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5.3.16. 큰아이―촛불사람



  아이들과 하루에 한두 차례 촛불보기를 한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서 큰아이더러 “촛불 그려 줄 수 있니?” 하고 물었다. 그림순이는 “응, 알았어.” 하더니 척척 촛불을 그린다. 초와 불과 받침을 함께 그리고, 둘레를 텅 비운다. 아주 정갈하다. 촛불보기를 할 적에는 오로지 촛불을 바라보지.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바라봐. 그러니 촛불만 그릴 테고, 촛불을 그리려 하니 초받침까지 이쁘게 그리네. 촛불이 꼭 촛불사람 같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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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민들레 알아보기



  흰민들레는 먼발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꽃대를 높이 올리지 않고 납작하게 꽃송이를 터뜨린 흰민들레는 언제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곰곰이 보면, 꽃대를 그야말로 높게 솟구쳐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리려는 아이가 있고, 이 아이처럼 살그마니 꽃을 내놓고는 씨앗도 살그마니 날리는 아이가 있다. 하얀 꽃잎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올해에도 멋지고 아름답게 씨앗을 퍼뜨리렴 하고 속삭인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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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앵두꽃



  우리 집 앵두나무가 꽃을 피운다. 꽃이 먼저 터지고, 잎눈도 천천히 터지려 한다. 앵두꽃이 벌어지니 벌이 찾아오고 나비가 내려앉는다. 가만히 보면, 벌과 나비는 봄꽃이 피어날 즈음 기쁘게 깨어난다. 말갛게 벌어지는 앵두꽃을 바라보면서 한 달 뒤를 그린다. 앵두꽃이 지고 앵두알이 맺는 모습을 아이들과 날마다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도 설렌다. 우리 집 아이들은 ‘우리 앵두나무’가 있기에 날마다 꽃을 새롭게 마주하고 꽃내음을 새롭게 먹으면서 꽃알(꽃열매)이 어떻게 영그는가를 똑똑히 지켜볼 수 있다. 어버이는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아이와 함께 숲과 삶을 새롭게 읽고 배운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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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 초방책방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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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2



‘까막나라’ 임금님은 빛을 안 바란다

―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초방책방 펴냄, 1994.3.10.



  정승각 님이 빚은 그림책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 남짓 묵은 오래된 한국 그림책입니다. 앞으로도 이 그림책은 한국 어린이한테서 사랑을 받을 테니, 마흔 해도 묵고 쉰 해도 묵을 테지요.


  1990년대 첫무렵에 정승각 님이 어떤 숨결이 되어 이 그림책을 빚었을까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을 찾으려는 불개는, 불을 찾았으나 그예 숨이 끊어지고 만 불개는, 새로운 숨결로 다시 살아난 불개는,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곰곰이 되새깁니다.



.. “나라가 온통 깜깜하니 다스릴 수가 없구나.” 까막나라 임금님은 답답했습니다. “누가 불을 구해 올 수만 있다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을 가져오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  (4쪽)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보면, 까막나라 임금님은 ‘나라 다스리기’를 한다는데, 어떻게 무엇을 다스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임금님 둘레에서 임금님을 모신다는 이들은 무엇을 섬기거나 모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들은 ‘나라 다스리기’를 걱정하거나 마음을 쓸 뿐, 까막나라에서 사는 사람을 걱정하거나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까막나라에 빛이 없어서 삶이 얼마나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힘든가 하는 대목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을 쓰지 않아요.


  곰곰이 따지면, 임금 자리에 있는 이가 하는 일은 ‘까막나라’가 그저 ‘까만 빛깔 나라’이면서 ‘슬기에 깜깜한 나라’가 되도록 굳히는 몸짓이지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나라이름부터 ‘까막나라’인걸요. 무엇보다 임금 자리에 있는 우두머리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일을 꾀할 뿐입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임금 자리 우두머리는 팔랑귀에다가 철부지입니다. 우두머리로서 일을 다 남한테 맡기거나 시키는데, 스스로 시킨 일조차 스스로 매조지하지 않아요. 삽사리가 불을 가져왔어도 이를 쓰지 않습니다. 신하라고 하는 이들이 말하는 대로 팔랑거리면서 따르다가, 뒤늦게 애를 태웁니다.



.. “불개야, 네 노래가 내 마음을 울리는구나.” 잔잔한 물 위로 현무가 나타났습니다. “환한 빛은 해와 달에서 나오는 거란다. 그러나 새겨 두어라. 참다운 빛은 마음속에 있는 거란다.” ..  (9쪽)




  까막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먼 옛날, ‘불이 없는’ 곳이 까막나라일까요? 아니면, 오늘날 바로 이곳이 까막나라일까요? 까막나라에는 불빛이 비추지 않습니다. 불이 없기 때문에 불빛이 안 비추지 않습니다. 해와 달이 하늘에 버젓이 있으나, 까막나라 임금님이나 신하나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빛’이 없기 때문에, 까막나라는 언제까지나 까막나라이면서 아무런 빛이 깃들 수 없습니다.


