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로이스 로우리) 산하 펴냄, 1992.10.25.



  열 살 어린이는 집과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 열 살 어린이를 돌보는 어른은 집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열 살 어린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면 될까, 아니면 앞으로 모든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짓는 마음길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할까. 미국 동화라고 하는 《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를 읽는다. 모두 일곱 권으로 된 이야기꾸러미 가운데 첫째 권으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언제나 스스로 생각한다. 그리고, 제 생각을 스스럼없이 학교와 집에서 말한다. 학교에서는 으레 꾸지람을 들으나, 집에서는 으레 사랑을 듣는다. 학교에서는 왜 아이한테 ‘주어진 어떤 틀’에 맞추도록 이끌려 할까? 집에서는 왜 아이한테 ‘스스로 삶을 짓도록’ 도와주려 할까? 이와는 달리, 학교에서 아이한테 ‘스스로 삶을 짓도록’ 도울 수 있고, 집에서 아이를 ‘주어진 어떤 틀’에 가두려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동화책을 읽다가 폭 빠져들어서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깜빡 잊어버렸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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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꼭 말을 해야 돼?- 아나스타샤 1, 미국동화
로이스 로우리 지음, 최덕식 옮김, 신혜원 그림 / 산하 / 1997년 1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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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아침에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나면 으레 졸음이 몰려온다. 내가 스스로 끌어들인 졸음일까. 이제 한숨을 돌리면서 살짝 쉰 다음, 낮을 기쁘게 맞아들이라고 하는 몸짓일까. 아이들이 밥을 마저 먹으면 곧 마을 어귀 빨래터로 물이끼를 걷으러 가야지. 아이들은 이제 봄날 빨래터 물놀이를 한껏 즐기겠구나. 다만, 조금 기다리렴. 아버지는 드러누워서 한숨 돌려야겠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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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책숲 느끼기
18. 내 이웃 삶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늘 ‘내 마음을 읽고 싶어서’라고 말하다가, 한 마디를 덧붙여 ‘내 이웃 삶을 읽으면서 내 이웃이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가꾸려 하는가를 읽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걷는 길이 어떠한 삶인지 더 또렷하게 헤아릴 수 있으면서, 내 이웃이 오늘 어떤 삶을 가꾸는지 환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을 가득 일으키는 책을 꾸준히 되읽습니다. 마음에 사랑스러운 꿈을 넉넉히 북돋우는 책을 새롭게 되읽습니다. 아름답다고 여겨 ‘같은 책’을 기쁘게 되읽습니다. 사랑스럽다고 느껴 ‘같은 책’을 언제 어디에서나 새롭게 되읽습니다.

  가네코 미스즈 님이 빚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2006)가 있습니다. 1903년에 조그마한 바닷마을에서 태어난 뒤, 1930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승길로 간 분이 쓴 동시집입니다. 시골 바닷마을에서 작은 책방을 꾸리면서 틈틈이 동시를 썼다고 하는데, 헤어진 남편한테 딸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면서 스스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쓴 동시는 이분 남동생이 오래도록 건사했다 하며, 1984년에 이르러 비로소 책으로 태어나며 널리 알려졌다고 해요. 이웃 일본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잠자다가 깨어난 동시집이고, 한국에도 느즈막하게 알려진 책입니다.

  작은 동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를 읽는 동안 조용한 바닷마을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마을의 끝은 / 저녁놀 붉은 놀 / 봄이 가까운 걸 / 알 수 있는 날(내일).” 같은 노래라든지, “어머니, / 뒤꼍 나무 그늘에, / 매미의 옷이 / 있었어요(매미의 옷).” 같은 노래를 읽으면서 바닷바람을 가만히 느낍니다. 이렇게 저녁놀과 매미를 살며시 느끼면서 동시를 쓴 분은 왜 서른 살조차 안 된 나이에 스스로 숨을 끊어야 했을까요. 어린 딸아이를 지키려는 어버이는 어떤 길을 걸어야 했을까요.

