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럭놀이 6 - ‘하울성’ 만들었어



  만화영화 ‘하울의 성’을 여러 차례 본 작은아이는 곧잘 ‘하울성’을 블럭으로 만든다. 그러고는 장난감 동무를 이 성에 앉힌다. 여럿을 함께 앉히면서 논다. 아슬아슬하게 맞춘 듯하지만 야무지고, 튼튼하게 맞추어서 쌓다가도 이내 허물고 다시 척척 맞춘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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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키키 2014-12-20 00:08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 손끝이 야물어요. 아주 잘 만들었어요. ^^

파란놀 2014-12-20 00:11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 가만히 다시 보니
우란 인형 다리도 보이더군요 @.@
인형을 저 작은 틈에 있는 대로 쑤셔넣은 듯합니다.... ㅋㅋ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93) 예전의 1


그곳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던 예전의 모습은 낭만적이었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아침이슬,2007) 97쪽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 예전 모습이 사라졌다

→ 예전에 본 모습이 아니었다

→ 예전에 없던 모습이었다

→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



  ‘예전’이라는 낱말 뒤에는 토씨 ‘-의’를 붙이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아니, 토씨 ‘-의’를 붙일 일이 없습니다. ‘지난날’이나 ‘앞날’도 이와 마찬가지이고, ‘예’로만 쓸 적에도 그렇습니다. “지난날 모습”이나 “앞날 모습”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지난날의 모습”이나 “앞날의 모습”으로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날의 모습”이나 “앞날의 모습”처럼 토씨 ‘-의’를 붙이는 사람이 자꾸 늘어납니다. 알맞지 않은 말투가 알맞지 않은 줄 느끼지 않고, 올바르지 않게 글을 쓰면서 올바르지 않은 줄 깨닫지 않습니다.


 예전의 모습은 낭만적이었다

→ 예전 모습은 아름다웠다

→ 예전 모습은 살갑고 좋았다

→ 예전에는 아름다웠다

→ 예전에는 살갑고 좋았다


  자전거가 아름답게 있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늘날은 자전거가 아름답게 있지 못한 모습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수수한 삶을 내버리면서 수수한 말 또한 내버립니다. 아기자기하고 수수한 삶을 등지기에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한 말을 등집니다. 삶대로 말을 하고, 말은 다시 삶을 이룹니다. 말이 말다울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고, 삶이 삶다울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을 노릇입니다. 4340.1.17.물/4342.12.30.물/4347.12.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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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자전거가 줄지어 선 예전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던”은 “자전거가 줄지어 선”으로 손질합니다. ‘낭만적(浪漫的)’인 모습이라고 할 때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그냥 “낭만적인 느낌”인가요? 보기 좋다든지, 사람 냄새가 난다든지, 살가움을 느낄 수 있다든지, 아름답다든지, 넉넉하거나 느긋해 보인다든지, 오순도순 수수하게 어울리는구나 싶다든지, 즐거운 모습이라든지, …….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 느낌을 담아낼 수 없기에 ‘낭만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 낱말이 아니고는 자전거가 줄지어 서던 모습이 어떤 느낌으로 내 가슴에 아로새겨졌는가를 나타낼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09) 예전의 2


코스차는 더 이상 예전의 산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니콜라이 노소프/엄순천 옮김-내 친구 비차》(사계절,1993) 177쪽


 예전의 산만한 아이

→ 예전처럼 방정맞은 아이

→ 예전같이 어수선한 아이

→ 예전에 보던 아이

 …



  더는 예전과 같은 아이가 아니라면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요. 이제는 새로운 아이가 되었다는 뜻일 테지요. 이제는 다시 태어난 아이가 되었다는 뜻이며,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아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예전처럼 방정맞은 아이”로 적을 수 있고, “예전에 보던 아이”로만 적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보던 아이”나 “예전 같은 아이”라고만 적어도 ‘예전 모습을 한꺼풀 벗고 새로 깨어난’ 모습인 줄 알아챌 수 있어요. 그리고 “코스차는 이제 새로운 아이가 되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7.12.19.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코스차는 더는 예전처럼 방정맞은 아이가 아니었다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고, ‘산만(散漫)한’은 ‘어수선한’이나 ‘방정맞은’으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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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반 교과서 창비시선 39
김명수 / 창비 / 19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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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9



‘입시지옥 죽음터’인 학교에서

― 하급반 교과서

 김명수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3.5.25.



  노래는 모두 노래입니다. 오래된 노래가 없고 새로운 노래가 없습니다. 즐겁게 부르는 노래라면 모두 새로운 노래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노래입니다.


