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16 고맙다



  학자는 으레 책‘만’ 살핍니다. 책‘도’ 살필 수 있을 테지만, 책‘만’ 살피는 학자는 아주 조그마한 것만 아주 조그맣게 바라볼 뿐입니다. 이를테면, 훈민정음조차 없던 때까지 ‘한국사람이 쓰던 말’은 어떠한 책에도 거의 제대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나마 훈민정음이라도 태어난 때부터 몇몇 지식인과 학자가 훈민정음을 빌어서 적은 한국말이 있으면, 이러한 ‘책’을 바탕으로 삼아서 말밑을 살핍니다.


  지난날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책은 거의 다 중국글인 한자를 빌어서 썼습니다. 정치를 하건 학문을 하건 문학을 하건, 지난날 사람들은 ‘한자’가 아니면 ‘글’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이들은 어떤 낱말로 “이녁이 나한테 넓게 베푼 마음을 흐뭇하게 여기는 뜻”을 나타냈을까요? 바로 ‘감사(感謝)’입니다. 그러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씨를 뿌리고 풀을 뜯으면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베틀을 밟고 흙집에서 노래하던 사람도 ‘감사’ 같은 한자말(또는 중국말)을 썼을까요? 아니지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쓴 말은 ‘고맙다’입니다. ‘고마우이·고맙네·고마워·고맙소·고맙구마·고맙군·고맙습니다’처럼 ‘고마-’를 앞가지로 놓고 말끝을 달리하면서 내 뜻을 이녁한테 밝혔습니다.


  ‘고마-’는 “이녁이 나한테 넓게 베푼 마음을 흐뭇하게 여기는 뜻”을 나타내고, 이런 말을 할 적에는 어른도 아이한테 고개를 숙입니다. 잘 살펴야 하고, 잘 보아야 합니다. ‘고맙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나이 여든 살이어도 여덟 살 아이한테 꾸벅 절을 합니다. 참말 ‘절’을 하지요. 절을 하는 까닭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왜 절을 할까요? 이녁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높이’려는 뜻으로 절을 합니다. 왜 이녁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높이려 할까요? 이녁이 나한테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흐뭇함 같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너른 사랑을 따스한 손길로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웃·동무)은 나한테 새로운 빛을 보여줍니다. 나는 새로운 빛에 눈을 뜨고, 새로운 빛에 눈을 뜨기에 기쁘거나 즐겁거나 흐뭇해요. 이리하여, 내 눈이 새롭게 뜨이도록 이끈 사람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높이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저절로 일어나는 이 기운에 따라서 몸이 움직여 ‘절’을 합니다. ‘절’이라는 몸짓으로 나타나는 ‘이녁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높이려는 마음’을 바로 ‘고맙다’라는 말로 빙그레 웃으면서 보여줍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흐뭇함이 일어나도록 너른 사랑을 따스한 손길로 베푸는 사람은 어떠한 숨결일까요? 바로 ‘님’입니다. 이른바 ‘하느님’입니다. 내 앞에 있는 님(하느님)인 이녁한테 절을 하는 뜻은, 네가 바로 님(하느님)이기 때문이고, 네가 바로 님이기에 ‘고마-’라는 말을 빌어서 절을 합니다. 이리하여, ‘고맙다’와 같은 말마디로 절을 할 적에(인사를 할 적에)는, “너는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고 섬기거나 모시거나 높이는 뜻이 되지요.


  삶을 새롭게 보도록 이끌었기에 ‘나는 너를 섬길 만해’ 하고 느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삶을 새롭게 짓는 길을 배웠기에 ‘나는 너를 모실 만해’ 하고 여겨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삶을 새롭게 가꾸는 사랑을 알았기에 ‘나는 너를 높일 만해’ 하고 헤아려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감사하다’ 같은 낱말을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은 중국말도 쓸 수 있고, 영어도 쓸 수 있으며, 일본말도 쓸 수 있어요. ‘아리가또(ありがとう)’나 ‘땡큐(thank you)’를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외국말을 쓰듯이, ‘여러 외국말 가운데 하나’인 ‘感謝하다’를 쓸 수 있어요.


