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 (권오순·안희도) 지성사 펴냄, 2012.1.4.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가운데 스무째 책으로 나온 《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를 읽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토목공학으로 바라본 이야기만 흐른다. 바다가 어떠한 곳인지 제대로 밝히거나 살피거나 들려주는 말은 한 줄도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동쪽과 서쪽과 남쪽이 바다이니까, ‘바다 개발’을 잘 해야 할까? 그런데, 아무리 토목공학으로 바라보면서 ‘바다 개발’을 말하려 한다 하더라도, 바다를 그대로 두면서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는 일이나 바다에서 김과 톳과 매생이와 굴을 길러서 얻는 일로 거두는 ‘경제 효과’쯤은 알아볼 노릇이 아닐까? 고기잡이를 할 적에 먼바다에서 얼마나 거두고 대륙붕 언저리에서 얼마나 거두는가를 살펴볼 노릇이 아닐까? 갯벌과 바다와 숲과 멧자락과 마을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가를 찾아볼 노릇이 아닐까? 바닷가를 잔뜩 시멘트로 발라서 숲과 바다 사이를 끊으면 숲과 바다가 모두 망가지는데, 토목공학 전문가인 두 사람은 이를 얼마나 알까? 뭍은 거의 다 ‘개발’했으니 바다로 눈을 돌리자고 외치는 책은 여러모로 쓸쓸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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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 사람이 만드는 미래의 해양 도시
권오순.안희도 지음 / 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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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775) 경제적 7


그녀에게 아들 한 명이 있고, 그녀의 꿈은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이효인-영화여 침을 뱉어라》(영화언어,1995) 24쪽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

→ 먹고살 만한 터전

→ 먹고살 만한 일자리

→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

→ 먹고살 만한 벌이

 …



  ‘경제적’이란 무엇을 가리킬까 생각해 봅니다. 숱하게 듣는 이 낱말을 새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경제가 될 만한”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러면, ‘경제’란 또 무엇이며, “먹고살 만한 경제 환경”이란 다시금 무엇을 이야기하는 셈일까요.


  어디에서나 듣고 어느 사람이나 쓰는 ‘경제’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들마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라든지 “경제적인 지원이 있어야지” 같은 말씀을 꺼내거나, “경제적으로 아쉬운 것이 없어요”라든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아요” 같은 말씀을 들려주곤 합니다.


 그한테는 아들 하나가 있고, 꿈이라면 먹고살 만한 보금자리요 일터이다

 그 여자한테는 아들 하나가 있고, 둘이서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를 꿈꾼다

 그 사람한테 아들이 하나 있고, 그이 꿈은 먹고살 만한 터전이라고 한다


  온누리가 모두 숨가쁘게 바뀌는 흐름이기에, 우리가 쓰는 말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누구도 ‘경제’나 ‘경제적’ 같은 말을 모르기도 했고 안 쓰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나 ‘경제’와 ‘경제적’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는 ‘벌이·밥벌이·돈벌이·돈·살림·살림살이’ 같은 낱말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는 이와 같은 한국말은 외려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 그 사람은, 그저 먹고살 만한 벌이 하나만 있으면 했다

 아들 하나 있는 그이는, 무엇보다 먹고살 만할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했다


  “진지 자셨어요?”라 하던 말이 “식사하셨어요?”로 바뀌었고, “고맙습니다”라 하던 말이 “감사합니다”나 “땡큐”로 바뀌었으며 “생각 좀 해 봐”라 하던 말이 “아이디어 좀 내 봐”나 “창의적으로 사고해 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라 주고받던 이야기를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처럼 바꾸어서 이야기해야 할 만한 오늘날일 수 있습니다. 다 바뀌니까요. 4340.1.3.물/4342.7.5.해/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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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한테 아들이 하나 있고, 그이 꿈은 먹고살 만한 터전이다

