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259. 2015.3.24. 머리 가리지 마



  책순이가 책을 보는데 놀이돌이가 머리를 디밀면서 그늘을 드리운다. 놀이돌이는 그저 놀면서 제 자동차만 바라본다. 책순이는 놀이돌이더러 그늘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놀이돌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놀이에 흠뻑 빠져서 아뭇소리를 못 듣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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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3 어제 오늘 모레



  때를 말할 적에는 으레 ‘어제 오늘 모레’ 이렇게 말합니다. 철을 말할 적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말해요. 세 갈래로 나누는 때요, 네 갈래로 나누는 철입니다. 철은 왜 네 갈래인가 하면, ‘심고 돌보고 거두고 갈무리하고’와 같은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때는 세 갈래이고, 하루도 세 갈래입니다. 하루는 ‘아침 낮 저녁’입니다. 하루는 두 갈래나 다섯 갈래도 되기에 ‘아침 저녁’이 되기도 하면서,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이 되기도 합니다.


  때를 보고, 철을 보며, 하루를 본다면, 내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때를 못 보고, 철을 못 보며, 하루를 못 본다면, 내 삶을 볼 수 없습니다.


  ‘어제’는 내가 오늘을 누리기에 태어납니다. ‘오늘’은 내가 바로 이곳에 있기에 나타납니다. ‘모레’는 내가 오늘을 꿈꾸기에 찾아옵니다. 오늘은 바로 어제가 되면서 모레가 됩니다. 어제는 오늘이면서 모레입니다. 모레는 오늘이면서 어제입니다. 세 갈래 때는 셋으로 나누어서 바라볼 수 있는 한편, 언제나 한몸입니다. 한꺼번에 ‘어제 오늘 모레’로 나뉩니다.


  아 어제였구나 하고 느끼는 그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아 오늘이네 하고 느끼는 이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아 모레로구나 하고 느끼는 저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여기에 있구나 하고 느껴서 바라보아 알 때에, 우리는 늘 어제와 오늘과 모레가 함께 이루어지는 흐름을 바람처럼 타면서 삶을 짓습니다.


  따로 떨어진 세 갈래 때가 아닙니다. 함게 흐르는 세 갈래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곳에서 기쁘면, 어제와 모레도 함께 기쁩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슬프면, 어제와 모레도 함께 슬픕니다. 오늘 내가 이곳에서 웃고 노래하면, 나는 어제와 모레에도 늘 웃고 노래해요.


  내 마음이 오늘 어떠한지 읽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오늘 어떻게 가누려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으로 어떤 삶을 지어서 하루를 누릴 생각인지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제는 머나멀거나 아스라하게 지나간 때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모레는 까마득하거나 머나멀어 언제 올는 지 모를 때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서두를 까닭이 없으면서, 기다릴 까닭이 없습니다. 늑장 부릴 까닭이 없으면서, 다그칠 까닭이 없습니다. 내 걸음걸이를 기쁘게 느끼면서 한 발씩 떼면 됩니다. 내 손길을 즐겁게 느끼면서 한 가지씩 하면 됩니다.


  어제까지 못 했으면 어제까지 못 했을 뿐입니다. 오늘 하면 오늘 할 뿐입니다. 모레에 할 수 있으면 모레에 할 수 있으면 될 뿐입니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받아들이면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누립니다. 나는 어떤 일이 서툴지도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오늘 내 걸음을 내딛을 뿐입니다. 내 걸음이 서툴어 보인다면, 나는 아직 걸음마를 떼려고 애쓰는 모습이겠지요. 그러면, 내 모습이 걸음마여도 됩니다. 즐겁게 걸음마를 옮기면서 아장아장 한 발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걸음이 될 테니까요. 걸음마를 떼고 걸음으로 한 발짝씩 옮길 수 있으면, 이제 홀가분하게 뛰거나 달립니다. 한결로 흐르는 삶입니다. 한결같이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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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3.27.

 : 저녁에



- 저녁에 자전거를 탄다. 겨울이라면 벌써 깜깜한 저녁이었을 텐데 삼월 막바지이니 아직 해가 하늘에 걸린 저녁이다. 우체국은 문을 닫지 않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 보고 싶지만, 우체국만 들러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차려야 한다. 너희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넘어가면 배가 고플 텐데, 집으로 돌아가면서 얼마나 힘들겠니.


- 꽃바람을 마신다. 면소재지 중학교 건물 옆으로 벚꽃은 일찌감치 졌고, 개나리가 한창이다. 학교 울타리를 보면 개나리가 퍽 많다. 왜 학교 울타리로 개나리를 많이 심을까? 예전에는 울타리라면 으레 찔레나무나 탱자나무였는데, 이제 학교나 건물 울타리는 쇠로 된 가시그물이기 일쑤이고, 드문드문 개나무를 척척 박는구나 싶다.