  다만, 한국말 ‘고마-(고맙다)’가 무엇을 뜻하고, 어떤 마음을 드러내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알면서 외국말을 함께 쓸 수 있어야, 비로소 내 넋이 제대로 열리면서 내 눈은 제대로 이웃을 바라보고, 나 스스로 나를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쓰는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나는 오늘 이곳에서 어떤 넋을 키워서 어떤 삶을 지을 수 있을까요? 4348.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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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난자몬자 6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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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66



어떤 어른이 되려는가

― 수수께끼 난자몬자 6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5.1.10.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못 하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사귀는 일조차 제대로 못 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있어도 제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까요. 다가서려 하거나 말을 걸려고조차 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못 탄다고 스스로 자꾸 생각하니 자전거를 끝내 못 탑니다. 자전거를 배우다가 넘어지면 어떤가요?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자전거를 배웁니다. 아기는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익힙니다. 아기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거나 얼굴이 깨지기를 두려워 한다면, 아기는 끝내 못 걷습니다. 어버이가 아기한테 할 일은, 아기가 두려움이 없이 씩씩하게 서도록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려 맞이하는 일입니다.



- “대체 난 뭘 하고 있었을까. 후우타가 없어졌다는 것만 생각하고, 아버지가 어떤지 전혀 눈치 못 챘어.” (13쪽)

- “당신이 없는 10년을 홀로 보내고, 난 당신보다 나이를 먹었지.” “좋은 10년이었수?” “그렇구먼. 나쁘지 않았어.” (27쪽)





  우리는 어떤 어른이든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고, 바보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아름다운 일을 하면, 우리는 늘 아름답지요. 생각을 하나도 안 가꾸면서 하나도 안 아름다운 일을 하면, 우리는 그만 바보스러운 어른이 됩니다. 어느 쪽이 되든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놀이로 기쁘게 웃으려 하는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할 적에도 어떤 낱말을 고르고 어떤 말투로 하려는지 찬찬히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삶을 생각하고, 모든 뿌리를 생각하며, 모든 숨결을 생각해야, 비로소 나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슬기롭고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 “네가 이 마을의 규율울 어긴 것이 문제라고 하는 거다. 네가 멋대로 판단하고, 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일을.” “아니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곁에 있어 줬던 거 난 아주 잘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후회 안 한다구요!” “이 꼬맹이가! 쵸시 님께 말대답하지 마라!” “뭐가 쵸시 님이야!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둥 그럴듯한 말만 지껄이는데, 그냥 독재주의자에 배배 꼬인 영감이잖아!” (50∼52쪽)






  이토 시즈카 님이 빚은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5)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난자몬자 이야기는 이제 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수수께끼가 깃든 나무가 있는 조그마한 섬에서 살아가는 길고 짧은 이야기를 찬찬히 마무리를 지어요.


  이 만화책을 이끄는 아이들은 열다섯 살 나이에 서른 살 어른을 꿈꿉니다.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 살려는지 가만히 꿈을 짓습니다. 아름다운 어른이 될는지, 바보스러운 어른이 될는지 스스로 생각하면서 길을 찾으려 합니다.


  이 아이들은 ‘굳은 틀’로 생각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바보스러운 허물’을 뒤집어쓸 생각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우면서 환한 눈길이 되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은 늘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바랍니다.



- “너희가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다고 저 애들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잖니! 이럴 때일수록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란 말이다!” (87쪽)

- “이 마을의 숲은, 너희를 살리고 받아들였어. 그러니까 우리도 그걸 따라야지. 왜냐하면 이 섬의 숲은, 우리를 지키고 길러 준 ……” (95쪽)





  열다섯 살 아이들뿐 아니라 더 어린 아이도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갑자기 ‘손가락 길이’만큼 몸이 줄어들었거든요. ‘손가락 사람’이 된 아이들을 받아들여서 가르칠 만한 학교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스스로 삶을 짓고, 스스로 생각을 가꾸며, 스스로 사랑을 펼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누립니다.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길을 스스로 생각해 내어 이룹니다.


  남이 알려주기에 배우지 않아요. 스스로 길을 찾아서 배우지요. 남이 보여주니까 따르지 않아요. 아침마다 스스로 생각을 열고, 날마다 스스로 빙글빙글 웃음꽃을 피웁니다.