그 사람은 아들이 하나 있고, 먹고살 만한 터전을 갖추고 싶은 꿈이 있다


여자를 가리킬 때 ‘그녀’를 곧잘 쓰는데, ‘그’라고만 해도 되고, 사람이름을 밝혀서 적어도 됩니다. ‘그 사람’이라 적어 보아도 괜찮아요. “아들 한 명(名)이 있고”는 “아들이 하나 있고”로 다듬고, “갖추는 것이다”는 “갖추는 데에 있다”로 다듬어 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15) 경제적 8


실제로는 유행을 조작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자본가들과 ‘유행’이라는 마술로 무제한의 소비주의적 낭비를 조장하는 상품선전 산업의 요술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88쪽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 돈을 챙기는

→ 돈벌이를 일삼는

→ 돈벌이를 꾀하는

→ 돈을 쓸어모으는

→ 돈을 쓸어담는

→ 돈방석에 앉는

→ 앉아서 돈을 버는

 …



  학자나 교수나 기자는 으레 “경제적 이득을 취하다”처럼 말을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는 하나같이 이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 말로는 “돈을 벌다”일 뿐입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이고, 1950년대에나 1970년대에나 1990년대에나 2010년대에나 늘 매한가지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말마디와 적게 배운 사람들 말마디는 서로 어긋나고 자꾸 나란한 금으로 엇나가는데, 이제는 살가우며 쉽고 고운 말씨를 되찾아야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적 이득’도 ‘머니’도 ‘재테크’도 ‘펀드’도 ‘사업 수익­’도 아닌 ‘돈’과 ‘돈벌이/돈벌기’를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4340.6.24.해/4342.3.24.불/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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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유행을 부추기면서 돈을 챙기는 자본가들과 ‘유행’이라는 마술로 끝없이 쓰고 버리게 하며 상품을 알리고 팔아먹는 요술


‘실제(實際)로는’은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보면’으로 손보고, ‘조작(造作)함으로써’는 ‘꾸미면서’나 ‘부추기면서’나 ‘만들어 내면서’로 손봅니다. “무제한(無制限)의 소비주의적(消費主義) 낭비(浪費)를 조장(助長)하는”에서는 ‘무제한적인’으로 안 쓰니 반갑지만 뒷말이 얄궂어요. “끝없는 소비와 낭비를 부추기는(북돋우는)”이나 “끝없이 쓰고 버리게 하는”으로 더 손질합니다. “상품선전(-宣傳) 산업의 요술”은 “상품을 알리고 팔아먹는 요술”로 다듬을 만합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64) 경제적 9


종류나 양, 수확물의 값으로 따져 보아도 뭍의 어떤 생태계보다 생산력이 높아 경제적이다

《박병상-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알마,2007) 118쪽


 생산력이 높아 경제적이다

→ 생산력이 높아 돈이 된다

→ 많이 거둘 수 있어 돈이 된다

→ 많이 거두니 쏠쏠하다

 …



  “돈이 된다”는 뜻으로 쓰인 ‘경제적’입니다. 돈이 된다면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돈벌이에 좋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많이 만지니 ‘쏠쏠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갯벌 값어치를 돈으로 재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만, 돈으로 따지지 않으면 얕잡거나 깔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런 말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갯벌을 갯벌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가꾸면 좋을 테지만, 오로지 돈벌이로 생각하면서 마구잡이 삽날을 밀어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피고야 맙니다.


