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기, 시읽기 (동시쓰기, 동시읽기)



  ‘시’라고 하는 글은 가장 쉬우면서 수수하고 꾸밈없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이 쓰는 시이든 아이가 쓰는 시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시는 가장 쉬운 글이요, 가장 수수한 글이며, 가장 꾸밈없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를 시답지 못하게 꾸미거나 덧바르거나 치대는 사람이 있어요. 일부러 어려운 말을 섞고, 일부러 사상·철학·유행을 좇으며, 일부러 문학·예술이 되도록 덧바릅니다.


  ‘동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아이가 읽을 만한 시나 글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읽을 만한 시나 글 가운데 동시도 있을 테지만, 쉬우면서 수수하고 꾸밈없는 빛으로 가득하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참다울 때에 비로소 시나 글이나 동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나 동시는 모두 ‘글로 드러나는 내 이야기’입니다. ‘글로 나타나는 내 삶’이나 ‘글로 보여주는 내 사랑’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나 동시는 모두 ‘나를 숨길 수 없는 글’입니다. 꾸며서 쓴 시나 동시는 꾸밈이 곧바로 드러납니다. 말치레나 말장난도 시나 동시에서 막바로 드러나지요. 어설픈 교훈이나 훈계도 시나 동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요.


  시나 동시를 쓰는 까닭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나 동시를 읽는 까닭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른과 아이라고 하는 울타리를 세우지 않고, ‘다 함께 사람’이라는 대목을 바라보면서 깨달아 슬기롭게 사랑하는 삶을 지으려 하기에 시나 동시를 읽거나 씁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말입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삶이면서 놀이요 일입니다. 모든 시나 동시는 그대로 사랑이자 꿈이고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시나 동시를 쓰거나 읽을 적에는 ‘내 삶결’로 마주하면 됩니다. 온갖 이론이나 학문으로 바라보지 말고, 문예창작 이론 따위로 쓸 생각은 말면서, ‘내 숨결’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으려고 한다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쓰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늘 내 삶이자 이야기요 모습이니까요. 누구나 읽는 시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언제나 내 사랑이자 꿈이며 노래이니까요. 작가나 문학가만 쓰는 시가 아니라 ‘사람’이면 쓰는 시입니다. 비평가나 평론가만 읽거나 말하는 시가 아니라 ‘사람’이면 읽거나 말하는 시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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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12] 똥손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무척 오래된 말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읊는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고, 입으로 읊지 않고 생각에 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 말이나 입밖에 내지 않도록 다스릴 삶이면서, 어떤 말이건 스스로 사랑스레 꿈을 짓는 말을 나눌 삶입니다. 내가 어떤 일이 서툴다고 할 적에 내가 스스로 ‘똥손’이라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언제나 어떤 일에 서툴면서 아무것도 못할 테지요. 내가 이제껏 어떤 일에 서툴었어도 ‘아, 이제부터 괜찮아. 다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참말 이제부터 다 괜찮으면서 씩씩하게 할 테지요. 손놀림이 서툴면 서툴 뿐입니다. 몸놀림이 익숙하지 않으면 아직 안 익숙할 뿐입니다. 즐겁게 하면서 기쁘게 누리면 됩니다. 내가 나한테 할 말은 ‘똥손’이 아닙니다. 더러 ‘똥손’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 똥처럼 흙을 살리고 풀과 나무를 가꾸는 손이네, 하고 스스로 새롭게 다시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내 손은 ‘별손’이고 ‘해손’입니다. 내 손은 ‘바람손’이고 ‘사랑손’입니다. 내 손은 ‘고운손’이면서 ‘밝은손’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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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0
폴 젤린스키 그림, 앤 이삭스 지음,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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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7



이 아이를 바라보셔요

―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앤 이삭스 글

 폴 젤린스키 그림

 서애경 옮김

 비룡소 펴냄, 2001.10.8.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워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자전거에 아이들을 싣고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거닐면서 아이들과 손을 잡고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이고, 저마다 즐거운 하루입니다.


  고흥에서 인천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옵니다. 버스삯만 겨우 마련해서 아슬아슬하게 옵니다. 나들이를 나오는 길에 주머니가 허전하니, 이 아이들과 택시를 탈 수 없고, 짐이 많아도 씩씩하게 짊어지거나 어깨에 끼고 두 아이 손을 잡으면서 걷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가방 하나씩 메고는 신나게 노래하면서 나들이를 즐깁니다.