- “15년 후. 우린 30살이겠다.” “아, 아저씨네!” “우린 15년 후에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116쪽)



  새로운 마음인 사람은 서른 살이건 예순 살이건 젊습니다. 젊은 사람은 늘 푸른 마음입니다. 새롭지 않은 마음인 사람은 열다섯 살이건 열 살이건 안 젊습니다. 애늙은이라 할 만하고, 철이 안 들지요. 새롭지 않은 마음일 때에는 그저 늙습니다. 새로운 마음일 때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새롭지 않은 마음일 때에는 두려움만 많아서, 도무지 한 발짝도 떼지 못해요.


  어른이 되려는 사람은 늘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새로운 길을 새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걷습니다. 새로운 길을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꿈을 지으면서 걸어요. 이 새로운 길에는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함께 노래를 합니다. 이 새로운 길에는 꽃과 나무와 풀이 함께 춤을 춥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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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1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너무 콕콕 쑤셔서 아파서 ㅎㅎㅎ
눈 돌리고 싶어지기도 한답니다.
아는 거죠. 엄살 부리고 싶구나...하고.

파란놀 2015-02-13 21:00   좋아요 1 | URL
즐거운 곳에 눈을 돌리면 됩니다~

[그장소] 2015-02-1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게 배운것은 잘 잊히지 않아요.
시간도 그만큼 들고 잃는 것 역시 있어도
헛되지 않다는 걸...이제는 조금 압니다.

파란놀 2015-02-14 09:27   좋아요 1 | URL
아프다고 해도 그 한때뿐이고
오래도록 즐거운 숨결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고마운 일이라고 느껴요..
 

<전라도닷컴> 2015년 2월호에 실은 '사진책도서관(시골도서관)' 일기입니다~ ^^


..


시골도서관 풀내음

―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려면 적어도 석 달을 기다립니다. 남새 씨앗이라면 석 달 뒤에 얻을 만한데, 나무 씨앗이라면 싹이 터서 줄기를 올리기까지 여러 해를 기다립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를 얻으려면 꽤 여러 해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돌보고 거둔 사람은 밥알 하나를 남길 일이 없고, 능금 한 조각을 흘릴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손수 심고 가꾸면서 깊고 넓게 사랑을 담았으니까요. 손수 씨앗을 심은 아이한테는 “밥알 흘리지 말고 먹으렴” 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먼저 몸으로 알고 마음으로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 한 권으로 한 학기나 한 해를 가르칩니다. 모든 과목을 놓고 한 학기나 한 해에 걸쳐서 천천히 가르치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과서는 쓰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 주차장이나 강당이나 체육관이나 기숙사를 두는 곳은 많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텃밭이나 논을 두는 곳은 아주 드무니까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우유팩 꽃그릇을 두어 콩씨 한 톨을 심어서 아이가 손수 돌보면서 가꾸도록 이끈다든지, 학교 둘레를 꽃밭과 나무숲으로 가꾸면 참 고우리라 봅니다.


  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를 심어서 돌보아야 합니다. 콩밥 한 그릇을 얻으려면 볍씨와 함께 콩씨를 심어야 합니다. 팥죽을 얻으려면 팥씨를 심어야 하고, 새알심으로 쓸 쌀가루나 수숫가루를 얻자면 수수씨를 심어야지요. 그리고, 볍씨를 심어서 거두었으면 겨를 벗겨야 할 테고, 쌀가루를 쓰자면 쌀알을 곱게 빻아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면서 가르치자면 꽤 긴 나날을 보냅니다. 예부터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잘 크기를 빌’면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어요. 가만히 보면, 나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태어날 적에 심은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면, 아이가 제법 철이 들 무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사랑을 물려주어 아이가 손수 꿈을 생각할 만한 즈음에 나무 열매를 얻는 셈입니다.


