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이 있던 마을 - 신정판
권정생 지음, 홍성담 그림 / 분도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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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79



흙을 닮은 아이들은 어디에

― 초가집이 있던 마을

 권정생 글

 분도출판사 펴냄, 1985.7.1.



  흙을 가꾸어 살던 사람은 흙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흙을 가꾸면서 흙으로 집을 지은 사람은 흙에서 나는 풀을 거두어 옷을 지었습니다. 흙을 가꾸면서 집과 옷을 지은 사람은 밥도 흙에서 지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어디에서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흙을 보금자리로 삼고, 흙을 밥과 옷으로 삼으며, 흙을 벗과 이웃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흙은 보금자리도 아니요, 밥도 옷도 아닙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어디를 가든 흙은 아무것이 아닙니다. 흙으로 짓는 집이 아닌 시멘트로 짓는 집이 되고, 흙으로 얻는 밥과 옷이 아닌, 석유로 만드는 밥과 옷이 됩니다.


  게다가 한국 곳곳에 군부대가 또아리를 틉니다. 군부대 언저리는 지뢰밭이 되고, 남녘과 북녘을 가르는 자리에 길디길게 쇠가시그물이 뿌리내립니다. 젊은이는 총을 쏘고 칼을 부리며 주먹을 휘두릅니다.



.. “팔을 내리거라.” 가까이 온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둘은 팔을 내렸다. 유종은 콧등이 찡해졌다. “앞으로는 싸움 같은 것 하면 못 쓴다.” “예.” “둘이서 손 붙잡아라.” 둘은 잠자코 문식은 오른 유종은 왼손을 꼭 잡았다. “배고프니까 어서 집에 돌아가거라.” 유종은 코를 훌쩍 들이키곤 고개를 꾸벅하며 절을 했다. 문식이도 꾸벅했다. 유종은 먼저 4학년 교실로 달려갔다. “싱야, 인제 집에 간데이.” 유준이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놀지 말고 쌔기 가야 된대이.” “응.” “중들 거랑물에 수제비 뜨만 안 된대이.” “응.” “씨름하고 놀지 마래이.” “응.” “보리깜비기 따먹지 마래이.” “응.” “군딩이 똑바로 쫄곧게 뛰어가아래이.” “응.” “펏떡 가아라.” 유종은 가까스로 풀려나자 측백나무 울타리 옆으로 빠져나가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종아야, 같이 가자.” 뒤에서 문식이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며 따라가고 있었다 ..  (19∼20쪽)



  요즈음은 코를 훌쩍이는 아이를 못 만납니다. 코를 훌쩍이면서 볼이 빨갛게 얼어붙도록 바깥에서 뛰노는 아이를 못 만납니다. 여름에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 햇볕에 얼굴과 살갗이 흙빛처럼 까무잡잡하게 타는 아이를 못 만납니다. 실컷 뛰놀면서 땀냄새가 시큼한 아이를 못 만납니다.


  그리고, 코를 훌쩍이는 어른도, 겨울에 볼이 빨갛게 얼어붙거나 여름에 땀냄새가 시큼하도록 흙내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어른도 좀처럼 못 만납니다.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름 냄새와 기계 냄새가 몸에 뱁니다. 아직 시골에 남아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일이 고되어 으레 술잔을 들이켜니, 흙내음이나 땀내음보다는 술내음이 짙고, 담배내음에 접니다.


  더군다나 무와 배추와 시금치를 비롯한 몇 가지 남새가 아니고는 딱히 건사하지 않는 흐름입니다. 온갖 들풀을 들나물이나 들밥으로 삼지 않는 흐름입니다. 도시에서는 아예 엄두를 낼 수 없고, 시골에서는 몇 가지 남새가 아니면 뽑아서 없애거나 약을 쳐서 죽여야 하는 몹쓸 것으로 삼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흙내음을 잃으면서 풀내음을 잃습니다. 어른들이 흙을 만지면서 남새를 거두더라도 흙을 가꾸는 삶이 아니라, 흙에서 ‘농산물’을 더 많이 뽑아내려는 몸짓이니, 손에 흙이 묻었어도 흙내와는 동떨어지고 풀내하고도 동떨어집니다. 논둑과 밭둑은 농약밭이요. 빈터나 풀밭도 농약구덩이입니다. 그나마 시골에 몇몇 아이들이 남았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은 풀밭에서 뒹굴지 못합니다. 풀밭에서 뒹굴지 못할 뿐 아니라, 풀밭에 앉을 수 없고, 느긋하게 앉아서 쉴 풀밭조차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 “선생님, 용서해 주이소. 송아지 제발 살리 주이소.” “건방진 자식! 송아지 안 버리면 총살이야!” 헌병은 총구멍을 유준네 아버지 가슴 앞에 들이댄다. 아직도 새파란 청년이다. 전쟁마당에선 어른 아이도 없다. 사느냐 죽느냐 오직 하나만을 택할 뿐이다. 유준네 아버지는 송아지 고삐를 놓았다. 헌병이 송아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음매애애…….” 송아지는 울면서 어둠 속 언덕 밑으로 굴러 내려갔다 ..  (64∼65쪽)



