습을 한 해에 한 차례 볼까 말까 하는 전남 고흥에서 오늘은 모처럼 눈이 쌓일 듯 말 듯한다. 낮까지는 햇볕에 그대로 녹더니, 저녁이 가까우니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제법 쌓인다. 그렇지만, 저녁이 가까워도 저녁볕을 받으며 눈이 사르르 녹으려 한다. 밤새 눈이 더 내리면 조금 쌓일까. 밤에 눈이 소복소복 찾아들면 아이들은 아침에 눈을 뭉쳐서 놀 수 있을까. 동백나무 꽃망울이 살짝 춥겠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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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 봐 - 꿈이 담긴 그림, 민화 지식 다다익선 28
김소연 글, 이승원 그림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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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2



꿈을 그린다

― 소원을 말해 봐

 김소연 글

 이승원 그림

 비룡소 펴냄, 2014.11.18.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두 갈래입니다. 꿈과 사랑을 이루려고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나 이름을 얻으려고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갈래 길은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지 않습니다. 그저 두 갈래 길입니다.


  꿈을 이루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꿈을 이룹니다. 사랑을 나누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사랑을 나눕니다. 돈을 얻으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돈을 얻고, 이름을 얻으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름을 얻어요.


  오늘 이곳에 선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무엇을 바라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늘 돈을 생각했으니 돈을 많이 법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널리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며 살았으니 널리 이름이 알려져요. 그런데,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모두 대통령이 되지는 않는다고 할는지 모르는데,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고 그 길을 가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되지 못할 뿐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꿈을 꾸는 대로 이루기 때문에 어떤 꿈을 꾸려 하느냐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 꿈을 이루기에 아쉽지 않고, 저 꿈을 이루기에 멋지지 않습니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마음을 그러모으는 매무새를 보아야 합니다. 꿈을 이루기까지 삶을 어떻게 가꾸거나 가누거나 돌보았는지 느껴야 합니다.





..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지. “이 그림들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요?” “아무렴, 너도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느냐?” ..  (5쪽)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적에 섣불리 옆에서 덧바르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그냥 그림’이 아닌, 언제나 ‘내 꿈 그림’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한테 ‘똑같은 틀’에 맞추어 그림을 몰아세우는 짓은 몹시 나쁩니다. 이때에는 ‘나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꿈을 품으면서 다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이 대목을 안 헤아리거든요.


  초·중·고등학교도 이와 같아요. 초·중·고등학교는 아예 점수를 매깁니다. 어떤 틀에 맞추지 않으면 점수를 안 주지요. 미술 교사 눈에 들지 않으면 점수를 못 받을 뿐 아니라, 성적이 나빠요. 그러니, 초·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꿈을 안 그리’거나 ‘꿈을 못 그리’는 마음과 몸으로 바뀝니다. 꿈을 생각하지 못하고, 꿈을 꾸지 못하며, 꿈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몸으로 굳어져요.



.. “모란도는 신랑 신부가 행복하게 살기를 비는 그림이란다.” 안방마님이 혼례를 앞둔 딸의 손을 꼭 쥐며 말했어. “부디 이 모란꽃처럼 귀하게 살아다오.” ..  (15쪽)





  미술대학교를 다니는 젊은이는 얼마나 ‘내 그림’을 그릴까요? 사진·영상을 대학교에서 배우는 젊은이는 얼마나 ‘내 사진·영상’을 빚을까요?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 젊은이는 얼마나 ‘내 글’을 쓸까요?


  오늘날 대학교에서 젊은이한테 삶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날 대학교뿐 아니라 여느 사회에서 사람들한테 꿈과 사랑을 심거나 가꾸라고 북돋울까요?


  미술대학교를 마친 사람이 많아도 ‘제대로 꿈을 그리는 사람’이 드물고, 대학교 사진학과를 마친 사람이 많아도 ‘제대로 꿈을 찍는 사람’이 드물며, 문예창작학과를 마친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이런 상 저런 추천을 받으며 책까지 냈어도 ‘제대로 꿈을 쓰는 사람’이 드물 수밖에 없는 얼거리입니다.



.. 나는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봤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어.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품은 그림들. 하지만 내 소원을 이루어 줄 그림은 없었지 ..  (33쪽)



  김소연 님이 글을 쓰고, 이승원 님이 그림을 그린 《소원을 말해 봐》(비룡소,2014)를 읽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 이야기가 조용히 흐릅니다. ‘그림쟁이 이름’을 밝힐 까닭이 없이 ‘그림을 집에 걸어 늘 들여다보면서 꿈을 키우고 싶은 여느 사람’ 삶자락 이야기가 차분히 흐릅니다.


