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였다 → 아버지네 아버지였다 / 할아버지였다

 아이의 아버지를 호명하자 → 아이 아버지를 부르자

 숲의 아버지가 깨어났다 → 숲아버지가 깨어났다


  ‘-의 + 아버지’ 얼거리라면 ‘-의’를 털어냅니다. 때로는 ‘-네’를 붙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 고쳐쓰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같은 꼴이라면 ‘할할아버지’라 하면 됩니다. ㅍㄹㄴ



호적상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얻은 도모는 행복할 것이다

→ 집적이에 오른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얻은 도모는 즐겁다

→ 낳은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사랑스런 아버지를 얻은 도모는 기쁘다

《산촌유학》(고쿠분 히로코/손성애 옮김, 이후, 2008) 175쪽


김구의 아버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을 거야

→ 김구 아버지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겠지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백범일지》(강창훈, 책과함께어린이, 2018) 25쪽


카프카의 눈에 비친 그의 아버지는 가정의 폭군이었다

→ 카프카 눈에 아버지는 집안을 마구 밟았다

→ 카프카 눈에 아버지는 집안을 깔아뭉갰다

《프란츠 카프카》(라데크 말리·레나타 푸치코바/김성환 옮김, 소전서가, 2024)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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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문학 그림책 8
권정생 지음, 김병하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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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2.

그림책시렁 1570


《소》

 권정생 글

 김병하 그림

 창비

 2025.3.7.



  권정생 님이 소 이야기를 쓴 지 아주 한참 됩니다. 오늘날하고 참으로 다른 소 이야기일 텐데, 2025년에 나온 그림책 《소》를 펼치며 한참 갸웃했습니다. 요새는 시골아이도 소를 모르거나 못 보는데, 거의 서울아이한테 읽힐 이 그림책이 무슨 보람이나 이바지를 할까요? ‘소’라 하면 ‘소고기’부터 떠올릴 테고, 소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테고, ‘굴레’나 ‘고삐’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을 테고, 논밭을 스친 적은 있을지라도 막상 논갈이와 밭갈이가 무엇인지 모를 만하고, ‘꼴’이 무엇인지 더더구나 모를 텐데, 그림만 살짝 예스럽게 붙여서 여미는 그림책으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그야말로 알쏭합니다. 권정생 님이 남긴 글은 아름다우면서 푸근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글꾼과 그림꾼은 곁에 소가 없잖아요? 요즈음 글꾼과 그림꾼은 시골에서 아주 안 살거나 등진 채 서울에서 살잖아요? 왜 이 이야기를 굳이 다시 그릴까요? 지켜볼 수도 쓰다듬을 수도 같이 일할 수도 없는 소 이야기를 왜 2025년에 선보여야 할까요? 이제 시골조차 “소가 거닐 길”이라든지 “소가 풀을 뜯을 풀밭이나 들숲”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고작 마흔∼쉰 해 앞서까지 소몰이에 풀뜯기를 하던 시골이라지만, 풀밭이 사라지고 소똥과 소똥구리도 사라지면서 아이들이 뛰놀 빈터도 나란히 사라진 나라입니다. 이동안 붓끝도 붓빛을 다 잃어버렸구나 싶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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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간 나팔꽃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선정작, 2021 북스타트 선정 도서 글로연 그림책 19
이장미 지음 / 글로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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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2.

그림책시렁 1575


《달에 간 나팔꽃》

 이장미

 글로연

 2020.10.1.



  누구나 스스로 하루를 그립니다. 즐겁거나 안 즐겁거나 모두 우리 손으로 짓는 오늘입니다. 남이 내 하루를 그려 주지 않습니다. 남이 내 삶을 보내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일어서며 나아갈 길을 걷습니다. 너는 너대로 네 삶을 그리기에 서로 마주합니다. 사람도 새도 개구리도 풀꽃나무도 스스로 하루를 그려요. 밤에 눈을 감고 쉬면서 그리는 꿈이요, 새벽에 눈을 뜨면서 펴는 살림입니다. 《달에 간 나팔꽃》은 나팔꽃 한 송이가 어느 밤에 달을 보고는 달한테까지 덩굴을 뻗고픈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살아낸 길을 들려줍니다. 왜 굳이 ‘달’을 골랐는지 갸웃할 일이지만, 낫거나 나쁜 꿈이란 없습니다. 풀꽃나무나 새나 개구리라면 ‘달’은 ‘돌’일 뿐인 줄 알 텐데, 마치 사람처럼 그린 듯해서 아쉽습니다. 풀꽃나무라면 달이 아니라 ‘별’을 그려서 나아간다고 느껴요. 오늘은 이 별에서 싹을 틔워서 자라는 푸나무요, 모레는 저 별에서 씨앗을 깨워서 푸르게 뻗고픈 푸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매캐하고 갑갑한 서울 한복판부터 풀숲과 나무숲으로 포근히 덮는 꿈부터 품을 만하고요. 부디 서울과 서울곁 모두 잿더미(시멘트·아스팔트)는 이제 멈추고서 풀씨와 나무씨를 심는 손길과 마음길이 늘어나기를 빌 뿐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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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한달읽기 한해읽기



