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책 한 권을 쓴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느낀다. 책 한 권을 펼치면서, 책 한 권을 엮은 사람이 흘린 땀방울을 헤아린다. 책 한 권을 장만하면서, 책 한 권이 태어나기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내가 책 한 권을 쓴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웃과 동무한테 퍼진다. 내가 책 한 권에 이르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면,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 어린 씨앗이 톡톡 터진다. 내가 아이한테 베푸는 이야기는 아이가 받아먹는 마음밥이 되면서, 내가 나한테 다시 아로새기는 따사로운 다짐말이 된다.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은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이 된다. ‘내가 이룬 삶’은 ‘내가 스스로 쓰는 글’이 된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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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d 2014-12-19 09:19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아이곁에 앉아 함께 들여다보고싶은 충동이 이네요 ^^

파란놀 2014-12-19 13:43   좋아요 0 | URL
책순이 옆에 앉으면 하루 내내 함께 놀 수 있습니다 ^^
 
오즈의 마법사 : 스페셜 에디션 (2disc) - True Classic
빅터 플레밍 감독, 주디 갈랜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1939



  어릴 적에 텔레비전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차례 보았다. 만화영화로 나온 〈오즈의 마법사〉도 즐겨보았다. 두 아이와 함께 새삼스레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이 영화에 흐르는 ‘노래’는 거의 귀여겨듣지 않았다고 깨닫는다. 집이 날아가고, 도로시가 동무를 만나고, 도로시네 동무들이 무슨 일이든 두려움에 벌벌 떨고, 날개 달린 원숭이가 하늘을 까맣게 덮고, 두 마녀가 뜬금없다시피 바보스레 사라지고, 빨간 구두를 톡톡톡 치고, 이런 모습만 드문드문 떠오른다.


  나는 어릴 적에 무엇을 보았을까. 나는 어릴 적에 영화를 보기는 보았을까. 내가 뛰놀고 사는 우리 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채,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나날은 아니었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본다.


  영화에 나오는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집채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던 까닭은 제 꿈을 노래에 담아 늘 부르면서 언제나 마음에 담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살가운 동무를 바랐기에 동무를 만나고, 동무들과 어떤 일을 이루고 싶기 때문에 동무들과 사이좋게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루는가 하고 알아차렸기에 도로시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다시금 ‘새로운 곳(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마법이란 무엇일까. 남이 못하는 일을 짠 하고 하루아침에 해내는 솜씨가 마법일까? 어느 모로 본다면 이렇게 볼 수 있을 테지만, 마법이란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 삶을 바꾸는 하루라고 느낀다. 스스로 온마음을 기울여 삶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기쁘게 웃고 노래할 테지. 삶을 스스로 바꾸면 아주 기쁘고 신이 나면서 춤을 추고 기운이 넘칠 테지. 어떤 부자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처럼 넉넉하거나 너그럽지 못하다. 어떤 권력자도 ‘웃고 춤추는 사람’처럼 기운차거나 씩씩하지 못하다. 어떤 글쟁이나 지식인도 ‘웃으며 노는 사람’처럼 멋스럽거나 아름답지 못하다.


  ‘무지개 저편’이나 ‘무지개 너머’를 헤아려 본다. 이곳에서 보기에 저곳이 무지개 너머가 될 텐데, 저곳에서는 바로 이곳이 무지개 너머이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내가 저곳을 그린다고 하면, 저곳에 있는 너는 바로 이곳을 그린다. 내가 그리는 저곳, 그러니까 무지개 너머로 가자면 나는 마음속에 깃든 앙금이나 응어리를 스스로 지우거나 털면서 새로운 넋이 되어야 한다. 가방을 싸들고 내뺀다고 해서 일이 풀리거나 말썽이 사라지지 않는다. 똑바로 바라보면서 마주하고 지켜보아야 비로소 스스로 거듭난다. 뛰어난 마법사한테 찾아가야 이루는 마법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꾸어야 이루는 마법이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어릴 적에 여러 차례 보았어도 어느 대목이든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날개 달린 원숭이’만 무서워 할 뿐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이 영화를 다시 볼 적에는 ‘내가 나답게 거듭나는 길’을 어느 만큼 슬기롭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나한테 사랑스럽고 반가우면서 아름다울 무지개 너머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새벽별이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빛나는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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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강추위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부른다. 택시 일꾼은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는 ‘광주’를 잣대로 날씨를 알리는 방송이 흐른다. 그래, 여기는 전라남도일 테니까. 경상남도라면 부산을 잣대로 날씨를 알릴 테고, 경상북도라는 대구를 잣대로 날씨를 알릴 테며, 충청남도라면 대전을 잣대로 날씨를 알릴 테지. 경기도라면 어디를 잣대로 날씨를 알릴까? 광주에서는 -4℃이니 -5℃이니 할 즈음, 택시에 뜨는 바깥 온도는 +5℃이다.