  그림책 《소원을 말해 봐》를 넘기면, ‘조선 무렵 여느 그림’을 아기자기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 한 권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마음을 넉넉히 살찌울 만합니다. 그림마다 어떤 뜻을 담고, 그림마다 어떤 꿈을 키우려 하는지 곰곰이 돌아볼 만합니다.


  그런데, ‘조선 무렵 여느 그림’은 조선이라는 사회 얼거리에서 태어난 그림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서 새롭게 ‘우리 그림’을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그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하고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이백 해나 사백 해 앞서 이 땅에 살던 사람이 빚은 그림 이야기를 오늘 누리는데, 앞으로 이백 해나 사백 해 뒤에 살아갈 사람은 ‘오늘 우리가 빚은 어떤 그림’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어떤 그림’에 어떤 꿈과 사랑을 심는다고 할 만할까요?


  《소원을 말해 봐》에 나오는 그림을 엿보면 어느 때 그림인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2000년대 모습이나 2010년대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할 만한 그림은 무엇이 될까요. 오늘날 ‘우리 꿈을 환하게 드러내는 수수한 그림’은 무엇일까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 꿈을 환하게 드러내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수수한 그림은 누가 어디에서 그릴까요.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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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5


 

밥 안 짓는 사람은 뭘 할까

― 할아버지의 부엌

 사하시 게이조 글

 엄은옥 옮김

 여성신문사 펴냄, 1990.5.1. (2008년에 《아버지의 부엌》으로 다시 나옴)



  사내보다 가시내가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가시버시 가운데 가시내가 먼저 흙으로 돌아가는 때가 있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혼자 지내는 집보다는 할머니 혼자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가시내가 사내보다 튼튼하기 때문에 오래 살까요? 아니면, 가시내는 사내를 걱정해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까요?



.. “아버지보다 내가 하루라도 더, 그게 안 되면 10분이라도 더 살아 있고 싶어. 아버지 혼자 남으시면 불쌍하고, 미안한 기분이야. 아버지를 먼저 잘 보내 드리고 나서 죽고 싶어” 호소하는 듯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다 배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안하다는 기분이 어머니의 마음속에 뭉쳐 있는 것 같았다 ..  (13쪽)



  솥이나 냄비로는 밥을 못 지을 뿐 아니라, 전기밥솥으로 밥을 못 짓는 사내가 꽤 많습니다. 쌀을 어떻게 씻어서 불리는지 모르는 사내가 참 많고, 가게에서 어떤 쌀을 장만하면 될는지 모르는 사내가 퍽 많습니다. 막상 쌀을 사서 씻은 뒤 전기밥솥 단추를 누르더라도, 다른 것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국은 끓일까요. 반찬은 마련할까요.


  멀리서 찾지 않고 내 어버이를 바라보더라도, 내 아버지는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가득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다루거나 꺼내어서 먹어야 할는지 모르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아실는지 모르지만, 혼자 밥을 짓고 국을 끓일 줄 아실는지, 또는 라면이나마 손수 끓일 줄 아실는지 궁금합니다.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비워야 한 날이면 중국집에서 거듭 시켜서 밥상을 차렸습니다.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중국집에 전화를 어떻게 걸어야 하고, 무엇을 시켜야 하며, 값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내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내가 집 바깥에서는 ‘전문가’ 자리에 서서 일합니다.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회사나 공장을 움직인다든지, 탱크나 비행기나 발전소를 다룬다든지 하지요. 책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신문을 내거나 방송을 내보내는 일도 하고요.



.. 아침 일을 8가지쯤 끝내니까 아버지는 녹초가 되었다. 나도 지쳤다. “한 집안을 꾸려 간다는 건 힘들구나. 나는 지쳐 버렸어.” 하고 누워 버린다. 신문을 읽을 기력도 없어 보이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어 아버지가 가엾다는 생각에 한숨과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너무 엄격하고 지나치게 (가르치려고) 해 드렸나? 반성하면서도 그러나 처임이 중요한 것. 기본을 철저히 가르쳐 드리지 않으면 아버지는 풀어져서 대충대충 하실 거다 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아버지는 점심때까지 까딱도 안하고 누워 계셨다. 11시쯤 되어 나는 큰소리로 쾌활하게 “자, 일어나세요. 점심 준비합시다. 힘 내세요. 영차 영차.” ..  (37쪽)