  꿈은 모두 꿈입니다. 오래된 꿈이 없고 새로운 꿈이 없습니다. 즐겁게 꾸는 꿈이라면 모두 새로운 꿈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꿈입니다.



.. 지금도 허리 끊어진 남북분계선 / 시계 청소를 하는 병사들의 톱에 / 아름드리 소나무는 베어져 나가는데 ..  (그 봄의 식수)



  새롭게 받아들일 때에 노래요 꿈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될 때에 노래를 부르거나 꿈을 꿉니다. 마음이 늘 새로운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마음을 늘 새롭게 다스리는 사람이 꿈을 꿉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할 적에 함께 기뻐하거나 웃지 못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는 이웃이 있을 적에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면 두레나 품앗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일곱살 때였던가 / 삐라를 뿌리며 읍내 상공을 / 커다란 프로펠러 빙글빙글 돌리며 / 버짐난 우리들 머리 위로 날아가던 저 비행기 / 잠자리채 속에 사로잡았던 / 장수잠자리보다 / 더 신기하던 헬리콥터를 ..  (헬리콥터)



  김명수 님이 쓴 《하급반 교과서》(창작과비평사,1983)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난 시집입니다. 서른 해가 지난 예전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라 할 수 있고, 서른 해 앞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을 다룬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야구방망이를 골마루에서 흔들면서 엉덩이를 후려치는 교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졌을까요?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이런 돈을 걷거나 저런 돈을 모으느라 아이들이 고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평화가 자라나요?



.. 소나무는 솔씨를 간직하고 섰으리라 / 지나간 겨울 산에 갔다가 / 내가 보았던 나무들의 작은 씨앗 / 멀리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도 / 비바람에 나무들 작은 씨앗들이 / 제 몸 묻어 푸른 산을 꿈꾸며 섰으리라 ..  (솔씨)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삽을 들고 운동장을 펴는 일 따위는 안 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폐품수집을 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급시설을 갖추느라 바자회를 열면서 학교에 돈을 바쳐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골마루에 엎드려서 양초나 왁스를 문지르면서 반들반들 빛이 나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학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날 학교는 어느 대목이 나아졌는가요? 오늘날 학교는 지난날 아이들이 고단하게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은 사라졌다고 할 만한데, 무엇보다 가장 큰 고단함은 사라졌을는지, 아니면 가장 큰 고단함이야말로 더 커졌을는지 궁금합니다.



.. 봄이 와도 / 봄이 와도 / 고단한 봄날 / 우리 어매 홀로 조밭을 맨다 ..  (노고지리)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크게 짊어지는 굴레는 ‘시험지옥’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학교에 넣지만, 막상 학교는 아이를 가르치는 노릇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입시지옥’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시험점수를 더 받아내도록 하는 데에만 바쁜 학교입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어버이 스스로 ‘삶을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대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까요.


  그나마 예전에는 ‘아이가 동무를 사귀면서 놀도록’ 할 뜻으로 학교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합니다.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학교는 입시시험을 치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 키만 크신 아버지 / 우리집 서 마지기 논농사는 어떤지요? / 제가 사는 영등포는 하늘이 어둡지만 / 흉년든 고향에도 / 하늘은 가을 되어 파랗겠지요 ..  (소액환)



  내 아이가 놀고 싶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학원에 가야 할 테니까요. 학원에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울 뜻이기 때문입니다.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웃학교를 거치고 또 더 나은 웃학교를 지나서 ‘돈을 많이 벌고 몸은 덜 쓰면서 일은 수월한 일자리’를 얻도록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학교라는 곳은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곳인데,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까닭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려는 뜻’ 때문이고,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는 일자리도 ‘나는 몸을 안 쓰고 다른 이가 몸을 쓰도록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 설운 이름 너무 많다 /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 건드리면 끊어질 듯 / 바람불면 쓰러질 듯 /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 우리는 그날을 / 새봄이라 믿는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학교를 더 다닌다고 해서 됨됨이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됨됨이를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학교이니, 더 낫다는 웃학교에 들어가도록 시험점수는 높일 수 있더라도, 착한 마음이나 바른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상냥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나 맑은 마음이나 훌륭한 마음이나 멋진 마음이나 예쁜 마음이나 좋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그 좋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사회에서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터뜨립니다. ‘그 훌륭하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정치나 경제나 문화 같은 행정을 맡을 적에 몹쓸 짓을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더 낫다는 웃학교’에는 들어가도록 길들여졌지만, 마음씨를 올바로 추스르는 길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와 대학원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한테 ‘꿈’을 안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며 ‘믿음’을 안 가르칩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안 가르치고, 동무가 누구인지 안 가르치며, 사람이 누구인지 안 가르쳐요.



