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아는 사춘기 박스 세트 - 전8권
기무라 치카 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83



아이들은 짝짓기 놀이에 한창 바쁘다

― 쫑아는 사춘기 1

 키무라 치카·아키모토 야스시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4.12.25.



  키무라 치카·아키모토 야스시 님이 빚은 만화책 《쫑아는 사춘기》(학산문화사,2004) 첫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열두 살 나이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살피면서 지낼는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열두 살 어린이한테는 무엇이 가장 대수로운 삶이 될는지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내가 열두 살 나이였을 적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되짚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그저 놀았습니다. 학교 숙제와 문제집 숙제와 학습지 숙제가 늘 있었지만, 숙제는 곧잘 미루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학교 숙제는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숙제를 빠뜨리면,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어마어마하게 때려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학교는 교사가 학생을 안 때리거나 덜 때리지만 1980년대 국민학교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 안팎에서 ‘매질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뭇매질에서 살아남으려고 학교 숙제만큼은 빠뜨리지 않으려 했고, 문제집이나 학습지 숙제는 설렁설렁 건너뛰곤 했습니다. 학교 숙제만으로도 놀 겨를과 잠잘 틈이 모자라거든요.



- ‘멋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는데. 마음이 따스해지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4∼5쪽)

- “아마 모두들 사립학교에서 전학 온 영웅이가, 혼자만 붕 뜨지 않게 마음을 써 준 걸 거야.” (17쪽)





  내가 사내가 아닌 가시내였어도 마냥 놀았을까 하고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내가 가시내였으면 ‘마음에 드는 사내’를 고르거나 살폈을는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나는 가시내가 아니니 모르겠으나, 내가 가시내였다 하더라도 신나게 뛰노는 데에 더 마음을 기울였으리라 느낍니다. 사내들도 ‘마음에 드는 가시내’를 고르거나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아무튼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놀이’를 하면 다른 모든 일을 잊습니다. 노느라 바쁩니다.


  그러면, 만화책 《쫑아는 사춘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이 만화책에서는 ‘놀이’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옵니다. ‘쇼핑’ 이야기는 더러 나오지만, 이 만화책을 이루는 바탕은 ‘짝짓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골라서 그 아이하고 어떻게 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는 이야기만 흐릅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하고 가까이 지내는 일이 ‘학교에서 꾀하는 모든 몸짓’입니다.



-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쓰면서 잠들면, 그 사람의 꿈을 꿀 수 있다. 모두 글짓기 덕분이야.’(46쪽)

- “좋아하는 사람을 ‘아빠’라고 썼는데, 쓰다 보니까 아빠 험담을 하고 있는 거 있지. ‘엄마’로 쓸 걸 그랬어. 쫑아 넌 누구를 썼니?” (47쪽)





  짝짓기가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짝짓기를 하면서 노는 일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삶을 오직 짝짓기로만 바라보면서 다가가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지도 않으면서 짝짓기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이런 몸짓과 마음으로 몰아붙여도 괜찮을까요?


  만화로 그리거나 다루는 이야기는 무엇이든 나쁘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짝짓기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꿈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고 삶을 밝힐 만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어른이 보는 만화에도 짝짓기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어른이 읽는 소설이나 시에도 짝짓기 이야기가 넘칩니다. 영화도 그렇고 연속극도 그렇지요. 하나하나 따지면,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죄다 짝짓기 놀이라고 할 만합니다.



- ‘나리가 좋아하는 남자 애의 상처를 치료해 줬어요. 나리는 도망치지 않고 옆에서 쭉 지켜봤죠.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도, 다시는 도망치지 말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64쪽)

- ‘어떡하지? 나리한테 또 거짓말을 하고 말았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짱구한테도 연하장이 왔는데. 어라? 무지하게 기뻐야 하는데, 마음이 아픈 건 왜일까요? 이상하죠?’ (112∼113쪽)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아이’를 어떻게 살필 만할까 궁금합니다. 얼굴이 이쁘장하거나 잘생겨 보이면 마음에 들까요? 그러면 이쁜 얼굴이나 잘생긴 얼굴을 가르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얼굴이 잣대가 될까요?


  옷을 번듯하게 차려입거나, 시험성적이 잘 나오거나, 운동을 잘한다면,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될까요? 짝을 짓는 잣대란 무엇일는지요?


