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249. 2015.1.26. 글이 빽빽한데



  책순이가 글이 빽빽한 책을 집어든다. 영화로 익히 본 ‘메리 포핀스’이기에 냉큼 집어들어 펼친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림이 아주 조금 있고, 거의 다 글이다. 오직 글로만 읽는 책이라 할 만하다. 한참 글을 줄줄 읽던 아이가 조금 힘든 듯하다. 왜 글만 이리 많느냐 하고 묻는다. 그래, 이 책은 워낙 그래, 영화로 보듯 그렇게 그림이 많은 책이 아니야. 게다가 책과 영화는 사뭇 다르지. 네가 아직 이 ‘글책’을 샅샅이 읽기란 어려울는지 모르는데, 머잖아 이만 한 글책쯤 아무렇지 않게 즐길 수 있지.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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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3 (츠바사) 대원씨아이 펴냄, 2013.10.30.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 때에 즐거울까. 나는 누구하고 어떻게 어우러질 때에 웃을까. 아주 쉬운 듯하면서 쉽지 않은 수수께끼라 할는지 모르는데,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은 바로 이 대목을 살며시 건드린다. 모든 것이 넉넉하다고 하는 오늘날 사회인데, 사람들은 왜 외롭다 하고 심심하다 하며 힘들다 할까? 기계가 넘치고 몸을 쓰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 아프면서 고단할까? 마음을 나눌 이웃이나 동무는 어디에 있을까? 쳇바퀴를 도느라 바쁘니, 스스로 수수께끼를 묻지 않고, 굴레에 갇혀 허우적거리니,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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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3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0월
4,800원 → 4,32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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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애니북스 펴냄, 2014.11.12.



  만화를 그리며 살고 싶던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이 대학교에 붙은 이야기를 담은 《그리고, 또 그리고》 둘째 권을 읽는다. 만화가로 살고 싶으면서 막상 이러한 속내를 숨겼으니, 스스로 괴롭고 둘레 사람도 고단하다. 사회에서 아무리 만화가를 낮게 바라보더라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왜 떳떳하게 밝히려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본다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태평양전쟁에 대동아공영권 따위를 들먹이던 무렵에 ‘나는 만화가로 살겠어’ 하고 외치면서 징용에 끌려간 데즈카 오사무 같은 사람은 무엇일까. 스스로 뜻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면 언제나 모두 힘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히가시무라 아키코 님은 이러한 이녁 뒷이야기를 남김없이 드러내 준다. 드러내야지. 털어야지. 그래야 앞으로도 만화가 한길을 걸을 테니까. 그래야 그리고 또 그릴 수 있을 테니까.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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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 2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0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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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1 님


  예부터 한겨레는 이 땅에서 ‘님(임)’을 그리면서 살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사랑으로 마주하는 이를 가리켜 ‘님(임)’이라 했어요. 어른은 서로 그리면서 ‘님(임)’이라 했고, 아이는 동무끼리 이 말을 따로 쓰지는 않았으나, 해를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고 꽃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고 풀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고 나비를 바라보면서 으레 ‘해님·별님·꽃님·달님·풀님·나무님·나비님’이라 했어요. 어른은 집 둘레에 수많은 ‘님’이 있어서, 이 님이 우리 집, 그러니까 ‘보금자리’를 보살펴 준다고 여겼습니다. 한겨레가 이 나라에서 쓰던 ‘님(임)’이라는 낱말은, 오늘날 이 땅에서 ‘신(神)’이라는 낱말로 가리키는 모든 숨결을 가리킨 셈입니다.

  그런데, ‘님’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면서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왜 그런가 하면, 지난날 가운데 조선 무렵에는 나라에서 유교를 종교로 삼으면서 ‘임금’한테만 ‘님’을 붙여서 ‘임금님’처럼 쓰도록 닦달했습니다. 고려 무렵에는 나라에서 불교를 종교로 높이면서, 이때에도 ‘임금’한테만 ‘님’을 붙여서 ‘임금님’과 같이 쓰라 몰아세웠습니다.

  임금이라고 하는 사람 하나, 그러니까 정치 우두머리인 한 사람,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종교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거머쥐면서 사람들한테서 세금을 뽑아내고 사람들을 군대(싸울아비)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종(노예)처럼 부려 소작인살이를 보내도록 했던 그 한 사람만 ‘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정치 권력자와 지식인 따위는 여느 사람들더러 ‘임금님’이라 부르도록 윽박질렀는데, 여느 사람들은 칼부름과 주먹다짐 앞에서는 허리를 꺾으면서도, 뒤에서는 고개를 돌리고는 ‘임금놈’이라 불렀어요.