  가시내가 사내를 두들겨패는 일이 아주 드물게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참말 드뭅니다. 주먹질은 으레 사내가 일으킵니다. 사내는 으레 가시내를 두들겨패려 합니다. 더욱이, 사내는 으레 총칼을 손에 쥐려 하며, 사내는 으레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싸움터로 뛰쳐나갑니다.

  “참새의 / 어머니 / 그걸 보고 있었다. // 지붕에서 / 울음소리 참으며 / 그걸 보고 있었다(참새의 어머니).” 같은 노래를 곰곰이 읽습니다. ‘사람 아이’가 ‘참새 아기’를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쓴 동시입니다. ‘사람 아이’는 ‘참새 아기’를 붙잡고는 하하 웃습니다. ‘사람 아이’를 낳은 어머니도 제 아이가 참새 아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고 합니다. 동시를 쓴 아주머니는 이 모습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사람이 ‘참새가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섣불리 ‘참새 아기(새끼 참새)’를 붙잡아서 히히덕거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풀이 읊는 말’을 알아듣는다면, 함부로 농약을 치거나 땅바닥을 삽차로 파헤치는 일도 없으리라 봅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이웃인 사람’이 품는 마음도 잘 모르기 일쑤예요. ‘이웃인 작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가 읊는 말도 알아들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이 아프다 하거나 슬프다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아요.

  책 한 권을 손에 쥐어서 지식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책 백 권을 신나게 읽어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잘 생각할 노릇입니다. 지식을 왜 더 얻으려 하는가요? 지식을 왜 많이 쌓으려 하는가요? 더 얻은 지식으로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많이 쌓은 지식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가요?

  책으로 얻은 지식은 없으나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이나 학교로 얻은 지식이 없지만 참답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본 일조차 없는데 이웃과 사랑을 따스하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책으로 얻은 지식이 많지만 참답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온갖 지식을 많이 쌓았는데 짓궂거나 얄궂거나 쓸쓸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있어요.

  책을 더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책에 앞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때에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들녘 끝에서 / 파란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 춥디추운 해 저물녘에 // 그 주검 묻어 주려고 / 하늘은 흰 눈을 뿌렸습니다. / 깊이깊이 소리도 없이(눈).” 같은 노래를 조용히 읽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인지 생각하면서 삶노래를 가만히 읽습니다. 시는 삶노래라고 느낍니다. 삶을 노래하는 글이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이웃을 그리는 노래가 바로 시이고, 내가 이웃한테 아름다운 벗님으로 다가서면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더 많은 책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만 읽었어도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지식을 담으면 됩니다. 더 많은 이웃을 사귀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한 사람만 사귀어도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숨결을 심으면 됩니다.

  볼볼볼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밟지 않으면서 걷습니다. 재빠르게 기어가는 땅강아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춥니다. 땅강아지가 건너편으로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자전거를 몰다가 길섶에 나비가 앉아서 날개를 쉬는 모습을 보았으면 살며시 손잡이를 틀어 나비가 안 밟히도록 에돌아 갑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나 나뭇잎을 주워서 흙땅으로 옮깁니다. 길을 걷다가 떠돌이 개를 만나면, 내 손이나 주머니에 있는 먹을거리를 땅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모두 사랑스러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싱그러운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나라마다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아서 ‘국경’을 세우기도 하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 보면 쇠가시그물이나 국경은 덧없습니다. 구름이나 바람한테는 아무런 국경이나 국적이 없습니다. 사람한테는 적이나 적군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두 이웃입니다. 이웃을 아끼려고 한다면 총칼을 비롯한 모든 전쟁무기와 군대를 녹여서 없앨 노릇입니다. 이웃이니까요. 이웃하고는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쇠가시그물을 잔뜩 박으면서 총부리를 겨누느라 애먼 하루를 보낼 노릇이 아니라,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숲과 들을 아름답게 일굴 때에 비로소 사랑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나는 네 이웃입니다. 너는 내 이웃입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먼먼 나라 이웃을 살갑게 느낍니다. ‘이웃이 나한테 베푼 아름다운 선물’인 책 한 권을 만난 기쁨을 곰삭이면서 글 한 줄을 즐겁게 씁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청소년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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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59. 교과서에 ‘한자’를 넣을 까닭이 없다