  흙을 먹는 삶이 아니라, 농약과 비료를 먹는 삶입니다. 흙에서 얻는 곡식과 열매가 아니라, 비료와 농약으로 뒤섞인 흙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농산물’입니다. 시골지기부터 스스로 손과 몸에서 흙내와 풀내를 잃으니, 시골아이도 흙내와 풀내하고 동떨어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어른은 두말할 것 없이 흙내와 풀내를 모릅니다. 도시에서 아무리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먹는다 하더라도 흙내나 풀내를 알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몸에 좋은 것’을 찾기는 하지만, 몸을 살리는 흙을 찾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생각하지 못합니다. 몸에 좋은 밥이 나오려면, 흙이 좋아야 하고, 흙이 좋으려면 풀이 좋아야 하며, 풀이 좋으려면 숲이 좋아야 하고, 숲이 좋으려면, 사람이 사랑과 꿈으로 좋은 숨결이어야 하는 줄 헤아리지 못합니다.


  흙을 닮는 아이가 자랄 수 없는 요즈음 얼거리입니다.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 모두 흙을 등집니다. 마을과 학교에서도 흙을 안 가르치고, 교과서는 흙을 아예 못 가르칩니다. 직업훈련이나 입시교육에서도 흙은 아예 모르쇠입니다. 대학교를 마쳤건 대학원을 다녔건 나라밖에서 배우고 돌아왔건, 흙을 슬기롭게 다루거나 건사하는 아름다운 넋인 사람을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시골에서 살겠노라 도시를 떠나더라도, 흙을 손수 아끼고 배우고 돌보고 사랑하려는 넋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흙을 모르는 어른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흙을 알려고 하지 않는 어른이 아이를 낳아 학교에 보내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흙을 살피지 않고 찾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는 어른이 아이를 낳아 학원에 넣거나 책을 사다 읽히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 단 위의 교장 선생님도 하던 말을 중간에서 그만두고 잠시 기다리다가 내려왔다. “얘야, 왜 우니? 왜 우니?” 우화자 선생님은 눈물이 뒤범벅이 된 학분이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면서 달래지만 학분이 울음소리는 더 커지기만 한다. “선생님요, 학분이네 아부지랑 어매캉 폭탄 맞아 죽었삐렀니더.” 5학년 줄에서 구경하던 같은 원호동에 살고 있는 순용이가 무뚝뚝하게 가르쳐 줬다. “어머나!” 우화자 선생님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다. “방안에서 자다가 폭탄이 떨어져 납따그래졌뿌랬니더.” 종찬이가 말해 놓고 찔끔했다. “납따그래졌뿌랬니더”가 아무래도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  (125쪽)



  권정생 님이 쓴 《초가집이 있언 마을》(분도출판사,1985)을 읽습니다. ‘초가집’이란 ‘풀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부터 시골지기는 누구나 ‘풀집’이나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풀과 흙과 나무로 집을 지었으니, 풀집이요 흙집이며 나무집입니다. 다만, 지난날 시골사람은 굳이 풀집이니 흙집이니 나무집이니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모든 집은 그저 ‘집’입니다. 사회와 문화와 경제와 정치가 달라졌다고 하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시멘트집’ 때문에 따로 ‘풀집’이니 ‘흙집’이니 하고 가르는데, 그나마 이렇게 집살이를 가르는 이들은 지식인이다 보니, 여느 시골자락에서 수수하게 살던 사람이 나누던 낱말을 안 쓰고, 한자를 빌어 ‘초가’이니 ‘초가집’이니 하고 읊습니다.



