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54) 우려의 1


조선어사전편찬회에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최경봉-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71쪽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 걱정스런 눈길을 보낼 수밖에

→ 근심스런 눈길을 보낼 수밖에

→ 걱정스레 볼밖에

→ 걱정도 할 수밖에

→ 걱정이 될 수밖에

→ 걱정할 수밖에

 …



  “우려의 시선”은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적는 “憂慮の視線”을, 껍데기만 한글로 적었을 뿐입니다. 이를 “걱정의 눈길”로 다듬어도 알맞지 않아요. 사이에 끼어든 ‘-의’를 덜고 “걱정스런 눈길”이나 “걱정하는 마음”이나 “근심스런 눈”이나 “근심하는 몸짓”쯤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까 걱정스럽다

→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 수 있다

 우려를 표시했다

→ 걱정된다고 말했다

→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려를 낳다

→ 걱정이 된다

→ 걱정스럽다


  한자말 ‘우려’를 쓰면 자꾸 ‘-의’가 들러붙습니다만, 한국말 ‘걱정’이나 ‘근심’이나 ‘끌탕’을 넣으면 어느 자리에도 토씨 ‘-의’는 달라붙지 못합니다. 낱말부터 하나하나 옳고 바르게 가다듬을 때에, 말투도 옳고 바르게 추스릅니다. 말투를 옳고 바르게 추슬른다면, 넋과 삶 또한 옳고 바르게 흐르도록 다스릴 수 있습니다. 4338.10.17.달/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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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사전편찬회를 바라보면서도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믿으면서도 걱정스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기대(期待)를 걸면서도”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바라보면서도”나 “바라면서도”나 “믿으면서도”로 손볼 수 있습니다. “눈이 가는 길”을 한자로 적으면 ‘시선(視線)’이 되지만, 한국말로 적으면 ‘눈길’입니다.



우려(憂慮) : 근심하거나 걱정함

  - 우려를 낳다 / 우려를 표시했다 / 아이들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96) 우려의 2


최근의 어떤 매우 상세한 보고는 깊은 우려의 원인을 제공한다

《폴 인그램/홍성녕 옮김-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알마,2008) 108쪽


 깊은 우려의 원인을 제공한다

→ 몹시 걱정스럽게 한다

→ 몹시 걱정스럽다 할 만하다

→ 대단히 근심스러울 뿐이다

→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하다

→ 더할 나위 없이 근심스럽다

 …



  수학을 익히고, 사회과학을 파며, 역사학을 들추는 분들 가운데 ‘한국말’을 차근차근 익히거나 파거나 들추는 분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교육학을 배우고, 인문학을 살피며, 자연과학에 몸담는 분들 가운데 ‘한국사람이 쓸 글’을 알뜰살뜰 배우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분을 만나기 힘듭니다. 모두 이녁이 파고드는 학문 한 가지는 잘할는지 모릅니다만, 이웃이나 동무나 뒷사람한테 알맞고 쉬우며 넉넉하게 물려줄 수 있게끔 ‘학문이나 사상이나 철학을 한국말과 한국 말투로 살뜰히 엮어내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일그러진 말과 글로 학문을 하여 책을 내거나 옮기면, 일그러진 말과 글로 ‘어느 학문을 배우고’ 맙니다. 처음 가르치는 분이 일그러진 말과 글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아무리 훌륭하고 슬기로운 학문을 갈고닦는다고 하여도, 내 학문을 ‘일그러진 말과 글’로 풀어놓을밖에 없습니다.


  학문이라는 ‘뜻(목적)’은 이루었을지라도, 학문을 함께 나누는 ‘삶(실천)’은 이루지 못하는 셈입니다. ‘생각(이론)’은 누구보다 튼튼히 다져 놓았을 터이나, 생각을 풀어놓으며 이웃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삶’하고는 동떨어지는 셈입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거나 반갑다고 하여도, 신문기사나 방송소식이 ‘일그러진 말과 글’로 되었다면, 좋은 이야기와 반가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들한테 일그러진 말과 글을 길들게 하고 맙니다. 목사님과 신부님과 스님 말씀이 아무리 거룩하고 훌륭하더라도, 이녁이 쓰는 말마디가 일그러진 채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믿음이라는 한길을 걷는 사람들 말과 생각 또한 일그러질밖에 없습니다.