  얀 리고 님이 쓴 《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라는 어린이책을 읽다가 “소비자의 수요가 늘자 농산물 생산도 늘어났는데, 이와 함께 비료 사용도 늘어났어요. 그래서 많은 질산염이 빗물에 씻겨 하천으로 흘러들었는데(99쪽)” 같은 대목을 봅니다. 도시에서는 ‘농산물’이라든지 ‘수요’나 ‘생산’ 같은 말을 씁니다. 도시에서는 볍씨도 능금씨도 손수 심어서 거두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고판다고 여기고 경제성장을 헤아리니 ‘농산물 거래’와 ‘수지 타산’을 따집니다. 아무튼, 도시에서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밥 먹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논밭이 없을 뿐 아니라, 소금밭이나 뻘밭도 없어요. 도시에서는 물고기를 낚지 못하고, 소나 돼지나 닭을 치지 못합니다. 들이나 숲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와 달리 시골에는 사람이 크게 줄어드는데, 도시로 내다 팔아야 하는 곡식과 열매는 외려 더 늘어납니다. 얼마 안 되는 시골지기가 아주 많은 도시내기를 먹여살립니다. 비료를 많이 쓰고, 농약을 자꾸 치며, 기계를 더 부릴밖에 없습니다. 들과 숲에 널린 나물을 캘 틈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 다 같이 흙을 밟고 만지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들일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입을 꾹 다문 채(농약이 입에 들어가니까요) 귀는 꽉 막은 채(기곗소리가 시끄러우니까요) 일거리가 많고 넘쳐서 바쁩니다.


  《바다가 아파요》를 더 읽습니다. “바다 양식에서는 주로 포식 물고기를 길러요. 그래서 다른 야생 물고기를 많이 잡아 먹이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것은 남획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요. 게다가 양식장에서 새어 나온 배설물과 병균, 화학물질, 항생제 등이 주변 바다로 흘러들죠(130쪽).” 문득 우리 집 큰아이가 떠오릅니다. 마당 한쪽에 탱자나무를 옮겨심고 나서 아이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시골에서는 그림을 그릴 모습이 둘레에 가득합니다. 여름에는 마루문을 열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멧새를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겨울에는 마당에 서서 나무와 들빛을 살펴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눈이 와서 살짝 쌓이면 눈밭에서 놀다가 하얗게 바뀐 마을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동생과 함께 세발자전거로 비탈을 오르내리며 놀고 나서 이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 복숭아나무를 쓰다듬으며 인사한 뒤 손끝으로 닿는 느낌을 헤아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여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가을에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 노랫소리를 그림으로 담고, 봄에는 새봄맞이 작은 꽃송이 노래를 그림으로 담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콩 한 톨을 심고 나서 콩꽃이 피고 콩알이 새로 맺을 때까지 날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산 목숨’과 ‘밥 이야기’를 새롭게 배울 만하리라 느낍니다. 손수 심은 콩 한 톨로 얻은 수북한 콩알로 밥을 지을 수 있고, 콩알을 가루로 내어 다른 먹을거리를 빚을 수 있습니다. 손수 심고 거두며 손질한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쓰면, 이러한 글이 바로 ‘문학’입니다.


  씨앗 한 톨이 나무로 자라서 숲을 이룹니다. 숲을 이루기까지 꽤 오랜 나날이 걸려, 어쩌면 사람들은 작은 씨앗 한 톨로 이룬 숲을 못 볼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씨앗을 꾸준히 심고 돌보면, 할머니나 할아버지 나이가 될 무렵에 멋진 숲을 지어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어요. 아기가 태어나 어른이 되는 동안 철이 듭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하다가 조잘조잘 말문을 트고 씩씩하게 도끼질이나 톱질을 하기까지 꽤 오랜 나날을 기다려야 할 테지만, 철이 들어 둘레를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는 아이는 집과 마을과 이 땅을 새롭게 짓습니다. 작은 씨앗이 집과 마을을 살리고, 작은 아이가 보금자리와 지구를 살립니다.


  공해와 환경 이야기를 책으로 가르칠 수 있고, 책으로 가르치는 인문지식도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해와 환경이 무엇인지 따로 안 가르치더라도 씨앗심기를 보여준다면, 씨앗을 함께 심는다면, 풀과 꽃과 나무를 함께 돌본다면, 손수 심은 씨앗을 함께 거둔다면, 손수 심고 거둔 씨앗으로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면, 아이와 어른은 삶과 사랑과 꿈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환하게 웃으리라 느껴요. 4348.1.1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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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21) 서식말 1 : 무엇에 대해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 국립국어원 누리집



  한국말을 다루는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흔히 쓰는 말투로 “지적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감사드립니다)”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국립국어원에 어떤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글 끝에 이 같은 말을 붙입니다. 이러한 말투는 국립국어원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흔히 쓰고, 여느 회사에서도 자주 씁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말투를 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무엇)하는 데 대해”는 번역 말투입니다. ‘감사(感謝)하다’는 한자말입니다. 번역 말투는 마땅히 한국 말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말이 있다면 구태여 한자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자말을 즐겨쓰는 분들은 으레 ‘다양성을 살리려면 한자말도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다양성을 살리려 한다면 영어도 일본말도 다 쓸 노릇이고,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도 다 쓸 노릇일 테지요.