  삽사리는 제 몸을 불사르고 녹여서 ‘두 가지 불’을 가져옵니다. 이른바 ‘태극’이라고 할 빨강과 파랑입니다. 빨갛게 빛나면서 파랗게 빛나요. 오늘날 과학으로 치자면 양자역학인 셈입니다. 빨갛지만 파랗고, 파랗지만 빨갛습니다.


  까막나라에 드디어 빛이 오지만, 임금님이나 신하는 두려워 합니다. 왜 두려워 할까요? 빛이 왔기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까막나라는 어둠에 파묻혀야 정치권력이 그대로 이어갈 텐데, 빛이 오니, 모든 어둠이 드러나서 임금님이나 신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훤하게 드러날 테니 두려워 합니다.



.. “이까짓 해쯤이야.” 불개는 와락 달려들어 해를 꽉 물었습니다. “앗, 뜨거워!” 손발은 오그라들고 뱃속은 타 들어갔습니다. 불꽃은 불개의 온몸을 황금빛으로 휘감았습니다. 불개는 입에 물었던 해를 뱉어내고 나동그라졌습니다 ..  (12쪽)




  까막나라에 누군가 빛을 가져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더는 까막나라가 아닙니다. 까막나라에 빛이 비추면, 이제 까막나라는 ‘빛나라’나 ‘하얀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나라가 되려면, 그동안 권력을 지키던 임금님이나 신하는 어떻게 될까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까막나라를 다스릴 줄만 알던 이들은 떠나야 하얀나라를 새롭게 세울 수 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삽사리뿐 아니라 다른 숨결도 빛을 수없이 가져왔으리라 느낍니다. 다만, 그동안 수없이 다른 숨결이 빛을 가져올 적마다 임금님과 신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이들을 매몰차게 내치거나 죽였겠지요. 이러면서 또 빛을 바라고, 빛을 가져오면 또 내치거나 죽이고 ……, 까막나라가 하는 짓이란, 까막나라 임금님과 신하가 하는 짓이란, 언제나 바보스러우면서 멍청한 짓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까막’나라일 수밖에 없습니다.



.. 궁궐이 갑자기 환해지자, 신하들은 놀라서 벌벌 떨었습니다. “임금님, 저 개 몸에서 나는 이상한 빛을 보십시오. 빨리 없애지 않으면 무서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임금님도 퍼런 몸에 붉은 빛을 내는 불개가 두려웠습니다. 불개에게 상을 준다는 약속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불개는 쇠줄에 꽁꽁 묶인 채 궁궐 밖으로 들려 나갔습니다 ..  (23쪽)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정치권력자나 경제권력자나 문화권력자나 교육권력자나 종교권력자나 과학권력자나 군사권력자나 한결같이 바보스럽거나 멍청합니다. 이들은 이 나라를 까막나라로 짓누르려 합니다. 이 나라에서 수수하게 삶을 짓는 여느 사람들이 날마다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리면, 이 사랑을 매몰차게 짓밟습니다.


  민주와 평화와 평등이 싹트려고 하면, 바로 권력자가 짓밟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과 꿈길이 열리려 하면, 바로 권력자가 짓이깁니다.


  삽사리와 까막나라에 빗댄 옛이야기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벌어지는 ‘우리 스스로 바보스러운 모습’을 건드립니다. 까막나라 임금님한테 빛을 바치는 짓은 그치고,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서도록 마음속 불길을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까막나라에서 살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까막나라 권력자한테서 떡고물을 받아서 먹으려 한다면 까막나라에 그대로 머물면서 ‘까막사람’ 노릇을 하면 쳇바퀴처럼 되겠지요. 이제부터 밝고 환하면서 슬기롭고 철든 사람이 되려 한다면, 빨가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빨간 숨결을 바람처럼 가슴에 담아 아름답게 피어나는 새로운 봄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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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31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5-03-31 23:33   좋아요 0 | URL
옛이야기를 살린 작품이니
조금 더 마음을 기울였다면
`까막나라 임금님과 신하`라든지
`불개`가 삼킨 빨갛고 파란 빛 이야기를
더 찬찬히 짚거나 다룰 만했을 텐데
이 대목에서 여러모로 아쉽구나 싶어요.

그래도, 이 책을 아이들과 읽을 어른이
그러한 대목은 슬기롭게 알려주면 되겠지요...
 

[말이랑 놀자 122] 무슨 밥 먹을까



  밥상을 차리는 어버이를 바라보는 아이가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 하고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밥을 먹을까?” 하고 얘기하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풀밥’을 할 수 있고 ‘고기밥’을 할 수 있으며 ‘미역국밥’이라든지 ‘감자국밥’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먹는 대로 밥이름을 붙입니다. 밥을 하니까 밥하기이고, 밥이름을 붙이며, 밥먹기를 누리고, 밥삶을 헤아립니다. 바깥에 나가거나 다른 집에 가면, 으레 ‘요리’와 ‘식사’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이 ‘요리·식사’라는 말마디를 들으면 으레 이러한 말을 쓰면서 “오늘은 무슨 요리?”나 “오늘은 무슨 식사?” 하고 묻겠지요.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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