  겨울이 되면 전남 고흥과 서울 사이에는 10도가 넘게 벌어진다. 내 어버이가 사는 충북 음성과 전남 고흥 사이라든지, 곁님 어버이가 사는 경기 일산과 전남 고흥 사이는 적게는 12도에서 많게는 15도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날이 춥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이 벌어진다. 게다가 인터넷에 나오는 날씨 정보를 볼 적에도 ‘고흥’이라고 하면 ‘고흥 읍내’가 되고, ‘고흥군 도화면’이라 해도 ‘도화면 소재지’일 뿐이다. 면소재지와 마을은 퍽 다르다. 이래저래 따져도 면소재지보다 마을이 한결 포근하다. 왜냐하면, 시골자락 마을은 볕바른 데에 있다. 논과 밭을 일구는 시골자락 마을이니 볕이 잘 들지 않는 데에 마을이나 집이 있을 턱이 없다. 면소재지도 볕이 제법 드는 곳이지만 마을처럼 볕이 들지는 않는다. 이러다 보니 도시와 시골 사이는 겨울에도 추위가 사뭇 다를 뿐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날씨는 훨씬 크게 다르겠지. 눈이 쏟아진다거나 냇물이 꽝꽝 얼어붙는다는 이야기가 마치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린다. 도시에도 숲이 있다면, 도시에도 넓게 들과 숲과 멧골이 있다면, 우람한 나무가 빽빽한 숲이 찬바람을 가려 주면서, 집집마다 고운 겨울볕을 받아 포근할 수 있다면, 겨울도 덜 추우면서 오붓하게 지낼 만하지 않을까. 우리 식구가 인천에서 살 적에 골목동네를 살피면, 골목집은 참으로 조그맣지만 서로 알맞게 볕을 나누어 가지고 어깨를 기대면서 한겨울에도 꽤 따스했다. 높은 집이 없으니 칼바람이 부는 데가 없고, 나즈막한 집이 겹겹이 잇닿으니 포근한 바람이 동네에 감돌면서 참으로 괜찮았다. 4347.12.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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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39. 모과알



해마다 봄이 밝으면

볼볼볼그스름하게 작은 모과꽃

그득그득 넘실거리며 고운 내음.

이윽고 여름이면 꽃 모두 지고

여름내 푸른 잎사귀 가득.

어느새 가을 찾아오니

내 머리통만 하게 굵고 단단히

모과알 주렁주렁.

큰바람 훅 지나가면 한 알씩

턱 큰소리 울리며 떨어지는데

가없이 향긋한 가을볕 내음.



2014.10.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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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11. 놀자 놀자 놀자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기운이 넘칠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을 적마다 속이 얹혀 더부룩하거나 거북하거나 고단할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기에 꼭 기운이 나지 않습니다. 밥을 안 먹기에 꼭 기운이 안 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을 배워야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을 잘 배워야 잘 찍을까요?


  마음 가득 사랑이 흐르는 사람은 여러 날 굶은 몸으로도 놀랍게 기운을 내어 엄청나다 싶은 일을 해냅니다. 마음에 사랑이 한 조각조차 피어나지 않는 사람은 끼니를 거른 적이 없어도 놀랍게 아무 힘을 못 쓰면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은 배고픈 줄 모릅니다. 몇 시간을 뛰놀아도 배고프지 않을 뿐 아니라 지치지도 않습니다. 곁에서 어버이가 “얘, 배고프겠다. 밥 먹고 놀아라!” 하고 불러야, 비로소 ‘아하, 내가 배고픈가 보구나. 밥 먹고 또 놀아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곁에서 어버이가 “얘, 힘들지 않니? 좀 쉬었다가 놀아라!” 하고 부르지 않으면, 아이들은 ‘힘든’ 줄 모르면서 놉니다.


  내 사진솜씨가 모자라다고 여기는가요? 그렇다면, 참말 내 사진솜씨는 모자랍니다. 내 사진솜씨가 좋다고 여기는가요? 그렇다면, 참말 내 사진솜씨는 좋습니다.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 아주 쉽게 있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결에 따라 모든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즐겁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즐거운 기운을 사진에 즐겁게 싣’습니다. 즐겁지 못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즐겁지 못한 기운을 사진에 즐겁지 못하게 듬뿍 얹’고 맙니다.


  사진 찍은 햇수가 길어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사진 장비가 값비싸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잘 새겨야 합니다. 내 마음이 모든 것을 움직입니다. 내 몸가짐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놀아요. 놀고 또 놀아요. 놀고서 다시 놀아요. 노는 아이들처럼, 온마음을 쏟아요. 노는 아이들이 놀이에 온마음을 쏟듯이, 사진을 찍는 어른이라면 사진에 온마음을 쏟아요. 배고픔을 잊고 오직 사진에 매달려요.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어떠한 느낌이나 생각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사진을 바라봐요. 그러면, 나부터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데다가 멋스럽기까지 한 사진을 내 손으로 빚을 수 있습니다. 놀 때에 태어나는 사진이고, 놀 때에 자라는 사진이며, 놀 때에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4347.12.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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