  번역 말투나 일본 말투를 왜 바로잡아서 ‘한국 말투’로 쓰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공공기관에서 ‘땡큐’나 ‘아리가또’ 같은 외국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듯이, ‘고맙습니다’라는 한국말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같은 외국말(중국말 또는 한자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국립국어원은 한국말을 다루는 곳이요, 한국말을 나라밖에도 알리는 구실을 맡는 만큼, 한국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면서 슬기롭게 쓸 말을 보여주는 몫을 해야지요.


 ㄱ. 짚어(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ㄴ. 알려(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ㄷ. 말씀 고맙습니다

 ㄹ. 말씀 잘 들었습니다

 ㅁ. 말씀 고맙게 듣겠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서 쓴다는 ‘서식말’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틀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어떤 틀에 따라서 쓴다는 서식말일 때에도, 사랑스러우면서 슬기롭게 틀을 가꿀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아주 뛰어나면서 훌륭하고 갈고닦아서 멋지고 기쁘게 쓸 수 있습니다. 4336.3.20.나무/4348.2.13.쇠.ㅎㄲㅅㄱ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0) 서식말 2 : 출입을 하지 마십시오


관계자 외 출입하지 마십시오

- 서울 상암동 축구경기장



  “관계자 외 출입금지” 같은 푯말이 꽤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출입금지’라는 푯말로 사람들이 억눌렸습니다. 한자말로 붉게 적는 ‘금지(禁止)’는 매우 무섭거나 무시무시하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어느새 ‘마십시오’로 바뀝니다. 사회에 민주가 흐르면서 ‘딱딱한 관공서 말투’가 조금 누그러집니다.


  그런데, ‘출입(出入)’이라고 하는 한자말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드나들다’입니다. ‘들고 나다’라든지 ‘나고 들다’처럼 쓰는 한국말입니다. ‘출입문’은 한국말로 ‘나들문’입니다. 전철을 타고 내리려고 드나드는 길목이라든지, 고속도로에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길목을 가리킬 적에 으레 ‘나들목’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ㄱ. 드나들지 마십시오

 ㄴ. 아무나 들어오지 마셔요

 ㄷ. 이곳 관계자만 들어오는 곳입니다

 ㄹ. 이곳 일꾼만 드나드는 곳입니다

 ㅁ. 이곳에 오지 마셔요


  ‘出入’을 한글로 ‘출입’처럼 적더라도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출구’와 ‘입구’도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말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입니다. ‘출입구’ 같은 외국말은 ‘드나드는 곳’으로 바로잡을 만합니다. 또는 ‘나들목’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관계자 외 출입하지 마십시오”로 한 번 손질했다면, 더 손질해서 “관계자 말고 드나들지 마십시오”로 적을 만합니다. 더 손질해서 “아무나 드나들지 마십시오”나 “함부로 들어오지 마셔요”처럼 적을 수 있어요.


  힘껏 내디딘 한 걸음을 더욱 힘껏 새롭게 내딛으면서, 아름다운 서식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5.6.10.달/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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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13 12:46   좋아요 0 | URL
감사 보단 고맙습니다. 별표 치고 갑니다. ^^

파란놀 2015-02-13 15:22   좋아요 1 | URL
`무엇보다` 어떤 말이 나아서 어떤 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참다운 뜻과 까닭이 있기 때문에
`낡은 말`을 털어서,
언제나 새로운 말을 쓸 뿐이랍니다.
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2-13 16:07   좋아요 0 | URL
어느 땐 감사가 더 극진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고맙다.는 조금 더 아래 의 말 같죠.
전하기만 하면 그 뿐..이 아니기에 가능함 고맙다.를 쓰려 의식해 왔는데 그래도 한계를 느껴버려요 . 있을까요.? 고맙다 를 대신할 좀 더 극진 한 표현 이...?