  인천버스역에서 내린 뒤 택시를 타면 한결 수월하게 큰아버지 댁에 갈 만합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뒤 바로 택시를 타는 일은 없습니다. 버스에서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앉은 채 있어야 했으니, 다시 다른 자동차를 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기차(전철)를 타자고 노래합니다. 내 주머니에는 택시삯이 없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기차놀이(전철놀이)를 하고픈 마음이 큽니다. 아니, 내 마음에는 아이들한테 전철(기차)을 태워 주면서, 너희가 그동안 그토록 노래한 기차가 여기 있단다 하고 말할 생각입니다.



.. 테네시 주의 아버지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침대에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도끼 한 자루를 넣어 준대요. 아기가 가지고 놀 수 있게요. 안젤리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두 살밖에 안 된 안젤리카는 도끼로 뚝딱 아기 오두막을 한 채 지었어요 ..  (7쪽)



  두 아이는 전철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느라 바쁩니다. 이 사람도 살피고 저 사람도 들여다보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그저 궁금하면서 재미있으니 깔깔 웃으면서 온갖 놀이를 즐깁니다. 나는 넌지시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그러지 말고 그냥 춤을 추면 어떻겠니, 하고.


  집에서도, 길에서도, 전철에서도, 우리는 홀가분하게 춤을 추며 놀 만합니다. 다른 사람 눈길은? 우리가 즐겁게 노는데 다른 사람 눈길을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전철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길에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큰아이는 전철길에서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빨간머리 앤〉을 부릅니다. 그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살짝 나즈막하면서 호젓한 목소리라, 아이더러 소리를 줄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나도 우리 집 큰아이 노랫소리를 가만히 귀여겨듣습니다. 기쁜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멋진 노래를 빙그레 웃으면서 듣습니다. 어디에서나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니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새롭고 새삼스러우면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 아이한테 노래를 한 가락 들려줍니다. 큰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에 목청을 뽑아 골목길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 사람들은 안젤리카를 ‘늪의 천사’라고 불렀어요. 봄날 꽃가루가 날리듯이, 마차가 지나가는 곳마다 늪의 천사에 관한 이야기가 쫙 퍼졌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었지요 ..  (10쪽)



  앤 이삭스 님이 글을 쓰고, 폴 젤린스키 님이 그림을 그린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비룡소,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큰 가시내라는 ‘안젤리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안젤리카는 퍽 옛날에 살던 사람인 듯합니다. 안젤리카를 낳은 어버이는 여느 몸집이지만, 안젤리카는 아기 적부터 몸집이 무척 큽니다. 게다가 두어 살부터 제 보금자리를 뚝딱뚝딱 손수 지어요. 새들과 놀고, 바람을 가르며, 냇물을 휘젓습니다. 온누리가 안젤리카한테 놀이터요 삶터이며 일터입니다.



.. “이봐, 늪의 천사 아가씨! 집에 가서 이불이나 꿰매지 그래?” “이불을 꿰매는 건 사내들이나 할 짓 아닌가요?” 안젤리카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러면 빵이나 굽는 것은 어때?” 안젤리카는, “그렇지 않아도 곰 빵을 구울까 하고요.” 하고 대답했어요 ..  (15쪽)



  안젤리카는 ‘가시내’일까요? ‘힘 좀 쓴다는 가시내’일까요?


  안젤리카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바느질도 할 줄 알고, 빵도 구울 줄 알며, 나무를 하거나 장작을 팰 줄 압니다. 안젤리카는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놀이를 즐겨요. 잘 놀고 잘 일하며,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안젤리카입니다. 그러니까, 안젤리카는 홀가분하게 우뚝 선 멋진 ‘사람’입니다. 안젤리카는 바로 ‘나’를 찾은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 안젤리카는 (큰곰) 벼락과 뒤엉켜 씨름하다가 녀석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어요. 땅거미가 질 무렵에도 벼락은 여전히 공중을 날고 있었지요. 첫 별이 떴을 때에도 벼락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안젤리카는 하늘 어딘가에서 녀석을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했지요 ..  (21쪽)



  이 아이를 보셔요. 이 아이를 바라보셔요. 이 아이를 가만히 마주하면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셔요.


  내가 낳은 아이도 좋고, 이웃집 아이도 좋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아이를 가만히 보셔요. 아이들은 어떤 넋일까요? 아이들은 가슴에 어떤 꿈을 품는가요?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받으면서 하루를 누리는가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가르칠 적에 아름다울까요?


  밥짓기와 옷짓기를 가시내한테만 맡긴다면, 사내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셔요. 예나 이제나 사내는 집 안팎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삶을 지으면서 사랑을 가꾸는지 헤아려 보셔요. 우리는 언제나 아름답거나 즐거운 하루를 누리는지, 아니면 따분해서 재미없는 틀에 박힌 하루를 겨우 붙잡는지 곰곰이 살펴요.


