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놀이 6 - 산들보라 흙손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앞마당은 모래밭이다. 이 모래밭에서 신나게 뒹군다. 신은 일찌감치 벗고, 웃옷도 내려놓고, 마음껏 흙손이 된다.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온몸으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고 봉우리를 쌓는다. 모래밭에 드리우는 햇볕이 포근하다. 4348.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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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는 흙놀이 재미있지



  내 어릴 적을 돌아보아도 흙놀이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왜 흙놀이가 재미있었을까. 왜 아이들은 흙이나 모래를 보면 그야말로 온통 빠져들까. 오늘날 사회가 도시와 물질문명이 흘러넘치더라도, 기껏 쉰 해조차 안 된 이런 현대문명하고는 댈 수 없이 기나긴 날에 걸쳐 우리 몸에 새겨진 ‘흙내음’을 알기 때문일까. 바로 흙에서 지구별 모든 목숨이 나고 자라면서 살아가는 줄 알기 때문일까.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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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과 흙을 함께



  흙 한 줌이 있어도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한다. 풀 한 포기가 있어도 아이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아주 넓은 공원이 아니어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놀이를 짓는다. 먼 옛날을 돌이키면 이 땅은 어디에나 시골이었고, 모든 곳에 흙과 풀이 싱그러웠으며, 어디를 가든 숲과 들이 아름다웠다. 지난날에는 어른들 누구나 들일과 숲일을 했으니,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놀든 근심하거나 걱정할 일이 없다. 더군다나, 어른들은 들과 숲에서 삶을 짓고 아이들은 들과 숲에서 놀이를 지으니, 학교나 학원이라는 데가 있을 까닭이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짓고 누리니까.


  오늘날에는 학교와 학원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어른도 아이도 삶을 안 짓고 삶을 안 누리며 삶을 안 즐기기 때문이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텔레비전이 재미없을 뿐 아니라 쓸모가 없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신문이나 잡지가 덧없을 뿐 아니라 쓸데가 없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는 영화도 문학도 사진도 그림도 딱히 없어도 된다. 들사람이나 숲사람은 굳이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 다음 책을 엮을 일이 없다. 왜 그러하겠는가? 모든 슬기를 몸과 마음에 아로새기기 때문이다. 모든 삶을 스스로 짓고 모든 사랑을 스스로 자아내며 모든 꿈을 스스로 이루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삶이나 사랑이나 꿈이 있는 사람이 없다. 오늘날에는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졸업장을 따지고, 그러니 연봉을 살피며, ‘안정된 고정수입이 있는 공무원 일자리’를 바란다. 이러니, 아이들한테 직업훈련과 직업교육만 시키는데다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런 직업이나 저런 직업에 익숙하도록 교재를 보여주거나 책이나 영화를 자꾸 보도록 시킨다. 삶이 없기 때문에 돈만 버는 일자리만 말하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살곶이(섹스)’만 부추기는 영화와 문학이 넘치며, 꿈이 없기 때문에 여가와 여행과 문화와 예술을 따질밖에 없다.


  생각해 볼 노릇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여가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여행’을 어디로 가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문화’를 어디에서 어떻게 빚는가?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을 무엇을 보면서 꾸미는가?


  들사람이나 숲사람은 일하면서 늘 노래하고 춤추며 웃고 노래했다. 들사람이나 숲사람한테서 태어난 아이는 놀면서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며 웃고 노래했다.


  집마다 풀밭이 있어야 하고 흙이 있어야 한다. 골목이나 고샅마다 흙길이 있어야 하고 풀밭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나 동네마다 숲이 있어야 하고, 숲정이가 그윽하면서 짙푸러야 한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놀아야 하고, 어른들은 흙을 만지며 밥을 얻어야 한다. 참말 그뿐이다. 책을 읽거나 학교를 다녀서 무엇을 하겠는가.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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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23. 풀밭에 앉아서 (14.12.30.)



  뒤꼍으로 올라가는 한쪽은 볕이 아주 잘 들어 풀밭이 된다. 쑥이 오르기 앞서 봄까지꽃이 오르고, 봄까지꽃 사이에 갈퀴덩굴이랑 갓이 함께 오르는데, 폭신하니까 여기에 앉아서 놀기에 딱 좋다. 시골순이는 꽃삽을 들고 풀밭 둘레 흙을 파면서 자전거에 붓는다. 시골돌이는 누나 옆에 나란히 앉아서 두 손으로 흙을 뿌리면서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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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16. 어제와 오늘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오늘’이지만, 종이에 앉히거나 파일이나 필름으로 아로새기는 모습은 언제나 ‘어제’라 할 만합니다. 사진기를 놀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오늘’이어도, 이 오늘은 곧바로 ‘어제’가 되어, 바로 오늘 찍은 사진조차 “아, 아까 그랬었지!” 하는 생각을 자아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어제를 사는 사람일까요?

  아침에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신나게 일하거나 논 뒤, 저녁에 밥을 다시 먹습니다. 저녁에 밥을 먹다가 “아, 아까 아침에 밥을 먹었지!” 하고 떠올립니다.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아침은 그야말로 ‘흘러간 이야기’나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아침과 저녁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바로 이곳에 있는 오늘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겁지 않은 오늘이라면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앞으로 즐거운 오늘이 되기를 바라면서 힘껏 갈고닦아서 바야흐로 즐거운 오늘이 되면 신나게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은 흘러간 어제나 지나간 어제를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맞이한 오늘을 즐겁게 누리면서 삶을 지었기에, 이렇게 지은 삶을 찬찬히 되새기면서 ‘어제’와 ‘오늘’을 한 자리에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싶으며, 어제와 오늘은 같다고 느끼고 싶고, 어제와 오늘은 늘 고이 이어진다고 느끼고 싶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꼬맹이도 나요, 거울로 비추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나 아주머니도 나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갓난쟁이도 나요, 거울로 들여다보는 젊은이나 푸름이도 나입니다. 얼굴빛이나 몸집이나 살결은 달라집니다. 옷차림이나 목소리도 바뀝니다. 그러나, 옷과 몸에 깃든 넋과 숨결은 한결같습니다. 어제를 살던 나와 오늘을 사는 나는 언제나 같습니다. 스무 해나 마흔 해가 지난 일이지만, 사진을 보면서 ‘쉰 해가 지난 일’조차 ‘바로 어제’나 ‘바로 오늘’인듯이 느낍니다.

  사진은 무슨 일을 할까요. 사진을 찍어서 무슨 일이 생길까요. 사진을 읽는 사람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까요. 오늘을 찍어서 어제를 드러내는 사진은 우리 앞날에 어떤 빛과 이야기와 노래와 숨결이 될까요. 사랑스러운 손길로 오늘을 다스리기에 사진을 찍고 읽습니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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