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착한 마음으로 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착하’게 살면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착하게 살면서 돈을 얻는 길이나, 착하게 일하면서 이름을 펴는 길이나, 착하게 어깨동무하면서 힘을 쓰는 길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어른들 스스로 착한 삶을 모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착하게 살기에 돈을 못 벌지 않습니다. 돈을 벌 뜻이 없을 때에 돈을 못 벌 뿐입니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면서 돈을 벌고 싶다면, 마음과 몸과 넋과 삶이 모두 착한 숨결이 되도록 다스리면서 돈을 벌면 됩니다.


  ‘싼값’을 흔히 ‘착한 값’으로 잘못 생각하곤 합니다. 다른 가게보다 눅은 값으로 팔아야 ‘착한 값’이 아닙니다. 에누리를 더 한다면, 그저 에누리를 더 할 뿐이요, 값을 후려칠 뿐입니다. 남보다 싸게 물건을 판다면 착한 일이 될까요?


  남보다 싸게 물건을 팔면 아마 남보다 물건을 잘 팔는지 모릅니다. 제값을 깨고 싼값으로 후려치면 남보다 장사가 잘되거나 벌이가 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제값을 깨는 짓이 착하다고 할 만할까요? 다른 사람은 장사가 안 되도록 제값을 깨는 짓은 참말 착하다고 할 만할까요? 다른 사람은 돈을 못 벌도록 하면서 싼값을 내세우는 일이 그야말로 ‘착한 값’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착하다’를 “말씨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로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싸게 후려치는 값은 ‘착한 값’이 될 수 없습니다. 장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살림을 북돋울 수 있도록 이끄는 제값이 될 때에 비로소 ‘착한 값’이 됩니다. 과자 한 봉지이든 능금 한 알이든 책 한 권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올바른 길을 아름답게 걸을 때에 비로소 ‘착하다’고 합니다. 이른바 ‘공정무역’은 ‘착한 무역’이 될 텐데, 왜 착한 무역이 되느냐 하면, 땀흘려 일하는 사람한테 제몫을 찾아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바르면서 아름다울 때에 비로소 착합니다. 옳고 바르기만 해서는 착하지 않고, 옳고 바름에 아름다움이 더해야 착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빚은 어린이문학 《마디타》(문학과지성사,2005)를 읽으면, “마디타도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착한 마음일 때의 느낌이 참 좋았다(99쪽).”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아이는 언제 스스로 착하다고 느꼈을까요. 아이는 착하다고 느낄 적에 어떤 마음이 되었을까요. 스스로 착하구나 하고 말하면서 어떤 얼굴을 지었을까요.


  회사에서 일하거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어떤 몸짓과 얼굴짓으로 이웃을 마주하는지 궁금합니다. 다달이 받는 일삯을 제대로 챙길 수 있으면 된다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언제나 환하게 웃는 마음일까요. ‘감정노동’이라고 하는 고된 일에 짓눌리는 삶일까요, 아니면 스스럼없이 노래하며 일하는 삶일까요.


  내 삶은 남이 지어 주지 않습니다. 내 삶은 늘 내가 스스로 짓습니다. 내 일은 남이 시켜야 하지 않습니다. 내 일은 늘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배고픔은 내가 스스로 느끼지, 시계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배고파서 차리는 밥은 손수 지어서 손수 수저를 들어 입에 넣어 먹지, 기계가 모든 얼거리를 맡아 주지 않습니다. 남이 내 입에 밥술을 떠넣어 준다 하더라도, 내 몸이 스스로 움직여서 밥을 삭여야 기운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이 책을 읽어 줄 수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내가 스스로 귀여겨들어 마음으로 삭여야 합니다. 나 스스로 삭이지 않으면 어느 책을 골라서 읽거나 듣더라도 내 것이 안 됩니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를 읽어야 내 마음이 살찌지 않아요. 어느 책을 읽든 나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서 삭여야 합니다. 어느 책을 손에 쥐어 읽더라도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움직여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붕 위에서 보니 강물이 저 멀리 굽이를 도는 데까지 보이고, 물 위로 가지를 축 늘어뜨린 수양버들도 보였다. 또 강기슭을 따라 죽 늘어선 집들과 정원들이 다 보였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 나뭇잎들이 참 아름답고, 가을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렀다(71∼72쪽).” 같은 대목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냇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수양버들을 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가을 나뭇잎과 이웃집과 뜰을 바라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내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내가 내 살갗으로 가을바람을 느끼고 겨울바람을 느낍니다. 겨울에는 차가움을 느끼고, 봄에는 따스함을 느끼며, 여름에는 시원함을 느끼고, 가을에는 푸근함을 느낍니다. 달력이나 시계가 알려주는 철이 아니라, 해가 흐르고 달이 흐르면서 바뀌는 날을 우리가 몸소 느끼면서 헤아립니다.