  어느 학문을 하건, 알맞고 바르며 살갑게 말하거나 글을 써서 내 생각과 뜻과 마음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함께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말을 바르게 나누고 글을 곧게 여밀 수 있게끔 북돋워야 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한테조차 영어를 어김없이 가르치는데, 이에 앞서 한국말을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중·고등학생한테도, 또 대학생한테도, 또 여느 회사원과 일꾼한테도, 한국말을 얼마나 제대로 가르치면서 쓰도록 도와주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4341.11.8.흙/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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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어떤 이야기를 보면 몹시 걱정스럽다 할 만하다


‘최근(最近)의’는 ‘요사이’나 ‘요즈음’으로 다듬고, ‘상세(詳細)한’은 ‘낱낱이 밝힌’이나 ‘낱낱이 적은’으로 다듬습니다. ‘보고’는 ‘補考’일는지 ‘報告’일는지 헷갈리지만, 아마 ‘報告’일 듯한데, ‘보고서’와 뜻이 같은 ‘보고’는 ‘글’로 손볼 수 있어요. 이 보기글에서는 ‘이야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원인(原因)을 제공(提供)한다”는 앞말과 묶어서 아예 털어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17) 우려의 3


한국 언론의 정파주의가 깊어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 커지고 있다

《손석춘-민중언론학의 논리》(철수와영희,2015) 246쪽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근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



  한국말 ‘근심·걱정’은 ‘근심하다·걱정하다’나 ‘근심스럽다·걱정스럽다’로 살려서 씁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헤아리니 “걱정의 목소리”나 “근심의 목소리”처럼 잘못 쓸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한자말 ‘우려’를 한국사람이 쓸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우려하는 목소리”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이런 한자말은 말끔히 털고, 한국말로 쉽고 바르며 아름답게 “걱정하는 목소리”나 “근심하는 목소리”처럼 적으면 됩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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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서 정파주의가 깊어 간다고 걱정하는 목소리 언론계를 비롯하여 학계에서 커진다


“한국 언론의 정파주의”는 “한국 언론에서 정파주의”로 손질하고, “깊어 가고 있다는”은 “깊어 간다는”으로 손질합니다. “언론계는 물론(勿論)”은 “언론계를 비롯하여”로 손보고, “커지고 있다”는 “커진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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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틀 짜기 (사진책도서관 2015.2.1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2015년부터 우리 사진책도서관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로 했다. 다만,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로 외치기는 했으나 뚜렷한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는데, 바탕틀은 먼저 한 가지 짰고, 이는 ‘도서관 + 학교 + 전시관’, 이렇게 세 가지가 어우러지는 숲터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곳 폐교 터를 아주 까뒤집는 공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이제 물러갔다. 이들은 폐교 둘레에 있던 큰나무를 거의 다 베어 넘겼다. 그래도 아직 살아남은 나무가 많고, 옛 관사 둘레 대나무는 거의 그대로 있다. 아까운 나무가 많이 쓰러졌으나, 처음에는 안쓰럽게 여겼으나, 이제는 우리가 새로 심으면 된다고 느껴서 어떤 나무를 새로 아이들과 심을까 하고 생각을 기울인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가 자잘한 나무들이랑 등나무 덩굴 때문에 씨름하지 않도록, 누군가 우리를 도와준 셈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폐교 건물 둘레를 싹 치웠으니까.


  2월 25일에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우리 사진책도서관을 소개하는 기사를 문화체육관광부 온 직원한테 띄우기도 하면서 ‘문화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올린다고 한다. 이 기사를 종이에 뽑고, ‘도서관·학교·전시관 계획서’를 써서, 읍내 고흥교육지원청에 서류를 꾸려서 내려 한다. 폐교 건물은 우리가 매입하기로 하고, 운동장과 폐교 부지는 장기 임대(10년)를 하는 길을 여쭈려 한다. 이렇게 하면, 폐교 건물을 제대로 고쳐서 도서관과 학교와 전시관으로 잘 쓸 수 있을 테고, 학교 운동장과 부지는 앞으로 꾸준히 손질하면서 돌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도서관은 예전부터 쓰던 이름 그대로 ‘함께살기(ㅎㄲㅅㄱ)’로 하고, 학교는 ‘푸른숲(ㅍㄹㅅ)’이라는 이름을 새로 쓰려 한다. 전시관은 ‘모레오늘(ㅁㄹㅇㄴ)’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떠할까 하고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도서관·학교·전시관’을 아우르는 이름을 하나 새로 지어야 한다. 전시관 이름과 ‘세 가지를 아우르는’ 이름을 지으면, 이제 고흥교육지원청에 낼 서류도 잘 마무를 수 있을 테지. ㅎㄲㅅㄱ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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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19 그대로 있기