 어떤 곡식보다 많이 거두어 더욱 좋다

 어떤 곡식보다 나아 쏠쏠하다

 어떤 곡식보다 나으니 훨씬 훌륭하다


  스스로 삶을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니, 갯벌 또한 갯벌대로 아름다이 가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과 글과 넋과 얼도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고 맙니다. 4340.9.14.쇠/4342.3.24.불/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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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어들이는 가짓수나 부피로 따져 보아도 뭍에서 얻는 어떤 곡식보다 나으니 쏠쏠하다


‘종류(種類)’는 ‘갈래’나 ‘가짓수’로 다듬습니다. “양(量)과 수확물(收穫物)의 값으로”는 “부피와 거둠새”로 손볼 수 있지만, 썩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앞말과 함께 묶어 “거두어들이는 가짓수나 부피로 따져 보아도”쯤으로 고쳐쓰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뭍의 어떤 생태계”는 “뭍에서 자라는 어떤 곡식”이나 “뭍에서 얻는 어떤 곡식”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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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8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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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다카스기> 8권은 엉터리 편집 때문에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 참으로 어이없다 ......


..


만화책 즐겨읽기 445



살림꾼과 살림꾼 아닌 사람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8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4.12.25.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4) 여덟째 권을 읽는데, 곳곳에 일본말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이러한 엮음새이다 보니, 이는 참 얄궂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금이나 줄이나 톤 자리에 온통 ‘일본말로 느낌말이나 소리말’로 적은 만화책이라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구나 싶어서 그대로 둔 듯한데, 이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번역을 안 해야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니면 ‘한일대역’으로 읽으라는 뜻일까요?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은 글(대사)이 많아서 말풍선에 글이 깨알처럼 들어가는데, ‘한국말로 느낌말이나 소리말’을 적은 옆에 일본말이 고스란히 나오니, 책이 몹시 어수선합니다. 다른 만화책은 어쩌다가 한두 칸에 이런 잘못이 드러난다지만, 통째로 이렇게 한다면, 책을 읽는 사람(독자)을 바보로 아는 꼴이 됩니다.



- “맛있죠? 치킨 갈릭 소테예요.” “연락 받고 나서 만드신 건가요?” “금방 만들어요. 재워 두는 것이 포인트예요. 그런 의미에서는 시간이 걸리지만요.” (15∼16쪽)

- “시간이란 건 위대하죠. 음식도 맛있게 해 주고요. 멈춰버려 막히는 건 곤란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많은 걸 씻겨 주니까요. 일그러짐이나 비뚤어진 마음을 흘려보내고, 진실한 마음만 남는 거죠.” (19∼20쪽)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에 나오는 쿠루리는 수학여행을 가는 날, ‘수학여행 가방 챙기기’보다 ‘수학여행을 가서 쿠루리가 집을 비우는 동안, 집에 남은 사람이 할 일 적기’에 마음을 쏟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쿠루리는 어엿한 살림꾼입니다. 아니, 쿠루리와 함께 사는 하루미가 서툴거나 어설픈 아저씨라고 할 만합니다. 미덥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쪽글을 남길 테니까요. 그러나, 미덥지 못한 한편 믿음직하기에 쪽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살림꾼이 못 되는 하루미이지만, 쪽글에 적은 대로 알뜰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으니 쪽글을 남기지요.



- “쿠루리(久留里)라는 이름은, 오랫동안(久) 마을(里)에 머무른다(留)고, 계속 있고 싶은 곳, 고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엄마가 지어 준 거야.” (41쪽)

- “먹는 것에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건강한 편이에요.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랑 딱 맞는달까요? 편의점 신상품도 계절한정 과자와도 인연이 없는 생활을 하면 타인의 언동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죠.” (75쪽)





  살림을 잘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살림을 잘 못하기에 살림꾼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살림꾼일까요? 살림꾼은 누가 될까요? 처음부터 살림꾼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살림꾼이 안 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살림에 마음을 기울여서 요모조모 살피고 다스리는 사람이 살림꾼입니다. 살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 이것도 저것도 살피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안 살림꾼’입니다.


  누구나 저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일을 잘 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마음을 안 기울이는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글쓰기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글을 잘 쓰고, 사진찍기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사진을 잘 찍습니다. 회사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회사일을 잘 할 테고, 장사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장사를 잘 합니다. 텃밭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텃밭을 잘 가꾸고, 바느질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바느질을 잘 해요.