  그러니까, 착한 삶이 되자면 내가 오늘 하루를 착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고운 마음이 되고 고운 말을 들려줍니다. 바른 몸짓을 하고 바른 눈짓과 손짓을 합니다. 상냥한 몸가짐이 되면서 상냥한 목소리가 됩니다. 이쁘장하다는 아가씨를 뽑는다고 하는 자리에서 흔히 ‘참(진)·착함(선)·고움(미)’ 세 가지를 살핀다고 하는데, 참답고 착하며 고운 숨결일 때에 비로소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이쁘장할 때에 사람다운 모습이 아니라, 삶을 참답고 착하면서 곱게 가꿀 때에 사람다운 모습입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학교를 다닐 적에도 참과 착함과 고움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일터에서 일을 할 적에도 참과 착함과 고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참과 착함과 고움을 가르치면서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공공기관이든 공장이든 회사이든 어디이든, 우리 어른은 저마다 참과 착함과 고움을 몸으로 맞아들이고 마음으로 삭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 《마디타》에 나오는 마디타라는 아이는 “오늘 날씨가 참 아름답다고, 꼭 노래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씨에는 누구나 아주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196쪽).” 하고 혼잣말을 하고 혼잣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느낀 착함과 사랑스러움이 밑거름이 되어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이 되기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저절로 샘솟는 노래입니다. 길을 가면서 노래를 하고, 밥을 짓거나 심부름을 하면서 노래를 합니다. 동생이나 언니와 놀면서 노래를 하고, 소꿉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노래를 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노래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노래를 합니다. 삶이 온통 노래일 적에는 삶이 온통 사랑입니다. 삶이 온통 사랑이라면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일 테지요. 내 이웃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착한 마음으로 맞이하면서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철도의 밤
스기이 기사브로 감독 / 블루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은하철도의 밤

銀河鐵道の夜, Night On The Galactic Railroad, 1985



  하늘에 별이 빛난다. 밤에도 낮에도 별은 언제나 빛난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낮별을 볼 수 있을까. 낮에 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밤별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침이 되어 동이 트면, 지구를 가장 밝게 비추는 해가 다른 뭇 별빛을 잠재운다. 그러나, 햇빛 사이사이 별빛은 이 지구별에 드리우고, 햇빛과 별빛을 고루 느낄 수 있는 가슴이 되면, 사람으로서 이곳에 서서 살아가는 뜻과 숨결을 읽을 수 있을 테지.


  이웃이 서로 아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별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동무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햇빛을 늘 보면서도 햇빛이 어떠한 숨결인지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해가 비추는 한낮에도 땅밑으로 파고들어 쳇바퀴 같은 일을 하면서 돈만 바라보는 얼거리가 된다. 낮에는 해를 잊고 밤에는 별을 잊는 도시살이인데다가, 학교도 낮과 밤을 잊은 채 대학입시로 아이들을 들볶는다. 어른도 스스로 깨어날 마음이 없지만, 아이도 스스로 깨어날 틈이 없다.


  만화영화 〈은하철도의 밤〉은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어린이문학 《은하철도의 밤》을 살뜰히 따르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가. 어린이문학과 만화영화는 미리내와 별과 해와 지구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면서 삶이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려 하는가. 바로 사랑이고, 사랑을 가슴에 품는 즐거움이며, 사랑을 가슴에 품어 즐겁게 하루를 맞이하려는 슬기와 기운과 꿈이다.


  기쁨과 슬픔은 따로 있지 않다. 꿈과 사랑은 둘로 가르지 못한다. 웃음과 눈물은 한 사람한테서 함께 샘솟는다.


  아이야, 기운을 내렴. 어른아, 힘을 내렴. 우리 눈망울이 맑게 빛날 적에 우리가 두 다리로 선 이 지구별이 환하게 빛난다. 지구별이 환하게 빛날 적에 온누리에 새로운 미리내가 태어나서 다른 먼먼 별에 고운 빛물결로 흘러갈 수 있다. 지구로 찾아오는 고운 별빛처럼, 지구가 보내는 고운 별빛이 어우러지면, 어디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조물조물 깨어나면서 하얀 노래가 넘치리라. 4347.12.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몹쓸 년 (김성희) 수다 펴냄, 2010.4.27.



