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 새만화책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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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3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

― 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새만화책, 2009.1.15.



  정송희 님이 선보인 만화책 《옥상에서 보는 풍경》(새만화책,2009)은 정송희 님이 보낸 어린 나날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정송희 님 어린 나날을 고스란히 밝혀서 그린 만화입니다. 이 책에 ‘1’라는 숫자가 붙은 만큼 뒷이야기가 곧 나올 듯했는데, 2009년에 첫 권이 나온 뒤 여섯 해가 되도록 다음 권은 나오지 못합니다. 정송희 님은 다른 만화도 꾸준히 그리시는 듯한데,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그리기가 훨씬 어려울까요.


  만화에 담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는 ‘한 번 그리면 끝’이라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만 만화로 그리더라도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즐기는 놀이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날마다 즐긴 놀이는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는 ‘취재’를 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그리더라도, 이 이야기를 그리려면 여러모로 깊고 넓게 살펴서 더 배워야 하고, 다른 책도 많이 읽어야 하며, 여러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 “흙으로 된 걸 어떻게 먹냐?” ‘그걸 누가 모르나. 적어도 예쁘게 만들었으니, 맛있게 먹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지 않은가. 심심해 죽겠단 사람이 그거 하나 못 해?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먹는 법을 오빠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10쪽)

- ‘공기놀이는 잘 하는 사람이랑 잘 못하는 사람이 한 조가 돼야 재밌나 보다.’ (31쪽)

- ‘광주 집에는 마당이 없어서 메리처럼 큰 개는 살기 힘들단다.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개미처럼 바쁘다. 나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단다.’ (35쪽)





  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내가 기쁘게 가꾸어 피운 꽃을 이웃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니,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정송희 님이 손수 가꾼 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만화라는 틀로 담아서 새롭게 들려주는 작고 수수한 삶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수수한 이웃이 저마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어떤 사랑과 꿈을 가꾸었는가 하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정송희 님은 어릴 적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한숨 짓는 어머니를 보고, 고단한 어머니를 보며, 한숨과 고단함이 잇달아 흐르지만 웃음과 느긋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를 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뚝뚝하지만 살가운 마음이 넘치는 아버지를 봅니다. 조잘조잘 시끄러운 듯해도 사랑스러운 언니를 봅니다. 하나뿐인 오빠를 봅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즐기는 온갖 놀이를 보고, 도시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 늘 따분하게 흐르는 하루를 봅니다.


  《옥상에서 보는 풍경》을 보면, 그린이 정송희 님이 혼잣말로 읊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옛날을 돌아보니 하나씩 떠오르는 ‘혼잣말 같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모든 혼잣말 같은 이야기는 바로 정송희 님 스스로 어릴 적에 그 자리에 느낀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았어도 사진처럼 가슴에 아로새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정송희 님이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기역, 니은, 디귿.” “저건 뭐다냐?” “몰라.” “거기, 왜 안 따라하냐?” “그게, 뭔지 몰라서라.” “모르니까 따라해야제!” ‘말문이 막혔다. 점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이렇게 재미없다는 게 신기했다.’ (43∼44쪽)

- ‘집에 있을 땐 심심해 죽겠더니, 학교에 가니까 집에 오고 싶었다.’ (45쪽)

- ‘셋째 언니는 우리들의 자랑거리다. 그리고 착하다.’ (57쪽)





  재미있다 싶은 놀이를 많이 하며 보낸 어린 나날이 되어야,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재미있다 싶은 놀이는 거의 못 하면서 따분하게 보낸 어린 나날이라 하더라도,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어릴 적에 올려다본 하늘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혼자 맡은 꽃내음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천천히 걷던 길을 가만히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먹던 밥과 오늘 먹는 밥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야기 하나를 그릴 수 있습니다.