파란놀 2015-02-13 16:18   좋아요 1 | URL

`말`이 무엇이고, `한국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사회의식과 고정관념으로 스며든 대로 바라보면
어떤 말이든 제대로 못 쓰기 마련입니다.

http://blog.aladin.co.kr/hbooks/7380137

이 글에 `고맙다`라는 낱말을 놓고 글을 썼으니
찬찬히 읽어 보시고 그장소 님 스스로
잘 헤아려 보시기를 바라요.

모든 실마리는 스스로 찾아야 보이는 법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고맙다는 한국말이고
감사는 외국말(중국말)입니다.
땡큐는 영어일 뿐인데, 땡큐가 `고맙다`보다 위나 아래일 수 없지요.

[그장소] 2015-02-13 16:36   좋아요 0 | URL
외국말..ㅋ 국산으로 갈아타겠습니다.
연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품등 정기적인
차량 정비를 보면 외제차는 어지간한 고소득이 아닌한 밑빠진 독 물붓기...임을...
알기에 B,M,W 강 추! ^^

파란놀 2015-02-13 16:37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것도 멋진 생각입니다.
`베엠베와 다르면서도 새롭고 멋진 연비`가 나는
국산을 타도 아름답고 사랑스레 달릴 수 있어요~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42) 답을 주다


오후 3시 배는 12시 넘어서 확실한 답을 준다고 해서

《박세욱-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86쪽


 확실한 답을 준다고 해서

→ 제대로 말해 준다고 해서

→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

→ 뜰지 안 뜰지 알 수 있다고 해서

 …



  이 보기글에서 말하는 “확실한 답”이란 “배가 뜰는지 뜨지 않을는지 똑부러지게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똑부러지게 알려준다고 해서”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라든지 “잊지 않고 꼭 말해 준다고 해서”라든지 “제대로 말해 준다고 해서”처럼 손보아도 됩니다.


  요즈음에는 “연락 주셔요”나 “전화 주셔요” 같은 말마디를 쓰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연락이나 전화를 ‘주셔요(주세요)’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연락해 주셔요”나 “전화해 주셔요”처럼 말해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에서는 “심부름 다녀왔습니다”에서 ‘-을’을 덜듯이 토씨를 흔히 덜기는 하지만, “생각할 일이다”에서 ‘-할’을 덜어서 “생각 일이다”처럼 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답(答)’이란 ‘말’이나 ‘대꾸’입니다. “말을 준다”거나 “대꾸를 준다”고 하지 않아요. “말을 하다(말하다)”나 “대꾸를 하다(대꾸하다)”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한자말 ‘답’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 이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확실히 답해 준다고 해서”나 “확실히 답한다고 해서”처럼 적어야 합니다. ‘말(대꾸)’이든 ‘답(대답)’이든 ‘주다’라는 낱말로는 가리킬 수 없다는 대목을 잘 헤아려야겠습니다. 4339.4.17.달/4348.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낮 세 시 배는 열두 시 넘어서 똑똑히 알려준다고 해서


“오후(午後) 3시”는 “낮 세 시”로 손보고, ‘확실(確實)한’은 ‘틀림없이’나 ‘뚜렷이’나 ‘똑똑히’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02) 서로 상대에게


배움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상대에게 힘을 준다

《파멜라 메츠/이현주 옮김-배움의 도》(민들레,2003) 28쪽


 서로 상대에게 힘을 준다

→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준다 (?)

→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된다

→ 서로 힘이 된다

→ 서로서로 힘이 된다

 …



  한자말 ‘상대(相對)’는 “서로 마주 대함. 또는 그런 대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서로’입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서로 상대에게”는 “서로 서로에게”처럼 쓴 꼴이면서, 얄궂은 겹말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한테”처럼 고쳐쓰든 “서로서로”처럼 손질하든 “서로”처럼 단출하게 적든 해야 올발라요.


  이 보기글은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준다”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힘을 준다”고 하는 말마디가 아리송합니다. “배움이 진행되는 동안”이라고 하는 말마디도 알쏭달쏭합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여러모로 뒤죽박죽입니다. 배움은 ‘진행된다’고 하지 않고, 그저 ‘배운다’고 해야겠지요. “배우는 동안”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된다”고 해야겠지요. 함께 배우면서 서로 기댈 만한 사이가 되어 서로 힘이 된다고 해야 할 테지요. 4338.4.6.물/4348.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배우는 동안 서로서로 힘이 된다


“배움이 진행(進行)되는 동안”은 “배우는 동안”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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