.. 광주에 사는 내 친구 시인 / 김장독을 파묻다가 삽날에 나온 것은 / 찢어진 비닐봉지 조각이라나 / 묻혀서도 썩지 않는 비닐봉지라나 ..  (기정사실)



  시집 《하급반 교과서》를 찬찬히 읽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가르치는 이 얼거리를 그대로 잇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앞날을 밝힐 등불이나 별빛’이 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교과서 시험지식만 가득 채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잘못을 더 저지를 슬픈 굴레’가 되고 맙니다.



.. 어느새 자라난 아들의 머리를 / 뒷마당에 나와서 잘라주고 있다 / 헌 신문지로 목둘레를 여미고 / 눈을 덮는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 무엇이든지 잘 잘리는 / 어머니 쓰시던 큼직한 가위 ..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만 가르치려 하니 뒤틀리거나 비틀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학교는 다니되 삶은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배우며 꿈이나 믿음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배우지 못하니 바보스럽거나 미련한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가 없는 학교는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마을음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일터와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는 모두 죽음터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손수 길어올려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흘러야 합니다. 노래가 태어나야 하고, 노래가 자라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어야 하고,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교과서가 사라지기를 빕니다. 교과서 아닌 사랑으로, 어버이가 아이를 기쁘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금자리라는 사랑터에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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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밥그릇 글쓰기



  한국말사전에서 ‘수수하다’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1) 물건의 품질이나 겉모양, 또는 사람의 옷차림 따위가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제격에 어울리는 품이 어지간하다 (2)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로 풀이한다. 제법 길게 풀이말을 달았지만 오히려 알쏭달쏭할 뿐 아니라, 말느낌을 못 살리는구나 싶다. 북녘에서 펴낸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수수하다’를 풀이하면서 ‘(1) 평범 (2) 소박’ 이렇게 두 가지 한자말을 쓴다. 한자말을 넣어 풀이를 하더라도 차라리 이 말풀이가 낫구나 싶다. 왜냐하면, ‘수수하다’라는 낱말은 꾸미지 않는 모습과 거짓이 아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기에 좋거나 나쁘다고 따질 수 없다. 거짓이 아니기에 틀림없이 ‘참’이지만, 스스로 참이면서 참을 내세우지 않는 만큼 어느 자리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모습이 바로 ‘수수하다’이다. 다른 한자말을 빌자면 ‘은근’하고 어울린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예부터 널리 쓰던 막사발이라든지 민무늬 밥그릇을 두고 “수수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한겨레가 입던 하얀 빛깔 옷도 “수수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널리 읽고 사랑하며 아끼는 시나 노래를 헤아려 본다. 이래저래 꾸민 시나 노래를 사람들이 널리 읽거나 사랑하거나 아낄까? 아니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고 부르는 시와 노래는 한결같이 ‘수수하’다.


  무엇보다 들꽃과 들풀이 수수하다. 숲이 수수하다. 바다가 수수하다. 하늘이 수수하다. 우리가 늘 마시는 바람이 수수하다. 아침마다 찾아오고 저녁마다 지는 해가 수수하다. 나락 한 줌이 수수하다.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래잔치가 수수하다. 숲에 둘러싸여 포근하게 안긴 조용한 시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수수하다.


  수수한 빛이란 삶빛이다. 수수한 삶이란 넌지시 오가는 사랑이 샘솟는 하루이다. 도드라질 까닭도 뒤떨어질 까닭도 없으면서, 언제나 있는 그대로 즐거운 사랑이 바로 수수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수수한 밥그릇처럼 찬찬히 쓰는 글일 적에 마음을 건드리면서 밝힐 만하리라 느낀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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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2.16. 큰아이―벼리순이와 편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림순이는 제 모습을 빨간 매직으로 벽에 그렸다. 여덟 살이 되기까지 한 달을 앞둔 그림순이는 제 모습을 무척 맵시있고 깔끔하게 그릴 수 있다. 날마다 수없이 그리고 또 그렸으니 어느 그림보다 제 모습을 잘 그리리라 느낀다. 아버지더러 아프지 말라면서 또박또박 연필에 적어서 건넨 쪽글을 ‘벼리순이’ 그림 위쪽에 척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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