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떠올리도록 이끄는 사진이란



  ‘사라지는 골목’과 얽혀 ‘골목내음이 피어나는 사진’을 바라는 곳이 있기에, 그곳에 보내려고 골목 사진을 가만히 돌아보다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사진이나, 아주머니가 골목에서 수다를 떠는 사진을 요즈음 찍을 수 있을까? 못 찍으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 겨를이 없고, 골목에서 놀 동무가 없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살림을 하느라 바쁘거나 부업을 하느라 힘겹다.


  그런데, 왜 ‘골목 사진’이라고 하면 ‘노는 아이’와 ‘수다 떠는 아주머니’만 생각할까? 이 두 가지가 골목을 밝히는 모습일까? 참말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골목을 밝히거나 말하거나 드러낼 수 없을까?


  골목에서 나고 자라든, 골목에서 며칠이나 몇 달이나 몇 해를 살든, 골목을 이야기하는 사진이라 한다면, 아무래도 꽃과 나무라고 느낀다. 누가 골목동네로 들어와서 살까? 어디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로 찾아와서 ‘도시 가장자리’라는 곳에서 터를 잡으면서 골목을 이루는가? 바로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던 사람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와서 ‘도시 가장자리’에 모였고, 이들이 모여서 동네를 이루는 골목은 어느새 ‘아주머니와 할머니’ 손길을 타면서 꽃그릇과 텃밭이 생긴다. 때로는 할아버지 손길을 거쳐 텃밭과 꽃그릇이 생긴다.


  골목아이나 골목사람을 찍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이 사진에는 언제나 꽃그릇이나 나무가 한쪽에 살그마니 고개를 내밀기 마련이라고 느낀다. 꽃처럼 웃고, 나무처럼 어깨동무하는 사람이 골목이웃이라고 느낀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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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23. 나누어 먹는 손길



  작은아이가 무엇이든 조금씩 나누어 먹는 손길을 가꾼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누나도 언제나 무엇이든 조금씩 나누어 먹으면서 지내니, 작은아이도 늘 나누어 먹는 버릇이 몸에 밴다. 나누어 먹으면 내 몫이 줄어든다고 하겠지. 틀림없다. 나누어 먹으면 내 몸으로 들어올 몫은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 몸은 밥을 많이 먹어야 튼튼하거나 새 기운이 솟지 않는다. 밥을 굶거나 적게 먹어도 새 기운이 솟을 수 있다. 함께 나누는 기쁨을 누리면 새 기운이 솟는다. 서로 아끼는 손길이 되면 새 사랑이 자란다. 우리 아이들이 과자 한 조각도 나누어 먹을 줄 아는 모습으로 함께 놀고 어울리니, 더없이 예쁘면서 멋지구나 하고 느낀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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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시선 169
박영근 지음 / 창비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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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5



눈 감은 하루, 눈 뜨는 모레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박영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7.11.20.



  모처럼 아침에 해가 납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립니다.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골고루 이 몸에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온갖 멧새가 부산스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아침에 우리 집 뒤꼍에 서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 안개는 제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붙잡고 / 죽음의 기억까지 녹슬게 하고, / 우리는 찌그러진 반합통 같은 얼굴로 / 지난밤의 총탄이 박혀 있는 나무둥치와 / 몇 마리 오소리들을 보고 돌아서곤 했다 / 살아 붙잡을 것은 물소리밖에 없었던 / 내 마음의 대암산 / 이십년이 흘러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 귀울음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울려오는 선무방송 ..  (대암산)



  아침에 해바라기를 하면서 뒤꼍을 걷다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빨래를 신나게 해야겠구나. 아이들 옷을 모두 새로 갈아입힌 뒤 기운차게 빨래를 해야겠구나.


  볕이 나는 하루이니, 낮에는 이불을 내다 널 수 있을 테지요. 볕이 고운 하루라면, 아이들과 들마실을 다녀올 수 있겠지요. 엊저녁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들마실을 하는데, 바야흐로 논마다 유채꽃이 무르익으려 하면서 꽃내음이 짙습니다. 날마다 유채꽃이 곱게 올라올 테고, 들을 가득 채운 유채꽃물결이 우리 몸을 감싸면 새로운 봄빛으로 물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 철조망 녹슬어가는 높은 담장 안에 / 비무장한 나무들이 / 새 둥우리 하나 지키고 있다 ..  (용산에서 1)



  해가 있기에 삶이 있습니다. 해가 없으면 삶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삶이 있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숨이 막혀서 죽으니, 이때에도 삶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기에 삶이 있습니다. 비만 내리면 그예 축축하게 젖고 말지만, 꾸준하게 비가 내려 주어야 냇물이 흐르고 샘물이 솟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가 함께 있으니 흙이 기름지고,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별에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 오래 떠돌던 마음이 빗소리 속에서 집을 짓는다 // 새 한마리 / 배롱나무 가지 끝에서 / 비 그친 하늘 / 젖은 허공 한뼘을 물고 있다 ..  (빗소리)



  박영근 님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1997)를 읽습니다. 이 시집이 나올 무렵, 나는 강원도 양구에 있는 군대에서 볼볼 기어다녔습니다. 박영근 님은 대암산이라고 하는 곳을 시에 쓰는데, 나도 대암산이라는 곳에서 총을 들고 밤을 새야 한다든지, 삽을 들고 땡볕을 쬐면서 길을 다져야 했습니다. 비가 오면 물골을 내야 했고, 눈이 오면 눈을 퍼서 차곡차곡 쌓아야 했습니다.