  어른을 둘러싼 아이를 보고, 어른 마음속에서 조용히 숨죽이는 아이를 보셔요. 할머니 가슴속에도 아이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마음밭에도 아이가 있습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노래하고픈 아이가 바로 우리 숨결입니다. 마음을 읽을 때에 삶을 읽고, 마음을 알 때에 삶을 압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큰 아이라는 안젤리카는 ‘몸만 큰’ 아이가 아닙니다. 몸집보다 ‘마음이 훨씬 큰’ 아이요, 사랑이 크고 꿈이 큰 아이 안젤리카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커다란’ 숨결이요 넋입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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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바라는 아이들



  두 아이가 퍽 예전부터 ‘기차’를 타고 싶다면서 노래를 불렀다. 고흥에서 기차를 타려면 순천까지 나가야 하는데, 기차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 사람들이 기차를 타는 때는 한가위나 설이니, 한 해에 두 차례쯤 탄다고 할까. 올해 설을 앞두고 인천과 일산으로 마실을 하기로 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 인천버스역에서 내려 전철을 탄다. 두 아이는 ‘전철 타러 땅밑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곧 알아보고는 소리친다. “보라야! 저기 전철 타는 구멍이야!” “응, 그래! 기차 타자!” 시골에서 도시로 놀러온 아이들은 전철을 타면서 아주 새롭다. 자리를 얻어 앉으면 창밖을 보느라 바쁘다. 땅밑을 달릴 적에는 새까만 것만 보이는데, 그래도 신난다. 새로운 전철로 갈아타니 빈자리가 없는데, 빈자리가 없어도 마냥 서서 전철과 함께 흔들리며 웃는다. 전철을 타면서 웃는 어른은 거의 볼 일이 없으나, 우리 집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큰소리로 웃는다. 날마다 지겹게 타야 해서 여느 어른은 전철에서 웃을 일이 없을까? 모두 손과 손에 전화기를 들고 무언가 꾹꾹 누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여덟 살과 다섯 살이어도 이렇게 노는구나. 앞으로 열 살과 일곱 살이 되어도 이렇게 놀까? 아무쪼록 언제나 어디에서나 재미있게 놀자.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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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07 06:30   좋아요 0 | URL
지하로만 달리는 지하철보다 바깥구경도 할수있는 전철이 저는 좋아요.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으면 바깥풍경볼일은 없겠지만요.
아이들 즐거움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파란놀 2015-02-08 04:11   좋아요 0 | URL
어제는 인천에서 일산까지 전철길에 아주 신나게 놀면서 잘 왔습니다.
웃을 줄 아는 아이들과 다니는 마실은 참으로 늘 즐거워요~
 
너는 1등 하지 마 크레용하우스 동시집 2
이묘신 지음, 박혜선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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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2



나는 재미있게 놀고 싶어

― 너는 1등 하지 마

 이묘신 글

 박혜선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2.10.30.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놉니다. 장난감을 손에 쥐어도 잘 놀고, 장난감이 손에 없어도 잘 놉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이렇게 놀지만, 나도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습니다. 장난감이 있으면 있는 대로 놀며, 장난감이 없으면 손가락을 장난감으로 삼고, 나뭇가지나 돌이나 가랑잎을 장난감으로 삼으며, 머릿속으로 온갖 장난감을 그려서 놉니다.


  우리는 손에 쥔 장난감으로도 놀지만, 마음속에 생각으로 그린 장난감으로도 놉니다. 손에 쥔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마음속으로 그린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습니다. 어느 장난감을 갖고 놀든, 마음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둘 수 있으면 됩니다.



.. 봉숭아 꼬투리에서 터진 씨앗들 / 바람과 술래잡기한다 ..  (나야, 나)



  시골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놉니다. 나무를 탈 수 있고, 나무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커다란 나뭇줄기에 귀를 가만히 대고 한참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 귀를 대고 눈을 감다가 깜빡 잠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 수 있어요.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운 날 풀밭에서 잠들면 아주 상큼합니다.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따사롭게 돌보는 손길을 실컷 누립니다. 우리 몸에 아픈 데가 있다든지, 우리 마음에 슬픈 데가 있으면,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곱게 어루만지면서 다독여 주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기를 즐겼습니다. 어쩐지 이렇게 잠들면 무척 달콤하면서 아늑했어요. 도시에서는 풀밭을 만나기 어렵고, 마땅한 풀밭을 찾기란 매우 힘들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풀밭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곳에 드러누웠어요.