  우리 집 책꽂이에 여러 해 꽂힌 채 손길을 못 받던 《몹쓸 년》을 드디어 끄집어 내어 펼친다. 만화영화 〈은하철도의 밤〉을 틀어 아이들이 보도록 하면서 《몹쓸 년》을 펼친다. 만화책은 ‘늘 그런 따분한 삶’을 투박하게 그리고, 만화영화는 ‘늘 그렇지 않은 아름다운 삶’을 따사롭게 그린다. 《몹쓸 년》이라는 만화책은, 책이름부터 스스로 ‘몹쓸 년’으로 자리를 두면서 이야기를 연다. 그러니, ‘늘 그런 따분한 삶’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줄거리도 이야기도 고갱이도 이 자리에서 맴돈다. 〈은하철도의 밤〉은 아픔과 슬픔과 생채기와 응어리를 모두 가슴에 품어야 하는 아이가 스스로 꿈을 짓고 사랑을 맺으려는 실마리를 찬찬히 보여준다. 한국만화를 읽어 주고 싶지만, 한국만화를 읽기가 참 힘들다. 꿈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아무리 잘 드러내어 보여주는 작품’이 된다 하더라도, ‘스케치’에서 끝나면, 만화도 작품도 문화도 문학도 예술도 아무것도 못 될 뿐 아니라 ‘삶’조차 못 되는 줄 알기는 너무 어려운 노릇일까. ‘몹쓸 년’이라는 가시내 가슴속에는 아무 꿈이 없을까. 왜 꿈 한 조각조차 보여주지 못할까. 어쩌면, 일부러 안 보여줄는지 모르지만, 더 곰곰이 살피면 스스로 못 느끼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못 보여줄는지 모른다. 4347.12.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몹쓸년
김성희 지음 / 수다 / 2010년 5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2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2월 24일에 저장

은하 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 동화집 6
미야자와 겐지 지음, 박경희 옮김, 아즈마 이쓰코 그림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4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4년 12월 24일에 저장
절판
은하 철도의 밤
미야자와 겐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2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4년 12월 24일에 저장

은하철도의 밤
스기이 기사브로 감독 / 블루 / 2008년 5월
19,800원 → 2,900원(85%할인) / 마일리지 30원(1% 적립)
2014년 12월 24일에 저장
품절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짓날 빨래



  동짓날을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동짓날이 다가올 때까지 해가 조금씩 짧아지다가 동짓날을 고빗사위로 삼아서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데, 이 햇살을 언제나 살뜰히 느낀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면서 ‘아아, 해가 길어지니 참으로 좋네!’ 하고 노래가 나온다. 해마다 처음 찬바람이 불 무렵부터 동짓날을 생각하고, 동짓날을 맞이하여 긴긴 밤을 지내고 나면 ‘오오, 이제부터 빨래가 잘 마르도록 해가 길어지겠네!’ 하고 웃음이 솟는다. 동짓날 빨래를 하면서 복복복 힘이 잘 들어간다. 동짓날 빨래를 널면서 팔랑팔랑 개운하다.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양물감 2014-12-23 21:06   좋아요 0 | URL
요즘 계속 빨래를 집안에 널었더니 햇볕에 말리고 싶어요

파란놀 2014-12-24 05:57   좋아요 0 | URL
해가 날 적에 즐겁게 해님 누리시기를 빌어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3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5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2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2.9.25.



  한낮에 뒤꼍으로 가서 복숭아나무를 들여다보려 하니, 복숭아나무 옆에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아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뒤꼍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는 볕을 아주 잘 받습니다. 볕이 아주 잘 드는 자리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복숭아나무는 무럭무럭 큽니다. 마을고양이도 이 자리가 겨울볕이 아주 좋은 줄 잘 아는 듯합니다. 날마다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복숭아나무를 들여다보는데, 오늘 낮에는 마을고양이 낮잠을 깨우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앞서 장미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었습니다. 꼭 옮겨심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우리 집 뒤꼍 장미나무 한 그루가 그만 뚝 끊어졌습니다. 내 손가락 굵기만 한 여린 장미나무가 끊어진 모습이 애처롭기에 마당 한쪽 꽃밭에 심었지요. 잘 자라렴, 이곳에서는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않는단다 하고 속삭였습니다. 이 아이가 뿌리를 잘 내리기를 바라면서 틈틈이 들여다보면서 말을 건넵니다. 옮겨심은 아이는 돌울타리를 따라 몸을 기대면서 겨울볕을 살짝살짝 받습니다.