- “우리 집도 슈퍼 하면 좋겠다.” “왜?” “맞아, 그럼 좋겠다.” “너, 과자 맘껏 먹고 싶어서 그러제?” “어, 그럴 수도 있구마잉!” “저, 능청!” “그게 아녀. 슈퍼 아줌마는 편해 보이는데, 엄마는 여인숙 한다고 만날 이불 빨고, 청소하고, 쉴 틈이 없잖냐!” “원메, 참말로 기특하네!” “오!” (63쪽)

- “나도 처녀 적에, 제비 다리 고쳐 준 적이 있었제.” “제비가 뭐라도 가져왔다요?” “그건 모르겠다. 암튼, 이듬해 봄에 그 제비가 다시 오긴 했제. 그 제비를 다시 보니까 그저 좋더구만, 내 맘이.” (66∼67쪽)

-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너처럼 힘든 일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 되제.” “도움은 아줌마한테서 받았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은혜를 갚는다요?”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잉.” (85쪽)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네 사람이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잔치를 펼칩니다. 과자 한 봉지쯤이라면 곧 바닥이 날 테지요. 그러나, 서로 한 조각씩 천천히 씹으면서 까르르 웃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쉬워 누구 한 사람이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고, 밭둑에서 쑥을 뜯어 쑥부침개를 부칠 수 있습니다. 슬슬 밥을 차릴 수 있으며, 마당에 놓은 평상에 드러누워 봄볕을 먹을 수 있어요. 봄이니 들마실을 하면서 유채잎을 뜯거나 봄나물을 캘 수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를 사러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나들이를 갑니다. 과자는 두 봉지나 세 봉지를 살 수 있지만, 한 봉지만 살 수 있습니다. 고작 과자 한 봉지라 하지만, 과자 한 봉지를 사러 일부러 제법 먼 조그마한 가게까지 갈 수 있어요. 과자를 사려는 뜻보다, 마음 맞는 동무랑 천천히 나들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어릴 적에 겪은 이런 ‘과자 사러 다녀온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화로도 그릴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어요.



- ‘짝꿍은 마치 내가 없는 듯, 혼자서 계속 먹는다. 이 모든 게 내겐 매우 낯설다. 엄마는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눠 먹었다.’ (89쪽)

- ‘또 여인숙이 문제인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주산을 잘하던 셋째 언니는 얼마 전 은행에 취직했다. 셋째 언니는 남들이 집에서 나가는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일찍 나간다. 아침에 여인숙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인숙이 뭐길래.’ (123쪽)

- ‘여름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들판과 냇가에서 하루 종일 놀다 보면, 어느새 자그만 마을에 어둠이 깔리고, 하늘은 붉은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식구도 시골에서 살면 참 좋을 텐데.’ (140쪽)





  한국 만화에서 크게 모자란 대목은 ‘수수한 맛’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은 ‘투박한 사랑’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자꾸 도드라지는 아쉬운 대목은 ‘작은 삶’입니다.


  군사독재가 있었고, 군사쿠테타가 있었으며, 끔찍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거짓부렁으로 가득한 신문과 방송과 책이 있으며, 무시무시한 입시지옥이 있으며, 끝없는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렁에서도 아이들은 웃고 뛰놉니다. 아무리 학원과 학교 사이에서 쳇바퀴를 돌더라도, 아이들은 언제나 작은 놀잇감 하나로도 신나게 웃고 떠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사람들을 짓누르거나 억누르더라도, 작고 수수한 사람들은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은 언제나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웃음꽃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어느 역사 현장에 있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고무줄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랑잎이 구르는 소리를 듣고 까르르 웃은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 ‘평소에는 손 하나 스치지 않던 사촌오빠가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돌아섰다. 아버지는 도시의 비싼 생활비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는 주연이 엄마, 그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했단다. 일주일 만에 사촌오빠네는 도시 살림을 뚝딱 정리했다. 주연이도 떠나게 된 셈이지만, 우리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마 도시에서 즐겁게 논 적이 없어서일 거다.’ (142쪽)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이 피고, 내가 안 심은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은 어느새 지더니 새롭게 씨앗을 맺어 둘레에 퍼집니다. 한 번 심은 꽃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며 씩씩한 어미꽃이 됩니다. 어쩌면 온누리 들과 숲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꽃은 맨 처음에 누군가 심은 씨앗이 퍼진 아이들일 수 있습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심은 사랑이 오랫동안 천천히 퍼지면서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꾼다고 할 만합니다.