  만화책 《쫑아는 사춘기》가 ‘마음에 드는 아이’를 찾으려는 기나긴 나날을 그리려 한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도 골고루 짚거나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더군다나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뛰놀면서 웃고 노래하는 삶은 그리지 못하면서, 그저 ‘짝짓기 생각’으로 온 하루가 저무는 이야기로 만화를 그린다면,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읽힐 뜻이 있는지 없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짝짓기 놀이에 한창 바쁩니다. 어른들은 이녁 삶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서로 똑같이 짝짓기 놀이에 바쁩니다. 다른 것은 안 보입니다. 그저 이렇게 달리고 나아가기만 합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럭놀이 9 - 시소 자동차를



  놀이돌이가 블럭자동차에 시소를 붙인다. “아버지, 봐요, 시소 자동차야.” 시소 자동차는 달리면서 시소를 탈 수 있는 자동차이니? 아니면 달리다가 멈추고는 시소놀이를 할 수 있는 자동차이니? 자동차 지붕에 시소를 달면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시소놀이를 할 수 있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바지 엉덩이 기우기



  날이 풀리면서 하루 내내 반바지만 입는다. 지난해에 입던 반바지를 하나둘 꺼내는데 엉덩이가 해진 반바지가 많다. 오래 입은 탓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이 바지를 버릴 수도 없으니, 바짓단 언저리를 가위로 오려서 덧대기로 한다. 바짓단은 도톰하니까 엉덩이에 대면 한결 튼튼하겠지. 왼쪽 엉덩이를 먼저 기운다. 오른쪽 엉덩이도 곧 기워야지. 4348.3.30.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6) ‘-의’를 쓸 자리 (‘나의’와 ‘우리’)


나의 사랑하는 딸 리사에게

《모디캐이 저스타인/전하림 옮김-거인을 깨운 캐롤린다》 5쪽


 나의 사랑하는 딸

→ 우리 사랑하는 딸

→ 사랑하는 딸

→ 내가 사랑하는 딸

→ 더없이 사랑하는 딸

→ 하늘처럼 사랑하는 딸

 …



  영어에서는 한식구가 서로서로 가리킬 적에 ‘my’를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한식구가 서로서로 가리킬 적에 ‘우리’를 씁니다. 영어에서 ‘our’를 쓸 때가 있을는지 모르나, 영어에서는 ‘my’를 써야 어울리고, 한국말에서는 ‘우리’ 말고 ‘내’나 ‘제’를 쓸 때도 있을 테지만, ‘우리’를 써야 어울립니다.


  한국말에서 ‘우리’를 쓰는 까닭은, ‘내’가 말할 적에 ‘내가 가리키려는 사람과 나를 아울러’서 쓰기 때문이고, ‘내 말을 듣는 사람과 나를 아울러’서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 아내”와 “우리 남편”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형제가 둘일 적에도 “우리 언니”와 “우리 형”처럼 써야 올발라요.


  어버이가 아이를 가리킬 적에, 영어에서는 “my daughter”처럼 쓸 테지만, 한국말에서는 “우리 딸”처럼 씁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가리킬 적에, 영어에서는 “my mother”처럼 쓸 테지만, 한국말에서는 “우리 어머니”처럼 씁니다.


  한국말에서 ‘우리’라는 낱말을 쓰는 까닭은 ‘나와 어머니’나 ‘어버이와 아이’나 ‘너와 나’가 따로 있는 사람이면서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키려 할 적에, 반드시 다른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이야기는 혼자 나누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있기에 이야기를 이룹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제 이야기했잖니?”처럼 말합니다. 너와 나를 한동아리로 묶는 뜻이 아니라, 너와 내가 ‘그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는 뜻에서 ‘우리’를 씁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를 쓰는 까닭은, ‘너’와 ‘나’가 모여서 이루는 부부이기 때문에 ‘우리’를 써야 부부가 이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머니를 가리킬 적에 “우리 어머니”라고 하는 까닭도 나와 어머니 둘이 함께 있어야 나한테 비로소 어머니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가리킬 적에 “우리 딸”이라 하는 까닭도 아이를 하나 둔 어버이라 하더라도 어버이 한 사람과 아이 한 사람이 함께 있어야 어버이가 바라보기에 아이가 있고, 이 아이를 가리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달님

→ 사랑하는 달님

→ 사랑하는 우리 달님

→ 사랑하는 예쁜 달님

→ 사랑하는 멋진 달님


  사랑하는 짝꿍이나 짝님이 있을 적에도 한국말에서는 “내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랑”입니다. 이때에도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껴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를 씁니다. 서양에서는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낀다는 테두리에서 ‘내(my)’를 넣는 말투가 되지만, 한국말에서는 너와 나를 따로따로 또렷하게 느끼면서 서로서로 제대로 가리키는 자리에 ‘우리’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런데, 이처럼 쓰던 한국말이 서양말에 잘못 휩쓸리면서 흔들립니다. “내 아이”나 “내 달님”이나 “내 어머니”처럼 쓸 수 없는데, 자꾸 이처럼 잘못 씁니다. 한국말에서는 이 말투가 왜 잘못일까요? 한국말에서 ‘내’를 쓰는 자리는 ‘나 혼자 가진 것(물건)’일 때입니다.