  곰곰이 돌아보면 거의 즈믄 해 즈음 우리는 ‘님’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못 쓰도록 억눌린 채 살았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모든 ‘신’이라는 숨결을 ‘님’이라 말했는데 말이지요. 그러니, 나라에서는 불교와 유교 권력을 휘두르면서, 마을에 있는 작은 비손집(사당)을 나쁘게 여겼지요. 조선 무렵에는 사직단이라는 곳을 지어서 ‘사내가 가시내를 억누르는 또 다른 가시방석’을 마련하기까지 했습니다.

  요즈음에는 누리모임(인터넷 동호회) 사람들이 서로를 ‘아무개 님’이라 부릅니다. 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살던 여느 사람들이 으레 쓰던 말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요즈음 서로를 ‘님’이라 부를까요? 무언가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아쉽게도 아직 깨닫지는 못한 채 쓰는데, ‘님’이 ‘신’을 가리키던 오랜 한국말인 터라, ‘사람 몸마다 깃든 새로운 숨결’이 바로 ‘님’이기에, 누리모임이라는 곳이 곳곳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너와 내가 똑같이 고운 목숨이요 숨결’이라 여겨 이 낱말을 이름으로 삼아서 쓰고, 이 이름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서 제 빛을 찾는다고 하겠습니다. 4348.1.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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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2 말과 넋과 삶



  사람은 누구나 삶을 가꾸는 넋을 말로 짓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나라와 겨레는 다르지만, 다 다른 나라와 겨레에서 ‘제 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넋을 짓고, 말로 지은 넋으로 삶을 짓습니다. 그래서, 말을 가꾸는 삶은 넋을 가꿀 수 있고, 넋을 가꾸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말을 가꾸지 않는 사람은 넋을 가꿀 수 없으며, 넋을 가꿀 수 없는 사람은 삶을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누구나 스스로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손수 생각을 북돋우면 마음에 환하게 그림 하나 그릴 수 있습니다.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거나 캐내서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고 일본사람은 일본말을 쓰며 핀란드사람은 핀란드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한국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사람이 일본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며, 핀란드사람이 핀란드 토박이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두 ‘토박이말’일 텐데, ‘그냥 토박이말’이 아니라, 내 생각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는 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글로 적는다고 해서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글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한글로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담을 수 있습니다. ‘굿바이’는 영어를 담은 한글입니다. ‘사요나라’는 일본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쎄쎄’는 중국말을 담은 한글입니다. 이러한 ‘한글’은 말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쓸 말은 그예 수수한 말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이고, 시골과 도시에서 함께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쓰고, 지식이 적은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 나란히 쓰는 말이 한국말입니다.


  많이 배우거나 책을 꽤 읽은 사람이 쓰는 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이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은 ‘조금도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기울어진 말로는 넋을 가꾸지 못하고, 이런 말로는 삶을 가꾸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철학이나 학문을 털어내고서,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이러한 말로 넋을 가꿉니다. 손수 하루를 짓는 마음이 아니라면, 말부터 못 가꾸니까 넋을 못 가꾸지요.


  신분이나 계급을 가르는 말도 ‘껍데기 한글’입니다. ‘말’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입니다. 그래서 우리 넋을 이루는 숨결인 말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알아차리고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슬기롭게 보고, 말을 언제나 새롭게 배울 적에, ‘나는 말을 가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말을 가꾼다’고 될 때에 비로소 ‘나는 넋을 가꾼다’가 되며, 이때에 저절로 ‘나는 삶을 가꾼다’가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말을 꾸미거나 치레하는 일은 ‘말 가꾸기’가 아닙니다. 말을 이쁘장하게 꾸미거나 말을 그럴듯해 보이도록 치레하는 일은 ‘말 꾸미기’나 ‘말치레’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넋 꾸미기·넋치레’가 아니고 ‘삶 꾸미기·삶치레’일 수 없으니, 우리는 꾸미기나 치레가 아닌 가꾸기를 할 노릇이요, 말을 제대로 바라보고 똑바로 알아차리며 슬기롭게 가꾸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4348.1.1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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