  조그마한 만화책에 담은 조그마한 이야기가 꽃처럼 핍니다. 네 이야기가 피고, 내 이야기가 핍니다. 우리 이야기가 활짝 핍니다. 봄바람을 맞으면서 피고, 봄볕을 먹으면서 핍니다. 사이좋게 피어나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숨결이 되어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예쁜 이야기밥이 됩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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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02] 누구나


  누구나 마시는 바람에
  저마다 싱그러운 숨결
  새롭게 싹이 튼다


  누구나 꿈을 꾸고, 모두 다 사랑하는구나, 하고 늘 느낍니다. 누구나 바람을 마시기에, 저마다 이야기를 짓는구나, 하고 언제나 느낍니다. 바람을 마시는 이웃이고, 햇볕을 나누는 동무이며, 꿈을 차곡차곡 이루는 너와 나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사랑을 받을 적에 아름답게 살아가며, 어른도 아이도 사랑을 나눌 적에 활짝 웃어요.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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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37 ‘짓다’와 ‘지우다’



  짓는 사람은 늘 손수 짓습니다. 지우는 사람은 언제나 남한테 맡깁니다. 짓기에 손수 가꿉니다. 지우기에 언제나 남한테 손을 벌립니다.


  삶은 짓습니다. 삶은 지우지 않습니다. 삶은 짓기에 늘 새롭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일을 좀 잘못했거나 엉터리로 했다고 여겨서 ‘지우려’고 하면 어찌 될까요. 지우려고 한대서 내가 걸어온 길이 사라지거나 없어질까요? 내가 일으킨 말썽이나 잘못을 지우려고 하면 참말 지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발자국이든 굳이 지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제껏 어떤 길을 걸어왔어도 이제부터 새 발걸음을 지으면 됩니다. 지운다고 없어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우려고 하면 자꾸 지울 생각에 파묻힙니다. 지우려고 하니까 외려 지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지저분해지고 맙니다.


  새로 지으려고 하면 지울 까닭이 없습니다. 새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짓는 사람은 지난날 어떤 말썽이나 잘못을 일으킨 적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로 짓는 마음은 ‘감추거나 숨기거나 없애’려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로 짓는 마음은 스스로 새로 깨어나려는 마음입니다. 새로 짓는 마음은 스스로 삶을 새로 가꾸어서 돌보려는 마음입니다.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만 한 값을 치러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값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저, ‘값을 치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앞에 놓고 이 아이를 꾸짖거나 윽박지르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얼차려를 줄 수 있습니다만,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따사롭게 타이르면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는 안 바라볼 수도 있어요. 잘못을 저지르건 말건, 이 아이가 삶을 새로 짓도록 웃음과 노래로 이끌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간다고 해서 더 낫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다 다른 길입니다. 다 다른 길이되, 어느 길은 ‘주눅 드는 길’이고, 어느 길은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며, 어느 길은 ‘사랑으로 삶을 짓는 길’입니다.


  짓는 삶은 새롭습니다. 이제껏 없던 것을 지으니 새롭습니다. 지우는 삶은 낡습니다. 이제껏 있던 것을 그저 붙잡거나 매달리니 낡습니다. 짓는 삶은 늙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언제나 새롭게 깨어나니까 늙을 일도 아플 일도 없지만, 늙음이나 아픔이라는 말을 아예 떠올리거나 그리지 않습니다. 지우는 삶은 늙거나 아픕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면서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하니까 늙거나 아플 일만 있습니다. 새로움이 없이 한곳에 고인 채 더 움직이지 않으니 늙거나 아픕니다. 지우는 삶은 언제나 늙음과 아픔만 떠올리거나 그립니다.


  새로운 일을 지으면 새롭습니다. 틀에 박힌 어떤 일을 붙잡으려고 하면 지치거나 괴롭습니다. 새로운 일로 나아가서 기쁘게 맞이하면 참으로 새로우면서 기쁩니다. 새로움과 기쁨을 생각해서 넉넉히 맞아들이니 말 그대로 새롭고 기쁩니다. 이와 달리, 틀에 박힌 어떤 일을 붙잡기만 하면, 이 틀에 박힌 대로 해내야 하니까 아무래도 몸이나 마음이 힘들면서 기운을 많이 쏟아야 합니다. 고단하면서 웃음도 없고 노래도 없어요.