  ‘그대로 있기’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할 적에, 참말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때에 한번 생각할 노릇입니다. ‘쉬지 않고 움직이기’와 ‘그대로 있기’ 가운데 어느 쪽이 쉽거나 어려울까요? 쉬지 않고 움직이기가 어려울까요, 그대로 있기가 어려울까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까닭은 우리 몸은 ‘고인 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늘 새롭게 움직일 때에 새롭게 피어나면서 살아나기에 ‘움직여야’ 합니다. 이와 맞물려서 ‘그대로 있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있는가’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움직일 때에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내 참모습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 내가 지으려고 하는 삶이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나한테 말합니다. “그대로 있어. 그대로 가. 잘 되든 안 되든 그대로 해. 네 모습 그대로 다 괜찮아. 나를 스스로 봐.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봐. 내가 가는 이 길을 그대로 가. 내 삶을 그대로 바라봐. 그대로 있으면서 그대로 사랑해. 나는 나야. 내가 사랑하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한테 찾아오는 바람을 그대로 마시고, 그대로 뱉어.” 하고 말합니다.


  내가 나를 ‘그대로 있’도록 두면서 바라볼 수 있으면, 나는 너를 ‘그대로 있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길이라면,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을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그대로 볼 적에 내 이웃을 그대로 바라볼 뿐 아니라, 내가 선 이 보금자리와 마을과 삶터를 그대로 바라보면서 헤아리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그대로 보지 못할 적에는 이 보금자리도 이 마을도 이 삶터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얼거리나 속내나 허물을 하나도 못 헤아리고 못 깨닫습니다.


  내가 나를 ‘그대로 있’도록 둘 때에, 비로소 철이 듭니다. 그대로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에 바람을 느끼고 햇볕을 느끼며 물과 흙과 풀을 느낍니다. 그대로 있기에 그대로 보고, 그대로 보기에 그대로 알며, 그대로 알기에 그대로 철이 들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대로 갑니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따지지 않고 그대로 갑니다. 호미질이나 낫질을 처음 하느라 서툰 사람더러 ‘이렇게 해야 잘 하지!’ 하고 다그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하면서 나아가도록 지켜볼 뿐입니다. 늘 그대로 삽니다. 어제는 어떻게 해야 했고 그제는 어찌저찌 해야 했다고 뉘우칠 까닭이 없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지나간 내 발자국이니, 나는 오늘 이곳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면 됩니다. 옳거나 그르거나 가리지 않고 그대로 삽니다. 꼭 들어맞는 한 가지 길만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들어맞지 않아도 스스로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 보는 동안, 처음에는 어렴풋하던 그림이 비로소 환하게 트입니다. 노상 그대로 생각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금을 긋지 않습니다. 똑똑하거나 앞서가는 사람 꽁무니를 좇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가 선 곳에서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쬐며 물을 먹습니다. 나는 내가 선 곳을 기쁘게 가꾸는 길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대로 가다 보면 가시밭길이 나올 수 있고, 벼랑길이나 막다른 곳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가면 됩니다. 돌아가야 하면 돌아가면 됩니다. 그대로 돌아가면 됩니다. 잘못 짚었으면 잘못 짚은 대로 바라보고 느껴서 깨달은 뒤, 이제부터 잘못 안 짚으면 됩니다. 때로는 밥을 태울 수 있고, 때로는 꼬두밥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이 깨질 수 있고, 때로는 빈털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돈이 왕창 들어올 수 있으며, 때로는 곁님이 입맞춤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을 그대로 바라보고 맞아들입니다. 내가 겪어야 하고 치러야 하며 맞이해야 할 사랑을 날마다 새롭게 얼싸안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하게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퍽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아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하면 됩니다. 공부도 훈련도 도무지 앞날이 안 보이거나 제자리걸음 같다 하더라도 그대로 하면 됩니다. 배운 그대로 하고, 본 그대로 하며, 안(깨달은)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대로 나아가면서 하나씩 새롭게 느낄 수 있고, 하나씩 새롭게 느끼기에, 시나브로 철이 듭니다.


  내가 나를 믿거나 안 믿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못미더우면 나를 ‘못미더운 그대로’ 바라보셔요. 어느 대목이 못미더운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바라보셔요. 내가 스스로 못미덥다고 해서 고개를 돌리면, 나는 내가 스스로 어느 대목에서 못미더운지 하나도 알 수 없고, 하나도 알 수 없으면 실타래를 하나도 풀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믿음직하면 나를 ‘믿음직한 그대로’ 바라보셔요. 어느 대목이 믿음직한지 ‘하나부터 열까지 그대로’ 바라보셔요. 내가 스스로 믿음직하다고 해서 그냥 지나가면, 나는 내가 스스로 어떻게 믿음직한지 제대로 알 수 없고, 제대로 알 수 없으면 내가 나한테 새로운 수수께끼를 낼 수 없습니다.


