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댁에 가기



  오늘 아침에 문득 어느 일 하나가 떠오르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바깥마실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왜 갑자기 어느 일이 떠오를까.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에 먼저 들러서 큰아버지를 뵙게 하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하루 다녀온 뒤, 일산으로 건너가서 이모와 이모부와 외삼촌과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두 만나도록 해야겠다고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상주를 거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두고볼 노릇이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한 요 열흘 사이에 작은아이는 자꾸 ‘보라 빛깔 버스’를 이야기했다.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에 고흥과 인천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생겼다. 하루에 석 대가 오간다. 작은아이는 시외버스에 적힌 글씨를 읽지 못하지만 “저 버스 타고 싶어.” 하는 노래를 내내 불렀다. 그래, 오늘 하루 자고 나면 ‘보라 빛깔 버스’를 타고 인천에 갈 수 있겠구나. 아마 다섯 시간 남짓 걸릴 테지.


  고운 꿈을 꾸면서 잘 자렴. 아침에 모두 일찍 일어나자. 그리고, 너희 둘은 아침에 집에서 똥을 누고 가자. 아버지는 일찌감치 일어나서 굴부침개를 할 텐데, 아무쪼록 시외버스에서 맛나게 먹자.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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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산 (아만 기미코·다루이시 마코) 한림출판사 펴냄, 2007.5.15.



  사내는 파랑을 좋아하거나 가시내는 분홍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무척 낡은데,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밀어붙이기 일쑤이다. 왜 둘로 갈라야 할까. 왜 사내는 분홍이나 빨강이나 노랑을 가까이하면 안 될까. 사회는 왜 사내와 가시내를 자꾸 둘로 쪼개려 할까. 그림책 《하늘 우산》 첫머리를 보면, 아이 어머니는 이녁 아이가 가시내이니 으레 분홍 우산을 써야 하는 줄 생각하는 모습이 나온다. 아이가 제 생각을 밝히기 앞서 어머니가 이녁 생각을 먼저 밝힌다. 왜 기다리지 못할까. 왜 지켜보지 못할까. 왜 아이 눈높이로 다가서려 하지 못할까. 그런데 아이는 어머니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는 제 마음을 수수하게 밝힌다. 그러고는 제 마음에 따라 하늘빛 우산을 고른다. 하늘빛 우산을 쓰고 하늘빛이 마알간 들판을 거닐려고 한다. 하늘빛 우산처럼 하늘빛 마음이 되고, 하늘빛 꿈을 꾸면서, 하늘빛 사랑으로 동무들을 만나려고 한다. 그래, 그렇지. 아이다움이란, 아이처럼 밝은 웃음이란, 싱그러우면서 맑은 숨결이지.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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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산
아만 기미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곽혜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5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15년 02월 04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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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51. 새벽이슬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던

우리 집 마당에

별빛이 하나둘 드리우면

밤바람이 일어나고

밤새가 찾아들어

복닥복닥 소곤소곤 사이좋게

흐드러져 놀다가

달이 살살 기울 무렵

길게 하품을 하면서

풀잎에 드러누워 쉬더니

어느새 새벽이슬이 되어요.



2015.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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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노래는 직접 지으시는거예요?

파란놀 2015-02-06 05:07   좋아요 0 | URL
네,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써서 큰아이와 함께 `한글놀이`를 합니다~
시골에서 지내며 듣고 보고 겪는 이야기를
큰아이가 사랑스레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틈틈이 씁니다 ^^
 

사진 찍는 눈빛 123.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읽습니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습니다. 겨울에 책방이 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손이 시린 줄 모릅니다. 여름에 책방이 더워도,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몸에서 땀이 흐르는 줄 모릅니다. 책에 깊이 빠져들면, 추위와 더위를 모두 잊고 오로지 책과 하나가 됩니다. 이때에는 어떤 추위나 더위도 ‘책 읽는 사람’을 휘두르거나 들볶지 못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합니다.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나눕니다. 옆에서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둘레에서 가로막거나 괴롭히건 말건, 사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할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려 하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나누지요. 그래서, 사랑 앞에는 어떤 것도 놓이지 못합니다. 사랑 앞에는 오직 사랑만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수없이 터지는 곳에서도 씩씩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오직 사진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주 조용하거나 고요한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추위나 더위가 ‘사진 찍기’를 막지 못합니다. 이와 함께, ‘사진 읽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나 걸림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온갖 이론이나 비평으로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내가 읽으려는 사진’은 ‘내 마음결에 따라서 읽’기 마련입니다.


  밥을 짓는 사람은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수많은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아니어도, 마음이 따사롭거나 넉넉하다면, 한두 가지 밑감으로도 모든 밥을 다 짓습니다. 그러나, 밥을 즐겁게 지으려는 마음이 못 된다면, 수십 가지나 수백 가지 밑감이 있어도 맛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밥을 겨우 지을 테지요.


  밑감이 넉넉해야 밥을 잘 짓지 않아요. 사진감(사진 찍을 소재)이 많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밑감을 다루는 손길이 밥을 낳듯이, 사진감을 마주하는 눈길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웃을 마주하고 동무와 어깨를 겯는 몸짓에 따라 사진이 태어납니다.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책을 읽듯이, 찍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위를 잊고 사진을 찍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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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2. 새로운 맛을 겪는다



  고구마를 삶을 적에는 감자를 함께 삶습니다. 단호박이 있으면 단호박도 함께 삶는데, ‘그냥 호박’이 있으면 ‘그냥 호박’도 함께 삶고, 당근이나 달걀도 함께 넣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여러 가지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밥상에 그릇을 올릴 적에는 으레 단호박을 먼저 올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먼저 먹고 싶은 것’이 따로 있어서, 먼저 먹고 싶은 것만 먹다가 배가 다 부르기 마련이거든요. ‘먼저 먹고 싶은 것’은 배가 부른 뒤에도 먹지만, ‘나중에 먹고 싶은 것’은 배가 고프지 않다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아무래도, 밥상에 두 가지가 있으면 ‘굳이 다른 한 가지를 안 먹는다’고 할 만합니다. 둘 다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두 가지를 함께 올리면 ‘따끈따끈 단호박’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예 못 느끼거나 못 겪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단호박만 먼저 올려’서 아이들이 어느 만큼 먹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러고 나서 감자를 올리고, 맨 나중에 고구마를 올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중국집에서 여러 가지 밥을 흐름에 따라 올리는 결하고 닮은 셈입니다. 차츰 더 맛나거나 새로운 밥을 올리듯이, 단호박이랑 당근이랑 감자랑 고구마, 이러한 흐름으로 하나씩 올립니다. 네 가지 모두 새로운 맛으로 느끼고, 맨 마지막에는 ‘물로 삶지 않’고 ‘김으로 삶’은 남다른 맛을 느끼기를 바라요.


  사진을 찍는 사람마다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기 마련입니다. 아주 마땅한 흐름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가지 이야기만 사진으로 찍다 보면,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그예 한 가지 눈길’로밖에 못 보는 굴레에 갇힙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꾸준하게 돌아보도록 스스로 다스릴 수 있으면, 다른 여러 가지를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바라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내가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마주하’듯이 마주하면서, 이제껏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될 수 있습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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