― ‘입시공부’ 아닌 ‘넋 살찌우는 말’을 살펴야



  숲을 그릴 수 있으면 모든 말이 고운 숨결이 되리라 느낍니다. 숲을 그리지 못하면 어느 말을 쓰든 고운 넋이 못 되는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어른이 먼저 어떤 말을 써야 하고, 아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주어야 하는가를 슬기롭게 살핀다면, 어른과 아이 모두 슬기로우면서 고운 넋이 됩니다. 어른부터 스스로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깨닫지 않는다면, 어른과 아이 모두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운 말을 쓸 뿐 아니라, 넋과 삶 모두 어리석거나 바보스러운 길로 흐르고 맙니다.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든 영어를 가르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자와 영어를 외국말로 옳고 바르면서 슬기롭고 아름답게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권력은 초등학교에서 한자와 영어를 외국말로 똑똑히 가르치거나 제대로 가르칠 뜻이 아닙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초등학교에서 한국말부터 옳거나 바르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게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고, 교사는 교사대로 대학입시에 매달리느라 한국말은 뒷전으로 밀어두기 마련입니다.


  나라(정치권력)에서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려고 하는 까닭은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만 들여다보도록 하는 입시교육’에 일찍부터 길들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창조력)을 펼치지 못하도록 짓누르려는 뜻입니다.


  아이와 어른은 모두 ‘한자 하나’를 더 알거나 ‘알파벳 하나’를 더 알아야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한자말 하나’를 더 익히거나 ‘영어 하나’를 더 익혀야 생각이 자라지 않습니다. 지식을 늘리려면 지식을 늘릴 수 있도록 가르칠 노릇입니다. 생각을 키우려면 생각을 키울 수 있도록 이끌 노릇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말’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달달 읊거나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살다’라는 낱말이 하나 있으면, 이 낱말로 ‘함께 살다’나 ‘모여 살다’를 그리고, ‘책삶’이나 ‘노래삶’이나 ‘숲삶’을 그리며, ‘마을살이’와 ‘꿈살이’와 ‘사랑살이’를 그릴 수 있도록 말을 슬기롭게 가르쳐야 합니다. ‘기쁘다’라는 낱말이 하나 있으면 ‘기쁘네·기쁘구나·기뻐·기쁘지·기쁘지롱·기쁘다네·기쁘구마·기쁘요·기쁘다’처럼 말끝을 바꾸면서 느낌을 바꾸는 결을 살가이 가르쳐야 합니다.


  가는 말이 고울 때에 오는 말이 고운 줄 가르치고, ‘말이라는 씨앗’을 심은 대로 넋이 자라고 삶이 피어나는 흐름을 가르치며, 모든 생각은 말로 짓는다는 얼거리를 가르칠 노릇입니다.


