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내음과 하늘빛



  매화꽃내음을 맡으면서 하늘빛을 누린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은 가지에 매달린 꽃은 하늘빛을 바탕으로 꽃빛이 눈부시도록 곱다. 지난해에는 꽃이 한창 달려서 눈부실 적에 비바람이 잦아서 이 모습을 거의 못 보았다. 올해에는 꽃이 한창 달려서 눈부실 동안 비바람이 잠들었고, 매화꽃이 질 무렵 비로소 비가 내려 준다. 얼마나 고마우면서 반가운 비님인가.


  봄꽃은 참말 새롭게 열리는 새파란 하늘과 함께 올려다볼 적에 한결 곱구나 싶다. 하야면서 볼그스름한 꽃잎은 파란 하늘빛하고 더없이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한낮 하늘빛하고도 잘 어울리고, 아침나절에 아직 옅게 파란 하늘빛하고도 잘 어울린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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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동백나무 우듬지



  다섯 해째 지내는 우리 고흥집에 처음 깃들던 무렵, 마당 끝자락 동백나무는 키가 그리 안 컸다. 왜 이리 키가 작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 동백나무를 볼 적마다 자라렴 자라렴 자라고 자라렴 하고 말을 걸었다. 이제 우리 집 동백나무는 키가 제법 자라서 고개를 위로 한껏 올려야 우듬지를 볼 수 있다. 다른 집에서는 가지치기를 할는지 어떠할는지 모르나, 나는 우리 집 동백나무 우듬지에 새로운 가지가 죽죽 올라와도 그대로 둔다. 마음껏 뻗기를 바란다. 옆으로도 위로도 신나게 뻗어서 동백나무가 울타리 구실을 하기를 기다린다.


  우리 집 나무를 가만히 살피니, 해가 갈수록 꽃과 열매가 늘어난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수 있고, 이 나무들이 홀가분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시면서 빗물을 들이켜고 고운 흙을 누리면, 어떤 나무라도 잘 자란다. 다른 마을이나 이웃집 동백나무하고 대면 느즈막하게 꽃봉오리가 터지는 우리 집 동백나무는 한창 붉은 빛이 흐드러진다. 아침저녁으로, 게다가 한밤에까지 이 붉은 빛을 느끼면서 온 집안이 푸근하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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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 9 - 완결
조 아라키 지음, 카이타니 시노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91



포도나무에 깃든 사랑

― 소믈리에 9

 아라키 조 글

 카이타니 시노부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1.25.



  달걀을 삶습니다. 우리 집 유리냄비에는 달걀을 일곱 알 삶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네 사람이 있으니 세 사람한테는 두 알씩 돌아가고 한 사람한테는 한 알이 돌아갑니다. 나는 으레 한 알만 먹고, 다른 세 사람이 두 알씩 먹습니다. 때때로 나는 한 알조차 안 먹고 세 사람이 두 알씩 먹은 뒤, 아이들이 반 토막씩 나누어 먹습니다.


  곧잘 달걀을 삶다 보니, 우리 집 네 사람이 가장 맛나게 먹는 달걀을 언제라도 홀가분하게 삶을 수 있습니다. 노란 속살이 가장 보드라우면서 달콤하게 혀끝으로 달라붙도록 삶는 솜씨를 어느새 내 손에 익힙니다.


  그렇다고, 물을 얼마쯤 붓고 불을 몇 분쯤 넣어서 끓여야 한다고 말하지는 못 합니다. 알맞게 물을 부어서 알맞게 불을 넣어 끓이다가 ‘아, 이제 불을 줄여야겠네’ 하고 느낄 무렵 불을 여리게 줄이고는, ‘그래, 이제 불을 꺼야겠네’ 하고 느낄 무렵 불을 끕니다. 이러고는 뚜껑을 닿고,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를 한동안 그대로 둡니다. 아이들은 다른 반찬으로 신나게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밥그릇을 반쯤 비울 무렵 비로소 달걀냄비 뜨거운 물을 개수대에 놓은 ‘설거지 할 그릇’에 붓습니다. 찬물로 두세 차례 헹군 뒤 톡톡 깨면 잘 벗겨지면서 말랑말랑하고 속살이 샛노란 알맹이를 얻습니다.