  도시에서는 가게에 가서 쌀을 사다가 먹습니다. 그러나, 쌀이란, 처음부터 비닐에 담긴 ‘풀열매’가 아닙니다. 볍씨를 흙에 심어서 여름 내내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먹고 마시도록 돌본 뒤에 가을에 베어서 훑고 말리고 까부른 뒤에 겨를 벗겨야 비로소 ‘쌀’입니다. 가을에 거둔 나락 가운데 이듬해에 다시 심을 볍씨를 갈무리합니다. 이듬해에 다시 심을 볍씨를 빼고 나서 우리가 먹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밥을 지을 줄 알기는 해도, 쌀이 어떻게 나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밥맛은 알아도 쌀결은 모르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밥맛은 쌀맛입니다. 쌀맛은 벼맛입니다. 벼맛은 무엇일까요? 바로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들풀이 어우러지는 맛입니다. 그리고, 논을 돌보는 시골지기 손길이 어리는 맛입니다.


  밥 한 그릇이 그냥 눈앞에 뚝딱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랑과 손길과 꿈이 깃듭니다. 지구별을 감도는 푸르며 싱그러운 숨결이 깃듭니다.


  밥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란 삶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밥맛을 모르는 사람은 삶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 회사일에는 일단락 짓는 것이 있고 매듭이 있다. 해냈다는 반응과 충족감이 있다. 그것에 비해 가사란 하는 보람도 없고 평가도 결과도 없고 반응도 없는 것이 아닐까. 잡사가 줄줄이 이어지므로 인내가 필요하다. 하면 당연하고 안 하면 점점 쌓여 간다 ..  (44쪽)



  사하시 게이조 님이 쓴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에 나오는 사내(할아버지)는 여든세 살입니다. 여든세 살 나이에 가시내(할머니)가 먼저 흙으로 돌아갑니다.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간 뒤, 할아버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집을 치워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치우기’가 무엇인지, 비질이나 걸레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비나 걸레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회사에 가서 돈을 벌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청와대에서 대통령 자리에 앉는 분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국회의사당을 지키거나 법원이나 신문사나 방송국을 지키는 분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날마다 먹는 밥’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하는 셈일까요? 날마다 밥을 먹지만, ‘날마다 먹는 밥이 될 먹을거리’를 우리 땅에서 손수 심고 거두고 돌보고 갈무리해서 건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하는 셈일까요?



.. 구청이나 우체국, 은행, 병원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가서 사회인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계셨다. 창구의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얘기를 거는 모습을 일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억지로 만들어서 친절한 것뿐이어서 아버지는 쓸쓸하고 분하신 거다. 상대방으로부터 가볍게 취급당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응대를 받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굴욕이신 듯. 그래서 동네모임인 반상회는 귀중한 사회참여의 장소다 ..  (78쪽)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사내(할아버지)는 셋째 딸아이가 알뜰히 이끌고 가르쳐서 집살림과 집일을 천천히 배웁니다. 지겨워 하면서 배우고, 배를 곯으면서 배웁니다. 힘들어 하면서 배우고, 어려워 하면서 배웁니다. 늘그막에 뭔 짓이느냐 하고 여기면서 배우다가, 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텐데, 그렇다고 좀처럼 ‘쉽게 죽지’도 못합니다.


  집에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는 사내(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누군가 옆에 붙어서 모든 심부름을 해 주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 아이한테 손수 아무것도 안 가르치고 학교와 학원만 보낸 어버이는 이녁 아이뿐 아니라 손주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원래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을(보이지 않는 곳을 알뜰히 청소하는 일) 묵묵히 하셨으니, 딸이 왜 화를 내고 애를 태우는지,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가 보다. 부엌을 깨끗이 치우고 문턱을 닦아 놓아도 칭찬해 주지도 않으니 하루쯤 안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잡일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변명이시다 ..  (93쪽)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하루쯤 집을 비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이틀쯤 집을 비우고 사라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사흘쯤 집을 비우고 사라지면 얼마나 신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다른 생각도 합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사람이 농협에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굳이 농협에 쌀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팔아야 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는 쌀개방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을 하기로 했으니, 모든 먹을거리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라 하고, 시골 흙일꾼은 시골에서 이녁끼리 먹을 만큼만 지어서 나락 한 톨조차 아무한테도 안 팔면 돼요. 경쟁력이고 경제발전이고 뭐고 따질 일이 없습니다. 값싼 쌀이 좋다는 도시사람과 지식인과 공무원과 정치꾼한테는 ‘미국이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사들인 쌀’을 먹으라 하면 되고, 시골사람만 ‘한국에서 거둔 쌀’을 먹으면 됩니다.