- “요모하라 선생은 재미있군요. 보통 유학생이 일본어를 배우는데, 요모하라 선생이 유학생보다 훨씬 열심히 언어를 공부하시니. 하지만, 이러면 학생을 너무 봐주게 되지 않습니까?”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재미있어서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16쪽)

- “이제야 떠올랐습니다. 요모하라 선생의 얼굴과 말이.” ‘유택 씨. 그 친구들과 두 번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언어로 이어져 있고 싶지 않겠습니까.” (31∼32쪽)





  오늘 아침에는 뒤꼍에서 우리 집 감나무를 한참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가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얻은 지 이듬해에 다섯 해째입니다. 며칠 뒤면 새해가 되니, 어느새 다섯 해째 우리와 지내는 감나무라 할 만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깃들이기 앞서까지 퍽 오랫동안 빈집이었다고 하니, 감나무는 이웃사람 손길을 탔을 만합니다. 예전에는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 손길을 탔을 테지요.


  마을에 있는 다른 감나무를 보면 키가 작습니다. 키가 큰 감나무가 드뭅니다. 감알을 따기 좋도록 가지를 뭉텅뭉텅 자르기 때문입니다. 가지를 잘라야 이듬해에 알을 더 많이 맺고, 따기에도 수월하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만큼은 가지치기는 좀처럼 안 합니다. 아예 안 하지는 않으나, 쭉쭉 뻗는 가지를 일부러 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나무답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올라가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 집 뒤꼍 감나무를 가만히 살피니, 곳곳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생채기가 아물면서 마디가 꽤 굵습니다. 얼마나 자주 가지치기를 겪었으면 이렇게 되었나 싶습니다. 도시마다 찻길 한켠에서 자라는 거리나무도 줄기 한쪽이 뭉툭합니다. 하도 가지치기를 겪어서 아파하고 아물고 아파하고 아물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는 카즈히코 이모부가 정신을 집중하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성한 곳이다. 하나코가 아무리 열성적인 팬이라 해도 이 자리를 더럽히는 것은 허락할 수 없구나.” (56쪽)

- “에도 사나이라면 패기가 있어야지” “좀 어렵군요. 아니, 저는 에도 출신이 아니라서, 지역의 관습은 존중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108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둘째 권을 읽습니다. 서른둘째 권에서도 유택 교수가 지난날을 곰곰이 더듬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 나름대로 걸어온 길을 차분하게 되새기면서, 이녁이 어릴 적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이녁이 어른으로 사는 오늘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와 맞물립니다. 어릴 적부터 곧게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릴 적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어른인 오늘 새롭게 깨닫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하지만, 나는 당신과 달리 아직도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135쪽)

- “역시 유택 씨였군요. 발소리로 금방 알았습니다.” “발소리?” “자기 뜻에 따라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제멋대로인 사람, 우유부단인 사람, 발소리는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죠.” “나는 어떤 발소리입니까?” “언제나 규칙적이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죠.” (168쪽)



  유택 교수는 홀가분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합니다. 이녁은 ‘온누리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가만히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유택 교수 스스로 돌아볼 테고 지켜봅니다. 유택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을 가만히 돌아보거나 지켜봅니다. 사람들이 두 발을 딛고 지내는 이 땅을 찬찬히 돌아보거나 지켜봅니다. 궁금하면 묻거나 스스로 생각합니다. 궁금하기에 책을 찾고 자료를 뒤집니다. 궁금함을 풀려고 책과 자료를 모아서 건사합니다. 수수께끼를 풀면서 웃고, 수수께끼를 내면서 노래합니다.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수수께끼투성이요, 사랑은 늘 재미난 수수께끼꾸러미입니다.



- “물방울을 떨어뜨려 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장치죠. 이 소리를 만들어 내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저녁바람이 불면 절의 대나무 숲에서 댓잎이 사각거리죠. 대숲 소리를 들으면 까마귀가 둥지로 돌아가는 소리도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이제 단풍잎도 물이 들기 시작하는군요. 돌 위에 잎사귀가 하느적 떨어지는 소리가 좋습니다.” (183쪽)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로 내 가슴을 감싸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를 나누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를 스스로 밝혀서 이 땅에 이야기 한 자락 심고 싶은가요?


  겨울볕이 포근합니다. 그러나 겨울인 만큼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밤에는 제법 춥습니다. 아니, 우리 집이 깃든 전남 고흥이니 낮에는 포근하고 아침저녁에는 쌀쌀할 수 있어요. 다른 고장에서는 한낮에도 무척 추울 테고, 어느 고장에서는 겨우내 눈이 가득 쌓여서 옴쭉달싹 못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태어납니다.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저마다 다른 노래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 마음을 적시면서 흐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우리 이야기를 씨앗으로 심는 하루입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내 삶을 웃음꽃으로 피우려는 꿈입니다.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양물감 2014-12-2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 유교수의 생활, 나 대학다닐때 후배가 만화방에서 늘 보던 만화였던거 같은데요. 한 20년 전에 나왔던 그 만화 맞나요?

파란놀 2014-12-24 05:56   좋아요 1 | URL
아주 오랫동안 그리는 만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