- “너는 손님의 외모나 직업에 따라 서비시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나? 적어도 그 사람은 신사적으로 행동했고, 다른 손님께 폐를 끼치지도 않았어. 손님이 가게 밖에서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VIP건 가난뱅이건, 우리에게는 관계 없는 일이야.” (23쪽)

- “그러니까 없죠. 고급 와인이라면 오래 보관하기도 하지만, 이런 값싼 와인은 나온 즉시 마시니까, 해가 넘어가기 전에 대부분 매진돼 버리거든요.” (43쪽)





  가만히 돌아보면, 국을 끓이든 반찬을 하든 나물을 무치든, 무게를 달아서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부침개를 하려고 반죽을 할 적에도 밀가루나 물 부피를 잰 적이 없습니다. 딱히 눈어림으로 하지도 않습니다. 이만큼 해서 먹으면 넉넉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꼭 이대로 합니다.


  예전에 가끔 요리책을 들출 적에, 이런저런 것을 무게와 크기와 숫자를 하나하나 헤아려서 하라고 나오는 길잡이말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따져서 밥을 지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빵이나 케익을 구울 적에는 1그램도 어긋나지 않게 잘 맞추어야 한다는데, 여느 밥이나 반찬이나 국을 마련할 적에는 1그램 아닌 10그램이 어긋나거나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밥이나 반찬이나 국에서는 ‘맛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맛이 나온다’고 할 만합니다.



- “평범한 와인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싼 와인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다른, 특별한 와인이죠. 손님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손님처럼 진실한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53쪽)

- “으악! 이 바쁜 와중에 사이토 셰프에게 파스타를 삶아 달라고 했어요?” “저 가족에게 오늘 이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67쪽)




  아라키 조 님이 글을 쓰고,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그림을 그린 《소믈리에》(학산문화사,2009) 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소믈리에》는 아홉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포도술 한 모금에서 어머니 사랑을 느낀 젊은이가 길을 잃고 헤맨 끝에 비로소 어머니 사랑내음을 찾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어요.



- “귀한 단골손님을 잃었다, 그것보다도 그 가족의 마지막 만찬을 내 손으로 망쳐 버렸어요.” “어른에게는 그렇겠지.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니야. 자기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라 메르’에 있었다. 손님의 슬픔이나 괴로움까지 받아 주는 소믈리에게 이 레스토랑에는 있었다. 분명 그 아이는 오늘의 네 서비스를 평생 잊지 못할 거야.” (80쪽)

- “그 녀석은 매일매일 셀러의 와인을 못내 사랑스러운 듯 살피고 있었으니까. 사무적으로 와인을 다루는 사람과 그 녀석은, 와인에 대한 애착의 깊이가 다르지.” (99쪽)




  길을 잃은 젊은이가 길을 찾는 곳은 아버지 품입니다. 젊은이를 낳은 어머니는 포도나무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고, 젊은이를 낳은 아버지는 어머니가 남긴 포도나무를 건사하면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젊은이는 이곳저곳 돌고 또 돌고 다시 떠돈 끝에 ‘어머니 포도나무’는 바로 젊은이가 어릴 적부터 지낸 곳에 있는 줄 깨닫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사랑은 늘 내 가슴에서 싱그러이 살아서 움직이는 줄 늦게까지 알아채지 못했지만, 하나씩 실마리를 풀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도 차근차근 찾습니다.



- “이 지방에서는 자기 자식이 장성하면 코르크 스크류를 물려주는 관습이 있지. 나도 레지느에게 이것과 같은 것을 선물했었고, 자네도 레지느에게서 같은 것을 물려받았으니.” (141쪽)

- “되찾읍시다, 그 포도밭을! 이대로 쭈욱 과거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실 겁니까? 그런 마음으로 살면 어머니는 절대 기뻐하지 않을 거예요! 되찾는 겁니다. 밭도, 과거도!” (180∼181쪽)




  포도술 한 모금에는 포도나무 기운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포도나무에는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이 어우러진 기운이 알뜰히 깃듭니다.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에는 또 어떤 기운이 깃들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가슴으로 길어올리는 사랑이 온누리에 깃듭니다. 아침마다 해님을 맞이하면서 사랑스레 웃습니다. 언제나 바람을 마시면서 사랑스레 노래합니다. 빗물과 냇물과 샘물을 모두 정갈하게 아끼면서 사랑이 솟습니다. 땀흘려 흙을 일구기에 기름진 들에 사랑이 흐릅니다.