  숲을 밀어 송전탑을 때려박을 뿐 아니라, 들을 밀어 관광단지와 군부대를 만들고, 시골을 깎아서 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고, 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공장도 뭐도 위해시설도 모조리 시골로 보내는 만큼, 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나무 한 그루조차 안 심는 오늘날이니, 배추와 무와 고추도 몽땅 중국에서 사들이면 됩니다.



.. 아버지가 좋아하는 외출의 유일한 수단인 자전거를 안심하고 탈 수 없는 일본의 도로 사정에 분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버지보다 젊은 나도 가끔 넘어질 것 같은 나쁜 도로, 보도와 차도의 높이가 다른 것, 자전거용 전용도로가 없는 것의 모순을 나도 느꼈다. 노인이나 어린이,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도로의 대책이 없다. 육교 등은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 부상당한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 이를 위해 아버지는 시청이나 구청에 투서를 했지만 응답이 전혀 없다 ..  (119쪽)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참 어렵습니다. 길이 나쁠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약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대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기에 몹시 나쁘고, 젊은 아줌마도 자전거를 타기에 아슬아슬하다고 하면, 참으로 놀랄 노릇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리가 아파 구름다리나 지하도로 다닐 수 없어 ‘무단횡단’을 하는 할매나 할배가 도시에 꽤 있습니다. 발걸음이 워낙 느려, 건널목 푸른불이 빨간불로 넘어가도 미처 다 건너지 못하기도 합니다. 도시는 온통 계단투성이일 뿐 아니라, 바퀴걸상이나 아기수레가 느긋하게 다닐 만한 길이 드뭅니다. 자동차는 거님길을 잡아먹고, 자동차가 없는 거님길은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이나 광고판이나 오토바이가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이웃이 되어 사는가요. 우리는 내 이웃을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우리는 우리 삶터를 어떻게 가꾸는가요.



.. 아버지도 마찬가지. 딸들이 젊어 갖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척척 일하고 있으면, 아 소란스럽구나, 내 평화로운 생활 속에 들어와서 양해도 없이 멋대로 휘저어서 뻔뻔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딸들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조금만 더 있어 주지 않나 하고 그리운 생각이 솟아 돌아가는 뒷모습에 눈물 흘리는 아버지랍니다 … 아버지의 경우는 다행히도 마에가와 씨가 매일 와서 돌보아 주면서 여러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니까 어두운 면은 없다. 그래도 밤이면 혼자 있는 것이 무섭다고 하는데, 진짜 외톨뱅이 노인들의 외로움은 어떨까 ..  (174∼175, 133쪽)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여든세 살 할아버지는 맏사위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깊이 생각한 끝에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외칩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이녁 딸아이가 도와주기만 바랄 수 없는 삶인 줄 깨닫습니다.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뿐 아니라 딸아이도 괴롭고, 사위뿐 아니라 다른 살붙이도 고단하겠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손수 밥을 짓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면 차츰 익숙하게 할 수 있으며, 나중에는 제법 솜씨있게 지을 수 있습니다. 집안을 손수 돌보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면 차근차근 가꿀 수 있고, 나중에는 꽤 이쁘장하게 꾸밀 수 있습니다.



.. “그것이 노후를 아릅답게 사는 길이라 명심하고,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자. 결국 이것이 나, 노인에게 주어진 길이다. 외롭지만 마음 편한 독신생활을 더 한층 즐겁게, 심신의 건강에 유의하며 살자. 또 셋째딸이 말하는 것처럼, 노인의 방 같지 않게, 화분이랑 꽃을 밝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옷도 청결하게 밝고 화려한 것을 입으며, 몸도 마음도 젊게 살려고 애쓰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세 끼 식사는 뱃속 8부만 먹고, 사치하지 말고 욕심없이 살겠다. 지켜봐 주십시오.” ..  (186쪽)



  학교에서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먹을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락을 펼치는 교사는 아이들한테 ‘오늘 이 도시락은 이러저러하게 지었지’ 하고 알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시사상식이나 사회문제를 놓고 술자리에서 밤새 말다툼을 벌이는 사내는, 이제 부질없는 말다툼은 그치고, 아이들한테 밥을 어떻게 차려 주었더니 맛있게 먹었더라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기를 빕니다. 정치나 경제 같은 말다툼은 그치고, 그렇게 말다툼할 틈이 있으면 손수 밥을 맛나게 차려서 이웃과 동무를 부른 뒤 ‘잔치’를 열기를 빕니다. 인문책은 그만 읽고 요리책을 읽기를 빕니다. 나중에는 인문책도 요리책도 모두 덮은 뒤, 아이들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함께 놀고 노래하면서 웃는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삶을 바꾸지 않으면, 헉명이란 없습니다. 삶을 바로세울 때에, 비로소 사랑이 싹틉니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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