.. “내사 소련 탱크도 싫제만 미국 비행기도 싫다. 우리 학교 다 때리부신 거는 미국 비행기다. 너그는 미국 비행기가 우리 땅 다 때려뿌샤도 너그만 살아나마 된다꼬 했제? 응, 그랬제?!” ..  (133쪽)



  흙에서 자라는 풀이 열매를 맺어 밥을 얻습니다. 벼알도 보리알도 수수알도 모두 풀알입니다. 풀알은 흙에 뿌리를 내려서 자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흙을 먹는 삶입니다. 소고기를 먹든 돼지고기를 먹든,이 아이들도 흙에서 자란 풀을 먹으니,풀밥이든 고기밥이든 모든 밥은 흙밥인 셈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자란 풀을 베어 지붕에 얹습니다. 흙에 뿌리를 박으면서 오래오래 살던 나무를 베어 기둥으로 삼습니다. 흙이 있어야 집을 짓습니다. 바닥과 벽을 흙으로 대기에 흙집이 아니라, 모든 풀과 나무가 흙에서 자라니, 지구별 어디에서나 집을 짓는다고 하면 흙집이었습니다.


  흙에서 자란 풀에서 실을 얻습니다. 흙에서 자란 풀에서 솜을 얻습니다.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은 흙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낡고 닳아 더는 못 입는 옷은 두엄더미에 놓아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흙을 먹으면서 흙을 낳고, 사람들 누구나 흙을 누리면서 흙을 가꿉니다. 사람들 모두 흙을 아끼면서 흙을 사랑합니다.



.. “인기야, 아부지 이바구 잘 듣거래이.” “예, 들음시더.” 다섯 살짜리 인기는 아버지를 닮아 무척 똑똑한 아이였다. “니는 내중에 커서 뭐 될래?” “아부지 되니더.” “아부지 되는 거 말고는?” “국군!” “그건 안 돼.” “그라마 인민군!” “그것도 안 돼.” “그라마…… 그라마 대통령!” “그것도 안 돼.” “…….” 인기는 시무룩하게 할 말이 없어졌다. “인기는 사람을 쥑이는 나쁜 놈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인기를 쥑이려는 사람을 마주 서서 싸워도 안 된다.” “그라마 달라빼락꼬?” “아니다. 용감히 서서 죽어 주는 거다.” “무섭다아.” “당당하게 죽어 주는 사람이 가장 용감한 사람이다.” ..  (235∼237쪽)



  권정생 님은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여느 시골자락에서 아이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리면서 자랐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흙을 닮은 아이들이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자라면서 이웃과 동무를 어떻게 사귀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이고 꿈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지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하는 금긋기는 부질없습니다. 네가 잘못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하고 따지는 일은 덧없습니다. 네가 잘못했으면 너는 언제까지나 주눅이 든 채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잘못했으면 내가 너를 타이르고 따스히 안을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내가 잘못할 적에 너는 어떻게 하는가요? 너는 나를 타이르면서 따스히 안을 테지요.


  미움은 미움을 낳을 뿐이기에, 잘못한 한쪽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기에, 잘잘못을 가리지 말고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해야지요.



.. 하느님, 네 부모를 공경하란 말씀은 집안에서만 공경하란 말씀입니까? 아니면 시장에서나 전장(싸움터)에서나 부모라면 어디서나 공경하란 말씀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하셨지만,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무방한 것인지요 ..  (299쪽)



  《초가집이 있던 마을》에 나오는 금동이네 어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간 분이지만 이웃을 헤아릴 줄 알고, 이녁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요. 거지처럼 집도 없이 떠돌며 밥을 얻어먹는 솔송이네를 보며 “우리도 피난 가서 똑같이 있지 않았느냐”며 “조금이라도 도울 생각을 하라”고 아이한테 가르칩니다. 아이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여태 제가 잘못 생각한 줄 깨닫고 바로 마음을 고쳐먹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콩 한쪽을 나누는 우리네 첫마음이거든요. 대통령이 첫마음을 잃었다고도 말하지만, 가만히 헤아려 보면 누구보다 바로 우리부터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첫마음’을 잃거나 놓치지 싶어요. 끔찍한 식민지살이를 거치고 전쟁을 거치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마음부터 차갑거나 딱딱하게 굳어 버렸지 싶어요.


  아직도 이 땅 곳곳에 많이 남은 전쟁 자국과 군사독재 생채기입니다. 아직도 풀릴 길 까마득한 이라크 파병 같은 군부대 골칫거리입니다. 전쟁은 이 땅에서 일어난 쓸쓸하고 슬픈 자국으로도 넉넉해요. 이라크이든 팔레스타인이든 또 어느 나라에서든 전쟁이란 발을 붙이지 못해야 해요. 《초가집이 있던 마을》에 나오는 수수한 시골자락 여느 사람들 마음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고 따스해요. 미움도 모르고 괴로움도 모르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삶으로 하루를 지을 ㅈ거에 아름답고 기뻐요.