- “그럼 이건 다른 분들이랑 나눠 먹어도 되죠?” “응.” “웬일로 귀여운 봉투에 담았네.” (122쪽)

- ‘쿠루리 손은 아직 이렇게 작잖니. 그러니까 아직 못하는 게 당연해. 괜찮아. 엄마만큼 커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단다.’ (130쪽)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내가 밥을 차리든 누군가 밥을 차려야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밥을 차리는 사람은 밥 한 그릇에 사랑과 즐거움을 담을 수 있지만, 날마다 지겹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을 밥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일터에 가는 사람은 날마다 즐거움과 사랑을 담아서 바깥일을 할 수 있지만, 날마다 지겹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으로 바깥일을 겨우겨우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에 서든 똑같습니다. 어느 길에 서든 마음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즐거운 숨결로 다스리는 사람은 즐거운 숨결이 피어나는 하루가 됩니다. 마음을 지겨운 투정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지겨운 투정이 퍼지는 하루가 됩니다.


  처음부터 살림꾼인 사람은 없고, 처음부터 살림을 못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평화로운 지구별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전쟁무기가 가득하던 지구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이는 데에 따라,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과 나라와 지구별이 모두 달라집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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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1] 사람



  한국말은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human’이라 적고, 한자로는 ‘人間’이라 적습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같다면 모두 같은 말을 쓸 테지만,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서 모두 다른 말을 씁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영어로 말밑이 있어 ‘human’을 즐겁게 쓰고,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한자로 말뿌리가 있어 ‘人間’을 즐겁게 씁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말넋이 있어 ‘사람’을 즐겁게 써요. ‘사람’은 ‘살다’라는 낱말에서 나왔고, ‘살다’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눈을 뜨고 숨을 쉬면서 생각을 하고 마음을 기울여 사랑으로 하루를 일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에서 살기에 사람일까요. 바로 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 삽니다. 이 땅은 거칠거나 메마른 땅이 아니라 풀과 나무로 우거지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숲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들숨이면서 숲넋인 셈입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고 할 적에는 ‘이웃과 기대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들과 숲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바람과 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으로 꿈을 짓고, 꿈이 이 땅에 나타날 때에 비로소 사람으로서 산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한국에서 살며 한국말을 슬기롭게 생각할 수 있으면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고 짓는 하루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살갗으로 깊이 느낄 만하리라 봅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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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0] 나누다



  이웃과 나눕니다. 무엇을 나눌까요? 무엇이든 나눌 수 있으니, 우리는 이웃하고 ‘이웃나눔’을 합니다. 동무하고는 ‘동무나눔’을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하고 책을 나눈다면 ‘책나눔’을 하는 셈이고, 밥을 나눈다면 ‘밥나눔’을 하는 셈이요,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야기나눔’을 하는 셈이며, 사랑을 나눈다면 ‘사랑나눔’을 하는 셈입니다. 너랑 나는 함께 밥을 먹습니다. 밥 한 그릇을 사이에 놓고 한 숟갈씩 나눕니다. 둘은 사이좋게 ‘나눠먹’습니다. 책상에 지우개를 하나 올립니다. 두 사람이 지우개 하나를 즐겁게 함께 씁니다. 둘은 사이좋게 ‘나눠씁’니다. 한국말사전에는 ‘나눗셈’과 ‘나눠떨어지다’ 두 가지 낱말만 나오지만, 우리는 한국말사전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기쁘게 나누고 사랑스레 나눕니다. 밥나눔을 하는 사람은 ‘나눔밥’을 먹는달 수 있고, 책나눔을 하는 사람은 ‘나눔책’을 읽는달 수 있습니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활짝 웃고 어우러지는 자리는 ‘나눔자리’입니다. ‘나눔터’요 ‘나눔마당’이고 ‘나눔잔치’입니다. 무엇이든 나눌 수 있고, 무엇이든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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