- 멧자락 한쪽에는 철쭉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철쭉꽃이 핀 지 이레쯤 되었을까? 진달래꽃을 보기는 어렵다. 시골마다 ‘철쭉제’이니 ‘철쭉잔치’는 많이 하는데 ‘진달래잔치’를 하는 곳이 있는지 아리송하다. 그러고 보면, ‘매화꽃잔치’보다 ‘벚꽃잔치’가 훨씬 잦다. 벚꽃을 멀리할 까닭은 없지만, 이 나라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벚꽃잔치’뿐 아니라 ‘능금꽃잔치’와 ‘배꽃잔치’와 ‘앵두꽃잔치’와 ‘매화꽃잔치’와 ‘복숭아꽃잔치’와 ‘살구꽃잔치’를 두루 할 만하리라 느낀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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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올리는 별꽃나물



  별꽃나물을 밥상에 올린다. 다 함께 먹을 봄나물이다. 들에서 피는 꽃으로만 바라본다면 별꽃이요, 살살 훑어서 물에 헹군 뒤 밥상에 놓으면 별꽃나물이다. 모든 풀은 들에서는 풀이고, 이 풀을 뜯어서 우리 입에 넣으면 나물로 이름이 바뀐다. 스스로 씨앗을 뿌려서 번지는 풀인데, 풀씨를 사람이 건사해서 따로 땅에 심으면 남새로 이름이 바뀔 뿐 아니라, 사람이 씨앗을 심는 땅은 밭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모두 우리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이름이 되고, 새로운 숨결이 되며, 새로운 사랑이 된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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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918) 시작 4


모집에 응한 아이들과 처음으로 합숙을 시작했다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 마을》(민들레,2001) 196쪽


 아이들과 처음으로 합숙을 시작했다

→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묵었다

→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지냈다

→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한솥밥을 먹었다

 …



  여럿이 한곳에서 함께 묵는 일을 ‘합숙(合宿)’이라고도 하는데, 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싶으면 “아이들과 처음으로 합숙을 했다”로 적어야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始作’이라는 한자말은 ‘처음으로 하다’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바로 앞에 ‘처음으로’라는 말마디가 있어요. 그러니, “처음으로 시작했다”처럼 쓰는 말은 겹말입니다. 4338.4.4.달/4348.3.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모인 아이들과 처음으로 함께 묵었다


“모집에 응(應)한 아이들”은 “모인 아이들”로 손봅니다. “시험에 응한 아이들”은 “시험을 보는 아이들”로 손보지요. ‘합숙(合宿)’은 “함께 묵다”나 “함께 지내다”로 손질할 낱말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35) 시작 5


새벽녘이야말로 생명체들이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시각이라는 점이다

《루터 스탠딩 베어/배윤진 옮김-숲속의 꼬마 인디언》(갈라파고스,2005) 85쪽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 하루 일을 열기에 알맞은

→ 하루를 열기에 알맞은

→ 하루를 새로 열기에 알맞은

 …



  아침에 하루를 열고, 저녁에 하루를 닫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일을 열고 닫습니다. 첫머리를 열고, 끝자락을 닫습니다. 모든 일은 처음에 열고 마지막에 닫습니다.


  ‘하루를 연다’고 할 적에는 ‘하루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하루를 연다’로 적어도 되고, ‘하루 일을 처음으로 한다’로 적어도 됩니다. 단출하게 적을 만하고, 살을 붙여 길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또는, ‘새롭다’라는 말마디를 넣어서 “하루를 새롭게 연다”나 “하루 일을 새롭게 한다”처럼 적을 만해요. 4338.5.26.나무/4348.3.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벽녘이야말로 뭇목숨이 하루를 열기에 알맞은 때이다


‘생명체(生命體)’는 ‘뭇목숨’으로 손볼 만합니다. “하루 활동(活動)”은 “하루 일”이나 “하루”로 손질하고, “알맞은 시각(時刻)이라는 점(點)이다”는 “알맞은 때이다”나 “알맞은 때라는 뜻이다”나 “알맞은 때라는 소리이다”로 손질합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59) 시작 69


우리 헌정사가 불안한 이유는 시작부터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욕에 의해서 국가의 기본인 헌법이 애초부터 망가졌으니까요

《김삼웅·장동석-한국 현대사의 민낯》(철수와영희,2015) 51쪽


 시작부터 첫 단추를

→ 처음부터 단추를

→ 첫 단추를

→ 첫 단추부터

 …



  이 보기글을 잘 보면 “시작부터 첫 단추”에서 ‘시작’과 ‘첫’이 겹말입니다. 같은 뜻을 나타내는 낱말을 잇달아 적었습니다.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털고 “첫 단추를”이라고만 적든지 “첫 단추부터”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또는 “처음부터 단추를”로 적을 만합니다. 보기글 뒤쪽을 보면 ‘初’라는 한자를 붙인 ‘애초’가 나오기도 합니다. ‘初’는 “처음 초”입니다. 그러니까, 뜻이 같은 말을 세 가지로 적은 셈이에요. 한자말을 쓰기에 잘못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쉽게 쓰면 넉넉한데 쉽게 쓰지 못했다는 소리입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헌정 발자국이 어지러운 까닭은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 사람 밥그릇 때문에 이 나라 바탕인 헌법이 맨 처음부터 망가졌으니까요


“헌정사(-史)가 불안(不安)한 이유(理由)는”은 “헌정 역사가 어지러운 까닭은”이나 “헌정 발자국이 어지러운 탓은”으로 손질하고, “한 사람의 야욕(野慾)에 의(依)해서”는 “한 사람 야욕 때문에”나 “한 사람 밥그릇 때문에”로 손질하며, “국가(國家)의 기본(基本)인”은 “이 나라 바탕인”으로 손질합니다. ‘애초(-初)’는 ‘맨 처음’으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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