  여러 어린배움터에서는 ‘온읽기’를 한다. ‘책 하나를 통째로 읽기’인데, 우리나라 배움책(교과서)은 줄거리나 한두 대목만 슬쩍 실을 뿐이라서, 이렇게 겉훑기를 하기보다는 ‘온책읽기’를 해야 제대로 헤아려서 알 수 있다는 배움길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나는 좀 갸우뚱한다. 배움책은 책을 통째로 못 싣고, 아이들한테 책 하나를 통째로 가르칠 수도 없다. 배움길이란,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나설 노릇이다. 길잡이로서는 “자, 이런 책이 있단다. 책을 다 알려줄 수는 없고, 같이 다 읽을 수도 없지만, 너희가 스스로 짬을 내어 느긋이 읽어 보렴.” 하고 들려주고서 마쳐야 맞지 않을까? ‘온읽기’까지 시키기보다는 ‘고루두루 온갖 책을 알려주고 짚어주기’를 할 적에 배움터다우리라 본다.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이란, 으레 ‘여섯달읽기’나 ‘한해읽기’이다. 책 하나를 놓고서 꽤 오래도록 짚고 다루고 되새기고 돌아보고 다시 살피고 또 헤아린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가 헤아릴 ‘읽길(읽는길)’이라면, 책 하나를 한 해를 통틀어서 늘 곁에 놓고서 틈틈이 되읽는 매무새 하나가 있어야 할 만하다.


  슥 다 훑었다고 해서 읽기를 마쳤다고 여기지 않는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훑었으면 ‘훑기 애벌’이다. ‘읽기’란, 이야기와 줄거리를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서 풀어내고 품는 틈을 내고서 차분히 돌아보는 날을 ‘이어’서 ‘이야기’를 ‘일구’고는, 내가 나로서 이곳에 ‘있는(사는·살림하는·사랑하는)’ 뜻을 느끼고 헤아려서 꿈을 스스로 ‘이루’려는 하루를 누리면서 ‘익히’는 길이라고 여겨야 옳다고 본다. 그러니까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읽기’를 모르기도 하고, 배운 적이 없고, 가르치지 못 할 뿐 아니라, 제대로 다가서지도 못 하곤 한다.


  이를테면 낱말책은 ‘온삶읽기’를 하는 꾸러미이다. 낱말책을 슥 훑었기에 치워도 될까? 아니다. 어제 찾아본 낱말을 오늘 다시 찾아보더라도 낱말뜻과 낱말결과 낱말빛을 새롭게 바라보게 마련이다. 낱말책은 우리가 숨을 내려놓는 끝날까지 곁에 두는 ‘온책’이다. 이러한 낱말책과 비슷하게, 우리 마음을 움직이거나 북돋우는 책이라면 여섯 달이나 한 해쯤, 적어도 한 달쯤, 자리맡에 놓고서 날마다 몇 줄씩 되새길 노릇이지 싶다. 이렇게 ‘한달읽기’나 ‘한해읽기’를 해본다면, 굳이 붓바치(비평가)가 책을 풀어내는 글을 안 읽어도 우리 눈과 마음과 넋으로 모든 책을 헤아릴 뿐 아니라, 알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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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풀한테 손발이 없을까? (+ 그릇꽃)



  해파리한테는 골(뇌)이 없다고 잘못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해파리는 해파리로서 골이 있다. 해파리는 해파리라는 숨빛으로 바라보아야 해파리가 어떤 몸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해파리가 사람을 바라보며 “넌 왜 몸을 무겁게 치렁치렁 달고 살아?” 하고 묻는다면 사람으로서 무어라 대꾸하겠는가? 해파리가 사람을 쳐다보며 “넌 골이 크다고 여기는데, 그렇게 커다란 골로 무슨 일을 하니? 이 별에서 총칼을 만들어서 마구마구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짓을 그렇게 커다란 골라 만드니?” 하고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풀한테 ‘손’이나 ‘발’이 없다고 여기는 말은 어쩐지 안 맞지 싶다. 아니, 하나도 맞을 수 없다. 풀꽃나무가 사람을 보면, “어머, 쟤들은 어떻게 뿌리도 잎도 줄기도 가지도 없어? 저러고 어찌 살아?”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정작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뿌리나 잎이 없어도 걱정하거나 따지지 않으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으려면 늘 들숲메바다를 품을 노릇이다. 우리가 시골을 등지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메바다를 통째로 잊어버린 뒤에,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그리워서, 숨통을 틔우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도시) 겹집(아파트)에서 집에 꽃그릇(화분)을 들였지 싶”다. 1970∼80년대까지도 ‘도시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마당에 풀꽃나무를 두었을 뿐인데, 풀꽃나무를 더 두고 싶으나 자리가 모자란 탓에 그제서야 꽃그릇도 마련해서 곳곳에 더 놓기도 했다.


  ‘분재(盆栽)’는 일본말이고, 일본살림이다. 우리나라는 ‘그릇꽃’을 굳이 안 했다. 풀과 꽃과 나무를 그릇이 담아서는 풀꽃나무가 제 숨빛을 잊고 잃도록 괴롭히는 굴레라고 여겼다. 우리나라는 ‘그릇풀꽃’이 아닌 꽃밭과 마당과 뒤꼍을 꾸렸다. 우리나라는 ‘그릇풀’로 풀꽃나무를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서려면 발바닥을 땅바닥에 디디며 일하고 놀아야 하듯, 풀꽃나무는 언제나 드넓은 들숲메에 뿌리를 내리고 해바람비를 머금으며 스스로 푸르게 빛날 노릇이라고 여겼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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