 이 책은 내 것이야

 내 책이야

 이 자전거는 내 것이야

 내 자전거야


  한국말에서 ‘내’를 쓰는 자리는 “내 것”이라고 말할 때입니다. 그러니, “내 아이”나 “내 어머니”라고 하면, 아이나 어머니를 마치 ‘물건(내 물건)’으로 가리키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한국말에서 한식구나 동무나 이웃을 가리키면서 ‘내’라는 말마디를 쓰면, 사람을 물건으로 다루는 느낌이나 뜻이 되고 맙니다.


  요즈음은 한국말을 올바로 가르치거나 말하지 않으면서 너무 일찍부터 영어만 힘껏 가르치다 보니, 한국말에서 ‘우리’를 쓰는 까닭조차 제대로 알려주는 어른이 몹시 드뭅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고, 한국말을 영어처럼 가르치거나 배우기 일쑤입니다. “내 사랑”이나 “내 어머니”나 “내 아이”처럼 쓰는 말투는 모두 한국말을 영어처럼 바라보면서 잘못 가르치거나 엉뚱하게 배우거나 얄궂게 쓰는 모습입니다.


  한국말에서 쓰는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올바르지 않은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라든지 “우리 마을”이라든지 “우리 모임” 같은 말마디에서는 여러모로 ‘집단주의 문화’를 말한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한겨레는 옛날에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 나라”나 “이 마을”이나 “이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이)’에 있는 나라요 마을이요 모임이라는 뜻에서 ‘이’를 씁니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우리 나라(우리나라)”와 “우리 말(우리말)”이라는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이런 말마디는 일제강점기 언저리부터 나타났습니다. 이웃나라한테 짓밟히는 역사를 겪으면서 이 아픈 역사를 딛고 서야겠다는 뜻에서 ‘우리’라는 말마디를 빌어서 ‘제국주의 정치권력을 이겨내자’와 같은 마음을 나타내려 했어요.


  ‘우리’라는 말마디는 ‘내가 너를 바라보는 눈길’을 보여줍니다. ‘네가 여기에 나와 함께 있다고 느끼는 눈길’을 보여주는 ‘우리’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영어에서 쓰는 ‘my’는 치레(형식)나 말법일 뿐이지만, 한국말에서 쓰는 ‘우리’는 ‘내’가 ‘나’를 더욱 또렷하게 느끼거나 생각하는 말투입니다.


  “내 딸”처럼 쓰는 말투는 새로운 말투도 아니고, 새롭게 달라져야 할 한국말 모습도 아닙니다. 영어 말투를 한국 말투대로 끼워맞출 수 없듯이, 한국 말투를 영어 말투로 끼워맞출 수 없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 같은 글월은 “우리 사랑하는 딸”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는, “사랑하는 딸”로 바로잡습니다. ‘우리’라는 말마디를 넣고 싶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없이 사랑하는 딸”이나 “내가 사랑하는 딸”이나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딸”처럼 쓰면 돼요.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 속의 불 시작시인선 80
이대흠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87



시와 역사책

― 물 속의 불

 이대흠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7.1.30.



  나무는 나무도감에 없습니다. 나무는 숲에 있습니다. 풀은 식물도감에 없습니다. 풀은 들에 있습니다. 사랑은 책이나 영화에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들 가슴에 있습니다. 역사는 역사책이나 대학교에 없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가 짓는 삶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나무와 풀과 사랑과 역사를 책이나 도감이나 영화나 신문이나 학교 같은 데에서만 찾기 일쑤입니다. 나무를 찾으려고 숲에 가는 사람이 드물고, 풀을 사귀려고 들을 가꾸는 사람이 드물며, 사랑을 일구려고 마음을 가다듬는 사람이 드뭅니다.


  책이나 영화를 본대서 사랑을 알지 않습니다. 여행이나 관광이나 답사를 다닌다고 해서 역사를 배우지 않습니다. 인문 강좌를 듣거나 인문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역사를 바로알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바로세울 때에 비로소 바로서는 역사입니다.



.. 찌시가 익어가고 / 누이와 나는 진흙을 빻아서 / 떡을 만들고 아이를 만들고 // 어머니는 장에 가셨고 ..  (모래의 금요일 3)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하는 숨결은 육아책에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사랑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기를 몸에 품고 마음에 담아서 열 달 동안 아끼면서 이 땅으로 나오도록 이끈 어머니 마음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젖을 물리는 손길이 사랑이고, 기저귀를 빠는 손길이 사랑이며, 젖떼기밥을 먹이고 몸을 정갈하게 씻기고 자장노래를 부르는 온갖 손길이 바로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기를 사랑하는 넋은 바로 어머니처럼 아버지 가슴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될 사람은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사랑을 익히지 못합니다. 아기를 품에 안아서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면서 날마다 따사롭게 어루만지고 아낄 때에 비로소 가슴 가득 일어나는 사랑을 깨닫습니다.