  삶을 짓는 사람이 웃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삶짓기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삶을 지어야 삶짓기입니다. 웃음을 지어 웃음짓기입니다. 노래를 지어 노래짓기입니다. 글을 지어 글짓기입니다. 꿈을 지어 꿈짓기입니다. 사랑을 지어 사랑짓기입니다. 밥을 지어 밥짓기입니다. 집과 옷을 지으면 집짓기와 옷짓기입니다.


  우리는 먼먼 옛날부터 모든 삶을 손수 지었습니다. ‘삶짓기(현실 창조)’란 바로 내가 나답게 홀로서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기운찬 발걸음입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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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지음, 나기호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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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5



별을 헤아리는 사람

― 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글·그림

 나기호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6.1.10.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별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문득 생각하면 말놀이 같은데, 가만히 돌아보면 말놀이가 아닙니다. 별을 못 보는 사람은 처음부터 별을 헤아릴 마음이 없습니다. 별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별을 헤아릴 마음으로 지냅니다.


  시골에 가야 보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보는 별입니다. 시골에서만 쏟아지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쏟아지듯이 볼 수 있는 별입니다.


  불을 끄면 별이 한결 잘 보이겠지요. 그러나, 불 때문에 별이 더 보이거나 덜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보고,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별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과 마주해야 별이 내 가슴으로 쏟아집니다. 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으니, 내 가슴에 들어올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걸 보면 지긋지긋해진다. 치료를 해 주고 있는 건지, 그냥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7쪽)

- ‘아무리 설교를 한들, 어떤 녀석에게 말을 한들, 이 녀석들은 초콜릿 먹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9쪽)





  바쁜 삶에 어떻게 별을 보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바빴고, 우리는 언제부터 별을 못 보았을까요?


  가만히 따져 보셔요. 우리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 지는 기껏해야 서른 해쯤 될락 말락 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독재정권이 밀어붙인 뒤부터 비로소 ‘바쁘다’는 말이 불거졌고, 도시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돈을 벌 일자리를 찾으면서 바야흐로 ‘바쁘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니, 도시사람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른도 바쁘고 아이도 바빠요. 어른은 돈을 버느라 바쁘고,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얽매이느라 바쁩니다. 바쁜 어른은, 번 돈을 쓰느라 다시 바쁩니다. 놀러다니거나 술을 마시느라 바쁘고, 인터넷과 스포츠와 게임과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생활을 누린다든지 여행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도 게임을 하랴 시험공부에 매달리랴 이래저래 참으로 바쁩니다.



-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 지당했다. 짐승이든 귀신이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바빴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22쪽)

- ‘셋이 화음을 맞추기엔 조금 어려움이 따르지만, 꼭 잘할 수 있을 거야. ‘도’만 같이 잇어 준다면, 이대로 영원히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어.’ (45쪽)




  나카노 시즈카 님이 빚은 만화책 《별을 새기다》(애니북스,2006)를 읽습니다. 어쩜 이렇게 ‘톤’으로 하나하나 알뜰히 만화를 빚었을까 싶어 놀랍습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사회에서 이런 만화를 하나 선보이자면 얼마나 손을 많이 써야 할까요. 바쁜 사람들이 이 만화를 느긋하게 넘기면서 차근차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요? 바쁜 도시사람이 이 만화를 차분하게 읽으면서 하나하나 별자리를 읽거나 헤아릴 틈이 있을까요?



- “무엇보다 오로라가 가장 보고 싶어!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는 장관이겠지?” “당연하지!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파묻힐 지경이라니까! 수백 마리의 야생 순록이 설원을 가로질러 내달리고, 오로라는 매일 별이 가득한 하늘에 커튼처럼 펄럭여 보일 거야!” (101쪽)

- ‘형의 몸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형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별로 승화시키는 이 의식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151쪽)



  지구도 별입니다. 해도 별입니다. 달도 별입니다. 온누리에 가득한 별은 모두 별입니다. 지구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참말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같이 사람이요, 다 다르게 사람입니다.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이요, 함께 사랑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을 헤아립니다. 별 흐름을 읽으면서 삶 흐름을 읽습니다. 별자리를 헤아리면서 삶자리를 헤아리고, 별노래를 부르면서 삶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별을 아는 사람은 삶을 압니다. 별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삶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별읽기라면 아무것도 몰라요. 이와 같지요. 학문으로 파고드는 삶읽기라면, 이때에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 “널 괴롭히던 녀석들은 네가 약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두려워서 그런 거야.” (154쪽)