.. 꽃 이운 자리에서 / 새까맣게 익은 꽃씨가 / 바람 속으로 / 떨어지고 있다 ..  (입추)



  사회나 정치에서는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고 말합니다. 군대에 들어가는 사내도 이 말에 젖어들기에, 휴가를 나오거나 전역을 하면 ‘군인이 나라를 지킨다’고 말한다든지 ‘내가 나라를 지킨다’고 읊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군인은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인은 제가 깃든 군부대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제자리에 맞게 착착 끼워맞추는 톱니바퀴 구실을 하면서 그곳에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허수아비 구실을 합니다. 군인이 되는 젊은 사내는 ‘머릿속에 모든 생각을 지운’ 뒤, 나라(중앙정부)에서 시키는 짓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되어 사회로 돌아갑니다.


  이리하여, 사회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를 반깁니다. 왜 반길까요? 군대 마친 사내는 군대에서 계급과 신분과 위계질서에 길들었기 때문에, ‘웃사람이 시키는 짓’을 척척 잘 따르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구실을 잘 합니다. 사회 조직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한테 ‘군 가산점’을 주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조직이 맡은 몫이란 ‘사람을 톱니바퀴처럼 짜맞추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얽매이는 일’이니까요.



.. 오밤중 두시 무렵 / 짓다 만 신축공사장 빈터 / 취한 내가 / 허리도 팔다리도 꺾고 / 쭈그리고 앉아 / 홀로 사위어가는 모닥불을 쬔다 ..  (모닥불)



  노동자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일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지, 노동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말과 한자말로 서로 갈리는 대목이 있기도 할 테지만, 사회 얼거리를 보면, 참말 노동자는 일꾼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은 ‘공장 톱니바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자리에서는 ‘사용자가 시키는 일만 똑같이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도 ‘노동자’나 ‘근로자’는 될 테지만, 공무원이나 교사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공무원과 교사도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 스스로 ‘새로운 삶을 짓는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노동자는 공장에서 톱니바퀴입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을 만들거나 지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이 팔아치워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공산품’을 똑같이 꿰어맞추는 몸짓으로 지내야 할 뿐입니다. 사용자가 노동자한테 바라는 것은 ‘몸뚱이’일 뿐, ‘머리’가 아닙니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머리 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바람에 / 구름 속 되살아나 / 비껴오는 / 한오라기 햇살 // 마저 그리움도 벗고 / 홀로 가거라 / 죽어 / 한점 비유도 없이 / 허공에 ..  (尹金伊)



  노동자가 노동자로만 남으려 한다면 노동자한테는 아무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가 우리한테 붙이려 하는 이름인 노동자’라는 허울을 벗고 ‘스스로 삶을 짓는 일꾼’이라는 이름을 손수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사랑스레 삶을 찾고, 아름답게 일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버는 회사 조직이 아니라, 삶을 짓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름(직책이나 지위)을 얻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사랑을 가꾸는 하루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부터 다 함께 눈을 떠서 이 지구별을 환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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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47. 빛깔을 먹는다



  밥은 숨결입니다. 밥은 몸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우리 마음이나 생각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어떤 밥을 먹을까요? 영양성분을 먹을까요? 화학성분으로 엮은 영양성분을 먹어도 우리 몸은 기운을 차릴까요?


  영양성분만 맞춘 밥이라면, 이럭저럭 몸을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제대로 몸을 살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몸을 살리는 숨결은 영양성분이 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담아서 지은 밥을 먹어야 사랑스러운 기운이 솟습니다. 기쁨을 담아서 지은 밥을 먹어야 기쁜 기운이 솟아요. 그러니, 영양성분만 맞춘 밥으로는 ‘영양성분이 따른 기운’만 솟을 테지요.


  사진찍기는 ‘장비 다루는 솜씨’로 하지 않습니다. 장비 다루는 솜씨를 잘 익힌 사람은 ‘장비 다루는 솜씨’를 잘 보여줄 뿐입니다. ‘영양성분으로 먹는 밥’은 우리 몸을 영양성분으로만 지켜 주듯이, 장비 다루는 솜씨로 찍는 사진은 언제나 ‘장비 솜씨’를 보여주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널리 사랑하는 사진에는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멋진 장비로 멋지게 찍은 사진’은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흐르지도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늘 이 대목을 슬기롭게 짚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 몸은 빛깔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노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에는 빛깔을 담을 수 있고, 노래를 담을 수 있으며, 사랑과 꿈을 넉넉히 담을 수 있습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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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놀이 12 - 인형도 버스마실



  두 아이가 인형을 하나씩 데리고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큰아이는 손수건으로 인형을 덮어서 재우고, 작은아이는 인형을 창턱에 세워 바깥구경을 시킨다. 두 아이는 저마다 제 나름대로 인형한테 따순 손길이 된다. 인형은 두 아이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온갖 놀이를 찬찬히 지켜보고 함께 노는 동무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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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4-08 08:35   좋아요 0 | URL
우리 한솔이는 10살인데도 어디 갈땐 꼭 인형을 챙겨요. 하긴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요^^

파란놀 2015-04-08 09:03   좋아요 0 | URL
그럼요. 마음을 담아서 함께 노는 멋진 동무로
인형을 곁에 두는구나 하고 느껴요~

blanca 2015-04-08 09:03   좋아요 0 | URL
저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요. 아련하네요.

파란놀 2015-04-08 09:04   좋아요 0 | URL
우리는 나이가 몇 살이어도
또 사내이건 가시내이건
언제나 즐겁게 인형놀이를 누리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
저도 아이들하고 함께 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