  삶을 읽으면서 사랑을 알아야 하고, 삶을 가꾸면서 사랑을 지어야 합니다. 삶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삶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 철푸덕 철푸덕 뒤척이며 / 철푸덕 철푸덕 지고 나고 / 이 나라 강이 그렇고 산이 그렇고 / 이 나라 바다도 철푸덕 철푸덕 ..  (철푸덕 철푸덕)



  이대흠 님이 빚은 시집 《물 속의 불》(천년의시작,2007)을 읽습니다. 물 속에 있는 불이란 무엇일까요. 물 속에 잠긴 불이란 무엇일까요. 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란 무엇일까요.


  이대흠 님은 싯말로 어떤 역사 한 가지를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녁 가슴에 사랑이라는 숨결로 갈무리하는 역사를 싯말로 들려주려고 합니다.


  역사는 싯말로 노래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싯말로 갈무리해서 이웃들과 나눌 수 있을까요. 역사는 싯말로 지어서 이 땅 아이들한테 차곡차곡 물려줄 수 있을까요.



..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  (동그라미)



  봄은 바람과 함께 찾아옵니다. 따사롭게 부는 바람이 겨울눈을 깨우고 들풀을 일으킵니다. 봄은 백화점이나 짧은치마에는 없습니다. 봄은 달력이나 인터넷에 없습니다. 사람들 가슴에 따순 바람을 바라는 넋이 있기에 봄은 해마다 기쁘게 찾아옵니다.


  정치권력자는 왜 우악스러운 짓을 일삼을까요? 경제 우두머리는 왜 바보스러운 짓을 자꾸 꾀할까요? 정치권력을 거머쥐면 이녁한테 무엇이 기쁠까요? 돈을 온통 긁어모으면 이녁 삶이 얼마나 빛날까요?


  군대를 앞세워 대통령이 된다 한들, 숨을 못 쉬면 바로 죽습니다. 큰돈을 앞세워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은다 한들, 숨을 마시지 못하면 바로 죽습니다. 기껏 쉰 해쯤 독재권력을 부린다 한들, 애써 100조 원이나 1000조 원을 주물럭거린다 한들, 맑고 싱그러운 바람은 돈으로 사들일 수 없습니다.



.. 도시를 둘러싼 산 속에는 / 귀신들이 우글거린다 머리가 텅 빈 귀신들이 / 술을 마신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 같은 / 숲 속의 새들은 다른 하늘로 날아가고 / 피어난 꽃들은 모가지가 꺾였다 ..  (물 속의 불 6-위대한 탄생)



  봄바람이 불지 않으면 도시는 와장창 무너져야 합니다. 봄바람이 불어서 온누리를 따스하게 감싸지 않으면 도시는 그대로 무너져야 합니다. 봄이 오지 않으면 시골에서 아무것도 못 심고 아무것도 못 거두겠지요.


  한 해라도 봄이 없다면 시골뿐 아니라 도시도 무너집니다. 한 해라도 겨울이 없다면, 여름과 가을이 없다면, 지구별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야 합니다.


  역사란 무엇이고, 문화와 예술이란 무엇이며, 경제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읽어야 하며,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역사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가 이야기할 역사는 어떤 숨결이어야 할까요.



..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발바닥에 / 입을 맞추라 붉은 혀로 / 그가 살아온 내력에 침을 묻히라 ..  (물 속의 불 3-미친 꽃)



  동그란 지구별은 둥글게 돕니다. 동그란 지구별을 둥근 해가 비춥니다. 지구별은 스스로 둥글게 돌면서 둥근 해 둘레를 또 둥글게 돕니다. 풀과 나무가 베푸는 열매는 으레 둥글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둥근 마음을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은 서로 둥글게 어우러지고, 둥글둥글 활짝 웃습니다.


  시인을 낳은 시골 어머니는 언제나 둥글둥글 노래하듯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시인을 낳은 시골 어머니는 시를 쓴 적도 읽은 적도 없으리라 느끼는데, 시인을 낳은 시골 어머니는 역사책이나 문학책에 이녁 이름을 올리지 못할 테지만, 시를 쓰고 역사를 말할 줄 아는 아이를 따사롭게 돌보면서 사랑했습니다.


  시를 낳는 힘이 어머니한테 있습니다. 역사를 적는 손길이 어머니한테서 태어납니다. 시가 노래로 거듭나는 숨결이 바람을 타고 어머니 가슴으로 찾아듭니다. 역사를 노래처럼 부르면서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는 사람은 봄바람을 마시면서 가슴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