  풀밭에 드러누우면 개미가 내 몸을 타고 기어다닙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가만히 있으면 메뚜기나 사마귀도 내 둘레로 지나갑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하늘을 가르는지 알아챕니다. 누워서 눈을 감으면, 풀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엄청난 노래잔치로 스며들고, 때때로 섞이는 멧새 노랫소리는 놀라운 숨결처럼 깃듭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풀밭에 누워서 노는 삶’을 누렸습니다. 누구나 풀밭에서 뒹굴고 풀밭에서 누우며 풀밭에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내가 기분 좋아 흥얼거리면 / 엄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 내가 아파서 기운 없으면 / 옆에 있는 엄마도 힘이 없는 거야 ..  (엄마와 이어진 줄)



  흙바닥에서 뛰어놀면 다치는 일이 없습니다. 물구나무를 서든, 구르기를 하든, 흙바닥에서는 아무도 안 다칩니다. 흙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음껏 달리고 뛰고 구릅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깨집니다. 더군다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은 거의 자동차가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놀 빈터가 없어요.


  도시에서 흙이 사라지며 아이들은 놀이를 빼앗깁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를 도시로 빼앗겼고, 시골에서 아이를 도시로 빼앗기면서 농약과 비료가 춤추니, 시골은 도시 못지않게 풀밭도 빈터도 도시만큼 거의 없습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으며, 놀 생각마저 어른한테 빼앗깁니다. 아니, 학교와 학원으로 닦달하는 어른한테 모든 삶을 빼앗기는 아이입니다.



.. 할머니는 밥상을 가져와 /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 - 그래, 너하고 나하고 마주 보고 밥이나 먹자 ..  (할머니와 밥)



  이묘신 님 동시집 《너는 1등 하지 마》(크레용하우스,2012)를 읽습니다. 동시집 이름부터 축 처집니다. 1등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흐르는 동시라니, 이러한 삶이 오늘날 아이들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가슴이 시립니다. 왜 1등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왜 1등이 되면 서로 고단할까요. 어른이 세운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왜 서로 다투거나 옥신거려야 할까요.



.. 윗집 빨랫줄에 / 매달린 / 빨래집게들 // 빨강 / 노랑 / 파랑 // 봄바람에 / 흔들흔들 / 꽃잎 같아 ..  (빨래집게)



  놀지 못하는 아이는 배우지 못합니다. 학교에만 가면 배운다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인데,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만 시키는 학교는 참말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는 ‘공부’조차 아닐 뿐 아니라, 어떤 ‘가르침·배움’도 될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를 어디에 쓰나요? 시험공부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로는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로는 꿈을 꾸지 못합니다. 시험공부로는 동무를 못 사귀고, 어른을 섬기지 못하며, 여행이나 놀이도 누리지 못해요. 시험공부로는 오직 대학입시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공부를 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을 들이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어른이 할 일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아이와 사랑으로 삶을 지어야 할 뿐입니다.


  사랑스레 즐겁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책을 주지 말 노릇입니다. 독후감을 쓰거나 논술 훈련을 잘 하도록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삶에 빛이 되는 길동무로 삼도록 하는 책입니다. 사랑을 누리거나 나누는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 줬어요 / - 여우는 교활했어요 / - 엄마, 교활이 뭐야? / 엄마는 얼른 국어사전을 가져왔어요 / - 교활은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거야 / 꾀가 많은 건 알겠는데 간사란 말은 어려웠어요 / - 간사한 거는 뭐야? / 다시 사전을 찾는 엄마 / - 응, 간교하고 남을 잘 속이는 거야 / 속이는 건 알겠는데 간교가 뭔지 궁금했어요 / 엄마가 사전을 다시 찾았지요 / - 간교는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거야 / - 어? 교활이 또 나왔네 / 사전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엄마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말꼬리)



  동시를 쓰는 어른은 글줄에 꿈을 실을 수 있기를 빕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언제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인 동시이니, 아이들이 언제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꿈을 싣고 사랑을 담아 곱게 글을 쓰기를 빕니다. 노래가 될 만한 놀이를 어른부터 스스로 즐기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노래로 다시 태어날 만한 삶을 어른부터 스스로 가꾸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문학을 맛보거나 문화를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술을 알거나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면서 가슴에 사랑을 담고 마음에 꿈을 심어야 합니다. 동시가 나아갈 길은 ‘사랑을 노래하는 삶을 짓는 따사로운 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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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7 23:1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른이 할 일과 동시가 나아갈 길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겠어요.

파란놀 2015-02-08 05:10   좋아요 1 | URL
스스로 삶을 즐겁게 지으면
시는 노래가 되어 저절로 흐르니
굳이 동시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다 그렇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