.. 금동이는 꺼림했다. 하필이면 종갑이네 빈집에 거지가 와서 살다니, 자꾸만 못마땅했다. “어매, 걸버생이가 종갑이네 집 다 때려부스마 어야노?” “뭐락카노? 걸버생이가 어딨노. 그런 말 하마 못씬다. 사람은 살다 보마 오만가지 풍파 다 겪는 거다. 밥 얻어먹는다고 다 걸버생이가 아니다. 종갑이네 집은 비어 두는 것보다 사람이 살면 집간수 더 잘된다.” 달래골댁은 금동이를 나무랐다. “그라마, 모두 걸버생이락꼬 찌지고 뽁든걸.” “다들 몰라서 그렇제. 너그도 지난해 피난가서 바가지 들고 밥 얻으러 간 것 잊았뿌렸나?” “…….” 금동이는 뜨끔했다. 과연 솔송이네도 난리통에 어려운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  (187∼188쪽)



  대포 한 자루를 만들지 말고 쟁기 한 자루를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탱크나 전투기 한 대를 만들지 말고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참말 이 나라를 지키려 한다면 전쟁무기가 아닌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숲을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르는 수렁입니다. 쟁기와 낫과 호미는 삶을 부르는 연장입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은 자꾸 계급과 차별을 부르고 맙니다. 웃음과 춤을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아야 합니다. 사랑과 꿈을 부를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별빛과 햇빛을 가득 누리는 삶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흙을 닮아요. 우리 모두 하늘을 닮아요. 우리 모두 꽃을 닮아요. 우리 모두 나무를 닮아요. 우리 모두 숲을 닮아요. 우리 모두 사랑이 되어 고운 사람으로 거듭나요.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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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자전거집



  오래된 자전거집은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둔다. 새로 여는 자전거집은 새로운 간판을 건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한글로 된 간판이라면, 새로 여는 자전거집은 으레 영어로 쓰는 간판이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여느 사람이 여느 삶자리에서 타는 자전거를 다루고, 새로운 자전거집은 으레 멧골을 타거나 먼길을 빠르게 달리는 값진 자전거를 다룬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바퀴에 난 구멍을 때우거나 바람 빠진 바퀴에 바람을 넣으려는 사람이 자주 찾고, 새로운 자전거집에는 더 나은 부속을 갖춘 자전거로 갈아타려는 사람이 자주 찾는다. 오래된 자전거집은 으레 골목 안쪽에 호젓하게 깃들고, 새로운 자전거집은 으레 큰길에 크게 연다. 두 가지 자전거집을 가만히 바라본다. 434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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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야 본다



  골목을 알려면 걸어야 합니다. 이 골목 저 골목 천천히 거닐면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면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온몸으로 마주할 때에 골목을 알 수 있어요. 아파트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파트는 걸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높다란 아파트는 사람들이 걸어서 오가도록 일군 집이 아닙니다. 자동차로 이리 달리고 저리 지나가기 알맞도록 지은 덩어리입니다.


  골목집은 햇볕이랑 바람하고 함께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골목집을 읽으려면 햇볕을 함께 읽어야 하고, 골목집을 사귀려면 바람을 같이 헤아려야 합니다. 이웃집과 햇볕을 나누어 먹는 골목집이요, 이웃집과 어깨동무하면서 찬바람을 막고 시원한 바람을 골고루 누리는 골목집입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서 햇볕과 바람을 느낄 적에 골목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대청마루나 툇마루나 마당에 앉아서, 때로는 담벼락에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고 바람을 쐴 적에 비로소 골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을 이루어 살아온 사람들은 해를 등에 지고 바람을 가슴으로 맞아들이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일구었습니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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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쓰기



  바깥마실을 나와서 한글노래를 쓴다. 시골집에서 동생과 즐겁게 놀면서 아버지를 기다릴 큰아이를 그리면서 한글노래를 쓴다. 조그마한 종이에 찬찬히 한글노래를 쓴다. 우리 집 시골순이한테 들려줄 한글노래이지만, 이 한글노래를 마실길에서 만나는 이웃한테도 선물로 주려고 한다. 우리 집 큰아이한테는 그림엽서 뒤쪽에 더 큰 글씨로 옮겨적어서 줄 생각이고, 이웃한테는 조그마한 종이에 적은 대로 줄 생각이다.