  나를 생각하면서 그대로 갑니다. 내가 선 이곳을 생각하면서 그대로 갑니다. 내가 있는 이곳을 생각하면서 그대로 갑니다. 그대로 하면 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한국말을 그대로 쓰면서 살면 됩니다. 미국사람은 미국에서 미국말을 그대로 쓰면서 살면 됩니다. 미국이 마음에 들면 미국에 가서 미국말을 하면 되고, 한국이 마음에 들면 한국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말을 하면 됩니다. 이도 저도 아닌 곳에서 헤매지 말고, 나를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살피고 받아들이고 마주하면서, 내 삶길을 그대로 두면 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천천히 사랑꽃이 핍니다. 4348.2.15.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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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바지 기우다가 바늘에 찔리기



  여덟 살 큰아이가 입는 ‘고양이 무늬 바지’에 구멍이 난 지 두 달쯤 된 듯한데, 이제서야 기운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바느질을 한다. 바느질을 하다가 손가락에 한 번 찔리는데,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인지 따끔하지도 않다. 이러다가 허벅지에 바늘을 한 번 폭 쑤셨더니 따끔하다. 그래, 허벅지에는 굳은살이 없지. 허벅지에 바늘이 찔리면 따끔하네. 바느질하는 아버지 옆에서 놀던 아이들이 묻는다. “아버지 왜 그래?” “응, 바늘에 찔려서.” “아파?” “응, 따끔해.”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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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나라의 루시 - 물구나무 그림책 048 파랑새 그림책 48
소피 드 레슬러 지음, 김효림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0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어도

― 씨앗 나라의 루시

 소피 드 레슬러 글·그림

 김효림 옮김

 주니어파랑새 펴냄, 2006.6.25.



  그림책 《씨앗 나라의 루시》(주니어파랑새,2006)는 아주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만, 이 대단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끼려면, 우리가 손수 씨앗을 건사해서 심을 땅이 있어야 합니다. 손수 씨앗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손수 씨앗을 심지 못하며, 손수 씨앗을 가꾸지 못한다면, 이 그림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겉훑기’로만 지나치고 끝납니다.


  겉훑기를 한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나오는 수많은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보면 ‘자연·환경·생태’를 다루는데, 막상 오늘날 어린이나 어른 모두 ‘자연·환경·생태’와는 아주 동떨어진 도시에서 살거든요. 도시에서 살며 모자란 대목인 ‘자연·환경·생태’를 책으로나마 아이한테 맛보게 하려고 이러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읽히곤 하는데, 손수 밟을 흙땅이 없이 생태책이나 환경책이나 자연책을 읽는다면,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가 둘레를 살펴보면 흙이고 풀이고 나무이고 없는데, 이러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아파트에서 살며 집안에 꽃그릇을 두더라도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집안에 꽃그릇을 두더라도, 마루나 방이나 툇마루에 흙이 굴러다니는 ‘꼴’을 두고볼 수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흙’이나 ‘모래’가 거의 없기 일쑤입니다. 아파트 놀이터에 흙이나 모래가 있어서, 이곳에 씨앗이 드리워 싹이 트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파트 지킴이가 어느새 이 ‘풀싹’을 뽑아서 없앨 테지요.



.. 할아버지는 나무와 풀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답니다. “씨앗도 여행을 해요?” 동생 앙트완느는 깜짝 놀란 것 같았어요. “얘들아, 텃밭으로 나오렴. 씨앗 나라로 떠나 보자!” ..  (7쪽)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는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 《씨앗 나라의 루시》 같은 그림책은 어느 모로 본다면 ‘바보스럽’거나 ‘반동’이거나 ‘거꾸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밥은 무엇일까요? 밥은 풀열매입니다. 벼라는 풀에서 맺은 열매인 ‘벼알(볍씨)’이 바로 밥입니다. 다만, 벼알이 바로 밥이 되지 않아요. 벼알을 감싸는 껍질(겨)을 벗겨야 ‘쌀’이 되고, 이 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맞추어 끓여야 밥입니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돼지나 소나 닭은 모두 ‘풀알(풀열매)’과 ‘풀잎’과 ‘짚(마른풀)’을 먹으면서 자라는 짐승이에요. 요즈음에는 돼지와 소와 닭한테 사료를 주지만, 더군다나 풀짐승한테 ‘고기 성분이 깃든 사료’를 주는 끔찍한 짓을 일삼지만, 돼지와 소와 닭은 풀알과 풀잎과 짚을 가장 즐기면서 반기지요. 사람이 고기를 먹더라도, 곰곰이 따지면 언제나 ‘풀’을 먹는 셈입니다.