  그러니까, 포도술 한 잔에는 온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숨결이 깃듭니다. 값진 포도술이나 값싼 포도술이 따로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랑이 저마다 새롭게 깃들어서 흐르는 포도술입니다.


  밥 한 그릇에도 저마다 다른 사랑이 고이 깃듭니다. 말 한 마디에도 사랑이 깃들고, 이야기 한 자락에도 사랑이 깃들어요. 이 사랑을 헤아리면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서로 돕고 아끼면서 어깨동무하는 삶을 아름답게 짓습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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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도 스마트폰 계산기



  스마트폰으로 숫자를 더하거나 뺄 수 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여느 계산기보다 화면이 한결 넓어서 스마트폰으로 더하기나 빼기를 하면 한결 보기 나을 수 있다. 헌책방지기기 책값을 셈한다. 책손은 책방지기 옆에서 책값을 어찌 셈하는지 지켜본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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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15) 그것 13


근로자의 문제는 곧 민주화의 문제 그것입니다

《지학순-정의가 강물처럼》(형성사,1983) 272쪽


 곧 민주화의 문제 그것입니다

→ 곧 민주화라는 문제입니다

→ 곧 민주화 문제입니다

→ 곧 민주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


  이 자리에는 ‘곧’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넣지 않아도 앞말을 힘주어 나타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주어 나타내고 싶다면, 말끝을 “민주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나 “민주화 문제라고 거듭 말합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41.4.1.불/4348.3.3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근로자 문제는 곧 민주화 문제입니다


“근로자의 문제”는 “근로자 문제”나 “근로자한테 닥친 문제”나 “근로자가 떠안은 문제”로 손질하고, “민주화의 문제”는 “민주화 문제”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는 문제”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22) 그것 14


한자를 썼다고 해서 그것을 곧 양반, 귀족으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김주연-그러나 아직도 행복하지 않다》(문장,1978) 207쪽


 그것을 곧

→ 이녁을 곧

→ 이 사람을 곧

→ 그 사람을 곧

→ 곧

 …



  ‘그것’을 양반이나 귀족으로 볼 수 없다고 하니, ‘그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그러면, 한국말에서 사람을 ‘그것’으로 가리켜도 될까요?


  이 글월에서는 사람이 아닌 ‘한자로 글을 쓰는 일’을 가리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자로 글을 쓰는 일’을 가리킨다고 하면 말짜임이 엉성합니다.


 한자를 썼다고 해서 이 글을 쓴 사람을

 한자로 글을 쓴 사람을

 한자를 쓴 사람을


  이 글월은 ‘그것’을 ‘이 사람’이나 ‘이 글을 쓴 사람’이나 ‘글을 쓴 사람’으로 바로잡은 뒤, 글짜임도 손질해야겠구나 싶습니다. 4341.4.28.달/4348.3.3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한자로 글을 썼다고 해서 곧 양반, 귀족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을 겁니다”는 “볼 수 없습니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1) 그것 15


나는 빛과 공기가 최대한 나를 흥분시키는 그런 시간대를 고른다. 그게 바로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제이 마이젤/박윤혜 옮김-빛, 제스처, 그리고 색》(시그마북스,2015) 36쪽


 그게 바로 좋은 시간

→ 그때가 바로 좋은 시간

→ 그무렵이 바로 좋은 때

→ 그즈음이 바로 좋은 때

 …



  ‘그것이’를 줄여서 ‘그게’ 꼴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나 ‘그게’는 모두 알맞게 써야지요. ‘그때’나 ‘그무렵’이나 ‘그즈음’으로 적어야 할 자리에 ‘그게(그것이)’를 적으면 걸맞지 않습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빛과 바람이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그런 때를 고른다. 그때가 바로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공기(空氣)’는 ‘바람’으로 손보고, ‘최대한(最大限)’은 ‘되도록’이나 ‘끝없이’나 ‘가장’으로 손보며, ‘흥분(興奮)시키는’은 ‘설레게 하는’이나 ‘들뜨게 하는’이나 ‘두근거리게 하는’으로 손봅니다. ‘시간대(時間帶)’나 ‘시간(時間)’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때’로 손질해도 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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