  한글노래는 아이한테 들려주는 ‘어버이 이야기’요 ‘어버이 삶’이다. 아이가 한글만 익히거나 알도록 하려는 글이 아니라, 아이가 어버이와 함께 살면서 바라보고 지켜보는 이야기이면서, 한글과 함께 삶노래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랑이다. 사랑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들려주는 한글노래이다. 그러니까, 한글을 노래처럼 부르면서, 아니 한글을 노래로 부르면서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하겠다. 4348.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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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9 04:29   좋아요 0 | URL
너무 기쁠 거예요.손으로 만든무엇은
그 마음이 잘 전달된다고 믿어요.

파란놀 2015-01-09 08:34   좋아요 0 | URL
손으로 쓰고 짓고 나누는 모든 것은
언제나 아름답게 퍼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

[그장소] 2015-01-09 08:51   좋아요 0 | URL
아.네~그럼요..물론이죠.
기라노 나쓰오의 메타볼라 에서 그런 부분이
나와요. 얼굴은 못나고 밖에서 딱히 해먹고 살게 없는 청년이 공동숙소 같은데서 생활하며 엽서같은데 손으로 시같은걸 직접 적어 낮에 좌판에 파는거예요.
거의 구걸과도 같은 행위지만 지나 던 한
아가씨(술집에 나감)이거 당신이 직접 손 으로 쓴 거냐고..대단하다고. ..곧 그 청년은
그 말에 으쓱해지죠.베껴쓰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쓰느것을 칭찬받는 일은 아무래도 기분 좋고..싼 값에 팔일 뿐이어도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내 가 뭔가 해 벌었다..하는. 정성과 인정..그걸 서로
소통하게 하는게 글의 일 이라면 전하는 건 글씨의 일. 아닐까ㅡ생각했었어요.
아..메타볼라 가 맞는지 아~ 확인하고 픈데..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누군가 틀리면 정정 해 주겠죠..?
오늘 하루도 화창한 날..보내세요.
함께 살기님.!!^^

파란놀 2015-01-09 09:48   좋아요 0 | URL
시를 써서 좌판에 놓고 파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도
서울 광화문 언저리에서 시를 쓰는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알라딘서재에도 그분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며 찾아보는데
안 나오는군요.

네이버에서 `광화문시인 정재완`으로 찾아보시면
그분 이야기를 보실 수 있고 동영상도 있습니다.
이분 시집이 두 권 나온 적 있는데
모두 절판이로군요 ㅠ.ㅜ

저는 광화문시인 정재완 아저씨를
예전에 서울서 살 적에 으레 길에서 만나
(2003~4년) 음반도 사고 부채도 사고 사진틀도 사고 했습니다 ^^

[그장소] 2015-01-09 09:55   좋아요 0 | URL
추억이네요..그 시절! 예전에는 관광지나..유적지 에서 가능한 일.왜..사람이 입간판처럼 앞뒤로 판자를 덮어쓰고..거기에 엉성한 싯귀를 나뭇잎위에..화선지랑 ..나름 꾸며서..
8~90년대 초반 이웃엘 가면 어느 방 이든
시 적힌 세필로 쓴....그런게 있었는데..
그걸 서울 한 복 판에서 무려 2000년대에 보셨다는 거죠?..
생각만 해도 정겹네요.

파란놀 2015-01-09 10:24   좋아요 0 | URL
이분은 요즈음도 광화문에서 그대로 노점을 하면서 시쓰기를 꾸준히 하시는 듯해요. 저는 너무 멀어서 가 볼 수 없지만, 그장소 님이 서울 둘레에 계신다면,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시간에 광화문 네거리 둘레를 어슬렁거려 보시면, 광화문시인 아저씨를 만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장소] 2015-01-09 10:55   좋아요 0 | URL
아..지금의 광화문은넓게 개방된 곳.노점을 하시려면 아무래도 골목..암튼 언젠간 그 한복판을 걷게되면 둘러 찾아 볼 요량..
제겐 남는게 시간이므로..

파란놀 2015-01-10 02:57   좋아요 0 | URL
사람들 북적이는 데에는 안 계실 듯하고, 호젓한 곳에 조용히 앉아서 햇볕을 쬐면서 노점을 하고, 그동안 그곳에서 시를 쓰실 테지요
 

한글노래 43. 선물하려고



이웃한테 선물하려고

동생과 함께 가을유자

치마 가득 따서

우둘투둘 샛노란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초피나무는 노란 가랑잎

찬바람 따라 솨르르 떨구고

올겨울에는 실컷 눈놀이 하도록

함박눈 소복소복 쌓여

온통 하얀 나라 되기를

기쁘게 기다립니다.



2014.11.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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