  학교 문턱에 처음 발을 내딛는 여덟 살 아이가 무엇을 보고 생각하면서 삶을 익혀야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덟 살 아이 마음에 어떤 숨결이 깃들도록 할 때에 이 아이가 아름답게 자라서 사랑스러운 꿈을 키울 만한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학습 목표’가 아닌 ‘삶’을 살펴야 합니다. ‘학력 높이기’가 아닌 ‘꿈’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곳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면서 스스로 알차게 가꾸는 길’이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톱니바퀴나 부속품이나 종(노예)이 아닙니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손수 삶을 지을 줄 아는 철들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제 학교에서는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들이밀어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짓’을 그만둘 노릇입니다. 초등학교부터 학교 텃밭을 일구고, 학교 운동장 둘레를 숲으로 가꾸면서, 아이들이 밭과 숲을 스스로 돌보는 손길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고작 한자 몇 가지를 교과서에 넣느니 마느니 하면서 애먼 돈과 품과 겨를을 바칠 까닭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제대로 할 몫을 제대로 보아야 하고, 아이들이 참답게 배워서 참다운 사람으로 크는 길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교과서에 한자를 밝혀서 알려주느냐 마느냐 하고 따지기 앞서, 교과서를 이룬 글이 아이 눈높이에 맞도록 쉽거나 바르거나 아름다운가를 따져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조차 한자를 밝혀서 써야 할 만큼 그 한자말을 꼭 써야 하는가를 따져서, ‘한글로 적을 때에 곧바로 알아보면서, 이렇게 알아본 대로 생각을 밝히도록 이끄는 글’로 교과서를 고쳐쓰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교과서에 한자를 밝혀서 써야 한다면, 교과서 글(문장)이 엉망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셈이니까요.


  우리는 ‘삼월’을 ‘삼월’로 적고 이렇게 알면 될 뿐입니다. ‘三月’로 적고 이렇게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글쓰기’를 ‘글쓰기’로 적고 이렇게 알면 됩니다. ‘作文’으로 적고 이렇게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와 소설도 그저 ‘시’와 ‘소설’이지, ‘詩’나 ‘小說’로 적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와 ‘사진’을 ‘漫畵’와 ‘寫眞’으로 적을 줄 알기에 문화나 예술을 잘 알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思慮’를 모른다고 걱정하지만, 어른도 ‘사려’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릅니다. 한자를 밝힌대서 이 한자말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한자말 ‘사려’는 “깊게 생각함”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깊게 생각하다”라 말해야 누구나 알아들을 만하지, ‘사려(思慮)하다’처럼 적어야 알아들을 만하지 않습니다.


  시는 그저 ‘시’입니다. 시를 ‘시’로 적으면서, 시란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라고 가르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시’라는 글짜임에 맞추어서 즐겁게 쓸 수 있도록 이끌 때에 참답고 아름다운 교육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아름다운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꾸려서 아이들한테 베풀 교과서는 어른들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지으면서 깨달은 슬기를 담은 책이어야 합니다. ‘한자를 밝혀서 적느냐’는 둥 ‘영어로도 함께 적느냐’는 둥 이런 철없는 소리는 그치고,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될 생각을 짓는 말’을 어떻게 알차면서 알뜰히 다스려서 가르칠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제대로 배워야 영어나 중국말도 슬기롭게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말부터 슬기롭게 제대로 쓸 줄 모르면, 외국말을 아무리 잘 배운다고 하더라도 통역이나 번역을 못 합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과서를 바로잡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어떤 외국말이든 슬기롭게 제대로 배우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랍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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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4-15 11: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번역된 글 보면 바로 알겠더라구요. 우리말을 모르고 뒤쳐놓아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해요.

파란놀 2015-04-15 16:47   좋아요 0 | URL
한국말을 제대로 모르는 채
외국책을 옮기려 하면
참말...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기 마련이에요...
그렇지요...
 


꽃아이 91. 2015.4.8. 여기 하얀 꽃


  꽃돌이가 흰민들레를 본다. 자, 여기에 흰민들레 활짝 피었지? 네가 이렇게 바라보아 주니 흰꽃이 더욱 하얗게 빛나서 우리한테 고운 꽃내음을 베풀어 주는구나. 꽃송이를 쓰다듬고 싶으면 살살 쓰다듬으렴. 꽃송이는 아주 여리단다. 민들레잎을 먹고 싶으면 한 포기에 한 잎만 살짝 뜯고 고맙다고 말하렴. 꽃도 잎도 모두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따스한 숨결이란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꽃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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