- “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그림을 새겨 넣을 필요가 없어. 원래부터 너만의 문양을 지니고 있으니까!” (156쪽)



  내 별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네 별은 네 가슴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별을 품습니다. 나는 내 별을 내 가슴에서 꺼내어 내 온몸에 새깁니다. 너는 네 별을 네 가슴에서 꺼내어 네 온몸에 새겨요.


  내 별이 빛나고, 네 별이 빛납니다. 내 별이 춤추고, 네 별이 춤춥니다.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별춤을 추면서 별노래를 부릅니다. 언제나 고운 별빛으로 흐드러지고, 늘 사랑스러운 별내음을 맡으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만화책 《별을 새기다》를 가만히 새깁니다. 아픈 아이들이 나오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나오며, 초콜릿을 먹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웃는 아이와 우는 아이가 나옵니다. 모두 별빛처럼 초롱초롱 해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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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2015년 3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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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여덟 살 어린이 배움터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시골집은 보금자리이면서 배움터입니다. 여기에 우리 도서관은 책터 구실을 합니다. 두 어버이가 이룬 시골집과 도서관은 아이들한테 보금자리와 배움터와 책터와 놀이터 몫을 톡톡히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곁님은 우리 네 식구가 아름답게 숲집을 가꾸어 푸른 바람을 마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둘레에서는 여덟 살 큰아이를 보면서 ‘이제 학교에 가겠네’ 하고 말합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넣지 않고 집에서 함께 배우며 가르친다고 얘기하면, ‘그래도 의무교육 아니냐’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이 틀리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틀리지는 않을 뿐,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시험공부이고 대학입시이니까요.

  시골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요.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에 넣으려고 하는 시골학교입니다. 시골에 그대로 뿌리를 내려서 흙을 짓거나 삶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시골학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붙으면 마을마다 걸개천을 큼지막하게 붙입니다. 자랑할 만할 테니까요. 7급 공무원이 되어도 마을에 걸개천이 커다랗게 붙습니다. 박사나 석사 학위를 땄어도 읍내에까지 걸개천이 크게 붙어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 시골지기가 되는 아이가 있다든지, 바닷가에서 고기잡이가 되는 아이가 있으면, 둘레 어른은 이 아이한테 내내 손가락질을 합니다. ‘뭐 할 것이 없어서 시골에 남느냐’ 하고 다그쳐요.

  아이는 도시로 나가서 대학생이 될 수 있고, 도시에서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시골에 뿌리를 내리면서 숲집을 가꾸는 푸른 넋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고 즐겁게 걸어갈 수 있으면 됩니다. 나는 곁님과 함께 우리 아이들한테 이러한 길을 밝히려고 시골에서 도서관을 지키면서 책과 삶을 짓습니다.

  《은여우》(학산문화사 펴냄)라는 만화책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새로 나오거나 예전에 나온 만화책은 무척 많지만, 막상 아이와 함께 읽을 만한 만화책을 찾자면 쉽지 않습니다. 사회와 정치에서 어두운 구석을 보여주려 한다면서 전쟁과 폭력과 살곶이를 지나치게 크거나 많이 드러내는 만화책이 있고,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겪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만화책이 있으며, ‘가시내는 이쁘장하게 꾸미고 사내는 주먹힘을 뽐내는’ 얼거리에 그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숨결로 나아가려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책은 생각보다 퍽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동화책이나 소설책이나 시집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숨결을 노래하려는 이야기’는 꽤 드물지 싶어요.