.. ‘저 낙하산처럼 생긴 건 왜 씨앗에 붙어 있는 걸까?’ 루시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민들레 이야기를 떠올려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씨앗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어요. 루시는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  (19쪽)



  삶을 먼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삶을 옳게 읽지 못합니다. 삶을 옳게 읽지 못한다면, 어른은 아이한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어른 스스로 흙과 동떨어진 시멘트나라에서 사는데, 아이가 ‘흙내음 이야기’를 반가이 들을 수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풀이나 나무하고 등진 아스팔트나라에서 사는데, 아이가 ‘풀꽃 이야기’를 기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 《씨앗 나라의 루시》는 들을 가꾸는 할아버지한테서 슬기로운 숨결을 물려받는 아이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시골에서는 살아야 이 그림책을 온몸으로 헤아릴 수 있고,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틈틈이 흙땅을 두 발로 밟고 흙을 두 손으로 만지는 아이쯤 되어야 온마음을 기울여 이 그림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보금자리 둘레에는 자가용과 아파트와 건물만 그득한 도시에서 《씨앗 나라의 루시》를 아이한테 읽히려 한들 읽힐 수 없어요.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조차 아이한테 읽히기 어렵습니다.





.. 다람쥐는 배불리 먹었는지 남은 솔방울을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 놓으려고 바쁘게 왔다갔다 했어요. “겨울을 나려고 먹이를 쌓아 두는 거야.” 루시가 속삭였어요. “그렇구나. 깜빡 잊고 먹지 않은 씨는 자라서 나무가 될 수도 있겠네?” 앙트완느가 덧붙였어요 ..  (29쪽)



  씨앗 한 톨은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깃들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은 언제나 흙 품에 안깁니다. 흙은 씨앗을 반깁니다. 씨앗과 흙은 서로 아끼고 섬기면서 돕는 이웃입니다. 씨앗은 흙이 있어서 포근하게 잠들고, 흙은 씨앗을 만나면서 한결 아름답게 거듭나요. 씨앗은 흙이 품는 포근한 기운을 받으면서 새로운 숨결로 깨어납니다. 싹이 돋아 풀이나 나무로 자라요. 흙은 ‘풀이나 나무로 자란 씨앗’이 무럭무럭 올라가면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 뿌리가 붙잡는 온갖 기운을 맞아들여 기쁠 뿐 아니라, 가을이 되어 풀잎이나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와서 새 기운을 살찌워 주니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씨앗과 흙은 서로 돕고 아끼는 사이,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 할아버지는 루시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며 말했어요. “우리 루시는 앞으로 식물학자가 될 씨앗 같구나!” ..  (36쪽)



  사람은 씨앗을 흙에 심습니다. 사람은 씨앗과 흙을 잇는 징검돌이자 이음고리요 사랑입니다. 씨앗과 흙한테 사람은 멋진 손길이에요. 씨앗과 흙은 저마다 제 가슴에 고운 님이 감도는데, 이 고운 님을 깨우는 손길은 바로 사람들이 일으켜 주는 상큼한 산들바람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려고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려고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가 삶을 가꾸려고 씨앗을 심는 땅은 바로 우리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는 어떤 ‘나쁜 기운’도 들어서지 못합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심은 씨앗이 ‘숲’으로 자라고, 우리가 심은 씨앗으로 ‘흙’이 기름지니, 이 아름다운 터전은 ‘숲집’으로 거듭나요.


  지구별이 예부터 푸르면서 파랗게 빛나는 눈부신 터전이었던 까닭은, 씨앗을 심는 사람이 있고, 씨앗을 심을 흙이 있으며, 씨앗이 자라는 보금자리(집)가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는 도시에서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시멘트땅이 갈라진 틈바구니에 씨앗을 심어요. 일부러 시멘트땅을 쪼개어 흙땅을 넓히고 텃밭을 가꾸어요.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에 기대지 말고, 우리 사랑을 쏟아서 흙을 북돋우고 지구별을 살려요. 그러면, 우리는 누구나 씨앗나라로 기쁘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습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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