  만화책 《은여우》 넷째 권을 보면, ‘일본 신사에서 태어난 가시내’가 ‘집안일 잇기’를 꿈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여자라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신사를 맡기고, 저는 무녀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신직이 되어 신사를 잇고 싶어요(4권 138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로 친다면 ‘사내한테만 물려주는 집안일’을 ‘사내 아닌 가시내’인 아이가 씩씩하게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꾸려 한다는 꿈입니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큰아이는 이제 시골버스(군내버스)를 탈 적에 따로 찻삯을 냅니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으레 ‘어린이 버스표’를 두 장 끊습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스스로 ‘신호 동백 어린이’라 말하도록 이릅니다. 큰아이는 처음에는 몹시 쑥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합니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차츰 익숙할 테지요. 어엿하게 제자리를 찾고 바라보면서 생각할 테지요.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으레 두 아이가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한테 기댔다가 어느새 누나한테 기댑니다. 큰아이는 창가에 기댔다가 어느새 서로 기댑니다. 두 아이는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손길을 천천히 온몸으로 느껴서 배웁니다. 우리 마을 어귀에 닿아 버스에서 내릴 즈음 큰아이는 살그마니 눈을 뜨고 혼자서 내립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어깨에 안겨 잡니다. 큰아이는 가볍거나 작은 짐이라면 하나 거들겠다고 가져갑니다. 대문을 열어 주겠다면서 앞질러 걷습니다.

  한겨울에도 물총놀이를 하겠다면서 마당에 놓은 고무그릇에 물을 받아 달라고 조릅니다. 날씨가 폭하고 볕이 좋은 날이면 물을 받아 주고, 두 아이는 손이 빨갛게 얼어도 신나게 물놀이를 누립니다. 곧 이 겨울이 저물고 새로운 봄이 찾아오면 손이 덜 얼면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겠지요. 새봄이 무르익고 온 들과 숲에 푸른 물이 들면, 빨래터에서 함께 빨래를 하면서 놀 테고, 골짜기로 자전거를 몰아 골짝물에서 헤엄치며 놀 테지요.

  여덟 살 어린이 배움터를 ‘학교’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곳에 가둘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가 삶을 배우는 너른 터전 가운데 아주 작은 곳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예부터 보금자리가 맨 먼저 배움터이고, 마을이 이 다음 배움터이며, 들과 숲과 바다와 시내와 골짜기가 그 다음 배움터입니다. 보금자리와 마을과 숲을 배움터 자리에서 치우고 오직 학교 한 곳만 배움터 자리에 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거나 배울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더라도 집에서 사랑과 살림을 늘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더라도 마을에서 놀고 숲바람과 바닷내음을 마실 수 있기를 바라요. 온누리 모든 아이가 손수 나무 한 그루 심을 땅을 누리면서 삶내음을 맡는 삶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요. 올봄에 아이들과 심을 씨앗과 나무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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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5-03-18 06:12   좋아요 1 | URL
`심심하다`도 우리가 누릴 삶 가운데 하나라고 느껴요.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은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아이 스스로 `내 삶`과 `내 넋`을 차분히 돌아볼 겨를이 없어요.

너무 바쁜 오늘날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와 배울거리를
찾지 못하는데,
`심심함`을 모두 빼앗아 버린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민들레처럼 2015-03-1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해야 생각하고 돌아보죠. 맞아요. 아이들이 너무 바쁘죠. 저도 심심해야 나를 돌아볼 수 있었지요. 그동안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산 듯 싶어요. 아이들과 만날때도 욕심을 조금 내려놓아야겠어요. ^^

파란놀 2015-03-18 11:40   좋아요 1 | URL
어느 모로 보면, 학교에서는 수업 50분에 쉬는 시간도 30~50분쯤은 주어야 할 텐데, 날마다 50분 공부에 10분 쉬기, 이렇게 돌아가니 아이들로서는 숨을 돌릴 겨를이 없구나 싶어요. 이렇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사라질 테고요 ...

민들레처럼 2015-03-1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요즘 중간놀이 시간으로 쉬는 시간을 묶어 30~40분씩 주기도 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 기르기~정말 중요해요. 집에서부터 그런 힘을 키워야하는데 말이죠.

파란놀 2015-03-18 19:49   좋아요 1 | URL
그런 것도 있군요.
중간놀이.. 그런데 검색을 해 보니
중간놀이라고 하면서 체조를 시키는 학교도 있나 보네요.
`놀이` 시간이면 그야말로 아이들 마음대로
놀도록 해야 할 텐데요.

그래도, 그런 겨를을 마련했다니
우리 학교도 조금은 나아진 셈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